7월 26일 일요일 · 서울

Independent Journal of Technology, Power & Culture

raylogue

완고한 사실 위에서, 변화의 구조를 읽다

AI가 만든 부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AI가 생산성을 높여도 그 이익이 임금과 고용 안정으로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IMF와 ILO 연구는 임금 격차와 자산 격차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본소득, 사회보험,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배당을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야 하는지 묻는다.

기술과 AI

기술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누구에게 권력을 주는가.

오픈 클로를 설치했다. 그런데 할 게 없더라

오픈클로(OpenClaw)를 설치했다. 텔레그램 봇을 연결하고 첫 리서치를 돌렸다. 결과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리고 5초쯤 감탄하다가 깨달았다. 이거 Claude.ai에서 하던 거잖아. AI 도구를 선택할 때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 내게도 유용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내 업무에서 AI에게 맡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권력과 제도

법과 정치, 제도가 실제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추적합니다.

전문가의 자리에 AI를 앉히는 고민,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권경애 사건을 운 나쁜 비극으로만 보면 결론은 몹쓸 변호사 한 명의 일탈로 끝난다. 하지만 유족이 항소심을 맡아줄 변호사를 구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한 대목은 피해자가 문제를 바로잡으려 할 때 대체제나 구제 경로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2024년 변호사 징계가 206건으로 역대 최다였다는 보도까지 겹치면 문제를 특정 개인의 게으름이나 악의로만 설명할 수 없다. 정보 비대칭, 책임 추궁의 난이도, 폐쇄적인 구제 경로 같은 조건이 맞물리며 비슷한 실패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비즈니스와 미디어

산업과 일, 저널리즘의 규칙이 바뀌는 현장을 읽습니다.

트럼프 소셜을 받아쓰는 기자들은 쪽팔리지 않을까

WSJ 기자들은 오늘도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을 새로고침하며 다음 게시물을 기다린다. 취재가 아니라 모니터링이다. 이것은 언론의 타락이 아니다. 플랫폼이 만든 인센티브 구조의 결과다. 로이터 인스티튜트는 이 구조가 51개국에서 복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소셜미디어를 받아쓰는 동안 잃어가는 세 가지를 해부한다.

마음과 삶

도구에 맡긴 생각과 주의력을 다시 인간의 문제로 가져옵니다.

베타맘 vs K맘: 집약적 모성이 교사와 교실을 소진시키는 방식

집약적 모성은 특정 부모(특히 엄마)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좋은 부모의 기준이 문화적으로 표준화된 상태다. 이 규범은 학부모 민원과 교권 침해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로 만든다. AI 민원 시스템 같은 기술 처방이 일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학교를 서비스 기관으로 더 굳힐 위험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문화와 취향

책과 화면, 스포츠와 한 잔에서 시대의 감각을 발견합니다.

잭 다니엘스(Jack Daniel’s)의 새 주인은 누구?

브라운-포맨(Brown-Forman)을 둘러싼 인수전은 2026년 4월 현재 한층 뜨거워졌다. 페르노리카(Pernod Ricard)는 공식 논의를 확인했고, 사제락(Sazerac)은 약 150억 달러 제안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핵심 변수는 가격보다 브라운 가문의 선택이다. 잭 다니엘스(Jack Daniel’s)의 주인이 바뀌면 브랜드 자체보다 주변 포트폴리오와 산업 지형이 먼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다시 읽는 레이로그

새로운 사건은 오래된 질문을 다시 현재로 불러옵니다.

광주전남통합특별법안 통과: 찬성한다 하지만 소수정당은 무시됐다

2026년 3월 1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행정통합특별법안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토론 후 기권했다. 기본소득당이 공동발의한 법안은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핵심 조항은 삭제됐다. 통과된 법안에는 민주적 견제장치 부재, 독소조항 포함 등 구조적 결함이 남아 있다. 이것은 한국 양당 독점 구조가 소수정당의 입법 참여를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완고한 사실(stubborn fact)이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4,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4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선다. 짧은 단편 구조 속에 실사와 예술, 기술과 철학이 뒤섞인 이 작품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치열한 실험과 시청자 경험의 확장을 본 글에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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