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 믿지 않는다? AI 저널리즘과 기업 콘텐트의 향방
가트너, 클라비요, 어도비, 시프트 브라우저가 연이어 내놓은 조사가 하나의 결론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AI를 쓴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 60%가 매주 AI를 쓰면서 완전히 신뢰한다는 응답은 13%에 그쳤다. 더 날카로운 문제는 따로 있다. 아무 표시 없이 올린 AI 콘텐트를 독자가 나중에 알아챘을 때 떠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2026년 1월 AI 기본법을 시행했다. 숨기는 것은 신뢰를 담보로 잠시 평화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3월 22일
나는 글을 쓸 때 AI를 잘 이용한다. 지금 이 글도 AI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만 AI가 쓴 초안을 그대로 올리지는 않는다. 어떤 표현은 수정했고, 어떤 단락은 다시 썼고, 근거 자료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건 내 일이다. AI 덕분에 많이 쓰는 날에 하루에 4개 정도 쓴다. 물론 AI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AI 없이 글을 쓰기가 점점 불가능한 세상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 여러 분야에서 글을 쓰는 분도 있겠다.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AI가 만든 콘텐트에 대해 주목할 만한 조사가 잇따라 나왔다.
네 가지 조사, 하나의 결론
가트너가 CMO(최고마케팅책임자)에게 소비자 트렌드를 제공하는 연간 리포트 "What CMOs Must Know About Consumers in 2026"을 2026년 3월 16일에 발표했다. 2025년 10월 미국 소비자 1,5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리포트의 핵심 결과는 네 가지다. 소비자 대면 콘텐트에 AI를 쓰지 않는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0%였다. 50%? 그렇다면 나머지 50%는 좋다는 뜻 아닌가? 그건 아닌 듯 하다. 68%는 자신이 보는 콘텐트가 실제인지 자주 의심한다고 했다. 61%는 일상적 의사결정에 쓰는 정보의 신뢰도를 자주 의심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보의 진위를 직관으로 판단한다는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나머지 73%는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 검증한다는 뜻이다.
이커머스 마케팅 자동화 플랫폼 클라비요(Klaviyo)는 고객사인 브랜드들이 소비자 행동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연간 소비자 조사를 발행한다. 2026년판 "AI 페르소나 리서치"는 전 세계 소비자 약 8,000명을 대상으로 AI 사용 빈도와 신뢰 수준을 측정했다. 클라비요 AI 페르소나 리서치의 핵심 결과는 네 가지다. AI 도구를 매주 쓴다는 응답이 60%였다. AI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응답은 13%에 불과했다. AI가 추천한 제품을 지난 6개월 안에 구매한 적 있다는 응답은 41%였다. AI 열성 사용자의 40%는 저품질 AI 생성 마케팅 콘텐트를 일주일에 여러 번 알아챈다고 했다.
어도비(Adobe)도 한 말씀 보탰다. 어도비 AI and Digital Trends 2026년 판은 2025년 10~11월 전 세계 경영진, 실무자 3,000명과 소비자 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여기는 주로 AI를 활용한 고객 지원 결과가 재미있다. AI와 대화하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았을 때 이탈하겠다는 응답이 37%였다. 소비자들이 AI 신뢰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것은 'AI 사용 사실의 명확한 공개'(68%)였다. 두 번째는 '필요할 때 사람으로 전환 가능성'(61%)이었다.
멀티앱 브라우저 서비스 시프트 브라우저(Shift Browser)는 2026년 고객을 중심으로 AI 소비자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Shift Browser AI Consumer Insights 2026은 표본 구성과 규모가 공개되지 않았으며 서비스 홍보 맥락이 개입될 수 있어 앞의 세 조사보다 좀 덜 믿을 만 하다. 다만 방향성은 일치한다. AI 기능을 제한하거나 끄고 싶다는 응답이 51%였다. AI 답변 엔진을 크게 신뢰한다는 응답은 16%에 그쳤다. 프라이버시를 가장 큰 우려로 꼽은 응답이 48%였고, AI 규제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79%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AI를 쓴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가장 잘 알아챈다
클라비요 조사에서 눈에 띄는 발견이 하나 있다. AI를 가장 열성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의 40%가 저품질이거나 판에 박힌 AI 생성 마케팅 콘텐트를 일주일에 여러 번 알아챈다고 했다. 이건 일종의 경고다. AI를 많이 쓸수록 AI 냄새를 더 잘 맡는다. 독자가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통하지만 6개월 후에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AI 콘텐트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노출되는 집단이 가장 빠르게 면역을 키우고 있다.
저널리즘이든 기업 뉴스룸이든 이 문제는 공통이다. 독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중에 알았을 때 떠난다
어도비 조사가 측정한 것은 'AI 콘텐트가 싫다'는 감정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이렇다. AI가 만든 콘텐트임을 모르고 소비하다가 나중에 알게 됐을 때 이탈하겠다는 응답이 33%였다. 이 순서가 핵심이다. '이건 AI가 쓴 콘텐트입니다'라고 처음부터 밝혔다면 독자는 처음부터 기대치를 조정한 상태로 읽는다. 그런데 아무 표시 없이 콘텐트를 소비하며 신뢰가 쌓인 다음에 AI 생성이었음을 알게 되면, 그 신뢰 자체가 잘못된 전제 위에 쌓인 것이 된다. 콘텐트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속았다는 감각이다. 독자가 잃는 것은 콘텐트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신뢰다.
지금 AI 콘텐트를 아무 표시 없이 올리는 미디어와 기업들은 신뢰를 담보로 부채를 쌓는 중이다. 독자가 지금은 믿고 있는데 그 신뢰의 기반이 될 수 없는 조건이 조용히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알아채는 시점이 늦을수록 쌓인 신뢰의 총량은 커지고 그만큼 붕괴의 낙차도 크다. 이것이 부채다. 갚아야 할 날이 오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은 이미 이 문제에 법으로 답했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2026년 1월 22일 시행됐다. 생성형 AI 사업자에게 투명성 확보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다. EU AI Act Article 50도 2026년 8월 2일 발효된다. 두 법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가 만든 콘텐트(특히 이미지, 영상, 음향)라면 AI로 만들었다고 밝혀야 한다. 한국은 이미 법적 의무가 시작된 상태다. 아무 표시 없이 올리는 것은 이제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법 위반의 문제다. 물론 위반과 처벌의 수위가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AI가 발견 경로가 되었다는 것
클라비요 조사에서 반대 방향의 데이터도 있다. 소비자의 41%가 지난 6개월 안에 AI가 추천한 제품을 구매했다. 27%는 AI가 소개해준 제품을 이후 다른 경로로 검색해서 구매했다. 쓰지만 믿지 않는 것과 쓰면서 구매까지 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AI는 권위자가 아니라 첫 번째 필터가 됐다는 말로 역설을 풀어야겠다. 소비자들은 AI를 입력값으로 다루지 정답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말은 AI에 잡히는 것과 AI를 통해 온 독자가 머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GEO(생성형 검색엔진 최적화)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고 GEO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다. 첫 번째 필터를 통과하는 것은 기술이 해결하지만 그다음에 독자가 멈추는 것은 콘텐트가 해결한다.
숨기지 않는 것이 전략이 된 이유
어도비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AI를 믿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두 가지는 'AI 사용 사실을 명확하게 공개'(68%)할 때와 '필요할 때 사람으로 전환하는 가능성'(61%)이었다. 이것은 기술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태도에 대한 요구다.
저널리즘이 AI에 대응하는 방식도 여기서 갈린다. 특히 텍스트 데이터가 더 그렇다. AI를 감추는 방향과 AI를 명시하는 방향. 감추면 단기적으로 마찰이 없다. 그러나 독자가 알아채는 속도를 생각하면 곧 밝혀질 것이다. 밝히면 처음에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AI가 초안을 작성했고, 기자가 검증하고 편집했습니다"라는 한 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이미 지나가고 있다.
이 글 첫 문장에 쓴 것처럼 숨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제는 숨길 수도 없다.
자료 출처
- 가트너 마케팅 조사 (2026.03.16) — 2025년 10월, 미국 소비자 1,539명
- 클라비요 AI 페르소나 리서치 (2026.03.13) — 전 세계 소비자 약 8,000명
- 어도비 AI and Digital Trends 2026 — 2025년 10~11월, 전 세계 소비자 4,000명
- Shift Browser AI Consumer Insights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