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아직 판결하지 않는다: 그저 법정에 앉아 있을 뿐
월스트리트저널 팟캐스트 보도에 따르면 일부 미국 연방 판사들이 AI를 판결 보조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판결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지만 방대한 기록 요약, 쟁점 구조화, 질문 준비에 AI가 쓰인다. 이는 판단 속도를 바꾸고 사법 권력 구조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직 AI가 판결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AI에게 판결을 시키지는 않지만 AI는 이미 법정 안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AI가 그 자리에 앉아만 있을까?
2026년 1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팟캐스트 'Tech News Briefing'를 통해 미국 법원의 AI 사용 실태를 보도했다. 리포터 에린 멀베이니(Erin Mulvaney)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일부 연방 판사들이 AI를 업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였다
그동안 AI와 법정 관련 뉴스는 주로 변호사의 실수를 다뤘다. 변호사가 챗지피티로 작성한 서면에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해 징계받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부 판사는 법정에서 AI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 때문에 AI를 법조계에서 위험한 도구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멀베이니의 취재는 다른 각도를 보여줬다.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가 AI를 쓰고 있었다. WSJ이 인터뷰한 판사들은 챗지피티에게 판결 결론을 바로 묻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신 수십만 쪽에 달하는 재판 기록을 요약하거나 양측의 주장과 관련 법률을 구조화하는 데 AI를 활용한다. 심문에서 변호사에게 던질 질문을 준비할 때도 AI를 사용한다. 한 판사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라고 AI에게 묻는다고 설명했다.
보조 도구의 역할과 한계
판사들은 AI를 보조 도구로만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에 응한 한 판사는 "AI가 제공하는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료, 금융, 행정 분야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최종 판단은 사람이 내린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개념적 맹점이 있다. AI가 어떤 쟁점을 핵심으로 표시하고 어떤 판례를 관련성 높은 것으로 배치하며 어떤 주장을 요약의 앞부분에 놓느냐에 따라 판단의 전제 조건이 달라진다. 판사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만 그 결정에 이르는 사고 구조를 AI가 설계한다면 보조와 판단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멀베이니가 인터뷰한 다른 판사는 기술을 모르는 채 배제하기보다는 제대로 이해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접근이라고 말했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
미국 법률 데이터베이스 기업 렉시스네시스(LexisNexis)는 현재 모든 연방 판사에게 AI 기반 도구를 제공한다. 기본적인 법률 검색 기능부터 문서 종합 기능까지 법관실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렉시스네시스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판사가 이 도구를 사용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멀베이니는 현재 상황을 "일화적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도구는 모든 판사에게 제공되지만 누가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는 없다. 대부분 AI와 관련된 뉴스는 부정적 사건이 터졌을 때 나온다. 판사나 법률 보조원(law clerk)이 기본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권력 구조의 변화
법정은 원래 권력 비대칭이 극명한 공간이다. 국가와 개인, 판사와 당사자,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구조적 격차가 존재한다. 여기에 AI가 추가되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누가 AI를 사용할 수 있는가 어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쓰는가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한가.
한 판사는 과거 법원에 팩스를 도입할 때도 문서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격렬한 논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법조계가 원래 기술 도입에 보수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팩스가 단순한 전송 수단이었다면 AI는 판단 구조 자체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팟캐스트 진행자 패트릭 코피(Patrick Coffee)는 AI가 변호사와 판사를 대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멀베이니는 연방 판사들이 AI를 조금이라도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고 답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문제의 다른 측면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에 응한 판사들은 기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미래의 답이라고 말한다.
현재 AI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법정 한쪽에서 기록을 정리하고 쟁점을 표시하며 질문을 준비한다. 누가 얼마나 사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다. 기술 변화의 초기 단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이 패턴이 얼마나 갈 것인가. 나는 조금 더 짧게 본다. AI를 도구로 이용하는 판사가 그렇지 않은 판사보다 더 빠르게 판결할 테니까. 그리고 한 마디 더 보태면 AI만 할루시네이션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도 할루시네이션이 있다. 판사에게도 있을 것이다.
원본 출처
WSJ Tech News Briefing, "The Chatbots Have Entered the Courtroom"
2026년 1월 9일 방송. 리포터: 에린 멀베이니(Erin Mulva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