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법 개정: 더는 미룰 수 없는 헌정 질서의 빚
현행 사면법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대상을 범죄 유형별로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 기본소득당은 2024년 12월 내란, 외환, 반란죄에 대한 사면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는 14개월 넘게 심사를 미뤄왔다. 2026년 2월 소위 의결 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보류된 개정안은 3월 국회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확인한 이상 사면법 공백을 방치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신뢰 가능성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기본소득당의 선제적 발의부터 법사위 소위 통과까지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2026년 2월 20일 발표한 논평의 첫 문장은 단호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제 정당들에 촉구합니다. '12.3 내란 사면금지' 사면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킵시다." 이 촉구가 발표된 날은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전날, 지귀연은 말도 안되는 판결문을 읽어가며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는 사면법 개정안 심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논평의 핵심은 지금 급하다가 아니다. "기본소득당은 1년여 전 내란 직후인 2024년 12월, 이미 내란, 외환, 반란죄에 대한 사면을 금지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지속적인 요구에도 이 법안을 심사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왔습니다." 이것이 핵심이다. 법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미룬 것은 국회였다.
사면법의 현재 모습과 개정안의 내용
현행 사면법은 1948년 제정 이후 수십 차례 개정을 거쳐왔지만 사면 대상의 범죄 유형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일반사면, 특별사면, 감형, 복권을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누구를 또는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은 사면할 수 없다는 명시적 금지 조항이 없다. 이것이 현재 법의 공백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사면법 제9조의2를 신설해 형법상 내란, 외환죄, 군형법상 반란죄를 범한 자에 대해선 사면, 감형, 복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의 동의를 얻으면 사면이 가능하도록 예외 조항을 달았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 모두에 적용되며 위헌 논란을 의식해 '원칙적 금지 + 의회 동의 예외'라는 구조를 택했다.
입법 진행 경과: 속도전과 보류 사이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2024년 12월 기본소득당이 최초 발의했다. 그러나 법사위는 이를 14개월 넘게 심사하지 않았다. 2026년 2월 20일,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사면법 개정안 26건을 상정해 심사에 들어갔다. 같은 날 소위에서 민주당 주도로 의결했으나 2월 23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사면법 개정안 통과는 보류됐다. 법무부에서 보다 상세한 의견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의결이 미뤄진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3월 임시국회에서 검찰개혁 법안 등을 처리할 방침이며 12일을 기점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본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면법 개정안은 이 일정 속에서 아직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오늘(2026년 3월 3일) 현재, 개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 보류 상태에서 3월 국회 처리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위헌 논란의 실체: 진짜 쟁점은 어디에 있나
반대 측의 핵심 주장은 두 가지다. 첫째, 내란본당 나경원은 "헌법 79조가 규정한 대통령의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자 고도의 통치행위"라며 "이를 입법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은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이번 법안이 사실상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처분적 법률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될 경우 소급입법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두 주장을 법철학적으로 해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우선 대통령 고유 권한 논거를 보자.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하되,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사면권 자체가 법률 위임을 전제로 구성된 권한이다. 현행 사면법이 사면의 종류와 절차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입법부의 사면권 규율이다. '종류와 절차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지만 대상은 안 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자의적 구분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논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정치인들의 사법심사 배제를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법치주의가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통치행위론은 점점 그 적용 범위를 좁혀가는 것이 국제적 추세다.
다음으로 소급입법 논거를 보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에 대해 "대통령의 사면권도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하는 것이라 입법부에서 그렇게 결정하면 위헌 여지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소급입법 금지 원칙(헌법 제13조 제2항)은 '불이익한 소급 처벌'을 금지하는 것이다. 사면법 개정은 범죄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자체를 소급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 확정된 이후 이루어질 수도 있는 사면의 요건을 앞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 둘은 법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소급입법 논거는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왜 사면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한가: 세 가지 근거
첫째, 헌정 질서의 자기 보존 논리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해 방어할 권리가 있다. 이를 '전투적 민주주의(militant democracy)'라고 한다. 독일 기본법(Grundgesetz)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행위 자체를 위헌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도 12.3 비상계엄을 위헌적 내란으로 인정했다. 사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한덕수/이상민 1심 판결, 윤석열 1심 판결로 12.3 비상계엄은 내란임이 명백히 인정되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자에게 민주주의적 관용의 이름으로 사면을 허용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둘째, 한국 현대사의 반복되는 패턴을 끊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내란 및 반란 혐의로 1997년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말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되었다.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과연 국민이 화합되었나? 그 사면이 이후 한국 정치 문화에서 쿠데타적 행위에 대한 잠재적 면죄부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YS 이후 지역감정은 더 강해졌고 반대편을 대하는 태도는 말싸움에서 주먹질로 달라졌다. 역사는 실험을 반복할 수 없지만 최소한 같은 조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 구조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셋째, 법치주의의 신뢰 가능성 문제다. 사법부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헌재가 위헌을 확인했는데, 언제든 행정권력의 단독 결정으로 그 모든 것을 무효화할 수 있다면 법치주의는 껍데기다. 현행 사면법 체계는 사면 결정을 사실상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완전히 맡기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구조는 예외적이어야지 원칙이어서는 안 된다. 사면법 개정의 핵심은 내란수괴 윤석열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가에 대한 헌법적 선언이다. 이것은 현재를 위한 법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법이다.
개정안의 약점과 보완 방향
현재 통과된 소위안이 갖는 구조적 약점도 짚어야 한다.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동의 시 예외적 사면 허용 조항은 이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현실적 타협이다. 그러나 5분의 3이라는 기준은 정치 지형에 따라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숫자다. 이 예외 조항이 훗날 정치적 거래의 통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입법 과정에서 예외 사유의 실질적 요건을 더 엄격하게 규정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기본소득당이 제안한 내란종식 8법과 내란종식특별법, 여러 의원들이 내놓은 내란 후속조치 법안들이 국회에 기약 없이 잠들어있다. 사면법 개정은 이 패키지의 일부여야 한다. 단독으로 처리되어도 의미가 있지만 내란 청산의 법적 구조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입법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완결성이 문제다
3월 국회가 중수청·공소청 법안과 대미투자특별법에 집중하는 동안 사면법 개정안은 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릴 위기다. "사법부가 실패한 내란이라는 이유로 내란수괴와 그 일당의 감형에 앞장서고 있는 지금이기에, 국회가 좌고우면 않고 내란청산이라는 국민적 의지를 실현하고 있음을 단호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용혜인 대표의 이 문장은 수사가 아니다. 구조적 경고다.
법은 타이밍이 있다. 특히 헌정 위기 이후의 입법은 더욱 그렇다. 독일이 나치즘 이후 기본법을 만든 방식,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구성한 방식들은 역사가 위기 직후에 새로운 규범을 설계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유예된 입법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거나 관성에 의해 흐지부지된다.
사면법 현행 본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개정안 의안 검토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추적 가능하다.
내란은 사법적으로 확인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확인이 제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로 연결되는 구조다. 사면법 개정은 그 구조의 핵심 부품이다. “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조속히 완수합시다.”라는 용혜인 대표의 말은, 그것이 기본소득당의 요청이기 이전에 헌법 질서가 스스로에게 지우는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