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봉은 누구를 향해 내려치는가: 뱅크시가 던진 질문, 지귀연이 외면하는 정의

2025년 9월 8일, 런던 왕립재판소 외벽에 뱅크시가 남긴 벽화 <정의로운 폭력(Justice Violence)은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과 권력 남용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자 불평등한 현실에 침묵하지 말라는 준엄한 외침이다. 법복을 입은 판사가 거대한 법봉을 휘둘러 피켓을 든 시민의 머리를 내려치는 모습.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봉이 오히려 정의를 외치는 시민을 억누르는 폭력의 도구로 전락한 순간. 이 작품은 영국을 넘어 지나치게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잡지 못하는 한국 사법부의 현실에도 깊은 경종을 울린다.

거리 예술가 뱅크시 작품 정의로운 폭력, 권력과 불공정한 사법부를 비판하는 상징적 장면

뱅크시의 거리 철학: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비판하다

뱅크시는 얼굴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채 활동하는 영국의 거리 예술가다. 그의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원에 거래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전, 반자본주의, 사회적 불평등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은 제도권 예술과 거리를 두며, 늘 기득권과 권위를 조롱해왔다. 2018년 경매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낙찰되자마자 파쇄기로 갈아버리며 예술의 상업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뱅크시는 '거리'라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비판하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아티스트다.

이번 작품은 뱅크시의 철학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그림에는 영국 전통 가발과 법복을 입은 판사가 등장한다. 이 모습은 곧 법의 권위, 공정함, 그리고 정의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 판사는 판사봉을 들고 무언가를 선언하는 대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무력한 시위자를 무자비하게 내리친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법의 상징을 뒤집는다. 판사봉은 본래 법정의 질서를 유지하고 판결을 내리는 권위의 상징이다. 뱅크시는 이 판사봉을 폭력 도구로 사용하면서 법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음을 비판한다.

판사는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판사는 오히려 약자인 시위자를 폭행한다. 이는 법 집행이 공정성을 잃고, 권력의 편에 서는 순간 법의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사실 이 작품은 최근 영국에서 팔레스타인 시위가 격화되면서 '팔레스타인 액션' 단체가 금지되고, 시위자들이 대거 체포된 사건 직후에 등장했다. 뱅크시는 이 그림을 통해 공공질서라는 명분으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법부의 기울어진 저울: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

이 그림은 단순한 영국 사법부 풍자를 넘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되는 오늘 한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춘다. 특히 12.3 계엄 사태와 그 여파에서 드러난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판사의 행태는 뱅크시의 메타포를 생생한 현실로 만들고 있다.

한국 사법부는 거액의 횡령이나 배임,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나 유력 정치인에게는 집행유예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생계형 절도나 소액 범죄를 저지른 서민에게는 가혹한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판사봉은 강자에게는 깃털처럼 가볍고, 약자에게는 쇠망치처럼 무겁게 내려치는 폭력이 되고 있다.

전관예우는 공정해야 할 법의 판단을 돈과 인맥으로 사고파는 관행이다. 이는 법이라는 시스템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일부 기득권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면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지귀연의 '시간 단위' 마법: 내란수괴 석방의 전말

12.3 계엄령 선포 이후의 사법 행태는 더욱 적나라하다. 지귀연 판사는 2025년 3월 7일, 형사소송법이 명시한 '날(日) 단위' 구속기간 계산을 무시하고 '시간 단위'로 계산해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했다¹.

이는 명백한 법 위반이었다. 지귀연 자신이 참여해 집필한 『주석 형사소송법』 제6판(2022)에서도 구속기간은 날짜 기준으로 계산한다고 명시해놓고 말이다². 부산지법 김도균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구속취소 유감'이라는 글을 올려 이를 비판했다³.

이후 지귀연의 특혜는 계속됐다. 윤석열의 재판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언론 촬영을 불허했다⁴.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모든 전직 대통령 재판이 공개된 것과 대조적이다. 윤석열이 재판에서 93분 동안 '모두진술'을 명분으로 마음대로 떠들게 내버려두기도 했다⁵.

룸살롱 접대 의혹: 무너진 사법 신뢰의 결정타

2025년 5월 14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귀연 판사가 "1인당 10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돈을 낸 적이 없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⁶.

민주당은 "해당 룸살롱은 서너 명이 술자리를 즐길 경우 400~500만 원은 족히 나오는 곳"이라며 "서울 강남의 최고급 룸살롱"이라고 지목했다⁷. 지귀연은 5월 19일 재판에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⁸,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이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했고 시민단체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했다⁹.

흥미롭게도 해당 업소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 하수구 공사를 이유로 영업을 중단하고 간판까지 떼어냈다¹⁰. 조사 결과 이 업소는 룸살롱이 아닌 단란주점으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2014년 무허가 유흥주점 영업 혐의로 단속된 전력이 있다¹¹.

의심스러운 재판 배정과 '침대 축구' 재판의 실상

더욱 의심스러운 점은 내란 관련 주요 사건들이 모두 지귀연 재판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을 비롯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제3야전사령부 헌병대장 등 주요 피고인들의 재판이 모두 그의 재판부에 배당된 상태다¹².

지귀연은 2025년 9월 8일에야 "오는 12월 무렵에는 심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¹³. 현재까지 3개 사건에 대해 총 60회 가까이 재판을 진행했지만, 올해 12월까지 추가로 50회 넘게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 판사는 내란 재판을 침대 축구로 일관하고 있다"며 "윤 전 대통령은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돼서 감옥 밖으로 나와 출퇴근하며 재판받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¹⁴. 실제로 윤석열은 8회 연속 재판에 불출석하며 '건강상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¹⁵, 재판부는 강제 출석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한국 사법부는 법봉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착각하고 있다. 지귀연의 룸살롱 출입에 대해서는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으며, 특별 재판부를 요청하는 시민의 요구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민 저항의 철학적 근거: 로크의 저항권 이론

정치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정부론』에서 "정부가 국민의 신탁을 배반할 때, 국민은 저항권을 갖는다"고 했다. 법이 정의를 저버릴 때, 시민불복종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민주주의 복원의 수단이 된다.

실제로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들은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저항해왔다. 4·19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촛불집회 모두 기존 법질서를 뛰어넘는 시민의 직접행동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이들의 저항을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뱅크시의 벽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법봉을 쥔 권력이 시민을 억압할 때, 시민은 그 법봉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상기시킨다.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제언: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

사법부는 스스로 불신의 길을 걷고 있다. 시민들은 내란수괴 재판 전반을 거쳐 드러나는 불공정과 의심스러운 법원의 행동을 무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사법부의 불신을 걷어내고 내란수괴 재판에 대한 시민의 불안과 염려를 해결하려면 사법부는 다음 질문에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첫째, 양형기준의 객관화다. AI 기반 양형 예측 시스템을 도입해 판사의 자의적 해석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사법부 인사제도 개혁이다. 법관 임용 과정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시민 참여형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실시간 사법 감시체계 구축이다. 모든 재판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시민이 언제든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봉을 되찾는 시민들: 민주주의 회복의 의지

뱅크시의 「정의로운 폭력」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법봉은 누구를 향해 내려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답은 실망스럽다. 지귀연과 한국 사법부의 법봉은 권력자에게는 부드럽고, 시민에게는 가혹했다. '시간 단위' 마법으로 내란수괴를 탈옥시키고, 룸살롱 접대 의혹에 휩싸인 판사가 재판을 질질 끌며 비공개로 진행하는 현실 앞에서 시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법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다. 그 권력이 국민을 배반할 때, 국민은 그것을 되찾을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고, 뱅크시가 우리에게 던진 궁극의 메시지다.

정의로운 법봉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사익을 채우는 데 정신이 없었던 내란 집단을 향해 내려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민은 그 법봉을 되찾아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사법부는 대한민국의 지배자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불공정한 공무원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우리는 내란을 막아낸 국민이다. 법을 왜곡해가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마음대로 법봉을 휘두른 판사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