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 주장하는 자가 입증하라
입증책임원칙은 법정의 공정성을 지탱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이다.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진 논란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가”라는 법적 원칙의 본질을 다시 조명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자가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시될 때, 법치주의는 쉽게 무너진다. 입증책임원칙의 올바른 이해와 적용이야말로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공정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파제임을 이 사례는 명확히 보여준다.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모든 증거를 검토해도 사실의 존재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진위불명의 상태에서 법원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입증책임원칙'이다. 이 원칙은 단순히 법정에서만 적용되는 기술적 규칙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근본적 장치이다.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진 논란은 입증책임원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사례가 되었다. 여야 간의 격렬한 공방 속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들과 그에 대한 대응 과정은 '누가 무엇을 입증해야 하는가'라는 법적 원칙의 핵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의혹을 남발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서 확대해석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 법체계에서 입증책임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주장과 입증, 증거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한 후, 강선우 후보자 청문회 사례를 통해 이 원칙이 왜 중요한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입증책임원칙의 법적 근거와 정의
입증책임(立證責任) 또는 거증책임은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법적 원칙이다.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에 따르면, "입증책임이란 소송에 나타난 일체의 증거자료에 의해서도 법원이 그 존부 여하를 결정할 수 없는 경우 이를 어느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판단하지 않는 한 재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당사자의 일방이 입을 불이익을 입증책임이라 합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1].
이러한 입증책임의 분배는 "일반적으로 권리관계의 발생·변경·소멸 등의 법률효과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책임을 집니다"라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1]. 즉, 어떤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 사실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의 적용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원고가 자신의 권리 발생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피고는 권리 소멸이나 장애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여금 청구소송에서 원고는 돈을 빌려준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피고는 이미 갚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반면 형사소송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사재판에서 공소제기 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고인이 아니라 검사에게 있는 것이다.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
법원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입증책임을 분배한다. 대법원 판례를 통해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환자측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두고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의료상 과실 있는 행위가 있었고 그 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라고 하여 원고인 환자 측에 입증책임을 부과했다[1].
반대로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방송 등 언론매체가 사실을 적시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그 증명이 없다 하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어디까지나 명예훼손 행위를 한 방송 등 언론매체(피고)에게 있습니다"라고 하여 피고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했다[1].
주장과 입증, 증거의 개념
주장이란 당사자가 법원에 대해 특정한 사실이나 법적 관계의 존재를 단언하는 행위이다. 주장은 단순한 의견이나 추측과는 구별되는 법적 개념으로,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피고가 나에게 1000만원을 빌려갔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금액과 당사자, 법적 관계를 명시한 것이다.
주장의 핵심적 특징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관적 감정이나 개인적 견해는 법적 주장이 될 수 없으며, 반드시 증거를 통해 뒷받침될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이어야 한다. 또한 주장은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특정한 법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제시되어야 한다.
입증은 주장한 사실이 실제로 존재함을 법원에 확신시키는 과정이다. 입증은 단순히 증거를 제출하는 것을 넘어서, 제출된 증거들이 주장하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의 증명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건을 포함한다. 민사소송에서는 '증명도의 우세(preponderance of evidence)' 기준이 적용되어, 주장하는 사실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는 정도로 입증하면 된다.
반면 형사소송에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beyond reasonable doubt)'의 엄격한 입증 기준이 적용된다. 이는 형사처벌의 중대성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반영한 것으로, 검사는 피고인의 유죄를 거의 확실한 수준까지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민사와 형사의 목적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증거를 가져오라
입증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증거의 관련성(relevance)과 신빙성(credibility)이다. 아무리 많은 증거를 제출하더라도 그것이 주장하는 사실과 관련이 없거나 신뢰할 수 없다면 입증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효과적인 입증을 위해서는 주장하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체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증거는 주장하는 사실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자료를 의미한다.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인정하는 증거의 종류는 크게 서증(문서), 증인증언, 당사자 본인의 진술, 감정, 검증 등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증거는 고유한 특성과 증명력을 가지고 있어, 사안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증거를 선택하여 제출해야 한다.
서증은 문서의 형태로 된 증거로, 계약서, 영수증,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이 포함된다. 서증의 장점은 내용이 고정되어 있어 변조되지 않는 한 객관적 증명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증인증언은 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관련 사실을 알고 있는 제3자의 진술로,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하지만 기억의 한계나 주관적 해석이 개입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감정은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하는 증거방법이다. 의료사고, 건축 하자, 지적재산권 침해 등의 사건에서 자주 활용되며, 법관이 판단하기 어려운 전문적 영역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제공한다. 검증은 법원이 직접 현장을 확인하거나 물건을 조사하는 증거조사 방법으로,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난 입증책임의 왜곡
2025년 7월 14일 진행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입증책임원칙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보좌진에 대한 갑질, 위장전입, 배우자 재산신고 누락 등 다양한 의혹을 제기했다[3]. 그러나 이러한 의혹 제기 과정에서 입증책임의 기본 원칙이 심각하게 무시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보좌진 갑질 의혹의 경우, 야당 의원들은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지역사무실에 버려줘요"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4]. 이에 대해 강 후보자는 "제 부덕의 소치"라며 "심심한 사과"를 표했지만, 동시에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5]. 문제는 이러한 공방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측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청문회 후 YTN 라디오에서 "만약 그것이 뭐 그 한두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네 번 다섯 번 수시로 그렇게 했다면 이건 좀 얘기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입증하는 게 좀 부족했던 거 아닌가"라고 발언했다[6]. 이는 갑질이 반복적이고 일상적이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입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하는 측이 그 의혹의 사실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청문회 과정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안 했다는 증거를 내놔봐"의 법적 무지
청문회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부에서 제기된 "니가 안 했으면 안 했다는 증거를 내놔봐"라는 식의 요구였다. 이는 입증책임원칙에 대한 근본적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이다. 법적으로 '소극적 사실(negative fact)'의 입증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를 요구하는 것은 '악마의 증명(devil's proof)'이라고 불리는 논리적 오류이다.
예를 들어, "A가 어제 서울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A가 어제 24시간 동안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모든 순간에 대해 입증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부당한 요구이다. 따라서 법원은 "A가 어제 서울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측이 그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강선우 후보자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갑질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주장하는 측이 그 사실을 구체적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반대로 후보자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 부당하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입증책임의 기본 원리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치적 공세와 법적 원칙의 충돌
이번 청문회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갖는 절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적 원칙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입증책임원칙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직결되어 있어, 이를 무시하는 것은 법치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청문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의혹 제기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증거 없이 단순한 추측이나 정황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입증책임의 전도(顚倒)이다. 이러한 방식이 계속된다면, 결국 누구든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만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에게 잘못된 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의혹을 제기당한 사람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 경우, 이는 우리 사회의 법적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주장하는 자가 증거를 내놔야 한다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입증책임원칙에 대해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입증책임원칙은 단순한 절차적 규칙이 아니라,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는 핵심적 장치이다.
입증책임원칙의 핵심은 명확하다. 어떤 사실을 주장하는 자가 그 사실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민사소송에서든 형사소송에서든, 그리고 정치적 영역에서든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 원칙이다. 특히 "안 했다는 증거를 내놔봐"라는 식의 요구는 법적으로 무지하고 무식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훼손하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정치적 공세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이지만, 그것이 법적 원칙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의혹을 제기할 때는 반드시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단순한 추측이나 정황만으로는 상대방에게 해명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언론과 국민들도 이러한 법적 원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의혹 제기 자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거나, 해명하지 못하면 유죄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 모두가 입증책임원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법치주의 사회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며 부인하는 자는 입증할 필요 없다
로마법 시대부터 내려온 법언(法諺) 중에 "Ei incumbit probatio qui dicit, non qui negat(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며, 부인하는 자가 입증할 필요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현대 법학의 입증책임원칙의 원형이 되는 개념으로, 수천 년간 인류의 지혜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자가 그 주장의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보호하고,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사회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 장치이다.
만약 이 원칙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든지 근거 없는 주장만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게 되고, 결국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이는 법치주의의 정반대인 인치주의(人治主義)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강선우 후보자 청문회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정치적 견해나 이해관계를 떠나서, 우리 모두가 법적 원칙을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이러한 원칙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입증책임원칙은 결코 가해자를 보호하거나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안전장치이다. 이 원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쟁점정리기일 및 변론준비절차(입증책임)", https://www.easylaw.go.kr/CSP/CnpClsMain.laf?csmSeq=568&ccfNo=5&cciNo=3&cnpClsNo=1
[2] 굿모닝충청, "[변호사가 알려주는 생활법률] 유죄를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328
[3] Daum 뉴스, "눈시울 붉힌 강선우…여야 고성에 청문회 13분만에 파행 빚기도", https://v.daum.net/v/20250714200431700
[4] 경향신문, "보좌관에 '현관 앞 쓰레기 버리라' 메시지 공개···강선우, 거짓 해명 했나",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142119005
[5] 중앙일보, "'갑질 논란' 강선우 '제 부덕의 소치'…野 '직장갑질 대명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1421
[6] Daum 뉴스, "홍익표 '국민의힘, 강선우 보좌관 갑질 일상적인지 입증 부족했다'", https://v.daum.net/v/20250715085701588 (홍익표: 제19-21대 국회의원 역임, 2024년 22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에 출마했으나 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