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저널리즘 #1: 기업의 새로운 언어를 찾아서

정보 과잉과 신뢰 위기 속에서 비즈니스 저널리즘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AI 시대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한다.

비즈니스 저널리즘 #1: 기업의 새로운 언어를 찾아서

비즈니스 저널리즘은 정보 과잉과 광고 불신 시대에 기업이 고객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비교한 뒤에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기업도 단순히 기업이나 제품을 홍보, 광고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고객이 실제로 겪는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와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데이터 분석과 기초 정보 정리는 AI에게 맡기고,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맥락적 이해와 전략적 통찰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보 과잉 시대, 왜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중요한가?

지난 20년간 미디어 현장에서 일하며 목격한 가장 극적인 변화는 정보의 양과 질 사이의 역설적 관계였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신뢰할 만한 정보는 더욱 귀해졌다. 매일 쏟아지는 수천 개의 기사, 소셜미디어 포스트, 광고 메시지들 속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특히 기업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 기업들이 보도자료 하나로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 독자들은 기업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것도 결국 광고 아닌가?"라는 질문이 모든 기업 콘텐트에 따라붙는다.

내가 만난 마케팅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고민을 토로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아무리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해도 소비자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5년 에델만 신뢰도 조사(Edelman Trust Barometer 2025)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기업의 마케팅 메시지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Edelman Trust Barometer 2023)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새로운 소통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히 제품의 장점을 나열하거나 기업의 성과를 자랑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투명성과 진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콘텐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 저널리즘이 주목받는 이유다.

디지털 네이티브와 B2B 구매자, 어떻게 정보를 탐색하는가?

최근 B2B 구매 담당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들은 영업사원을 만나기 전에 이미 구매 결정의 70% 이상을 내린 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Gartner의 2022년 B2B 구매자 여정 보고서 등 여러 글로벌 리서치에서 실제로 확인된 데이터다(Gartner B2B Buying Journey 2025). 과거처럼 영업사원의 설명을 듣고 제품을 비교 검토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구매자들은 스스로 정보를 찾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비교하는 것에 익숙하다.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온라인 리뷰를 확인하고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고 심지어 해당 기업의 평판까지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직접 제공하는 마케팅 자료보다는 제3자가 작성한 객관적인 분석 자료를 더 신뢰한다.

특히 B2B 영역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기업의 구매 담당자들은 수백만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더욱 신중하고 체계적인 정보 수집 과정을 거친다. 이들이 찾는 것은 단순한 제품 소개가 아니라 해당 솔루션이 자신들의 비즈니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인사이트다.

이런 변화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과거처럼 제품의 기능과 특징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매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선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업계 트렌드 분석, 경쟁사 비교, 도입 사례 연구, ROI 계산 방법 등 구매자의 관점에서 유용한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브랜드 저널리즘의 한계는 무엇인가?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국내에 도입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초기에는 많은 기업들이 이 새로운 접근법에 큰 기대를 걸었다. 딱딱한 보도자료 대신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고, 소비자와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브랜드 저널리즘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기업의 창립 스토리, 제품 개발 과정의 에피소드, 임직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콘텐트들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브랜드 저널리즘의 한계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스토리텔링을 표방하지만 결국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독자들은 이런 콘텐트를 '포장된 광고'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감성적 소통에만 치중한 나머지 실질적인 정보 제공에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스토리와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일시적인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구매 의사결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특히 B2B 영역에서는 감성보다는 논리와 데이터에 기반한 정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Content Marketing Institute 등 여러 글로벌 리서치에서 확인된 사실이다(Content Marketing Institute Research).

무엇보다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 저널리즘을 단순히 보도자료의 변형으로 이해했다는 점이 아쉽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기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한 저널리즘의 핵심인 독자의 관점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철학이 부족했던 것이다.

비즈니스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는?

지난 몇 년간 다양한 기업의 마케팅 팀과 협업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점이 있다. 기존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광고비는 계속 증가하지만 효과는 점점 떨어지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즈니스 저널리즘은 기업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다. 핵심은 '판매'에서 '도움'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자사 제품을 직접 홍보하는 대신 고객이 직면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IT 솔루션 기업이라면 자사 제품의 기능을 나열하는 대신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기업들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점들과 해결 방안을 분석하는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다. 이런 콘텐트는 직접적인 제품 홍보는 아니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입증하고 잠재 고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또 다른 장점은 검색 엔진 최적화(SEO) 그리고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답변 엔진 최적화(AEO) 효과다. 고객들이 실제로 검색하는 키워드와 관련된 유용한 콘텐트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면 자연스럽게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AI가 검색할 때도 먼저 참조한다. 이는 유료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도 잠재 고객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비즈니스 저널리즘은 기업의 사고 리더십(Thought Leadership)을 구축하는 데 효과적이다. 해당 분야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실용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면 자연스럽게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로 인식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서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 기여한다.

AI 시대, 비즈니스 저널리즘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

ChatGPT의 등장 이후 콘텐트 제작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누구나 몇 분 만에 그럴듯한 기사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비즈니스 저널리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콘텐트 제작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콘텐트의 차별화가 더욱 어려워졌다.

AI 도구들의 발전으로 기본적인 정보 정리나 데이터 분석은 훨씬 쉬워졌다. 과거에는 며칠이 걸렸던 시장 조사 보고서를 몇 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고, 복잡한 통계 데이터를 이해하기 쉬운 차트로 변환하는 것도 간단해졌다. 이는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전도 생겨났다. AI가 생성한 콘텐트들이 인터넷에 넘쳐나면서, 독자들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단순히 정보를 정리하거나 일반적인 분석을 제공하는 콘텐트로는 더 이상 독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특히 비즈니스 저널리즘에서는 '맥락'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는 데는 뛰어나지만, 그 데이터가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하는지는 여전히 인간의 경험과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성공하는 비즈니스 저널리즘은 AI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데이터 수집과 기초 분석은 AI에게 맡기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인사이트와 실무적 조언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비즈니스 저널리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