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건이 바뀌지 않는 이유: 기판력이라는 절대권력

조국, 정경심 사건의 증거가 조작, 왜곡됐다는 시비가 일고 있다. 그러나 재심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우리 사법제도는 기판력이라는 제도로 판결의 절대 권력을 보호하고 있따. 기판력이라는 법적 제도가 어떻게 잘못된 판결도 영구 확정시키는지, 그리고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구체적 대응 방법까지 살펴본다.

사법부의 절대적인 권한과 사법 개혁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상징하는 편집 일러스트레이션. 쇠사슬에 묶인 거대한 망치와 정의의 저울을 든 시민들의 실루엣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판력이란 무엇인가? 확정판결에 부여되는 법적 효력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 다시 재판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다. 형사에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왜 문제가 되는가? 조국, 정경심 사건처럼 정치적 논란이 있는 판결도 일단 확정되면 영구히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재심 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실질적 구제는 어렵다. 해결책은? 확실한 과학적 증거나 명백한 헌법 위반이 확인될 때는 기판력을 무시하고 재심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이 필요하다.

당신은 법학 교과서에서 늘 등장하는 기판력이라는 존재이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낯설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이며, 왜 만들어진 것인가?

나는 판결에 확정성을 부여하는 힘이다. 재판은 언젠가 끝나야 한다. 나 없으면 사건은 무한히 이어지고, 법원은 혼란 속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등장했다. 안정, 예측 가능성, 분쟁 종결. 이것이 내 존재 이유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소송을 끝없이 열어둔다면 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나는 바로 그 무너짐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민사와 형사에서 당신의 역할이 다르다고 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맞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주로 민사소송에서 활동한다. 민사에서는 확정판결이 나면 같은 당사자가 같은 사안으로 다시 소송을 걸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다. 형사에서는 내 형제뻘 되는 '일사부재리 원칙'이 담당한다. 한 번 무죄나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같은 사건으로 다시 기소할 수 없게 하는 원칙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판결의 확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시민들은 우리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기판력'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틀린 건 아니다. 우리는 같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니까.

그런데 재심 제도가 있지 않은가.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장치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재심? 그건 내가 허락하는 극히 예외적인 틈새다. 재심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재판에 관여한 법관의 직무범죄"가 확정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아느냐? 새로운 증거라고 해서 아무 증거나 되는 게 아니다. 판결 당시에 존재했지만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여야 하고, 그 증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해야 한다. 게다가 재심 청구 기간도 제한되어 있다. 나는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로 내 영역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조국·정경심 사건 같은 경우,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이 조건을 충족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조국·정경심 사건은 정치적 논란과 증거 해석 문제로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그런데 당신은 판결에 확정성을 씌워 논쟁을 강제로 종결시켰다. 결국 당신 때문에 복잡한 맥락과 진실 논쟁은 사라지고, '유죄'라는 낙인만 남은 것 아닌가?

나는 논쟁을 봉인한다. 조국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수사 과정의 정치성, 증거 해석의 논란, 시민 사이의 갈등—그 모든 것은 판결이 확정되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그것이 바로 나의 힘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진실 왜곡'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는 언제까지나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없다. 판결이 내려지고 내가 힘을 더하면, 그 순간 진실은 정리된다. 유죄든 무죄든, 그 낙인은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다음으로 넘어간다. 나는 그 낙인을 찍는 제도적 도장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묻는다. 잘못된 판결이라면 고쳐야 한다는 게 상식 아닌가? 당신은 상식을 거부하는 제도라는 비판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상식과 법은 다르다. 시민의 눈에는 정의를 위해 언제든 판결을 고쳐야 한다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은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잘못된 판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유로, 모든 판결을 뒤집을 수 있게 한다면 안정성은 사라지고 혼란만 남을 것이다. 물론 재심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억울한 이들이 구제될 길은 열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장치다. 상식은 따뜻할 수 있지만, 법은 차갑고 냉정해야 한다. 나는 그 냉정함을 대표한다.

당신이 말하는 "혼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정말 판결을 다시 심리할 수 있게 되면 사회가 무너지는가?

좋은 질문이다. 내가 약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겠다. 우선 모든 패소자들이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 "판결이 잘못되었다"며 재소송을 남발할 것이다. 법원은 같은 사건을 수십 번씩 다시 다뤄야 하고, 결국 마비될 것이다. 승소자들은 언제 판결이 뒤집힐지 몰라 불안해하며, 계약을 체결하거나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경제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미국에서도 Civil Rights Act 이후 수많은 인종차별 판결들이 뒤집어졌지만, 그것은 입법을 통한 변화였지 사법부의 자의적 번복이 아니었다. 나 없는 사회는 결국 강자의 천국이 된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들이 끝없이 소송을 걸어 상대방을 지치게 만드는 사회 말이다.

조국 사건처럼 정치적 갈등이 얽힌 판결에 당신이 붙으면, 그것은 정치적 판결을 '법적 진실'로 굳히는 셈이다. 결국 판사가 정치적으로 기울어진 결론을 내리면, 당신은 그것을 영구히 봉인하는 권력의 도구가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도구일 뿐이다. 판사가 정치적이든 아니든,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판결을 확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판결을 봉인했다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판사의 문제를 내게 전가하는 것이다. 나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질서를 유지한다. 판사가 기울어졌더라도 그 판결이 확정되는 순간, 사회는 그것을 진실로 삼아야 한다. 정치적 진실이라도 '법적 진실'이 되는 것이 법치의 방식이다. 시민들이 불편해해도, 나는 그렇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우리나라만 이렇게 엄격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흥미로운 질문이다. 독일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확정판결도 뒤집을 수 있는 헌법소원 제도가 있다. 영국은 형사사건에서 항소법원이 '안전하지 않은 판결(unsafe verdict)'이라고 판단하면 상당히 유연하게 재심을 허용한다. 프랑스도 유럽인권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한 재심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나의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예외의 폭이 우리보다 넓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유연성을 위험하다고 본다. 예외가 많아질수록 내 권위는 약해지고, 법적 안정성은 흔들린다.

시민 눈에는 당신이 판사의 오만을 지켜주는 방패일 뿐이다. 잘못된 판결에도 "끝났다"는 말 한마디로 덮어버리는 것 아닌가?

맞다, 나는 방패다. 판사의 권위를 지켜주는 방패. 권위 없는 법원은 존재할 수 없다. 판결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법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무게는 나로부터 온다. 시민이 보기에 나는 낡은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낡았다는 이유로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감정으로만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나다. 나는 오만하다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내가 없다면, 법원은 바람 앞의 촛불일 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 확실한 증거가 새로 나타났을 때는 당신의 절대력을 무시하고 재심을 쉽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험한 발상이다.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 누가 판단하느냐? 결국 또 다른 판사가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사도 틀릴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 되면 재심의 재심, 재심의 재심의 재심이 무한히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인정하건대, 시대가 변하고 있다. DNA 검사, 디지털 포렌식 같은 과학적 증거들이 과거보다 훨씬 정확해졌다. 또한 시민들의 정의 의식도 높아졌다. 어쩌면 내 절대성을 조금 완화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준은 매우 엄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새로운 증거'나 '판사의 명백한 법령 위반'처럼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를 직접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나는 법률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첫째, 재심 요건을 완화하는 법률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압력을 넣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사법부 감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유럽인권재판소 같은 국제적 구제 절차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정치적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사법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나는 결과물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그 과정에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묻겠다. 당신은 앞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요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변화는 신중해야 한다. 무분별한 재심 허용은 법적 안정성을 파괴할 것이다. 대신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 하에서, 진짜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과학적 증거'나 '명백한 헌법 위반' 같은 경우에는 내 절대성을 일부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엄격한 절차와 기준 하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좀 더 유연해질 뿐이다.

에필로그

이 가상의 인터뷰를 쓰면서 나는 기판력이라는 제도의 이중적 면모를 확인했다. 한편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지키는 필수적 장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된 판결을 영구화하는 냉혹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특히 조국, 정경심 사건 같은 정치적 논란이 얽힌 판결에서 기판력은 단순한 법적 도구를 넘어 권력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해도 재심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시민들의 의문은 "확정되었으니 끝"이라는 말 한마디로 봉인된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기판력 역시 변화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과학적 증거나 명백한 헌법 위반이 확인될 때 기판력의 절대성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이다.

진정한 정의는 한 번의 판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수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판력의 오만함을 깨뜨리고, 억울한 이들에게 진정한 구제의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법치주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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