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독재: 알고리즘이 국가를 운영할 때 내란이 일어났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유튜브 영상을 근거로 계엄을 선포한 최초의 나라가 됐다. 국정원 정보가 아니라 극우 유튜브의 음모론이 대통령의 현실이 됐다. 미국 정치학자 돈 모이니한이 명명한 클릭테이터십(Clicktatorship), 즉 조회수가 정책을 결정하고 알고리즘이 통치 원리가 되는 체제가 한국에서 완성됐다. 선동도 포퓰리즘도 아니다. 정치인이 플랫폼이 만든 세계를 진짜로 믿고, 그 논리로 나라를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등장한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를 보냈다. 이유는? 극우 유튜브가 말하는 부정선거를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국가정보원의 정보보고가 아니라 유튜브 영상이 국가 비상사태의 근거가 됐다.
미국 정치학자 돈 모이니한은 이런 현상을 클릭테이터십(clicktatorship)'이라 불렀다. 클릭과 독재(dictatorship)의 합성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유튜브 조회수와 댓글이 정책을 결정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만들고 플랫폼의 분노가 국가의 우선순위가 되는 체제. 온라인 세계의 논리가 통치의 원리를 대체하는 순간 클릭테이터십이 시작된다.
트럼프의 미국을 분석하며 만든 이 개념은 2025년 한국에서 가장 정교하게 완성됐다.
1. 국정원보다 유튜브: 권력의 인식론적 포획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분(대통령) 머릿속은 정보보고가 아닌 유튜브 뿐이다." 계엄 당일, 300명의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로 들이닥쳤다. 국회 투입병력보다 많은 숫자였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각 지역 선관위를 장악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극우 유튜버들이 '부정선거의 증거'가 선관위 서버에 있다고 말했으니까.
이건 선동이 아니다. 선동자는 자신이 거짓말하는 걸 안다. 하지만 윤석열은 진짜로 믿었다. 2022년 대선 당시 유세에서 그는 이미 "4·15 총선 때 부정선거 의혹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만약 부정선거를 획책한다면 이 나라에서 살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2년 9개월 뒤, 그 믿음은 계엄으로 현실화됐다.
모이니한이 포착한 클릭테이터십의 첫 번째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플랫폼이 만든 현실을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 트럼프가 X에서 본 포틀랜드를 무정부 상태로 인식했듯, 윤석열은 유튜브에서 본 한국을 진짜 한국으로 믿었다. 공산화 직전, 부정선거로 장악된, 붕괴 일보직전의 나라.
2. 진성호부터 고성국까지: 플랫폼이 권력이 되는 순간
진성호방송 구독자 182만, 신의한수 150만, 배승희 변호사 128만. 한국의 극우 유튜브는 거대한 생태계다. 이들은 단순히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정서를 생산한다. 분노, 피해의식, 음모론. 대한민국이 공산화되고 있다, 우리가 당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 매일 수백 개의 영상이 이 서사를 반복한다.
알고리즘은 이를 가장 반응이 좋은 시청자들에게 계속 노출시킨다. 그리고 그 시청자 중 한 명이 하필이면 대통령이었다. 이봉규TV 운영자 이봉규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자면서도 내 방송을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식에는 극우 유튜버 30여 명이 초청됐다. 2024년에는 극우 유튜브 방송을 하던 김채환 전 교수가 차관급인 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됐다.
2025년 1월 1일, 윤석열은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스스로 극우 유튜브 채널 시청자임을 인증한 순간이었다.
플랫폼과 권력의 경계는 사라졌다. 국민의힘 김민전, 윤상현은 계엄을 옹호한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했다. 고성국은 자신의 유튜브 '고성국TV'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걸 왜 내란죄라고 뒤집어씌웁니까? 다 죽든지 대통령과 함께"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그는 KBS 라디오 진행에서 하차했지만 올해 1월 초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유튜브는 이제 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유튜브가 곧 정치다.
3. 담화문이 말해주는 것: 플랫폼의 언어가 국가의 언어가 될 때
2024년 12월 12일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를 읽어보자. 폭망, 광란의 칼춤, 반국가적 패악... 공식 석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들이다. 더 중요한 건 내용이다.
선관위 서버의 비밀번호가 "12345"라는 주장. 극우 유튜버들과 동일한 워딩이다. 차세대 원전 예산 전액 삭감 주장. 실제로는 여야 합의로 일부 조정된 것인데, 유튜브 영상들은 전액 삭감이라 말한다. 백신 R&D 예산 삭감 주장. 정작 2024년 백신 예산을 82% 삭감한 건 윤석열 정부 자신이었다.
언론들은 팩트체크했다. JTBC, MBC, 조선일보, 한국일보. 개인이 운영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 뜯어보기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보고 들은 것이 대통령의 현실이었으니까.
4. 숏폼 정치: 10초 안에 압축된 국가의 미래
틱톡과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정치는 이제 10초로 압축된다. 국회 발언을 10초로 편집하고, 상대방의 실언을 클립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맥락은 사라진다. 남는 건 감정과 이미지뿐이다.
시사인의 탐사에 따르면, 계엄 이후 극우 유튜브에는 무속인까지 등장했다. "○○ 할머니"라는 무속인이 운영하는 채널(구독자 2만명)의 영상 하나가 조회수 500만을 기록했다. 내용은? "이재명이 형살(형벌)을 끼고 있다. 올해 동짓달 되면서 기운이 고꾸라질 것."
이게 웃긴 일화가 아니다. 이런 영상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증폭되고 그 증폭된 정서가 민심으로 읽힌다. 정치인은 이 민심에 반응한다. 정책이 아니라 감정에, 사실이 아니라 조회수에.
5. 클릭테이터십 vs 선동 정치 vs 포퓰리즘: 메커니즘의 차이
혼동하지 말자. 이 세 개념은 작동 방식이 다르다.
선동 정치(Demagogy)는 일방향이다. 히틀러의 연설, 박정희의 라디오, 전두환의 TV 출연. 선동가는 메시지를 던지고, 대중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선동가는 자신이 거짓말하는 걸 안다. 이게 전략이다.
포퓰리즘(Populism)은 구조적 대립을 만든다. 부패한 엘리트 대 순수한 민중. 하지만 포퓰리즘은 매체 중립적이다. 신문이든, TV든, 유튜브든 상관없이 작동한다.
클릭테이터십(Clicktatorship)은 정치인이 유튜브의 논리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완성된다. 전략이 아니라 중독이다. 조회수가 높은 영상의 주장이 사실이 되고, 댓글창의 분노가 국민의 목소리가 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트가 현실이 된다. 정치인은 더 이상 유튜브를 참고하지 않는다. 유튜브가 곧 그의 현실 인식이 된다. 조회수, 댓글, 알고리즘. 이것들이 통치의 원리가 된다.
한국 정치인이 유튜브 댓글을 보고 정책을 수정할 때, 그게 전략적 활용이라면 포퓰리즘이다. 하지만 그 댓글을 진짜 민심으로 믿는다면? 클릭테이터십의 시작이다.
6. 구조의 자기 강화: 왜 멈출 수 없는가
클릭테이터십이 위험한 이유는 자기 강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현실 판단이 붕괴된다. 유튜브 속 한국은 늘 위기다. 공산화 직전, 침략 직전, 붕괴 직전. 이 상시 비상 상태가 권력의 전제가 되면, 법은 귀찮은 절차가 되고 인권은 나중 문제가 된다. 비상은 예외를 정당화하고 예외는 일상이 된다.
둘째, 책임이 사라진다. 국민이 원했다, 여론이 그랬다, 유튜브에 다 나온 얘기다. 클릭테이터십에서 정치인은 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결정은 했지만 책임은 없다. 알고리즘이 만든 민심에 따랐을 뿐이니까.
셋째, 문제 해결을 포기한다. 정치의 본질은 복잡한 현실을 다루는 일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불편한 결정을 내리고 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클릭테이터십은 복잡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짧고, 강하고, 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적만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
7. 팩트는 어디로 갔는가: 법철학자의 시선
팩트와 균형 잡힌 이야기만이 살아남는다. 콘텐트 업계에서 30년을 일한 내 결론이다. 하지만 클릭테이터십에서는 팩트가 살아남지 못한다. 팩트는 복잡하고, 불편하고, 클릭을 유발하지 못하니까.
법철학자 화이트헤드는 "구체성을 잘못 놓친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를 경고했다.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현실로 착각하는 오류, 클릭테이터십은 정확히 이 오류다. 알고리즘이 만든 한국을 진짜 한국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를 말했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향한 의지. 하지만 클릭테이터십의 일반의지는 알고리즘이 증폭시킨 감정이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력이다.
가장 무서운 건 이 체제를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튜브는 나쁜 의도로 알고리즘을 설계하지 않았다. 정치인도 나라를 망치려고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국민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댓글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이 자기 판단을 포기하고 알고리즘을 나침반으로 삼았을 때 이 모든 선의는 클릭테이터십이라는 체제로 수렴된다. 그리고 그 체제 안에서 팩트는 콘텐트가 되고 정치는 쇼가 되고 민주주의는 시청률이 된다.
알고리즘의 나라를 거부하는 법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튜브 영상을 근거로 계엄을 선포한 나라가 됐다. 45년 만의 계엄이자 52년 만의 쿠데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알고리즘이 있었다. 알고리즘에 중독된 대통령이 있었다.
클릭테이터십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알고리즘을 규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인을 바꾼다고 끝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이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은 인식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한국'이 진짜 한국인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보여주기로 선택한 한국인지 구분하는 것. 정치인의 발언이 정책인지, 아니면 조회수를 위한 퍼포먼스인지 구분하는 것. 댓글이 민심인지, 아니면 증폭된 소수의 분노인지 구분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팩트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잡해도 불편해도 클릭을 못 받아도 팩트만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클릭테이터십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