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신분증이 됐다: 편하다, 하지만 이 찜찜함은 뭔가?
안면인식 기술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시민이 얻는 것은 몇 초의 편의인 반면, 국가와 행정 권력은 상시적 식별과 추적 능력을 획득한다. 미국 ICE의 이민자 관리 사례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스마트시티 정책을 통해 이 글은 안면인식이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권력의 성격을 바꾸는 기술임을 짚는다. 편리함은 누구에게 이로운가? 라는 질문이 지금 필요하다.
2026년 1월 4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ICE(이민세관집행국)가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이민자들을 신속하게 체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이민 신분자들은 하루에 두 번 스마트폰 앱을 통해 얼굴을 인증해야 한다. '체크인'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추적이다. 거부하면? 구금이다. 이미 수십만 명이 이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으며 이민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얼굴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추적 가능한 좌표가 되었다.
사실 이 얼굴인식 기술은 미국에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이미 아이폰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IT 인프라가 발달한 한국은 이미 은행뱅킹 등에서 얼굴 인식으로 신분 확인을 대신하고 있다. 관공서도 조만간 이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안면인식 기술의 최대 장점은 편리함이다. 신분증이나 휴대폰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얼굴만 보여주면 신원이 확인된다. 절차도 줄어들고 행정은 빨라진다. 기술은 중립적이고, 효율은 선하다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편리함은 언제나 최고의 마케팅이다. 그리고 최악의 핑계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얼굴을 그냥 맡겨버리는 이 사태는 언제나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얼마나 편리한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편리한가?”로 말이다.
편리함의 비대칭: 몇 초 vs 상시 감시
시민이 체감하는 안면인식의 편리함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 국한된다. 공항에서 줄을 덜 서고, 스마트폰 잠금을 풀 때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 몇 초의 절약. 그러나 이 편리함은 선택이 아니라 점점 조건이 되어간다.
질문을 던져보자. 안면인식을 거부하면 대안은 남아 있는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동등한가, 형식적으로는 다른 옵션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옵션은 느리고 불편한 패널티형 선택지인가?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실질로 보장될 때만 자유다.
반면 정부와 행정 권력이 얻는 편리함은 질적으로 다르다. 반면 정부와 행정 권력이 얻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안면인식은 창구 직원 한 명의 업무 속도를 높이는 도구가 아니다.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을, 동시에, 실시간으로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성격이 바뀌는 순간이다.
당신의 얼굴은 더 이상 당신이 선택해서 보여주는 신분증이 아니다. 카메라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자동으로 읽히는 바코드가 된다. 조회되고, 저장되고, 다른 데이터와 연결된다.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모든 것이 기록 가능해진다.
시민에게는 몇 초의 절약이지만, 국가에게는 상시적 식별 능력이다. 이 불균형은 기술 격차가 아니라 권력 격차다. 그리고 이 격차는 한 번 제도화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한국: 숫자로 된 얼굴에서 얼굴로 된 번호로
한국에서는 이미 구형 안면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1968년부터 주민등록번호라는 형태로 '보이지 않는 안면인식'을 해왔다. 13자리 숫자 하나로 출생지, 성별, 나이, 모든 행정 이력이 추적 가능하다. 은행, 통신, 세금, 의료, 부동산 등 모든 것이 이 번호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번호는 수없이 유출되었다. 2014년 카드사 해킹, 2018년 민간 업체 유출. 2025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25년 3월, 쿠팡의 제3자 물류업체 서버에서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주문자 성명, 휴대폰 번호, 주소, 일부 주민등록번호까지.
주민등록번호는 바꿀 수 없다. 한 번 유출되면 평생 당신의 신원은 어둠의 시장에 떠돈다. 보안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경고했지만,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너무 편리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행정과 기업에게.
이제 안면인식이라는 새로운 레이어가 이 위에 얹어진다. 주민등록번호가 숫자로 된 얼굴이었다면, 안면인식은 얼굴로 된 주민등록번호다. 차이는 이것이다. 번호는 입력해야 하지만 얼굴은 그냥 있으면 된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도 카메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당신은 식별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는 디지털 신원 확인에 더욱 익숙해졌다. 백신패스, QR 출입명부, 마이데이터 통합인증. 모두 방역과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됐고, 대부분의 시민은 순응했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권리 침해를 감지하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 편리함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형사 vs 행정: 헌법적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
더욱이 이 기술이 주로 형사 사법이 아니라 행정 집행 영역에서 확산된다는 점이 문제다. 형사 절차는 엄격한 영장주의와 무죄 추정을 전제로 한다. 수사기관이 당신의 얼굴을 추적하려면 범죄 혐의가 있어야 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행정은 다르다. 예방과 관리, 효율을 명분으로 삼는다. 복지 수급 확인, 출입국 관리, 스마트시티 교통 분석. 이 영역에서 안면인식이 사용될 때 시민은 혐의가 없어도 식별되고 설명 없이 기록된다. 이는 자유권의 후퇴가 아니라 자유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순간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ICE의 이민자 추적 시스템은 형사 절차가 아니라 행정 관리 수단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이민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매일 얼굴을 보고해야 한다. 한국의 스마트시티 실증 사업에서 운영 중인 안면인식 CCTV도 마찬가지다. 범죄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기록된다. 동의도, 고지도, 거부 방법도 없다.
정확성의 역설: 완벽한 감시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
안면인식 기술의 위험은 오류에 있지 않다. 오류는 개선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정확성이다. 기술이 정확해질수록, 권력은 더 적은 설명으로 더 많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스템이 그렇게 판단했다, 고 말하는 순간 책임은 사라지고 권한은 강화한다. 99.7%의 정확도는 인간 공무원보다 신뢰받는다. 그러나 0.3%의 오인식은 누가 책임지는가? 그리고 99.7%가 맞다는 것은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언제 어디를 지나갔는지가 완벽하게 기록했다는 뜻이다.
법철학이 오래전부터 경계해온 것은 바로 이런 형태의 비가시적 권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고 이의 제기하기 어려운 권력. 푸코가 '판옵티콘'에서 경고했던 것은 감시하는 자가 보이지 않아도 감시받는다는 감각만으로 스스로를 규율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안면인식 시대의 시민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 가정 속에서 행동을 조정한다.
누구에게 편리한가? 누구의 자유를 잠그는가?
법철학적으로 볼 때 민주국가의 핵심은 효율이 아니라 제한이다.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 안면인식 기술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 시민은 이 기술을 거부할 수 있는가?
- 자신의 얼굴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권리가 있는가?
-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가?
- 그 거부와 요구가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EU는 2024년 AI Act를 통해 공공장소에서 실시간 안면인식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미국의 일부 주는 법 집행 기관의 안면인식 사용을 제한하는 입법을 통과시켰다.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은 있지만 안면인식에 대한 구체적 규제는 없다. 행정기본법상 자동화 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 조항은 있지만 실효성은 검증되지 않았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2025년에도 주민등록번호는 계속 유출되었다.
편리함을 이유로 사생활을 양보하라는 요구는 언제나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법의 역할은 시민을 더 편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법의 역할은 시민이 불편하더라도 침해되지 않아야 할 선을 지키는 데 있다.
얼굴을 인식하는 국가는 결국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권리를 가진 주체로 보는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가.
제한 없는 편리함은 자유를 비용으로 요구한다
안면인식 기술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텍사스의 이민자가 하루에 두 번 얼굴을 보고하듯, 당신도 이미 어딘가에서 기록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 찬반의 감정적 논쟁이 아니라 권력의 사용 조건을 명문화하는 법적, 윤리적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거부권, 열람권, 삭제권은 수사가 아니라 법적 권리로서 제도화되어야 한다. 안면인식을 사용하는 모든 공공 시스템은 사전 고지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간 기업이 수집한 안면 데이터는 목적 외 사용이 금지되어야 하고, 유출 시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그랬듯이. 2025년 쿠팡 유출 사건이 그랬듯이. 제한 없는 편리함은 언제나 자유라는 비용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늘 시민이 먼저 치른다. 얼굴은 이제 열쇠다. 그리고 자물쇠다. 당신은 이 자물쇠의 주인인가, 아니면 자물쇠 뒤에 갇혀 있는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