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거버네이터가 위선적 정치인과 싸우는 방법
2025년,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정치인들은 꺼져라’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로 다시 정치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의 상대는 같은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주지사였다. 핵심 쟁점은 선거구 조작인 게리맨더링. 뉴섬은 공화당의 불공정 행위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독립 선거구 위원회를 우회하려 했고, 슈워제네거는 이에 맞서 절차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고 외쳤다. 두 정치인의 충돌은 결과와 절차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철학적 논쟁으로 번졌다.
2025년 8월 어느 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헬스장에서 철봉을 들어 올리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의 검은 티셔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Fxxx the Politicians. Terminate Gerrymandering."(정치인들은 꺼져라. 게리맨더링을 끝장내자.)
78세의 전직 캘리포니아 주지사이자 할리우드 액션 스타는 왜 다시 정치 전쟁터로 돌아왔을까? 그것도 자신과 같은 민주당 소속인 현 주지사 개빈 뉴섬을 상대로 말이다. 이 싸움의 중심에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민주주의를 좀먹는 오래된 악습이 있다.
게리맨더링이란 무엇인가
게리맨더링은 정당의 이익을 위해 선거구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다. 쉽게 말해 "표는 그대로인데, 선을 새로 그어 우리 편이 이기게 만드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 100명의 유권자가 있다고 하자. 그중 60명이 A당, 40명이 B당을 지지한다. 공정하게 나누면 A당이 한 석, B당이 한 석을 얻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A당이 선거구를 '지도 위에서 마음대로' 나눌 수 있다면? B당 지지자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다른 곳은 A당 표가 살짝 많은 구도로 바꿔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표의 비율은 같아도 의석은 A당이 대부분 차지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인구조사 이후 10년 주기로 주 단위 선거구를 재획정한다. 이때 다수당이 획정권을 쥐면 자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을 그으려는 게리맨더링이 빈번하다. 그래서 지도 한 줄이 민주주의를 바꾼다는 말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위헌이다
한국에서 게리맨더링은 법으로 명확히 금지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2001년 결정에서 게리맨더링을 "일정한 집단의 의사가 정치과정에서 반영될 수 없도록 차별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이것이 헌법 제11조의 평등권과 제41조의 평등선거 원칙을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를 위헌으로 보았다.
- 특정 지역 선거인들이 자의적인 선거구획정으로 인해 정치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된 경우
-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박탈당한 경우
- 국가권력의 차별적 의도와 실질적인 차별효과가 명백히 드러난 경우
또한 헌재는 "특단의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인접지역이 1개의 선거구를 구성하도록 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즉 지리적으로 떨어진 지역을 억지로 하나의 선거구로 묶는 것도 게리맨더링의 한 형태로 본 것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한국에서 게리맨더링은 단순한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 행위다.
캘리포니아의 전쟁: 뉴섬 vs 슈워제네거
이제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보자. 왜 슈워제네거(월 스트리트 저널은 그를 Governator라고 불렀다)는 같은 당 출신의 뉴섬과 싸우고 있을까?
슈워제네거가 만든 원칙: 독립 선거구 위원회
2000년대 초 공화당 소속 주지사였던 슈워제네거는 한 가지 문제를 목격했다.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독립 선거구 위원회(Independent Redistricting Commission)를 만들어 정치인의 손에서 선거구 획정 권한을 빼앗은 것이다.
이 위원회는 정당과 무관한 시민들로 구성되어 오직 인구, 지역, 역사 등 객관적 기준만으로 선거구를 나눈다. 캘리포니아는 이를 통해 미국 내 게리맨더링 방지의 선구자가 되었고 현재 콜로라도, 미시간, 애리조나, 오하이오 등 13개 주(2025년 기준)가 유사한 제도를 채택했다.
뉴섬의 역습: Proposition 50
그런데 2025년 8월 텍사스 주에서 사건이 터졌다.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 주 의회가 10년 주기 재획정 시기도 아닌데 갑자기 선거구를 다시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5개 하원 의석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선거구로 재편한 것이다.
뉴섬은 이에 맞서 Proposition 50(정식 명칭: "Election Rigging Response Act", 선거 조작 대응법)을 내놓았다. 핵심은 이렇다. "공화당이 텍사스에서 게리맨더링을 했으니, 우리도 캘리포니아에서 똑같이 하자. 독립 선거구 위원회를 우회해서, 주 의회(민주당 장악)가 직접 5개 공화당 우세 선거구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재편하자."
뉴섬의 명분은 명확했다. "이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to save this republic). 그리고 이것은 2030년까지만 유효한 "임시" 조치라고 주장했다.
슈워제네거의 반격: 트럼프처럼 되지 말라
거버네이터 슈워제네거는 즉각 반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트럼프와 싸우기 위해 우리가 트럼프처럼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두 개의 잘못이 하나의 옳음을 만들지 않는다."
뉴섬이 "임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슈워제네거는 CNN 인터뷰에서 "완전한 판타지"(total fantasy)라고 비판했다. 한번 무너진 원칙은 다시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2025년 8월 초, 뉴섬은 슈워제네거의 브렌트우드 저택을 방문해 Prop 50 계획을 브리핑했다. 슈워제네거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느 쪽으로든 문명적으로 유지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4일 후, 슈워제네거는 헬스장에서 "정치인들은 꺼져라"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 뒤 캘리포니아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서 슈워제네거의 이름이 빠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진이 검은 천으로 가려진 채 전시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슈워제네거는 이에 대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메달이 더 필요한가? 아니다. 내 사무실에 1,823개가 있다."
결과가 중요한가, 절차가 중요한가
이 논쟁은 단순한 정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정의로운 결과'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공정한 절차'에서 나오는가?
| 관점 | 슈워제네거 | 뉴섬 |
|---|---|---|
| 철학 | 절차적 정의론 | 결과 중심 정치 |
| 핵심 신념 | "절차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절차를 희생할 수 있다." |
| 행동 | 독립 위원회를 만들어 절차의 공정성을 제도화 | 독립 위원회를 우회하여 민주당에 유리한 결과 추구 |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이런 상황을 **'순수한 절차적 정의(Pure Procedural Justice)'**로 설명했다. 선거와 같이 사전에 '정의로운 결과'를 특정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오직 절차의 공정성만이 결과의 정당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공정한 도박에서는 누가 이기든 그 결과는 정당하다. 왜냐하면 규칙이 공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딜러가 특정 사람이 이기도록 카드를 조작한다면? 그 결과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 이겼다 해도 정당하지 않다.
슈워제네거가 만든 독립 선거구 위원회는 바로 이 공정한 딜러다. 게임의 규칙(선거구 획정)을 선수(정치인)의 손에서 떼어내 심판(독립 위원회)에게 맡긴 것이다.
반면 뉴섬의 주장은 전형적인 결과주의다. '공화당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한다'는 겉으로는 선한 목적을 위해, '민주적 절차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악한 수단을 정당화한다. 법철학자 스튜어트 친(Stuart Chinn)은 이를 '절차적 완전성(Procedural Integrity)' 위반이라고 비판한다. 의사결정 규칙을 만드는 목적과 그 규칙 하에서 도출될 결과 사이에는 명확한 분리가 있어야 하는데 뉴섬은 특정 결과(민주당 승리)를 위해 규칙 자체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뉴섬의 행위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가면을 쓴 위선이다. 그는 공화당의 게리맨더링을 비판하면서 자신도 똑같은 행위를 하려 한다. 슈워제네거의 말처럼, 이는 "두 개의 잘못이 하나의 옳음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망각한 자기모순이다.
국민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원칙을 지키는 것
정치인들이 대의나 현실을 명분으로 원칙을 허물려 할 때, 시민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뉴섬의 논리는 단기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다. 우리 편의 승리를 위해 잠시 원칙을 눈감아주자는 유혹은 강렬하다. 특히 상대가 트럼프처럼 악으로 규정된 존재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장기적으로 파괴하는 독약이다. 한번 무너진 절차적 정의의 둑은 걷잡을 수 없는 불신과 보복의 악순환을 낳는다. 우리가 하면 정의로운 대응이고 저들이 하면 민주주의 파괴라는 이중잣대는 결국 냉소주의만을 키울 뿐이다.
슈워제네거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자신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남겼다.
"Nothing changes for me. But the people change, the people lose."
(나는 바뀌는 것이 없다. 하지만 국민이 바뀐다. 국민이 패배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정치인들이 원칙을 버리고 권력 게임에 몰두할 때 최종적인 패배자는 언제나 국민이다. 민주주의라는 공정한 게임의 장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의 역할은 특정 팀의 응원단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수호하는 심판관이 되는 것이다. 우리 편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반칙을 용납하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파괴의 공범이 된다.
정치인의 위선에 맞서 '절차적 정의'라는 원칙을 굳건히 지키고 요구하는 것. 그것만이 궤변과 술수가 난무하는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일하고도 올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