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라는 무기와 한국이 만든 저항의 문법

2026년 미국 ICE 단속에 저항하는 포틀랜드의 메이커 카시디는 "귀여움을 무기화하라"고 말한다. 걸리(girly) 문화는 분노 대신 기쁨으로 싸우는 저항의 언어다. K-Pop 팬덤의 털사 집회 공작(2020), 이화여대 점거(2016), 탈코르셋 운동(2018)까지. 한국이 이 문화를 어떻게 전 세계 저항의 문법으로 번역했는지 추적한다. 역사는 언제나 귀여운 쪽이 더 오래 버텼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그 문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해 질 녘 부드러운 불빛이 감도는 서울 거리를 배경으로, 표정이 풍부한 세 개의 동그란 배지 캐릭터들이 돌담 위에 나란히 앉아 있다.
Image Created by Google Gemini.

포틀랜드의 한 여성이 던진 말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네온사인 불빛으로 가득한 집에 클레어 다니엘 카시디(Claire Danielle Cassidy)가 앉아 있습니다. 귀에는 직접 레이저로 새긴 귀걸이가 달려 있는데 거기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FUCK ICE."

카시디는 아티스트이자 메이커(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너무 당연한 번역인가!)입니다. 요즘 카시디는 시위 현장에서 사람들의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충전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 보조 배터리를 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스(ICE)는 미국의 이민세관집행국입니다. 2026년 초, 미국 정부는 미네아폴리스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대규모 이민자 단속 작전을 벌였습니다. 단속 과정에서 두 명을 사살했고 지역 사회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카시디는 그 현장에서 저항하는 사람들 곁에 있었습니다.

카시디는 와이어드(Wired)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She advocates for joy and 'weaponized cuteness,' because 'girly culture is going to save us, like it always does.'"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카시디는 기쁨과 귀여움이라는 무기를 주창합니다. 왜냐하면 걸리(girly) 문화가 우리를 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귀여움이라는 무기(weaponized cuteness). 단어 두 개가 충돌하는 순간입니다. 귀여움이 무기가 된다니, 무슨 뜻일까요?

걸리 문화
걸리(girly)는 영어로 소녀 같은, 여성스러운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유치하거나 가볍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였습니다. 분홍색, 반짝이는 장식, 귀여운 캐릭터, 손수 만든 공예품, 스티커, 리본과 같은 것들이 흔히 걸리 문화의 소품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특히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이 단어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이 스스로 걸리를 선택하면서 그 의미를 재정의한 것입니다. 유치하다고 비웃음 받던 것들이 오히려 강함의 상징이 됐습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의 틀을 스스로 전복하는 행위가 된 것입니다.
걸리 문화를 저항과 연결하는 논리는 이렇습니다. 권위주의적 권력은 강압과 공포로 사람을 지배합니다. 분노와 두려움의 언어로 싸우도록 유도합니다. 그 언어에 응하지 않는 것, 예컨대 반짝이는 장식, 귀여운 뱃지, 손수 만든 공예품으로 현장에 나타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입니다. 권력이 상정한 싸움의 문법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케이팝이 이 문화를 전 세계로 수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응원봉, 포토카드, 팬덤의 조직력처럼 케이팝이 만들어낸 걸리 문화의 체계는 이제 음악 팬덤을 넘어 정치 현장에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두려움 대신 반짝임을

카시디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활동가라고 해서 화를 내고, 스트레스받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필요는 없어요. 이게 바로 파시즘의 파이프라인이에요. 사람들을 수치심과 공포의 사이클 속으로 끌어들여서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이 모든 것 한가운데서도 부드러울 수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효과적일 수 있어요."

파시즘은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이해해도 됩니다. 강압적인 권력이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위협하고 부끄럽게 만들고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쳐서 포기하거나 화를 못 이기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어느 쪽이든 권력에게 유리합니다. 지친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폭력을 쓰는 사람은 위험한 범죄자로 낙인찍히니까요.

카시디가 제안하는 것은 이 함정 자체를 피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언어로 싸우는 대신, 기쁨의 언어로 싸우는 것입니다. 반짝이는 LED 조명, 손수 만든 귀걸이, 귀여운 뱃지. 이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공포의 판에 올라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카시디가 운영하는 팝업 워크숍 데어 유 글로우(There U Glow)에서는 LED 조명이 달린 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칩니다. 팝업 워크숍이란 일정한 장소 없이 여기저기서 열리는 소규모 체험 교실을 말합니다.

"LED 코트 설치법을 배우면 사실 태양광 독립 전원 시스템의 75% 정도를 이미 아는 거예요. 그 연결고리를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요."

태양광 독립 전원 시스템이란 전력망에 연결하지 않고 태양광으로 직접 전기를 만들어 쓰는 장치입니다. 시위 현장에서 인터넷도 전기도 끊길 때 스스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죠. 귀여움이 기술이 되고, 기술이 저항이 됩니다. 이 순서가 카시디의 논리입니다.

한국이 이 문화에 끼친 영향

걸리 문화가 저항의 언어가 된 현상을 이야기할 때 한국 이야기를 빼면 그림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케이팝 팬덤이 알고리즘을 무기로 쓴 날

케이팝(K-Pop)은 귀여움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아이돌 컨셉, 응원봉, 포토카드, 팬덤 조직 등은 단순히 음악을 즐기는 도구가 아닙니다. 수백만 명이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만드는 고도로 정교한 체계입니다. 팬덤이란 특정 가수나 그룹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 집단을 뜻합니다.

이 체계가 정치적 저항으로 전환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2020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캠프 측은 100만 명 이상이 티켓을 신청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회 당일, 1만9천 석 규모의 공연장에 나타난 사람은 고작 6천2백 명이었습니다.

케이팝 팬들과 10대 틱톡(TikTok) 이용자들이 갈 의사도 없이 무더기로 무료 티켓을 예약해, 캠프 측의 예상 참석자 수치를 부풀렸던 것입니다. 알고리즘과 조직력을 무기로 쓴 디지털 방해 공작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이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콘텐츠를 추천하고 확산시키는 방식을 말하는데, 케이팝 팬들은 이 구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엠아이티 테크놀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는 이 사건이 케이팝 팬덤을 미국 정치 저항의 새로운 주체로 부각시켰다고 분석했습니다. 덕질로 단련된 조직력이 정치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화여대 점거 — 거리가 바뀐 날

2016년 여름,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본관을 점거했습니다. 발단은 학교 측이 학생 의견을 전혀 묻지 않고 새로운 단과대학 설립을 밀어붙인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항의하자 학교는 경찰 1,600명을 교내에 투입해 강제 해산을 시도했습니다. 결국 총장이 사퇴했고, 이 시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지는 도화선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이미 10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이 이 글에 등장한 이유는 저항의 방식 때문입니다. 불을 지르거나 창문을 깨는 대신 학생들은 현장을 유지하고 요구를 분명히 했습니다.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은 이화여대 점거가 이후 박근혜 탄핵 촛불운동으로 이어지는 여성 주도 저항의 출발점이 됐다고 짚었습니다. 카시디가 말하는 부드럽지만 효과적인 저항과 정확히 같은 결을 가집니다.

탈코르셋 — 외모를 거부하는 것도 저항입니다

2018년부터 한국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됐습니다. 코르셋은 실제 속옷이 아니라 여성에게 강요되는 외모 규범을 뜻합니다. 화장, 긴 머리, 하이힐, 치마 같은 것들이지요. 이것들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압력을 거부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은 화장품을 부수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그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외모를 바꾸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 실천이 된 것입니다.

이화여대 점거(2016)와 탈코르셋(2018~)은 시간도 다르고 전술도 다른 별개의 사건입니다. 탈코르셋은 꾸밈을 거부하는 것이 해방이라고 말하고, 카시디의 무기화된 귀여움은 꾸밈 자체를 저항으로 뒤집는 것이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이 긴장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살아있는 논쟁입니다.

이 문화가 작동하는 이유, 그리고 한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스티커 한 장, 뜨개바늘 하나, 손수 만든 뱃지 하나면 됩니다. 좀 어려운 말로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카시디가 보여주듯 엘이디 코트에서 태양광 배터리까지 공예는 기술로 이어지는 사다리입니다.

게다가 이 문화는 오래 지속됩니다. 분노는 강렬하지만 금방 소진되고 공포는 사람을 마비시키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걸리 문화는 다릅니다. 오래 걸리는 싸움에서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현장에 남아 있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카시디의 말, 이 모든 것 한가운데서도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은 감상이 아니라 번아웃을 막기 위한 생존 전략입니다.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완전히 소진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걸리 문화는 서로를 알아보는 언어가 됩니다. 같은 뱃지를 달고 같은 굿즈를 가지고 같은 미감을 나누는 것은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신호입니다. 케이팝 팬덤이 전 세계에서 서로를 찾아내는 방식이 그랬습니다. 저항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권력의 폭도 프레임을 무력화합니다. 강압적인 권력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위험한 폭도로 그립니다. 그런데 뜨개질하며 노래하는 시위대를 위험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역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1940년대 나치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했을 때, 노르웨이 사람들은 빨간 뾰족 모자, 현지어로 니슬루에(nisselue)를 쓰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폭력도 구호도 없이, 그냥 빨간 모자를 썼을 뿐입니다. 그 결과 나치 정권은 빨간 모자 착용 자체를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귀여운 모자를 금지해야 했던 권력이라니. 이보다 더 선명한 역설이 있을까요? 2026년 미네아폴리스에서 아이스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같은 모자가 부활했다는 것은 이 문법이 8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합니다. 자본은 귀여움의 이미지를 포장지로 만듭니다.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항의 이미지와 상징은 순식간에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뜨개질하는 활동가는 지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이 만든 모자의 이미지는 패션 브랜드의 광고에 쓰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기술로 올라갈수록 문이 좁아집니다. 스티커 하나의 진입 장벽은 낮습니다. 그러나 레이저 커터가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 워크숍에 참가할 시간과 여유, 태양광 부품을 살 돈 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운동이 가장 도우려는 사람들 즉 단속의 공포 속에 사는 이민자들이 가장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귀여운 저항도 내부에서 갈라질 수 있습니다. 핑크 모자는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시위 중 하나였던 여성 행진의 상징이었지만, 트랜스젠더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듬해 공식적으로 퇴장했습니다. 결국 공허한 백인 페미니즘의 화신으로 불리며 성의 없는 저항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귀여움은 언제나 정치였습니다

"Girly culture is going to save us, like it always does."

이것은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닙니다. 역사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전쟁 중에 퀼트를 만들며 메시지를 숨겼던 여성들, 나치 점령에 맞서 빨간 모자를 뜨개질했다가 그 모자가 금지됐던 노르웨이 여성들, 공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단결을 다졌던 여성 노동자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는 언제나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저항을 이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의 케이팝 팬덤은 이 오래된 문법을 디지털 시대에 가장 효율적으로 번역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또한 이 사례가 거리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카시디가 포틀랜드의 네온 불빛 속에서 "FUCK ICE" 귀걸이를 달고 태양광 파워뱅크를 조립할 때 카시디는 단지 귀엽게 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오래된 저항의 형식을 가장 새로운 위협에 맞게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귀여움은 언제나 더 강했습니다. 진정한 강함은 그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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