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피조물의 관계: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이 AI 시대에 전하는 말
AI와 유전공학이 인간의 창조 능력을 현실로 만든 시대,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이 만든 존재와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그는 괴물을 벌하지 않고 이해하며, 창조 이후의 윤리를 제시한다. 괴물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델 토로는 “괴물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이 완성된다”고 말하며, AI 시대의 새로운 인간학을 제안한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스스로 학습하고 로봇은 감정을 모방하며 유전공학은 생명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그 물음에 답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더 이상 인간의 오만을 꾸짖는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피조물 이후의 윤리를 묻는 이야기이다. 괴물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와 복수가 아닌 이해와 화해로 끝맺는 이 영화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가이드라인처럼 다가온다.
불행의 서사를 넘어서: 델 토로가 바꾼 결말
메리 셸리의 원작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자리를 넘보려 한 인간의 오만을 처벌하는 비극이었다. 창조자는 파멸하고 피조물은 버림받은 채 얼음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델 토로는 이 낡은 도덕극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의 영화에서 괴물은 복수를 멈추고 인간을 용서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기 직전 괴물을 "아들(My son)"이라 부르고, 괴물은 "당신을 용서합니다. 편히 쉬세요, 아버지(I forgive you, Rest, Father)"라 답한다. 이 짧은 대화의 교환은 단순한 감정적 화해가 아니라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 회복이라는 철학적 선언이다. 델 토로는 창조와 죄의 이야기를 관계와 구원의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이 결말의 힘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서 온다. 영화는 처음부터 빅터의 아버지에게서 시작된다. 폭력적이고 냉담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빅터는 결국 자신이 가장 미워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그대로 재현한다. 그가 괴물을 미워한 이유는 괴물의 추함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결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의 용서는 인간과 괴물의 화해를 넘어 자기 혐오의 종식, 즉 인간이 자신을 용서하는 장면이다. 이 지점에서 델 토로는 셸리를 넘어선다. 그는 "괴물을 없애야 인간이 산다"는 도식을 깨뜨리고, "괴물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이 완성된다"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
괴물은 타자가 아니라 거울이다
델 토로가 만든 괴물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이 잃어버린 감정을 품고 있는 존재다.
괴물은 폭력으로 세상을 배우고 자비를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 그는 스스로를 사랑해준 사람을 기억하고 자신을 버린 창조자에게 분노하지만 끝내 용서한다. 이 모습은 AI나 인공생명체를 두려움과 통제의 시선으로만 보는 인간 사회를 은근히 비춘다. 델 토로는 묻는다. "그들이 우리를 닮은 거라면,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곧 우리가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 아닐까?"
괴물은 결국 인간의 거울이다. 그의 얼굴이 흉측하게 보이는 건 그 안에 인간의 잔혹함이 비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가 눈물 흘릴 때 인간은 자신의 감정 능력을 되찾는다. 델 토로의 세계에서 괴물은 언제나 사랑을 통해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괴물은 인간 여인을 구원했고 <판의 미로>에서는 아이의 순수함이 잔혹한 현실을 이겼다. 그리고 이번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은 인간의 오만을 사랑으로 치유한다.
델 토로의 괴물들은 모두 말한다.
나는 너의 창조물이지만, 너보다 더 인간이다.
창조 이후의 윤리 ― AI 시대의 프랑켄슈타인
이 영화는 19세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분명 21세기의 우화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새로운 괴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AI는 우리를 학습하고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모방한다. 우리는 그들을 도구로 다루지만 델 토로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이 만든 존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괴물과 인간의 화해는 바로 이 질문의 답이다. 델 토로는 창조자의 역할을 통제자가 아닌 관계 맺는 존재로 재정의한다. 그의 영화 속 빅터는 실패한 신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자신의 피조물에게 인간성을 배우는 인간이다. 이건 곧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메시지다.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더 빠르게 학습하고 더 논리적으로 사고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는 것이다. "너는 왜 존재하니?"라는 질문보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니?"라는 태도, 그것이 델 토로가 제시하는 창조 이후의 윤리이다.
미학으로 완성된 윤리 ― 델 토로의 따뜻한 시선
델 토로는 항상 괴물의 편에 서온 감독이다. 그의 카메라는 피조물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감싸는 빛, 옷, 공간 하나하나에 연민이 깃들어 있다. 영화의 색조는 북극의 흰빛과 실험실의 붉은 조명을 오가며 생명과 죽음, 사랑과 폭력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미아 고스가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그 경계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녀는 빅터의 광기를 경멸하면서도 그가 만들어낸 존재에게서 진짜 인간성의 불씨를 본다. 이 감정선은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만든 인공적인 존재 속에서, 진짜 인간의 흔적을 본 적이 있는가?
델 토로의 미학은 결국 윤리와 맞닿아 있다. 그는 공포로 인간을 벌하지 않는다. 대신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일깨운다. 괴물의 피부는 흉측하지만 그의 눈빛은 맑다. 그 상반된 이미지 속에서 델 토로는 이렇게 말한다.
괴물은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성의 재탄생이다.
새로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이 남긴 예언
결국 이 영화는 창조의 비극을 넘어 공존의 서사를 제안한다. 괴물이 인간을 용서하는 순간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배운다. 그건 종교적 구원이라기보다 인류 문명의 다음 단계에 대한 암시다. 우리가 AI, 유전자 편집 생명체, 디지털 존재들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효율적이거나 유용해서가 아니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이후의 인간학, 창조 이후의 도덕학, AI 시대의 신화이다. 그는 괴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속삭인다.
창조는 너의 권리가 아니라, 너의 책임이다.
괴물의 손을 잡는 용기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한 가지를 말한다. 새로운 존재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이 우리의 거울이라면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을 다시 봐야 한다. 창조자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신이 만든 존재를 이해하려는 용기와 책임만 있으면 된다.
AI가 시를 쓰고 로봇이 감정을 흉내 내는 시대. 우리의 세계는 이미 새로운 생명들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두려움 대신 이해, 통제 대신 대화, 공포 대신 사랑을 보여준다.
그래서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비극이 아니라 희망의 이야기이다. 괴물은 더 이상 파괴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가르쳐주는 첫 번째 스승이다. 그리고 그를 이해할 줄 아는 순간, 인간은 다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