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에 다시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반지성주의
2025년 광복 80주년의 해에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화이트헤드의 반지성주의 철학을 통해 현재 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광복절 당일 벌어진 안철수 플래카드 사건과 보수 정치인들의 행사 불참이 보여주는 민주주의 위기를 진단한다. 진정한 광복 완성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과제를 제시한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은 한국은 새로운 정치적 전환점에 서 있다. 6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개혁이 추진되고 있지만 과거 권위주의 세력의 잔존 영향력과 반지성주의적 저항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경고한 "찬란한 시대의 여명은 인간 본성 속 깊이 자리한 거대한 반지성주의로 인해 그늘이 드리운다"는 통찰은 오늘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한다. 80년 전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해방, 반지성주의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있다.
The dawn of brilliant epochs is shadowed by the massive obscurantism of human nature.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2-9>
2025년 정치 지형과 민주주의의 새로운 도전
2025년 6월 3일 실시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한국 정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는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탄핵,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라는 격동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결과였다. 새 정부는 투명성과 참여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존 권력 구조의 관성과 맞서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와 현실의 괴리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진 '김문수 후보 기습 교체 사건'은 민주적 절차보다 권력 논리가 우선시되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당 지도부가 심야에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2종의 서류를 제출하라는 공고를 내는 등 사실상 '날치기' 시도를 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화이트헤드가 지적한 반지성주의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는 반지성주의를 "전통적 방법의 한계를 자유롭게 사변하려 하지 않는 태도"로 정의했는데, 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보다 기존 권력 구조를 고수하려는 관성을 의미한다.
정치·사회·미디어에 확산된 반지성주의
반지성주의의 영향력은 여러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2025년 광복 80주년 당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안철수 의원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경축사 도중 '조국·윤미향 사면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한 사건이다. 이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광복절의 엄숙함을 훼손하는 행위로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기본적인 예의와 절차를 무시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의힘이 광복 80주년 국민 임명식에 전면 불참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조국 특사 추진·특검수사 정치보복에 대한 분명한 거부와 경고의 의미"라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광복절의 의미 자체를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였다.
결국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건강상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정치적 의도가 명확했다. 과거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이들이 광복 80주년이라는 역사적 순간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앞세운 것이다.
사회 영역에서는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집회를 통해 정부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사실 검증보다는 감정적 동조에 의존하며 시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정치 피로감을 조장해 민주적 참여 의지를 약화시킨다. 특히 4월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압승한 이후에도 일부에서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디어 환경 역시 안전하지 않다. 일부 언론은 사실 검증 없이 편향된 보도를 쏟아내며 왜곡된 프레임과 허위 정보로 여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이는 건전한 민주적 토론의 장을 훼손하고 시민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시민사회의 복합적 반응과 현실 인식
시민사회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과거 세력의 저항에 분노하며 강력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79.38%라는 높은 투표율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를 보여준다. 반면 일부 시민들은 지속되는 정치적 갈등에 피로감을 느끼며 무관심이나 냉소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단순히 법적 제재만으로는 반지성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정보의 투명성과 공론장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화이트헤드가 강조한 "사변이성"과 "실천이성"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 사고를 촉진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시민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심화되는 정치적 양극화와 정보 왜곡 문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국제 언론은 한국의 정치 환경이 기술과 정보전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반지성주의 이론과 한국적 적용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어느 시대든 주류 방법론을 지배하는 집단에서 발생한다. 과거에는 성직자들이 그 역할을 했고 현대에는 과학자나 전문가 집단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주류 권력 구조 속에서 이익을 누리는 정치, 언론, 종교 세력이 변화에 저항하며 반지성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현실적 존재"와 "생성"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 과정에 있다. 고정된 실체나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관계와 과정 속에서 새롭게 창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존 권력 구조에 안주하려는 태도는 생성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반지성주의 세력들은 새로운 발상을 위험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 몰아붙이며, 실제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늦추고 있다. 이러한 저항은 화이트헤드가 말한 사변이성과 실천이성의 결합을 막고, 사회 전반의 혁신 속도를 늦춘다.
광복 80주년의 의미와 새로운 해방의 과제
광복 80주년은 단순히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와 자율성을 향한 지속적인 투쟁을 상징한다. 80년 전 조선의 광복이 물리적 해방이었다면 오늘날의 과제는 정신적, 지적 해방이다. 반지성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새로운 시대의 광복 과제인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찬란한 시대의 여명"이라는 표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시대를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인간 본성 속에 깊이 자리한 반지성주의가 그러한 가능성을 가로막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는 현재 한국 상황에 정확히 부합하는 진단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나는 해방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리적 해방 이후에도 정신적·제도적·문화적 식민성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권위주의적 관성과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반지성주의 극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반지성주의의 벽을 넘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법적 대응의 강화이다.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집행력을 높여야 한다. 이는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허위 정보 유포나 민주적 절차 방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되, 표현의 자유와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제도 개혁을 통한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이다. 정치, 행정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미디어 법제 개선을 통해 허위 정보와 왜곡 보도를 줄여야 한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당 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시민교육과 정보 투명성 확대이다. 민주주의 가치와 비판적 사고를 교육 과정에 적극 반영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화이트헤드가 강조한 "창조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사회적 대화 플랫폼 구축이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른 집단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갈등을 줄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지역별, 세대별, 계층별 대화의 장을 만들어 사회 통합을 도모해야 한다.
창조적 진보를 향한 새로운 출발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창조적 진보다. 이는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창조적 진보의 정신이 필요하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과거의 해방 정신을 현재에 되살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해방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반지성주의에 맞서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사고와 창조적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강조한 사변이성은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능력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변이성이다. 기존의 정치적 대립 구조를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또한 실천이성을 통해 이러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나가야 한다. 추상적인 이상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 개개인의 참여와 실천이 민주주의를 살찌우는 핵심 동력이다.
광복 80주년, 완성을 향하여
찬란한 시대의 여명은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빛은 언제나 인간 본성의 관성과 반지성주의라는 그림자와 함께 온다. 80년 전 광복의 의미가 단순히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듯이 오늘날의 광복은 반지성주의로부터의 해방과 민주주의의 완성을 의미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과제는 단지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저항의 문화를 극복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경고처럼 우리는 시대의 문턱에서 관성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이성을 창조적으로 발휘해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결국 우리 시민 모두의 몫이다. 광복 80주년이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새로운 다짐의 날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0년 전 선조들이 꿈꾸었던 진정한 해방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2025년 광복 80주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관념의 모험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과정과 실재의 철학으로 그것을 현실화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고 찬란한 여명을 현실로 만드는 길이다. 광복 80주년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