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의 사과는 틀렸다: 397일의 옹호 뒤 핑계와 변명

장동혁 내란당 우두머리가 12·3 비상계엄에 대해 397일 만에 내놓은 사과가 왜 진정한 반성이 아닌지를 분석한다. 그는 계엄을 오랫동안 옹호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했으며, 사과 요구를 거부하다가 정치적 압박이 커지자 입장을 바꿨다. 사과 내용 역시 ‘잘못된 수단’이라는 표현으로 책임을 축소하고 사법부와 역사에 판단을 넘기며 스스로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다. 이 글은 말과 행동의 불일치, 책임 전가, 타이밍의 문제를 통해 해당 사과가 정치적 생존 전략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장동혁의 사과는 틀렸다: 397일의 옹호 뒤 핑계와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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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말의 무게와 행동의 기록

2026년 1월 7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 134일 만에 처음으로 12·3 비상계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사과는 언뜻 반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은 그 순간의 언어가 아닌 그 언어에 이르기까지 행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장동혁이라는 정치인의 지난 397일(2024년 12월 3일~2026년 1월 7일)을 추적하면, 이 사과가 왜 '틀렸는지'가 분명해진다.

1부. 사실 확인: 장동혁의 계엄 옹호 연대기

2024년 12월 3일: 해제 표결 참여

2024년 12월 3일 밤, 장동혁은 국회의원 18명과 함께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이 사실은 장동혁 자신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면죄부다. 하지만 표결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이 한 표를 무색하게 만든다.

2025년 10월 17일: 윤석열 면회

장동혁은 2025년 10월 17일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서울구치소에서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10분간 면회했다. 당 대표 취임 50여 일 만이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반성 없는 尹' 면회, 민심 안중에 없나"라고 비판했고, 경향신문은 "제1야당 대표가 헌정질서를 짓밟고 국민을 배신한 윤석열을 '정치적 실체'로 옹호한다는 걸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25년 12월 3일: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

계엄 선포 1주년이 되는 날, 장동혁은 페이스북에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2024년 12월 3일부터 시작된 내란 몰이가 2025년 12월 3일 막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임 통감'은 계엄 자체가 아니라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던 국민의힘"에 대한 것이었다. 사과가 아닌 내란 옹호였다.

2026년 1월 2일: 계속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26년 1월 2일, 장동혁은 기자들의 계엄 사과 요구에 불쾌감을 표했다. "계엄에 대한 제 입장에 대해서 반복해서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색했다.

그는 "계엄에 대해서 저에게 계속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한 계엄 옹호 의견을 "그 또한 국민들의 목소리"로 규정하며 사실상 정당한 의견 중 하나로 인정했다.

2026년 1월 7일: 첫 공식 사과

2026년 1월 7일, 장동혁은 예정에 없던 '이기는 변화'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으로 계엄에 대해 사과했다. 당 대표 취임 134일, 계엄 선포 후 397일 만이었다.

2부. 도덕적 행위자의 자격 박탈

1. 인식론적 기만: '잘못된 수단'이라는 프레임

장동혁의 사과에서는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라는 표현으로 계엄을 정의한다. 이는 법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첫째, 목적과 수단의 전도다. 잘못된 수단이라는 표현은 목적은 정당했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를 담는다. 하지만 내란은 그 자체로 헌법 질서 파괴 행위다. 칸트적 관점에서 보면 수단의 정당성과 별개로 목적 자체가 도덕 법칙에 위배될 때 그 행위는 절대적으로 그르다.

둘째, 5일 전의 자기 발언과 모순된다. 2026년 1월 2일, 장동혁은 계엄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바도 없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5일 후 "잘못된 수단"이라고 말한다. 이는 신념의 변화가 아닌 정치적 계산이다.

셋째, 397일간의 옹호 행위를 지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분석하며, 악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언어의 메커니즘을 폭로했다. 장동혁의 잘못된 수단이라는 표현은 자신의 옹호 행위를 희석시키려는 언어적 조작이다.

2. 책임 전가: 사법부와 역사에 맡긴다는 도피

장동혁은 "과거의 일들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롤스가 주장한 '공정으로서의 정의'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롤스에 따르면, 정의로운 사회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책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행할 때 가능하다. "사법부에 맡긴다"는 말은 자신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남에게 떠미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하버마스가 말한 '의사소통적 행위'의 왜곡이다. 민주주의는 공적 영역에서의 진솔한 대화를 전제로 한다. 장동혁은 대화를 거부하고 책임을 다른 곳으로 넘긴다.

3. 시간의 정치학: 134일의 의미

장동혁이 사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34일(당 대표 취임 기준) 또는 397일(계엄 선포 기준)이다. 이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은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134일 동안 장동혁이 습관화한 것은 '계엄 옹호'였다. 사과는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적 압박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3부. 정치적 분석: 타이밍과 진정성

1. 오세훈의 압박과 지방선거

2026년 1월 1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동혁을 향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사과하라"고 직격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참을 만큼 참았다"며 "'계엄 옹호'는 해당 행위로 엄중하게 다루겠다고 선언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오세훈이 먼저 얼마나 사과했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기는 했나? 참 주제에 넘은 발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오세훈을 비롯해서 곧 다가올 지방 선거에 벌벌 떠는 자들이 사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장동혁의 사과는 오세훈을 비롯한 내부 압박에 대한 대응이었다. 한국경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존의 지지자 결집을 이끈 강경 기조에서 노선 변경을 시도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2. 프레임의 이중성

Before (2025년 12월 3일):

  •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
  • "2024년 12월 3일부터 시작된 내란 몰이"
  •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한 책임"

After (2026년 1월 7일):

  •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
  •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
  • "과거의 일들은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

뭔가 달라 보이는가? 아니다. 프레임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다. 계엄 자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내란")도 없고, 윤석열에 대한 입장("절연")도 없다.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일 뿐이다.

3. 윤석열 절연의 부재

당내 일각에서 전망한 '윤석열 전 대통령 절연'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2025년 10월 17일 면회 이후 장동혁은 윤석열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사과는 했지만 연을 끊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정치적 모호성의 극치다. 중도층에게는 '사과'를, 강성 지지층에게는 '절연 없음'을 동시에 어필하려는 양다리 전략이다.

4부. 커뮤니케이션 분석: 형식의 결함

1. 사과문 전문 미공개

장동혁의 사과는 기자회견 형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사과문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에 보도된 것은 몇 문장의 발췌본뿐이다.

이는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진정한 사과는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사과문 전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선언이다.

2. 질의응답 거부

장동혁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질의응답을 진행하지 않았다. 최보윤 당 수석대변인은 취재진에게 "별도의 질의응답은 하지 않겠다"며 "다음에 질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알렸다.

사과는 일방적 선언이 아니다. 사과는 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질의응답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과를 정치적 이벤트로 소비하겠다는 의도다.

3.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장동혁은 사과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숙이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다 마친 후 간단하게 목례하고 걸어 나갔을 뿐이었다.

진정성은 언어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고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장동혁은 그 모든 것을 생략했다.

4. 미래 지향적 도피

장동혁의 사과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말로 가득하다. 하지만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미래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기억과 책임의 관계를 논했다. 망각은 책임 회피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장동혁의 미래 지향적 수사는 바로 이런 망각의 정치학이다.

5부. 비판의 종합: 왜 이 사과는 '틀렸는가'

1.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

  • 주장: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
  • 사실: 장동혁은 계엄을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2.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 주장: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
  • 사실: 5일 전까지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397일간 옹호하다가 정치적 압박에 못 이겨 한 사과가 어떻게 진정한 반성인가?

3.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주장: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
  • 사실: 정치인의 책임은 사법적 책임과 별개다. 사법부에 맡기는 것은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6부. 결론: 언어와 행동 사이

장동혁의 사과는 언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 2025년 10월 17일, 그는 내란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을 면회했다.
  • 2025년 12월 3일, 그는 계엄을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 2026년 1월 2일, 그는 계엄 사과 요구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부했다.
  • 2026년 1월 7일, 그는 정치적 압박에 못 이겨 사과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에 있다"고 말했다. 장동혁의 '사과'라는 언어는 397일의 사용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 정치적 생존 전략이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언어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은폐하는지 분석했다. 장동혁의 사과는 바로 그런 신화다. 사과의 형식을 빌렸지만, 내용은 책임 회피와 정치적 계산으로 가득하다.

에필로그: 오직 팩트와 균형 잡힌 이야기만이 살아남는다

장동혁의 사과가 왜 '틀렸는가'를 묻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공세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어와 책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정치인의 말은 계약이다. 국민과 맺는 도덕적 계약. 장동혁은 397일 동안 그 계약을 위반했고, 134일 동안 침묵했으며, 5일 만에 입장을 바꿨다. 이런 사과는 계약의 이행이 아니라 계약의 또 다른 파기다.

오직 팩트와 균형 잡힌 이야기만이 언어의 진실이다. 장동혁의 사과는 팩트에 기반하지 않았고 균형도 없다. 따라서 이 사과는 역사에 남지 못할 것이다. 남는 것은 거짓과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한 397일의 기록 뿐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