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발 반도체 금산분리 완화: 득일까, 실일까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이유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금융리스 증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43년간 유지돼 온 금산분리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대규모 투자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충분한 자본조달 수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리스크와 재벌 지배력 강화를 감수할 만큼 불가피한 선택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과연 반도체 금산분리는 득일까, 실일까.

SK발 반도체 금산분리 완화: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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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2월 10일 '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을 명분으로 금산분리 규제 완화 추진 의사를 강하게 드러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가 대규모 투자를 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일리가 있다"며 "금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질적 대책이 거의 다 마련됐다"고 답했다.

핵심 내용은 지주회사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보유 의무를 100%에서 50%로 완화하고, 첨단전략산업 기업의 지주회사가 금융업을 하는 증손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여러 언론은 이를 SK그룹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는 사실상 'SK 맞춤형' 규제완화로 분석한다.

금산분리란 무엇인가

금산분리(金産分離)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원칙이다. 쉽게 말해 "삼성이나 SK 같은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은행이 재벌 기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재벌이 금융회사를 소유하면 고객 예금으로 자기 계열사를 지원하는 '사금고화' 위험이 생긴다. 부실 계열사를 살리려다 건전한 금융회사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재벌과 금융이 결합하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어 다른 기업들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재벌과 금융기관 간 불투명한 거래가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금산분리 원칙이 더욱 강화됐다. 현재 산업자본은 은행 의결권 있는 주식을 4% 초과 보유 시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고(승인 시 예외 가능),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 소유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경과규정 존재). 이번 규제 완화 추진은 43년간 지켜온 이 원칙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유력 쟁점은 '금융리스 회사' 증손회사 설립 허용

이번 완화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SK하이닉스가 증손회사로 '금융리스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재 SK 구조는 SK(지주회사) - SK스퀘어(자회사) - SK하이닉스(손자회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SK하이닉스가 그 아래 증손회사를 만들려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금융업이라는 점이다.

금융리스업은 고객이 필요한 설비를 대신 구매해 장기 임대하는 사업으로,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시설대여업'에 해당하며 금융감독원 감독 대상인 금융업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 계열의 금융회사 소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것이 바로 금산분리 원칙이다.

이번 완화로 SK하이닉스는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다. 첫째, 원래 만들 수 없던 금융회사를 만들 수 있다. 둘째, 50% 지분만으로 지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금융리스 회사를 설립할 때 SK하이닉스는 절반만 출자하고 나머지는 국민성장펀드 등 외부 투자로 채우면 된다. 이 회사가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 SK하이닉스에 장기 임대하면, SK하이닉스는 공장 소유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시설대여업자가 대주주에게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해 신용공여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정과의 충돌이다. 외부 투자자 돈과 SK 돈을 섞어 만든 금융회사가 SK하이닉스를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에만 집중하면, 사실상 'SK하이닉스 전용 금융회사'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의 운명이 SK하이닉스 한 곳에 묶이고 SK 계열사끼리 거래가 과도해지면서 위험이 커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벌과 금융의 불투명한 결합이 위기를 키웠다는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 육성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금산분리 규제완화가 그 목적 달성에 꼭 필요한 수단인지, 나는 판단하기 어렵다.

공공재적 가치를 가진 원칙이다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100% 지분 보유 의무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한 지주회사 규제의 핵심이다. 금산분리는 재벌이 고객과 투자자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금융계열사를 부실 비금융계열사 지원이나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에 쓰지 못하도록 막는 원칙이다.

거시경제적으로는 재벌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제도다. 2022년 기준 5대 재벌의 총자산은 GDP의 61%, 매출액은 GDP의 45%를 차지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상황에서 일부 반도체 대기업에 투자 편익을 제공하기 위해 허물어서는 안 되는 공공재적 가치다.

투자 활성화는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반도체 산업이 천문학적 자본 투자를 요구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TSMC나 삼성전자가 연간 수십조 원을 설비 투자에 쏟아붓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것이 금산분리 완화를 정당화하느냐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충분한 자본조달 능력을 가진 우량기업이다. 신용등급은 AA에 전망 '긍정적' 으로, 2020년 1조6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 시 2조700억원의 투자수요를 모았다. 2023년에는 25억달러 달러채 발행에 154억달러 투자수요가 몰렸고, 최초 제시금리보다 40~50bp 낮은 수준에서 조달에 성공했다.

물론 초대규모 설비투자에서 구조금융(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 펀드 등)을 활용하는 것 자체는 합리적 선택이다. 문제는 그것이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를 만들어야 할 만큼 불가피한가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SK하이닉스가 대규모 반도체 시설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면 먼저 이익잉여금과 외부차입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부족할 경우 유상증자를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며 "이러한 노력 없이 '최태원 회장의 SK하이닉스 지배권은 절대 건들 수 없다'는 전제에서 투자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면,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짜 쟁점은 이것이다: 자본조달 수단은 많다. 그런데도 43년 원칙을 깨야 할 만큼 절박한가? 리스크 관리 안전장치는 충분한가? 다른 산업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대통령의 고민은 이해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SK하이닉스 사장의 요청에 공감을 표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AI 경쟁에서 반도체는 국가 전략 산업이고, 대규모 투자의 적시성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민간투자를 끌어내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크다. "규제가 투자를 막는다"는 재계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 현실도 있다.

하지만 정책의 옳고 그름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금산분리 제한은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의 경우 그 문제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력 집중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고, "첨단산업이면 예외"라는 논리는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원칙은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만 적용하려는 특례라 하지만, 과거에도 2014년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통해 SK 관련 규제완화가 반복됐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역시 1998년 폐지 후 재벌의 내부지분율 상승 등 부작용이 발생해 2001년 재도입됐으나, 2009년 다시 폐지됐다.

반도체에 금융리스를 허용하면, 다음은 전기차, 바이오, 방위산업 차례가 될 것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한 번 규제가 풀리면 금산분리 원칙은 유명무실해진다. 이것이 규제 완화가 반복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진짜 혁신은 공정한 경쟁에서 나온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첨단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한다. 반도체 산업이 이미 소수 거대 기업의 과점 체제로 굳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금산분리 완화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공정한 혁신 생태계 조성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정부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진짜 혁신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벤처와 스타트업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환경,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 하청이 아닌 독립적 혁신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경쟁력은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기술 혁신과 인재 확보, 공급망 안정화로 만들어져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로 SK하이닉스는 50% 지분으로 금융리스 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가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 SK하이닉스에 장기 임대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반도체 투자는 활성화될지 몰라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금융시스템 리스크 증가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43년간 지켜온 금산분리 원칙을 한순간의 정치적 판단으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