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의 증언: 한국 교회와 극우 신앙의 그림자

한국 교회의 일각에서 신앙이 권력과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3·1절 일장기 게양, 계엄령을 신의 뜻으로 포장한 발언, 정치 집회로 전락한 설교, 그리고 신앙을 가스라이팅이라 규정한 망언까지 모두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정의의 부재를 드러내는 증언이다. 그러나 불완전함 속에서도 교회가 약자 보호와 정의를 회복할 때, 신앙은 다시 사회적 신뢰와 희망의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치와 극우 신앙의 그림자에 가려진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왜곡된 신앙의 현장

2023년 3·1절,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걸렸다. 이 행위를 주도한 인물은 이정우였다. 그는 "일본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됐다"는 식민사관을 설교 영상에서 언급했고, 유관순을 절도범이라 폄하했으며 위안부 피해를 '사기'라고 말했다(1).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신앙의 이름으로 왜곡한 사건이었다.

2025년 3월, 내란빨갱이당 장동혁은 계엄 사태를 두둔하며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발언했다(2). 위헌 논란의 정점이었던 계엄령을 신의 뜻으로 포장한 발언이었다.

같은 해 5월, 손현보는 강단을 정치 집회로 삼았다. 그는 설교 중 특정 정치인을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언급하며 교인들에게 따라 외치게 했고, 부산교육감 선거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교회가 압수수색을 받았다(3). 본인은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교회를 정치 선전장으로 만든 셈이다.

그리고 8월, 전광훈은 설교에서 "교회는 목사가 가스라이팅하러 오는 곳"이라고 말했다(4). 그는 '서울서부지법 폭동' 배후 조종 혐의로 수사받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했고, 신앙을 심리적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이 네 장면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졌지만, 본질은 같다. 신앙의 언어를 권력과 폭력의 정당화 도구로 쓰는 행태다.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는 구절은 권력 앞에 무릎 꿇은 제사장들을 향한 선지자의 외침이었다. 예수 또한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에서 해방시키며 권력자들이 독점한 진리를 무너뜨렸다.

신앙의 본질은 국수주의나 권력 숭배가 아니다. 억눌린 자와 함께하는 것, 정의와 평화를 증언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전광훈, 손현보, 이정우, 장동혁의 행태는 신앙을 권력 편향과 역사 왜곡의 장치로 만들어버렸다.

브루게만의 통찰과 오늘의 교회

신학자 월터 브루게만은 말했다. "우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아직 정의롭지 않다는 강력한 증인이다." 이 문장은 한국 교회의 현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월터 브루게만(1933~2025)은 미국을 대표하는 구약학자이자 신학자로, 성경을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과 정의의 비전을 담은 텍스트로 해석한 인물이다. 1978년 출간된 대표작 《예언자의 상상력》은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교회가 권력과 제도에 순응하지 않고 대안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평생 1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기며 교회가 정의와 희망의 증언자가 될 것을 강조했다.

교회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은 정의의 부재를 드러낸다. 전광훈의 '가스라이팅' 발언은 권위를 신격화하는 위험한 언어였고, 손현보의 설교는 예배를 정치 동원으로 전락시킨 사례였다. 이정우의 일장기 게양은 역사 기억을 파괴한 사건이었으며, 장동혁의 발언은 민주 헌정을 신앙으로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사건은 정의가 부재하다는 증언이자, 동시에 교회가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다.

불완전함 속의 희망

3·1혁명은 불완전한 현실에 맞선 민중의 외침이었다. 오늘의 한국 교회 역시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아직 하나님의 정의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아니면 하나님의 정의가 도래했는데도 일부 교회와 목사와 정치인이 무시하고 있거나.

이정우의 일장기, 전광훈의 망언, 손현보의 정치 설교, 장동혁의 계엄 미화는 모두 저항과 성찰을 촉구하는 부끄러운 증언이다. 우리는 이 불완전함을 숨기지 말고 정의의 부재를 고발하는 증거로 삼아야 한다.

교회가 약자 보호, 환대, 법치 존중이라는 공통선을 회복할 때, 신앙은 극우 정치의 소모품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자원이 될 것이다. 불완전함 속에서 정의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희망의 윤리다.


출처

  1. 서울신문 – 세종시 아파트 일장기 게양 사건 (2023.03.09)
  2. 교회와신앙 – 장동혁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 발언 (2025.03.06)
  3. 오마이뉴스 – 부산경찰, 손현보 세계로교회 압수수색 (2025.05.12)
    크리스천투데이 – 손현보 설교 논란 관련 반박 (2025.05.16)
  4. 교회와신앙 – 전광훈 "교회는 가스라이팅하는 곳" 발언 논란 (2025.08.11)

Q&A 요약

Q1. 글은 누구를 비판하는가?
A1. 전광훈, 손현보, 이정우, 장동혁 등 신앙을 극우 정치와 권력 정당화에 이용한 인물들이다.

Q2. 이들이 한 구체적 행동은 무엇인가?
A2. 전광훈은 "교회는 가스라이팅하는 곳"이라 발언했고, 손현보는 정치 편향 설교와 선거법 위반 의혹에 연루됐다. 이정우는 3·1절에 일장기를 게양하고 역사 왜곡 발언을 했으며, 장동혁은 계엄령을 "하나님의 계획"이라 말했다.

Q3. 공통으로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가?
A3. 신앙의 언어가 권력, 폭력, 역사 왜곡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Q4. 성경적·신학적 대안은 무엇인가?
A4. 정의와 공의를 흐르게 하라는 성경적 외침, 그리고 브루게만의 "불완전함은 정의 부재의 증언"이라는 통찰이 해법의 단서이다.

Q5. 최종적으로 무엇을 강조하는가?
A5. 교회는 불완전함을 숨기지 말고, 그것을 정의 부재를 드러내는 증언으로 삼아야 한다. 신앙은 극우 정치의 소모품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희망의 자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