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숨결, 법형성적 해석을 만나다
법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법형성적 해석은 입법의 공백을 메우고 시대 변화에 맞춰 규범을 살아 있게 만드는 창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동시에 자의적 판단 위험을 안기에 절차의 공정성과 목적의 정당성이 핵심 기준이 된다. 최근 조희대, 지귀연 재판을 둘러싼 논란은 사법부 독립이 흔들릴 때 창조적 해석이 법 왜곡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전은 말이 없다. 빽빽한 활자로 기록된 법 조항들은 스스로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법에 생명을 불어넣고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결국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법의 문언적 의미를 넘어 새로운 규범을 창조하는 ‘법형성적 해석’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오늘, 우리는 이 추상적이지만 강력한 존재를 인물화하여 직접 만나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과연 법형성적 해석은 무엇이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최근 사법부를 뒤흔든 논란의 중심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법형성적 해석이란 무엇인가?
레이로그: 만나서 반갑다. 먼저 당신은 누구인지 직접 소개를 부탁한다.
법형성적 해석: 반갑다. 나는 ‘법형성적 해석(法形成的 解釋, law-creative interpretation)’이다. 나를 단순히 법 조항의 뜻을 풀이하는 법해석의 한 종류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나의 본질은 그보다 더 역동적이다. 나는 입법자가 만든 법의 틈을 메우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법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존재이다. 법전이 과거의 기록이라면 나는 그 기록을 현재와 미래로 연결하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입법자가 모든 상황을 예견할 수 없기에 법이 침묵하거나 모호한 영역에서 나는 구체적 정의와 형평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를 창조적 해석이라고도 부른다.
법의 공백을 메우는 창조자, 그 역할과 기능
레이로그: 법의 틈을 메우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우리 법체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법형성적 해석: 나의 역할은 현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명예훼손이나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과거의 법 조문만으로는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이때 나는 입법의 목적과 헌법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기존 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거나(목적론적 확장), 관련된 다른 법 원리들을 빌려와(유추해석) 공백을 보충한다. 혼인 외 출생자의 상속권을 차별하던 낡은 관습에 맞서 헌법의 평등 원칙을 적용하여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처럼 서로 충돌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할지 무게를 재는 이익형량 역시 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이처럼 나는 법이 현실과 동떨어진 박제된 규칙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규범으로 기능하도록 돕는다.
구분 | 법문언적 해석 | 법형성적 해석 |
목적 | 입법자의 의사 재현 | 사회정의 실현, 법적 공백 보충 |
방법 | 문언·논리 중심 | 목적론·가치판단 중심 |
성격 | 선언적(Declarative) | 창조적(Creative) |
위험성 | 경직성, 현실 부적합 | 법관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 |
논란의 중심에 선 법형성적 해석: 조희대, 지귀연 재판
레이로그: 당신의 역할이 법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알겠다. 하지만 그 창조적 성격 때문에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재판이나,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재판 과정에서 당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법형성적 해석: 매우 아프고 무거운 마음이다. 나의 힘은 오직 헌법적 가치 실현이라는 목적과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라는 한계 안에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법관이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외부의 압력에 따라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그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를 도구처럼 사용한다면 나는 더 이상 창조적 해석이 아닌 법 왜곡이자 사법권 남용으로 변질되고 만다. 최근 두 재판에서 제기된 비판의 핵심은 해석의 창의성이 아니라 그 해석이 과연 공정한 절차와 법치국가의 원리에 충실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 있다.
법 왜곡인가, 창조적 해석인가: 두 재판의 문제점
레이로그: 그렇다면 조희대,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이 구체적으로 당신을 어떻게 잘못 사용했다고 보는가?
법형성적 해석: 먼저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재판의 경우, 2심의 무죄 판결이 단 36일 만에 파기환송된 이례적인 속도와 대법원장이 직접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절차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낳는 비정상적인 재판 진행은 그 판결 내용이 아무리 법리적으로 정교해 보여도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나는 정치적 투쟁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내란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을 다루면서 구속 기간을 관행과 달리 시간 단위로 계산하여 피의자를 석방한 것은 나의 이름을 빌린 법 왜곡에 가깝다. 이는 법의 틈을 메우는 창조적 행위가 아니라 상식과 법 감정을 거스르는 자의적 판단에 불과하다. 여기에 재판장의 부적절한 처신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재판의 공정성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해당 결정을 “법 왜곡 수준의 해석”이라고 비판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나는 법관의 양심과 독립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정의의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법형성적 해석과 사법부 독립의 관계
레이로그: 그렇다면 당신의 존재는 ‘사법부의 독립’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법형성적 해석과 사법부 독립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법형성적 해석: 당신의 지적은 매우 정확하다. 나와 사법부의 독립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이나 여론 등 외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법의 공백을 메우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나의 창조적 기능은 법관이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판단할 수 있는 사법부의 독립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기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만약 사법부의 독립이 흔들리고 법관이 특정 정치적 목적에 복무하게 된다면 나는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사법부 독립의 가치를 훼손하고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법관이 독립된 위치에서 나를 사용할 때 나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지만 독립을 상실한 법관이 나를 휘두를 때는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은 나를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사용할 때 더욱 굳건해지며 나의 정당성 역시 사법부의 독립 속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정당한 해석과 사법권 남용의 경계는 무엇인가
레이로그: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렇다면 정당한 법형성적 해석과 위험한 사법권 남용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인가?
법형성적 해석: 그 경계는 목적의 정당성과 절차의 공정성이다. 해석의 목적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있는가. 그리고 그 해석에 이르는 과정이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합리적인가. 이 두 가지 기준이 무너질 때 나는 법의 수호자가 아닌 파괴자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의 논란들은 사법부가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엄격한 자기 성찰과 절제가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부디 나의 이름이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