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 업무는 포장지: 쿠팡 사례로 본 거짓 언어의 정치학

2025년 6월 한 달간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공무원 6명. 언론은 이들의 업무를 대관이라 불렀지만, 노동계는 로비라 직격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이 용어들은 법적으론 동일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천양지차다. 쿠팡의 44명 전관 채용과 159억원 미국 로비는 한국 사회가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어떤 언어로 포장해왔는지 보여준다. 기업에겐 대관, 종교단체엔 로비. 언어의 선택이 진실을 가린다.

대관 업무와 로비의 언어 이중성을 표현한 에디토리얼 일러스트
Image Created by Google Gemini.

2025년 6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한 달 동안 쿠팡과 계열사로 이직이 승인된 전직 공무원이 6명.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인사혁신처 관계자(하여튼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취재원 가리는 건 비겁하다. 물론 내가 취재하지도 않고 남의 글을 빌어쓰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럽다)는 "한 달에 6명이 같은 기업으로 이직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산업통상자원부 보좌관, 검찰청 공무원 등 규제기관 출신들이었다.

그리고 이 보도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주요 언론들은 이들의 업무를 대관 조직 혹은 대관 업무라고 표현했다. 서울신문은 쿠팡이 '리스크 관리 및 대관 조직을 강화하는 상황'이라 썼고, 경향신문은 44명의 전관을 채용한 쿠팡의 조직을 분석하면서도 대관이라는 표현을 유지했다.

하지만 같은 현상을 다루는 노동, 시민사회 진영의 언어는 달랐다. 택배노조 김광석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감시자가 곧 로비스트가 됐다"며 "노동부는 더 이상 기업의 로비스트가 돼선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경실련은 쿠팡이 영입한 국회 보좌진들의 로비 의혹을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흥미롭게도 쿠팡의 미국 활동을 다룰 때는 거의 모든 언론이 로비라는 단어를 주저 없이 사용했다. 이투데이는 쿠팡의 '최근 5년간 1075만 달러, 약 158억 원 규모의 로비 자금'을 상세히 보도했다. 같은 기업의 같은 활동인데 국내에서는 대관이었고 미국에서는 로비였다.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언어

법적으로 대관과 로비는 어떻게 다를까? 답은 간단하다. 둘 다 법률 용어가 아니다. 한국에서 로비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알선수재) 또는 변호사법 제111조에 따라 사실상 불법이다.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래서 기업들은 대관 업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국민일보가 2014년 지적했듯 "기업이 입법, 사법, 행정 기관을 상대해 기업의 이익을 관철하는 업무"를 뜻하는 포괄적 용어이지만, 비공식적인 로비팀 성격을 갖는다. 실질은 같지만 하나는 행정업무처럼 들리고 하나는 불법을 연상시킨다.

시사저널의 2016년 보도는 더 직설적이다. "대관팀 업무는 한끗 차이로 합법과 불법을 넘나든다. 현행 변호사법상 금품이나 기타 이익을 대가로 공무원이 담당하는 직무에 관해 청탁이나 알선을 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기업들은 이 업무에 CR팀(Corporate Relation), 대외협력팀, 대관업무팀 같은 명칭을 부여한다.

2014년, 언어가 공론장에 등장한 순간

대관과 로비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된 건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가 단독 보도한 정윤회 문건을 통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정윤회(최순실의 전 남편)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을 통해 국정에 개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박관천 행정관이 작성한 이 문건에는 로비팀 성격, 대관업무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정윤회가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을 정기적으로 만나며 인사 개입, 공천 개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후한 말 조정을 휘둘렀던 '십상시(十常侍)'처럼 국정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반응은 가혹했다. "문건유출은 국기문란"이라며 검찰에 유출자 색출을 지시했지만, 정작 비선 실세 의혹은 수사하지 않았다. 세계일보 압수수색 시도, 세무조사 착수, 기자 반복 소환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검찰은 문건을 '사설정보지 수준의 짜깁기'로 허위라고 결론냈다. 하지만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윤회 문건은 "2년 전 예언서"로 재조명됐다. 문건 내용 상당수가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참여연대는 당시를 회고하며 "만약 2014년 말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비선실세들을 처벌 또는 강력히 견제했다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행위는 더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 이후, 언론들은 '대관'과 '로비'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이라는 정치 스캔들이, 기업들이 은밀히 수행해온 '대관 업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언론은 왜 '대관'을 선택하는가: 한 가지 추측

주요 일간지들이 '대관'이라는 완곡어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적 리스크 회피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미국 로비를 보도할 때는 거리낌 없이 로비라고 쓰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언론이 대관과 로비의 차이를 모를 리 없다. 한국일보가 "보안 강화보다 로비 등 대관 업무에 치중했다는 비판"이라고 쓴 것처럼, '로비 등 대관 업무'라는 표현 자체가 두 용어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걸 드러낸다.

그렇다면 왜 굳이 대관을 선택했을까? 추측하건대, 기업과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로비를 직접 쓰면 기업을 자극할 수 있다. 보도자료를 제공하거나 광고비를 지불하는 대기업에게는 완곡하게, 그렇지 않은 종교단체에게는 직설적으로.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하지만 팩트는 명확하다. 종교단체 통일교의 정치권 접촉을 다룰 때 언론은 주저 없이 '로비'라고 썼다. 시사저널은 "종교단체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의혹"이라고 표현했고, 헤럴드경제는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이라 보도했다. 같은 행위인데, 기업이 하면 '대관', 종교단체가 하면 '로비'.

쿠팡이 던진 질문

2024년부터 2025년 11월까지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공무원은 최소 25명이다. 대통령비서실, 검찰·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부, 고용노동부, 국회 보좌관 출신들이다. 경향신문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쿠팡은 2020년 이후 44명의 퇴직공직자를 영입해 "SK그룹(44명)과 같은 규모"의 전관 조직을 구축했다.

이들이 정말 '대관 업무'만 했을까? 택배노조 강민욱 준비위원장은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2024년 10월 쿠팡에 대한 근로감독이 진행될 때...광역근로감독과 과장이었던 사람이 이번(6월)에 쿠팡CLS로 이직했다"고 증언했다. 자신을 감독하던 공무원을 채용한 것이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더 나아간다. 쿠팡이 미국에서 5년간 약 159억원을 로비에 쏟아부었고, 이것이 미국 정치권이 한국 규제를 비판하는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M이코노미뉴스는 "쿠팡이 자사 문제를 방어하기 위해 국내 민생법안을 막고 외교 현안을 흔든 행태는 국익을 해치는 매국적 행위"라는 정 의원의 발언을 보도했다.

투명성이 답이다

문제의 본질은 '로비냐 대관이냐'가 아니라 투명성의 부재다. 한국은 로비를 불법화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로비가 작동하는 모순을 방치한다. 차라리 미국처럼 로비를 합법화하고 철저히 공개하라.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목적으로 지출했는지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가 감시할 수 있다.

동시에 언론은 언어의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대관이라는 완곡어법으로 독자를 호도하는 건 -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 저널리즘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같은 행위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진실로부터 한 걸음 멀어진다.

쿠팡의 25명 전관 채용과 159억원 미국 로비는 단순한 기업 스캔들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어떤 언어로 포장하고 어떻게 정당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2014년 정윤회 문건이 폭로했던 비선 권력의 구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대관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계속 대관이라는 포장지로 불편한 진실을 가릴 것인가, 아니면 로비라는 날카로운 언어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것인가. 말의 선택이 곧 현실을 만든다. 그리고 대관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여전히 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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