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과 법의 대화: 2025년 한국에서 법의 정의는?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가 2025년 한국의 법과 만나 나누는 철학적 대화. 법이 정의인가, 사회적 연극인가? 헌법과 형법의 실제 조문을 통해 살펴보는 법철학의 현실적 성찰.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진행되는 지금, 우리는 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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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법은 정의인가, 사회적 연극인가?

뫼르소: 너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말하지만, 내 경험은 달랐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재판은 그 사실보다 내가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태도를 더 문제 삼았다. 네가 말하는 정의란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연극에 불과한 것 아닌가?

법: 네 말처럼 나는 종종 행위의 본질보다 사회가 기대하는 규범적 태도를 판정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법정의 문제가 아니라 법체계 전체의 구조적 특징이다. 형법 제51조(양형의 조건)를 보면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범행 후의 정황'이란 바로 네가 경험한 그 '태도'의 문제다. 법은 객관적 사실뿐만 아니라 주관적 요소를 종합 판단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기대와 규범이 개입한다.

그러나 법의 정의가 단순한 연극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이는 법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가 인간 존엄임을 명시한다. 문제는 그 가치가 구체적 적용 과정에서 권력과 관습에 의해 왜곡된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308조(자유심증주의)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법관이 증거능력 있는 증거 중 필요한 증거를 채택, 사용하고 증거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 심증에 속함을 의미한다.

질문 2. 2025년 한국, 법은 여전히 정의인가?

뫼르소: 그렇다면 지금 2025년 한국에서 너는 어떤 의미인가? 검사는 정권에 빌붙어 너를 오용했고 판사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려 판결을 내렸다. 사회는 이제 그 타락에 분노하며 어떤 형태로든 정죄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너는 여전히 정의라 할 수 있겠는가?

법: 나는 부정하지 못한다.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 호의 직무와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지만, 현실에서는 '공익'이 정권의 이해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법원조직법 제1조는 "이 법은 헌법에 의하여 사법권을 행하는 법원의 조직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선언하고, 제2조는 "법원은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일체의 법률상의 쟁송을 심판한다"고 하여 사법권의 범위를 규정한다. '전관예우', '낙하산 인사', '정치적 수사' 논란들은 모두 법의 정치적 도구화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헌법 제103조(법관의 독립)제106조(법관의 신분보장) 같은 조항들이 더욱 중요해진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제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법관의 신분을 보장한다. 검사의 경우 헌법상 명시적인 독립성 조항은 없지만, 검찰청법을 통해 일정한 독립성이 보장된다.

현재의 사법개혁 논의도 바로 이 원칙을 실질화하려는 노력이다. 국정감사를 통한 사법부 견제는 여전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도입 이래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5년 현재 이재명 정부는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기소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등 더욱 근본적인 수사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여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완성하려는 시도이다. 정의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견제와 개혁 속에서만 유지된다.

질문 3. 시민은 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뫼르소: 그렇다면 시민들은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맹신도 안 되고, 완전히 불신하기도 어렵다면 시민과 법의 관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법: 시민들에게는 법에 대한 적극적 참여권이 있다. 헌법 제27조는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제26조는 청원권을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다. 이는 시민이 법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임을 의미한다. 국민참여재판은 시민이 직접 판결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이고 헌법소원을 통해서는 개인도 법률의 위헌성을 다툴 수 있다. 집회시위법이 보장하는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도 법에 대한 시민의 견제 수단이다.

또한 정보공개법을 통해 사법행정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고, 국정감사법에 의한 국정감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법의식이다. 법을 맹신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학자 드워킨의 말처럼, "법은 해석의 실천"이며, 그 해석에는 시민의 목소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질문 4. 법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가?

뫼르소: 그럼에도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은가? 인간의 내면, 도덕, 사랑과 증오 같은 감정들 말이다. 너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

법: 네 지적이 정확하다.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바로 법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영역을 설정한다. 양심의 자유(제19조), 종교의 자유(제20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 등은 모두 법의 한계를 그어놓은 조항들이다. 법은 외부적 행위를 규율할 뿐, 내면의 신념이나 감정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법은 최소한의 공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민법의 손해배상 제도, 형법의 처벌 규정들은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와 충돌할 때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비례의 원칙이다. 헌법재판소가 확립한 이 원칙에 따르면, 법적 개입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법은 만능이 아니지만 인간이 서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틀을 제공하는 역할은 해야 한다.

맺음말: 부조리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약속

뫼르소의 질문들은 법이 완전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법은 때로 권력의 도구가 되고 사회적 편견을 반영하며 진정한 정의와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법은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권력을 견제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고 시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헌법 전문이 선언하는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는 이상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향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법의 정의는 법조문 속에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끊임없는 참여와 견제 그리고 개혁 노력 속에서만 살아있다.

카뮈가 말했듯,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서도 반항하며 살아간다. 법의 정의도 그 반항 정신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질문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 그것이 2025년 한국에서 우리가 법과 맺어야 할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