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쾌락이 돌아왔다: 구독과 접속의 시대, 소유의 방향은?
스트리밍과 구독이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모든 것에 접속하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람들은 다시 물성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필름카메라와 LP의 부활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플랫폼 중심 사회에서 잃어버린 통제권을 되찾으려는 본능적 반란이다. 소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무엇을, 왜,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묻는 전략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2024년, 필름 카메라가 돌아왔다
2024년 카메라 업계에 묘한 역주행이 일어났다. 펜탁스가 21년 만에 필름 카메라 펜탁스 17을 출시했다. 라이카의 필름 카메라 판매량은 2015년 500대에서 2023년 5,000대로 8년 만에 10배 급증했다. 2015년 당시 라이카는 필름 카메라 생산 라인 폐기를 고민했지만, 2023년에는 필름 카메라가 전체 레인지파인더 판매의 30%를 차지하며 '아날로그의 귀환'을 선언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필름 매장을 찾는 젊은 세대의 방문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일이다. 어린 시절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접했던 밀레니얼 세대와 디지털이 보편화된 이후 태어난 Z세대가 필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무한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왜 36장만 찍을 수 있는 필름을 구매하는 걸까? 그것도 필름이 비싸고 구하기 어렵고 사진으로 현상하기도 번거로워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취미인데 말이다.
손에 쥔 필름통의 무게감, 한 장 한 장 세어가며 찍어야 하는 긴장감, 현상소에서 봉투를 받는 순간의 설렘. 이것은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이것은 디지털 세계에서 잃어버렸던 소유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다.
CD와 LP가 다시 팔린다
필름만이 아니다. 2020년대 들어 아날로그 열풍이 본격화되면서 음반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2024년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 발표에 따르면, LP 매출이 14억 달러를 기록하며 1984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더 놀라운 것은 LP가 3년 연속 CD 판매량을 추월했다는 사실이다. 2024년 LP는 4,400만 장이 출하된 반면 CD는 3,300만 장에 그쳤다. 이는 18년 연속 성장세다. 2016년 1,310만 장에 불과했던 LP 판매량은 2023년 4,960만 장으로 8년 만에 약 300% 급증했다.
글로벌 바이닐 연합회가 미국·영국·독일 2,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Z세대 응답자의 87%가 LP 음악에 관심이 있으며, 80%는 실제로 레코드 플레이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흥미로운 것은 Z세대의 84%가 온라인이 아닌 매장에서 직접 음반을 구매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예스24 집계 결과, LP 판매량이 전년 대비 73.1% 증가했고, 특히 국내 대중음악 LP는 262.4%나 폭증했다. 국내 유일의 LP 제작사인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주문량이 지난해 대비 2~3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백예린,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같은 국내 아티스트들의 LP는 출시 즉시 품절되었고, 이소라의 '눈썹달'은 16년 만에 LP로 재발매되어 13만 5,000원이라는 고가에도 1시간 만에 3,000장이 완판됐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5천만 곡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왜 15곡짜리 LP나 무거운 음반을 구매하는가? 손에 잡히는 앨범 케이스, 가사집을 넘기는 촉감, 선반에 꽂힌 음반을 바라보는 만족감. 이것은 단순한 음악 소비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라는 확실한 증표다.
무엇이 바뀌었나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상은 "소유는 무겁고, 접속은 가볍다"고 외쳤다. 제러미 리프킨이 2000년 저서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에서 예언한 접속 사회는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스트리밍과 구독을 통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히려 가벼워서 좋다고 믿었다.
그런데 2024년, 구호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접속은 불안하고, 소유는 안전하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플랫폼의 일방적인 서비스 종료, 예고 없는 약관 변경, 그리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삭제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의 취약성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플랫폼에 모든 것을 위탁한 시대,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이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접속 사회의 구조와 권력의 이동: 리프킨의 예언
제레미 리프킨은 재산권 소유가 아닌 접속권이 중요해지는 새로운 자본주의, 즉 '접속 사회'의 도래를 선언했다. 그의 예언대로 세상은 소유에서 접속으로 대전환을 이루었고, 우리는 가벼운 삶과 공유의 미학을 찬미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리프킨이 예측하지 못했던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의 이동이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하며 공유경제와 3차 산업혁명을 설파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 『한계비용 제로 사회』로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그렸다.
2024년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4% 성장했고, 2024년 7월 기준 한국 성인의 98%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살지만, 정작 우리는 스마트폰 안의 콘텐츠를 소유하지 않는다.
스트리밍, 구독 경제, SaaS(Software as a Service)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한다. 우리는 음악을, 영화를, 소프트웨어를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단지 월정액을 내고 사용할 권리를 얻을 뿐이다. 이것은 위탁된 소유(delegated possession)의 구조이며, 이용자와 실제 소유자인 플랫폼 기업은 구조적으로 분리된다. 내 것이 아닌 쓸 수 있는 것의 시대, 우리는 소유의 감각을 잃어버린 채 플랫폼이 설계한 임시 소유의 세계에 살고 있다.
불안의 실체는 통제권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구글은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앱과 서비스를 종료했다. 2024년만 해도 구글은 크롬캐스트, 구글 팟캐스트, 구글 VPN, 잼보드, 킨(Keen), 드롭캠 등을 종료했다. 영원할 것 같던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계정은 플랫폼의 자의적 판단으로 정지될 수 있으며,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플레이리스트와 데이터가 사실은 내 소유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디지털 재산의 취약성은 소유권 없는 소비자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내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결국 접속 사회는 권력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사용자가 접속하는 모든 것은 플랫폼이 소유하고, 데이터 주권은 파편화되며, 개인정보는 상품이 된다. 구독 경제의 역설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더 적어진다. 이 구조적 모순은 다음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은 왜 이토록 소유하려 하는가?
본능과 욕망의 이중 구조
소유욕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진화심리학은 자원 확보를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설명한다.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영역성(territoriality), 즉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는 점유 본능은 인간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침팬지도 영역을 지키고, 늑대도 자기 먹이를 숨기며, 인간도 마찬가지로 '내 것'을 만들고 '쥐고 싶어'한다. 이 원초적 충동은 생존을 위한 유전적 프로그램의 일부다.
생물학적 본능은 사회 속에서 욕망으로 조직화된다. 19세기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부유층이 필요 이상으로 비싼 물건을 구매하는 행태를 관찰했다. 그들은 과시를 위해, '내가 이만큼 가졌다'고 보여주기 위해 소비했다. 베블런은 이것을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 불렀다. 소유는 이제 생존을 넘어 정체성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가졌는가로 자신을 정의하고 에르메스 백과 테슬라와 강남 아파트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 이처럼 소유는 본능에서 출발해 사회적 욕망으로 전환되고 제도화된다.
소유 욕망은 법과 철학을 통해 권리로 정당화되었다. 존 로크(John Locke)는 자신의 노동이 투입된 것은 자신의 소유가 된다는 노동 소유론을 통해 재산권의 기초를 놓았고,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은 소유를 자아실현의 필수적인 수단으로 보며 인격 이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서 소유권은 점유·사용·수익·처분이라는 구체적인 권능을 가진 법적 권리, 즉 물권으로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접속권은 어떤가? 접속권은 특정인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채권에 가까우며 플랫폼의 약관에 종속된 채 언제든 취소될 수 있는 일시적 권리에 불과하다. 디지털 시대의 법적 공백이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 본능을 욕망으로, 그 욕망을 다시 자본으로 전환하며 증폭시킨다. 특히 플랫폼 자본주의는 소유 불가능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욕망을 강화한다. 한정판 운동화와 대체불가토큰(NFT)처럼 인공적 희소성을 생산하여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플랫폼의 약관 논리와 개인의 재산권 논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소유가 곧 권력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1970년대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정신적 자유를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고, 2020년대의 미니멀리즘 역시 소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발적 단순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접속 시대의 무소유는 선택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플랫폼이 강제하는 소유할 수 없는 상태는 소유하지 않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권리의 포기이지 정신적 해탈이 아니다.
소유의 재정의와 실천 전략
소유는 인간 본능 위에 세워진 견고한 제도다. 따라서 플랫폼 시대에도 소유 욕구는 사라지지 않으며 다만 그 형태가 물리적 점유에서 권리의 형태로 바뀔 뿐 본질은 지속된다. 현재 우리가 겪는 혼란의 핵심은 소유의 종말이 아니라 플랫폼으로의 통제권 이동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소유가 아닌 전략적 소유다. 이것은 '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소유하고, 나머지는 접속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통해 소유와 접속의 균형을 잡고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진은 하드디스크에 백업하되 구글 포토만 믿지 말고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되 정말 좋아하는 앨범은 CD로 구매하며 소프트웨어는 구독하되 영구 라이선스 옵션이 있으면 그것을 선택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다층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책 차원에서는 계정, 데이터, 콘텐츠의 소유권을 명시하는 디지털 재산권 법제화와 디지털 유산 상속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기업은 DRM-free 콘텐츠나 영구 소유 옵션을 제공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플랫폼 독립성을 보장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개인은 자신의 핵심 자산을 완전 소유하고 디지털 재산을 주기적으로 백업하며 소유권이 보장되는 제품을 우선 선택하는 등 데이터 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소유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되고 있다. 21세기의 소유권은 물리적 점유를 넘어 다양한 권리가 묶인 권리 포트폴리오의 개념으로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편리함과 통제권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탐색하는 과도기에 서 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소유하고 싶은가?
Q&A
Q1.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가 왜 필름 카메라와 CD를 사는가?
A1. 역설적이지만, 디지털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클라우드가 증발할 수 있다는 것, 스트리밍 계정이 정지될 수 있다는 것, 플랫폼이 약관을 바꾸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체감한 세대다. 그들은 복고를 즐기는 게 아니라, **"내 것"이라는 확실한 증표**를 손에 쥐려 하는 것이다. 36장짜리 필름 통의 무게감, 선반에 꽂힌 CD 케이스의 물성. 이것은 소유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본능적 반란이다.
Q2. 접속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A2. 통제권의 상실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예언한 접속 사회는 현실이 되었지만, 그가 놓친 것이 있다. 권력이 플랫폼으로 완전히 이동했다는 점이다. 구글은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서비스를 종료했고 당신의 계정은 플랫폼의 판단으로 하루아침에 정지될 수 있다. 수년간 공들인 플레이리스트와 사진 라이브러리가 사실은 당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대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것인가?"
Q3. 인간은 왜 이렇게 소유하고 싶어 하는가?
A3. 소유욕은 본능에서 출발해 욕망으로 조직되고, 자본에 의해 증폭된 이중 구조다. 침팬지도 영역을 지키고 늑대도 먹이를 숨기듯 우리에게도 생존을 위한 점유 본능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이 본능은 나를 정의하는 수단으로 변화한다. 에르메스 백과 강남 아파트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존 로크와 헤겔의 철학을 통해 권리로 정당화된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충동을 욕망으로 전환하고 극대화한다. 소유는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 새겨진 프로그램이다.
Q4.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처럼 소유해야 하는가?
A4. 아니다. 필요한 것은 무소유가 아니라 전략적 소유다.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왜,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선택하는 것이다. 사진은 하드디스크에 백업하되 구글 포토도 활용하고,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되 진짜 사랑하는 앨범은 CD로 사며, 소프트웨어는 구독하되 영구 라이선스가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식이다. 핵심 자산은 완전 소유하고, 나머지는 접속하는 하이브리드 전략. 이것이 2025년을 사는 우리의 소유 전술이다.
Q5. 소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A5. 소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재정의될 뿐이다. 21세기의 소유권은 물리적 점유를 넘어, 접속권·사용권·수익권·데이터 주권이 얽힌 권리 포트폴리오로 확장된다. 법제화도 따라올 것이다. 디지털 재산권과 디지털 유산 상속 제도가 정비되고, 기업들은 DRM-free 콘텐츠와 영구 소유 옵션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편리함과 통제권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과도기에 서 있다. 2024년 펜탁스가 필름 카메라를 다시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여전히 내 것을 원한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