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왜 변명하는가: 권력과 원칙 사이의 심리학
왜 정치인은 권력을 잡으면 변명하게 되는가? 의원 시절 날카롭던 비판과 정의를 향한 갈망은 권력을 잡자 마자 사라진다. 정치인이 권력을 잡으면 왜 변명하게 되는지 심리학, 철학, 신경과학을 통해 분석한다. 인지부조화, 기관포획, 방어기제, 집단사고 등 권력이 인간의 도덕적 일관성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살펴보고 변명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와 시민 감시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 액턴 경
개혁가에서 현실론자로의 불가역적 변화
정치인들은 왜 그토록 쉽게 변명하는가? 야당 시절 날카롭게 비판하던 그 논리가 여당이 되거나 권력을 잡는 순간 현실적 고려, 국민 혼란 방지, 점진적 개혁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단순한 정치적 기회주의를 넘어선다. 인간의 인지 구조와 권력의 속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필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심리학의 렌즈를 통해 정치인의 변명 심리를 해부하고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도덕적 일관성을 잠식하는지 분석한다.
인지부조화: 자아를 지키는 정교한 변명술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간이 상충하는 두 인지 사이에서 겪는 심리적 불편함을 인지부조화라고 명명했다[1]. 정치인에게 이는 치명적 딜레마다. "나는 원칙 있는 개혁가"라는 자아상과 "현실에서는 타협해야 한다"는 행동 사이의 괴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합리화의 정교함: 정치인의 변명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정교한 합리화 과정이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국민 혼란을 막기 위해서 등등의 논리는 사실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방어막이다.
선택적 기억: 인지부조화는 기억까지 왜곡한다. 과거 자신이 했던 강력한 비판 발언은 그때는 정보가 부족했다거나 상황이 달랐다는 식으로 재해석한다. 뇌는 일관성 있는 자아상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기억을 자동으로 편집한다.
엘리엇 아론슨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이유를 만들어낸다[2]. 정치인이 공약을 파기하고 나서 예상보다 상황이 복잡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믿게 된 것이다.
기관포획: 비판자에서 옹호자로의 변신
경제학에서 시작된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개념은 정치 권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3]. 감시자가 피감시자의 논리에 동화되는 현상이다. 정치인이 특정 부처나 기관의 수장이 되면 예전에 비판하던 그 조직의 논리를 스스로 대변한다.
조직의 생존 본능: 모든 조직은 살아남으려는 욕구를 갖는다. 새로 부임한 수장은 부하직원들로부터 현실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된다. 장관님, 이상은 좋지만 현실은 이래요,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어요 같은 식의 말이다. 점차 그 조직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부자가 된 우월감: 권력기관 안으로 들어간 정치인은 일반인은 모르는 비밀 정보를 알게 된다는 특별함을 느낀다. 내가 진짜 속사정을 아는데, 바깥 사람들은 겉만 보고 판단하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과거 자신의 비판을 그땐 몰라서 그랬지라고 여긴다.
권력의 부패 메커니즘: 철학적 관점
이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은 네 행위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말한다[4]. 그러나 권력을 잡은 정치인은 자신을 예외적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는 거짓말하면 안 되지만, 국가 기밀을 위해서는..., 보통은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국민을 거기에 끼운다.
도덕적 예외주의: 권력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만 특별한 면죄부를 부여한다. 이는 칸트가 경계한 가언명령(조건부 명령)의 전형이다. 보편적 도덕법칙이 개인적 편의에 따라 왜곡되는 순간이다.
니체는 강한 개체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고 봤다[5]. 그러나 정치 권력은 이를 왜곡한다. 진정한 가치 창조가 아니라, 기존 권력 구조를 합리화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결정, 미래 세대를 위한 선택이라는 수사가 그 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virtue)이 반복적 실천을 통해 체화된다고 했다[6]. 반대로 말하면 변명과 합리화를 반복하면 그것이 체화되어 품성 자체가 변한다는 뜻이다. 정치인의 변명은 일시적 전술이 아니라 영구적 성격 변화로 이어진다.
방어기제의 작동: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적 접근
프로이트가 분석한 방어기제 중 정치인이 가장 즐겨 쓰는 것이 합리화다[7]. 진짜 이유는 권력 유지나 개인적 이익이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운다.
예시:
- 실제 이유: 지지율 하락 우려
- 공식 발언: 국민 혼란 방지를 위해
첫 번째 방식이 자신의 결함을 다른 대상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야당의 발목잡기, 언론의 왜곡 보도, 시민들의 이해 부족 등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두 번째로는 내면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정반대 행동을 과도하게 표현한다. 원칙을 저버린 정치인일수록 원칙, 신념, 소신을 더 자주 언급한다.
권력의 중독성: 신경과학적 관점
최근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권력 행사는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한다[8]. 이는 마약 중독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 한번 맛본 권력의 쾌감은 포기하기 어렵다.
권력 의존성: 권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이때 정치인은 평소 신념보다 권력 유지를 우선하게 된다. 변명은 이런 불안을 달래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
권력에 중독된 뇌는 위협에 과민하게 반응한다. 작은 비판도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해 과도한 방어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정치인이 사소한 지적에도 격렬하게 변명하는 이유다.
언어의 마술: 정치적 수사학의 심리학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권력이 어떻게 언어를 조작하는지 보여줬다[9]. 현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은 해고, 부가세는 소비세, 전략적 모호성은 애매모호함을 포장한 말이다.
게다가 정치인은 불편한 진실을 완곡어법으로 포장한다. 어려운 결정, 고심 끝에, 불가피한 선택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이런 언어 게임은 청중뿐 아니라 화자 자신도 속인다.
조지 레이코프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사실도 어떻게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10]. 정치인은 이를 악용해 자신의 실책을 다른 관점으로 재포장한다.
집단사고와 동조압력
어빙 제니스는 폐쇄적 집단이 어떻게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지 집단사고 이론으로 이를 분석했다[11]. 정치 권력 집단도 마찬가지다. 내부 구성원들이 서로의 변명을 합리화해주면서 집단 전체가 현실감각을 잃는다.
뿐만 아니라 권력자 주변에는 비판보다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들은 권력자의 변명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역할을 한다. 장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국민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게 또 그들의 습성인지도 모른다.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집단 압력에 굴복하는지 보여준다[12].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조직에 반대하는 것은 행정적 자살행위이기 때문에 개인적 신념보다 집단 논리에 따르게 된다.
메타포: 권력이라는 마약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죄수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한다[13]. 권력에 중독된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권력 내부의 논리를 현실 전체로 착각하고, 바깥세상의 비판을 무지한 소리로 치부한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는 소유자를 타락시킨다[14]. 순수한 의도로 반지를 가진 자라도 결국 그 힘에 굴복한다. 정치 권력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국민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지만, 결국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된다.
변명 불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정치인의 변명은 개인적 도덕성 결함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적 속성이다. 인지부조화, 기관포획, 방어기제, 집단사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지는 필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정교한 견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투명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정치적 결정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회의록, 의사결정 근거, 찬반 의견, 외부 압력까지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는 식으로 변명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햇빛이 최고의 소독제라는 말처럼 모든 과정이 공개되면 정치인들은 변명 대신 제대로 된 해명을 할 수밖에 없다.
책임도 개인화해야 한다. 당론이었다, 집단 결정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흩어버리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모든 결정에는 개인의 이름이 붙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집단의 익명성 속에 숨어서 변명하는 일을 막으려면 누가 언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명확하게 기록하고 추적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감시가 지속되어야 한다. 선거철에만 잠깐 관심을 갖다가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단체, 언론, 개인 시민들이 끊임없이 정치인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기록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관심 없어 한다, 곧 잊을 것이라고 계산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은 변명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변명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인들이 변명 대신 해명을, 합리화 대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출처
[1] Festinger, L. (1957).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Stanford University Press.
- Stanford University Press
- Wikipedia: Cognitive Dissonance
- Simply Psychology: Cognitive Dissonance Theory
[2] Aronson, E. & Tavris, C. (2019).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Harcourt Books.
[3] Stigler, G. J. (1971). "The Theory of Economic Regulation." Bell Journal of Economics, 2(1), 3-21.
- JSTOR Original Paper
- Chicago Booth Review Analysis
- Wikipedia: Regulatory Capture
- GWU Regulatory Studies Center
[4] Kant, I. (1785).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 Project Gutenberg: Full Text
- Stanford Encyclopedia: Kant's Moral Philosophy
- Wikipedia: Categorical Imperativ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Edition
[5] Nietzsche, F. (1886). Beyond Good and Evil.
[6] Aristotle. Nicomachean Ethics, Book II.
[7] Freud, A. (1936). The Ego and the Mechanisms of Defence.
[8] Keltner, D. (2016). The Power Paradox: How We Gain and Lose Influence. Penguin Press.
[9] Orwell, G. (1949). Nineteen Eighty-Four. Secker & Warburg.
- Project Gutenberg: Full Text
- Wikipedia: Nineteen Eighty-Four
- Orwell.ru: Newspeak Appendix
- Wikipedia: Newspeak
[10] Lakoff, G. (2004). Don't Think of an Elephant!. Chelsea Green Publishing.
[11] Janis, I. L. (1972). Victims of Groupthink. Houghton Mifflin.
- Internet Archive Original
- Internet Archive 2nd Edition
- Amazon
- ResearchGate Analysis
- JSTOR Academic Paper
[12] Asch, S. E. (1951). "Effects of group pressure on the modification and distortion of judgments." Groups, Leadership and Men, 177-190.
- Simply Psychology Explanation
- Psychology Fanatic Analysis
- Scientific Research Publishing Reference
- Springer Encyclopedia
[13] Plato. The Republic, Book VII.
- MIT Internet Classics Archive
- Project Gutenberg Full Text
- Wikipedia: Allegory of the Cave
- Philosophy Teaching Library
- SparkNotes Analysis
[14] Tolkien, J.R.R. (1954-1955). The Lord of the Rings. George Allen & Unwin.
- [Literary metaphor for power corruption - classic reference to the One Ring's corrupting influ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