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할 권리
캘리포니아가 애플에게 2023년 수리권을 인정받는 동안 한국 소비자는 여전히 ‘공식 수리’라는 이름의 통제 속에 있다. 이 글은 애플, 삼성, LG의 수리 독점 구조와 한국 법제도의 공백을 통해, 우리가 왜 고칠 권리 없는 소유권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 독점 수리는 수리비의 인상과 몰리는 수리로 인한 기다림으로 소비자를 내몬다. 소비자는 독점 수리 센터에서 안된다고 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래서 새 제품을 사거나, 그냥 포기한다. 이제 그만하자. 2025년 수리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애플이 캘리포니아에서 항복한 그 권리를, 우리는 왜 아직 요구하지 못하는가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2023년 8월, 실리콘밸리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애플이 캘리포니아의 수리권 법안(SB 244)에 공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1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수리권 입법을 막아온 그 애플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같은 해 10월 10일, 개빈 뉴섬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했고, 2024년 7월 1일부터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100달러 이상 전자제품은 최소 7년간 부품, 도구, 매뉴얼을 독립 수리업체와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애플은 왜 항복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법이 통과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면 어떨까? 한국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자. 서울 강남구에서 아이폰 14 Pro 배터리를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 견적은 약 129,000원이다. 같은 배터리를 사설 수리점에서 교체하면 약 65,000원이다. 부품은 동일한 정품이다. 차이는 단 하나, 애플의 인증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다.
사설에서 수리하면 "비공식 수리로 인해 일부 기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메시지가 설정 화면에 표시된다. 기능상 문제는 없다. 하지만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2025년 한국에서 적용되는 현실이다. 캘리포니아가 권리를 되찾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수리할 권한 없이 통제받는 소유를 산다.
소유권은 거래로 끝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샀다. 노트북을 샀다. TV를 샀다. 우리는 분명 샀다. 그러나 고장이 나는 순간 이 문장은 슬그머니 흔들린다. "공식 대리점 등을 통해 수리해야 합니다.", "비공식 수리는 보증이 무효입니다", "부품은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이때부터 물건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소유는 했지만 통제하지는 못하는 상태다.
전통적으로 소유권은 단순했다. 돈을 내고 물건을 사면 그 물건은 사용, 처분, 수정, 수리할 권리까지 포함해 구매자에게 귀속됐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제품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 락(lock)이 걸리고 펌웨어 업데이트로 기능이 제한되며 특정 부품은 시리얼, 암호로 '짝지어(pairing)' 관리된다.
기업은 제품 판매 이후에도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하드웨어를 샀을 뿐, 이 제품의 작동 방식과 수리는 여전히 우리의 영역입니다." 이 순간, 소유권은 완결된 권리가 아니라 기업이 사후까지 관리하는 조건부 권리로 바뀐다.
숫자로 보는 한국의 수리 독점
녹색연합이 2023년 발표한 전기·전자제품 사용 현황 조사가 전국 106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수리 경험이 있지만 72%는 수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제품의 빠른 단종으로 인한 부품 부족, 수리를 맡길 곳에 대한 정보 부족, 수리 전문가 부족 등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됐다.
스마트폰 수리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공식 서비스센터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는 선택이 아니라 강제에 가깝다. 사설 수리를 기피하는 이유는 '보증이 끊길까봐', '제조사가 추후 AS를 거부할까봐', '부품을 구할 수 없어서' 등이었다.
가전제품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LG전자 냉장고 수리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자. 평균 8.2년 사용한 냉장고가 컴프레서 결함으로 고장 났다. LG 공식 견적은 평균 82만원(신제품 가격의 약 68%)에 달한다. 사설 수리 시도는 부품 구매가 불가능해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 녹색연합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61%는 수리 대신 신제품을 구매하고 27%는 그냥 사용을 포기하며 실제 수리는 12%에 그친다.
8년 쓴 냉장고가 컴프레서 하나 때문에 전자쓰레기가 된다. 기술적으로 수리 가능하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시스템의 결과다.
한국의 구조적 문제
한국에서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제조사 중심 산업 구조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2024년 점유율 19%(1위)를 기록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23년 미국 가전시장에서 각각 21%, 19%의 점유율로 1, 2위를 차지했다. 한국 국내 가전시장은 사실상 양사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시장을 설계하는 권력이다.
둘째, 강한 브랜드 신뢰와 불안 조작이다. 2023년 소비자 인식조사에서 '공식 수리가 더 안전하다'는 응답이 81.2%, '사설 수리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응답이 67.4%였다. 하지만 한국전자서비스협회 2024년 보고서를 보면 사설 수리점 재수리율은 3.2%, 공식 서비스센터 재수리율은 2.8%로, 0.4%p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수준인데도 '공식이 아니면 위험하다'는 인식은 확고하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 마케팅이다.
셋째, 수리권에 대한 법적 공백이다. 현행 한국 법체계에서 '수리할 권리'를 명시한 조항은 거의 없다. 2022년 12월 31일, 국회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 제20조에 수리권 관련 조항이 있고,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내용은 이렇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제품의 생산자나 수입자는 수리에 필요한 예비부품 확보 기준 등을 준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력 의무다. 강제성이 없다. 게다가 2024년 8~9월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은 소비자기본법의 분쟁해결기준을 중심으로 대상과 부품보유기간만 결정했을 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여전히 공백이다. 서울환경연합은 2024년 10월 논평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법안은 보증기간 내 부품 확보 및 배송 기한 의무화만 담고 있으며, 이 외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만 일단락됐다. 허울뿐인 법안이다."
애플: 보안이라는 이름의 통제
애플은 수리 독점의 교과서적 사례다. 2024년 현재, 애플은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모듈, Face ID 센서, Touch ID 센서에 암호화된 시리얼 매칭을 적용한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각 부품에 고유 시리얼 넘버가 있고, 메인보드와 암호화 방식으로 짝짓기를 한다. 공식 인증 도구 없이 부품을 교체하면 오류 메시지가 뜨거나 기능이 제한된다.
서울 용산에서 아이폰 15 Pro의 깨진 디스플레이를 교체한다고 가정하자. 사용 부품은 애플 정품(동일 모델에서 떼어낸 것)이고, 수리는 사설 수리점에서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화면은 정상 작동하지만 설정 화면에는 이런 경고 메시지가 표시될 것이다. "정품이 아닌 디스플레이입니다. 성능 및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부품은 정품이었다. 차이는 단 하나, 애플의 인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애플은 이를 '보안과 사용자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2023년 유출된 애플 내부 문서는 달랐다. 프랑스 소비자단체 HOP(Halte à l'Obsolescence Programmée)가 제출한 조사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부품 페어링 시스템의 주요 목적은 애프터마켓 수리의 경제성을 낮추는 것이다.'
안전은 이유가 되고 통제는 결과가 된다. 물론 애플도 변화하고 있다. 2024년 4월, 오레곤주의 부품 페어링 금지법에 대응해 애플은 일부 정책을 완화했다. iPhone 15 이상 모델부터는 중고 정품 부품도 사용 가능하며 일부 부품은 기기 내에서 자동 캘리브레이션이 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 변화도 없다.
삼성, LG: 공식 서비스의 그림자
삼성과 LG는 애플보다 덜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영향력이 더 크다. 예컨대 부산의 한 사설 수리점에서 갤럭시 S24 울트라의 메인보드 일부 칩셋 고장을 수리한다고 가정하자. 수리는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 건 특정 IC 칩 1개다. 하지만 삼성 공식 대응은 "부품 단독 판매 불가, 메인보드 전체 교체만 가능"이다. 메인보드 교체 비용은 약 68만원으로, 신제품 가격(140만원)의 48.6%에 달한다. 결국 소비자는 수리를 포기하고 신제품을 구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 부품을 안 파는가? 삼성전자 서비스 정책은 이렇다. '핵심 부품의 외부 유출은 품질 관리 및 보안상 제한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삼성은 동일한 부품을 베트남, 인도 등 해외 시장에서는 판매한다. 차이는 단 하나, 법적 강제성이다.
유럽연합은 2023년 에코디자인 규정(EU 2023/1670)을 채택하고 2025년 6월 20일부터 시행했다. 이 규정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조사에게 '제품 판매 종료 후 최소 7년간 주요 부품 공급'을 의무화한다. 삼성은 EU에서는 부품을 판다. 한국에서는 안 판다.
LG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TV 등 가전제품의 회로도와 수리 매뉴얼을 공개하지 않는다. 2024년 1월 한국전자서비스협회 설문조사를 보면, 사설 수리업체 중 회로도 확보 가능 응답은 8.7%, 제조사 매뉴얼 접근 가능 응답은 4.2%에 불과했다.
또 다른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인천에서 LG 올레드 TV(OLED65C3KNA급) 전원이 불량이라고 가정하자. 고장 원인은 전원 공급 보드의 특정 커패시터 파손으로, 기술적으로 교체해서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사설 수리점은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회로도가 없어 어떤 커패시터인지 특정할 수 없고 부품 리스트가 없어 호환 부품을 확인할 수 없으며 LG 공식 견적은 약 94만원(패널 포함 전체 교체)에 달한다. 결국 120만원대 TV가 3년 만에 전자쓰레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이 충돌의 본질은 단순하다. 소유권은 언제 끝나는가? 전통적 재산권 이론에서 소유권은 절대적이다. 로마법 이래로 dominium(지배권)은 물건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사용권을 샀을 뿐, 우리는 이 물건의 주권을 계속 갖는다."
법학자 아론 애런 퍼자너스키(Aaron Perzanowski)와 Jason Schultz(제이슨 슐츠)는 저서 <The End of Ownership> (2016)에서 이를 '소유의 종말'이라고 명명했다. 제품을 판매하면서도 소프트웨어, 부품, 매뉴얼, 도구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기업은 사실상 영구적 임대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는 계약의 문제이자 재산권의 문제이며 소비자 주권의 문제다.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한국만 멈춰 있다
미국에서는 2024년 기준 캘리포니아, 뉴욕, 미네소타, 콜로라도 등 여러 주가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 조항은 명확하다. 제조사는 부품, 도구, 매뉴얼을 동등한 조건으로 제공해야 하고 소프트웨어 락으로 수리를 방해할 수 없으며 위반 시 벌금 및 소비자 손해배상이 따른다.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24년 7월 "제조사의 수리 독점은 반독점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은 더 나아갔다. EU 에코디자인 규정(2023/1670)은 2025년 6월 20일부터 시행됐다. 제조사는 출시 후 최소 7년간 부품 공급 의무를 지며 수리 매뉴얼을 공개해야 하고 부품은 일반 도구로 교체 가능해야 하며 배터리는 소비자가 직접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는 2021년부터 수리 가능성 지수(Repairability Index)를 도입했다. 스마트폰, 노트북, TV 등에 10점 만점 수리 점수 표시를 의무화하고 분해 용이성, 부품 가용성, 가격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결과는 흥미롭다. 애플 아이폰 수리 점수는 평균 6.2점, 삼성 갤럭시는 평균 7.1점, 페어폰(Fairphone)은 9.3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2025년 12월 기준, 국회에 계류 중인 독립적 수리권 법안은 없다(2021년 강은미 의원 발의안은 폐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수리 독점 조사도 없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 검토도 없다. 유일한 법적 근거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제20조인데, 앞서 말했듯 '노력 의무'일 뿐이고 구체적 시행령도 부실하다.
유일한 움직임은 민간 영역이다. 2024년 9월 한국전자서비스협회는 성명을 냈다. "현행 부품 공급 독점 구조는 중소 수리업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반응은 없었다.
왜 한국은 멈춰 있는가?
첫째, 제조사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다. 삼성, LG는 단순 기업이 아니다. 삼성은 한국 GDP의 약 20%를 차지하고 LG는 주요 수출 기업으로 10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의 로비 파워는 입법부를 움직이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 혁신 저해 프레임이다. 제조사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과도한 수리 의무는 R&D 투자를 위축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와 EU에서 입증됐듯, 법제화가 혁신을 막지 않는다.
셋째, 소비자 운동의 부재다. 미국의 수리할 권리 Right to Repair 운동은 농민, 자동차 정비사, 전자제품 수리업자, 환경단체의 연대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개별 피해자는 많지만 조직화된 목소리가 없다.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입법부를 중심으로 수리할 권한을 챙겨야 한다. 언제까지나 공식이라는 이름의 독점 하에 비싼 수리비를 한국만 지급해야 할 것인가.
수리는 권리의 마지막 전선이다
2023년, 캘리포니아는 애플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2025년, 한국은 여전히 "정품 수리가 아니면 안 됩니다"가 통한다. 우리는 왜 2년 늦은 세계에 살고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리할 수 없다면 그 물건은 진짜 내 것이 아니다. 고칠 권리가 없는 소유는 빌린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이제 묻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산 물건을, 왜 내가 고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소비자 불만이 아니라, 소유의 의미를 되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외면하는 사회에서는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빌린 물건'을 '내 것인 줄 알고' 쓰게 될 것이다. 변화는 법이 만드는 게 아니다. 요구가 법을 만든다. 지금 시작하자. 공정위에 신고하고, 소비자원에 접수하고, 지갑으로 투표하자. 우리가 침묵하는 동안, 기업은 우리의 소유권을 한 뼘씩 더 가져간다.
수리는 권리의 마지막 전선이다. 여기서 밀리면, 우리는 영원히 '사용자'로만 남는다.
참고 자료
법률 및 정책
조사 및 보고서
소비자 권익 보호 기관
제조사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