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의 시작 – 왜 판사는 47억원 판결을 내렸나
2013년 쌍용차 47억 손배 판결은 노동자에게 빚을, 경찰과 기업에는 면죄부를 안겨주었다. 법의 지배 원칙은 무너졌고, 시민들은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응답했다. 이 작은 연대는 10년을 이어온 입법 운동으로 확장되어 2025년 8월 24일 노란봉투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판결 하나가 사회와 법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살펴본다.

2013년 11월 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민사1부(재판장 이인형)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46억 8천여만 원, 이른바 ‘47억 손해배상’을 선고했다[1].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 벌어진 공장 점거 파업이 목적과 수단에서 위법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회사가 청구한 100억 원의 60%와 경찰이 청구한 14억7천만 원 중 거의 전액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법정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고, 한국 사회의 법 감각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결국 ‘노란봉투 캠페인’, 나아가 ‘노란봉투법’이라는 입법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판결의 내용과 구조적 불균형
법원은 파업 주도 간부와 일부 조합원에게 거액의 배상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경찰과 국가의 책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경찰은 파업 진압 과정에서 과잉 진압 논란을 불렀지만, 오히려 법원은 경찰의 손해배상 청구를 대부분 인정했다. 회사 측 역시 대규모 정리해고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갈등을 촉발했음에도, 법원은 노동자의 책임만 강조했다[2].
이는 분쟁의 맥락을 무시한 일방적 판결이었다. 회사와 국가 권력의 과오를 외면하고, 노동자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결과였다.
이 판결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위해 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원칙에 비추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왜 법의 지배가 필요한지, 어떤 법이 지배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차례로 분석한다.
왜 법의 지배일까? (Why the rule of law?)
법의 지배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고 약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원칙이다. 그러나 쌍용차 판결은 이 기본 이유를 무너뜨렸다. 법원은 권력을 감시하기는커녕, 노동자에게만 혹독한 책임을 물으며 권력의 편에 섰다.
결국 이 판결은 “왜 법의 지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다. 권력 남용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 남용을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어떤 법의 지배일까? (What kind of law rules?)
법이 사회를 지배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법이 기준이 되는가”이다. 그 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동한 법은 권리를 억압하고 파업을 불법으로 낙인찍는 법이었다.
즉, 이번 판결에서 지배한 것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 법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는 협소한 법이었다. 법은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짓눌렀다.
법의 어떤 지배인가? (What kind of rule by law?)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다르다. 전자는 권력을 제약하기 위해 법이 존재하지만, 후자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법을 이용한다. 쌍용차 판결은 명백히 후자였다.
법원은 법의 이름을 빌려 노동자에게 채무를 지우고, 공권력과 기업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법은 정의의 저울이 아니라 권력의 무기로 전락했고, 결국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탈을 쓴 권력의 지배가 나타났다.
판결의 사회적 후폭풍
47억 원 판결은 노동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안겼다. 한 사람당 3천만 원 넘는 채무를 떠안는 상황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의 삶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회는 침묵하지 않았다. 2014년, 한 시민이 4만7천 원을 노란 봉투에 담아 <시사IN> 편집국에 보냈다. “10만 명이 모이면 47억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3]. 이 작은 실천은 전국적 캠페인으로 확산되었고, 수만 명이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참여했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법원이 외면한 균형을 시민이 나서서 회복하려는 집단적 행동이었다.
정치적 맥락과 입법 지연
노란봉투법은 2015년 처음 국회에 발의되었다. 그러나 재계와 보수 정치권의 강한 반발 속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다[4]. 특히 2023년과 2024년에는 두 차례나 국회를 통과했지만 내란수괴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다[5].
그럼에도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2025년, 새 정부 출범과 여론의 지지가 맞물리면서 국회는 더 이상 법안을 미룰 수 없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저항했지만[6], 결국 2025년 8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6명 중 183명 찬성, 3명 반대로 법안은 가결됐다[7].
노란봉투법의 의미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용자 개념이 원청까지 확대되어, 이제 하청업체 노동자도 원청과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보호받기 어려웠던 하청노동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강하려는 시도이다.
둘째,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혀 ‘경영 의사결정’과 같은 핵심 쟁점도 쟁의 사유에 포함시켰다. 구조조정, 공장 이전과 같은 기업 경영 행위도 정당한 파업 이유가 되며, 이는 기업의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인정한 변화다.
셋째, 손해배상 청구를 불법·폭력적 행위에 한정하고, 법원이 개인 노동자의 경제력과 책임 범위까지 고려하도록 했다. 과도한 손배소로 노동권이 위축되던 현실에 대한 제도적 제어장치이자 노동자의 기본권 회복을 위한 장치다.
항목 |
개정 전 |
개정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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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범위 |
노동계약 체결 당사자만 사용자로 인정 |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까지 사용자로 확대 |
합법 파업 범위 |
임금·복지 등 근로 조건 관련 사항에 한정 |
경영 의사결정 및 단협 위반까지 포함 |
손해배상 청구 기준 |
사실상 무제한 청구 가능 |
불법·폭력 행위로 한정, 개인 책임 고려하도록 감경 가능 |
표 1. 노란봉투법 개정 전후 비교
이는 47억 손배소 판결이 남긴 상처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었다. 늦었지만, 시민의 연대가 결국 법을 움직이게 했다.
한국 법원의 기울어진 저울, 이제는 끝내야
쌍용차 47억 판결은 한국 법원의 기울어진 저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법의 지배는 권력 남용을 막고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이번 판결은 권력을 견제하지 못했다. 법은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가 되어야 하지만, 이 판결에서 지배한 법은 권리를 억압하는 법이었다. 나아가 이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권력의 도구가 된 법에 의한 지배로 작동했다.
그럼에도 이 판결은 사회적 각성을 불러왔다.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한 판결이었지만, 시민들은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연대했고, 결국 2025년 8월 노란봉투법이라는 제도적 성취를 만들어냈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시민의 답은 분명하다. 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의 존엄을 지키는 울타리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법의 지배다.
출처
[1] 한겨레, “직장 내쫓겨 5년 떠돈 노동자들에게 ‘47억 물어내라’” (2013.11.29) –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613351.html
[2] 아름다운재단, 「노란봉투 띄운 ‘쌍용차 손배’ 판결, 법원은 무엇을 봤나」 – https://www.worklaw.co.kr/ja_data/intranet/contents/N202210_072%EB%B2%95%EB%A5%A0_%EB%85%B8%EB%9E%80%EB%B4%89%ED%88%AC_%EB%9D%84%EC%9A%B4_%EC%8C%8D%EC%9A%A9%EC%B0%A8_%EC%86%90%EB%B0%B0_%ED%8C%90%EA%B2%B0.pdf
[3] 오마이뉴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수십억 원 무게에 무기력” (2019.12.19) – http://www.sonjabgo.org/content/1450
[4] 다음뉴스, “노란봉투법, 10년 만에 국회 통과” (2025.08.24) – https://v.daum.net/v/20250824095117556
[5] 한겨레, “대통령 거부권에 좌절된 노란봉투법” (2024.08)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14906.html
[6] 한겨레, “노란봉투법 본회의 상정 앞두고 필리버스터” (2025.08.23)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14906.html
[7] 한겨레, “노란봉투법 183표로 가결” (2025.08.24)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148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