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의 정치경제학: 트럼프와 빅테크의 위험한 동거 #1
2025년 8월 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벌어진 장면은 미국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애플 CEO 팀 쿡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24K 금받침대가 달린 유리 원반을 선물로 건넸고, 불과 며칠 후 애플은 100% 반도체 관세에서 면제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9월 4일, 이번에는 33명의 빅테크 CEO들이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트럼프를 둘러싸고 앉아 "고IQ 그룹"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수천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24K 금받침대 위에 올린 민주주의의 가격표
1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는 트럼프에 맞서는 진보적 가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2025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들의 완전한 변절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기업 전략의 변화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부패의 시작이다.
1. 아부의 현장: C-SPAN이 생중계한 굴욕의 만찬
2025년 9월 4일 밤,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33명의 테크 리더들이 모인 자리는 미국 기업사에 치욕적인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애플의 팀 쿡,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오픈AI의 샘 올트먼까지 한자리에 모여 트럼프에게 찬사를 바쳤다.
아부 경연대회의 하이라이트들
각 CEO들의 발언은 마치 연습된 듯 일관된 패턴을 보였다:
팀 쿡(애플): "대통령께서 분위기를 조성해주셔서 미국에 6000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집중력과 리더십, 그리고 혁신에 대한 관심이 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샘 알트먼(오픈AI): "이렇게 기업 친화적이고 혁신 친화적인 대통령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상쾌한 변화입니다. 대통령의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창립자): "지금은 AI에서 정말 놀라운 변곡점입니다. 대통령의 행정부가 우리 기업들과 싸우는 대신 지원해주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의 발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트럼프 개인에 대한 찬양이다. 미국의 제도나 시장경제가 아니라 트럼프라는 개인이 모든 성공의 원인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다.
머스크 부재의 메시지
이 자리에는 일론 머스크가 없었다. 한때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DOGE(정부효율부)를 이끌었던 머스크는 초대받지 못했다. 5월 트럼프의 "Big Beautiful Bill"을 비판한 대가였다.
머스크는 X에 "초대받았지만 참석할 수 없다"고 올렸지만 실제로는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명확한 메시지였다. 아부하지 않으면 배제된다는.
그런데 이 메시지는 불과 2주 후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뒤바뀌었다.
2. 황금 원반과 관세 면제: 팀 쿡의 완벽한 거래
다시 8월 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팀 쿡이 트럼프에게 건넨 선물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다. 24K 금받침대 위에 올린 맞춤 제작 유리 원반이었다.
X의 한 사용자는 이를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CEO 중 한 명이 백악관에 걸어 들어가서, 생방송으로, 대통령에게 말 그대로 금덩어리를 르네상스 시대 뇌물처럼 건네고는 수십억 달러 가치의 관세 면제를 받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60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실체
쿡의 60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허구성이 드러난다. 애플이 발표한 '아메리칸 매뉴팩처링 프로그램'의 실제 내용은 미국 공급업체들과의 관계 확대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기존 파트너사들과의 계약 연장이나 확대였고 아이폰의 최종 조립은 여전히 중국과 인도에서 이뤄진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즉석에서 "팀 쿡은 꽤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관세 면제를 시사했다. 공식적으로는 미국 투자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쿡의 선물과 아부에 대한 보상이었다.
주가로 입증된 거래의 성공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애플 주가는 수요일 5%, 목요일 추가로 3%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쿡의 정치적 계산이 성공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행정부 관료들과 충성스러운 이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부패한 계획이 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4. 핫마이크가 폭로한 아부의 민낯
9월 4일 백악관 만찬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은 마크 저커버그의 핫마이크 발언이었다. 공식 발언에서는 "2028년까지 미국에 최소 6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그가, 기자들이 나간 후 트럼프에게 "죄송합니다,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대통령께서 어떤 숫자를 원하시는지 확실하지 않았거든요"라고 사과한 것이다.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폭로했다. 6000억 달러라는 투자 약속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듣고 싶어할 만한 숫자를 즉석에서 추정해 말한 것이었다. 실제로 메타의 2024년 자본지출은 약 400억 달러였고, 2025년 계획도 660억-720억 달러 수준이었다.
C-SPAN이 기록한 굴욕의 순간들
C-SPAN이 생중계한 이 만찬은 미국 기업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들이 한 정치인 앞에서 경쟁적으로 아부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것이다.
트럼프는 "이것은 확실히 고IQ 그룹이고, 나는 그들이 자랑스럽다"며 만족해했다. 하지만 정작 이 고IQ 경영자들은 즉석에서 투자 계획을 만들어내고, 대통령이 원하는 숫자를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 약속들의 허구성
각 기업이 발표한 투자 약속들을 면밀히 검토하면 대부분이 기존 계획의 재포장이거나 과장된 것임이 드러난다:
- 메타: 6000억 달러 (2028년까지) - 기존 AI 인프라 투자 계획의 확대 해석
- 애플: 6000억 달러 (4년간) - 기존 공급망 투자의 재브랜딩
- 구글: 2500억 달러 (2년간) - AI 및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의 포괄적 집계
- 마이크로소프트: 연간 800억 달러 - Azure 및 AI 투자의 기존 계획
문제는 이런 숫자들이 실제 계약서나 구체적 계획 없이 즉석에서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업계 분석가들은 이를 "정치적 쇼를 위한 숫자 놀음"이라고 비판했다.
5. 아부하지 않았을 때의 대가: 머스크의 몰락과 부활
일론 머스크의 몰락은 트럼프 정권에서 독립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2025년 5월, 머스크는 CBS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핵심 정책인 One Big Beautiful Bill을 정면 비판했다.
"거대한 지출 법안을 보고 실망했다. 이 법안은 예산 적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고 있으며, DOGE 팀이 해온 작업을 훼손한다"고 말한 머스크는 "법안은 크거나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둘 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보복과 머스크의 고립
트럼프의 반격은 신속하고 잔혹했다. 7월 1일 트럼프는 "일론은 역사상 누구보다 많은 보조금을 받았을 것이다. 보조금 없이는 아마 문을 닫고 고향인 남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또한 "DOGE가 머스크를 조사해서 연방정부가 큰 돈을 절약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머스크는 X에 "모든 것을 삭감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9월 백악관 테크 디너에서 머스크의 자리는 그의 경쟁자인 샘 올트먼에게 돌아갔다.
실리콘밸리의 분열과 공포
머스크의 배제는 실리콘밸리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머스크와 함께 정부에 들어갔던 데이비드 색스, 스리람 크리쉬난, 마이클 그라임스 등도 자신들의 지위가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충성도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6. 장례식장에서 피어난 화해: 찰리 커크의 마지막 선물
2025년 9월 21일, 애리조나 주 글렌데일의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찰리 커크의 추도식은 예상치 못한 정치적 반전을 가져왔다. 보수 운동가 커크가 9월 10일 유타 밸리 대학교에서 암살당한 지 11일 만에 열린 이 추도식에서 트럼프와 머스크가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95,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머스크는 트럼프가 앉아있는 특별석으로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대화를 나눴다. 이는 5월 DOGE 해임식 이후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만난 첫 순간이었다. 머스크는 곧바로 X에 둘의 대화 장면과 함께 "찰리를 위해(For Charlie)"라는 메시지를 올렸고, 백악관도 같은 사진을 공식 계정에 게시했다.
커크의 중재 역할이 만든 기적
이 화해는 우연이 아니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커크는 생전에 트럼프와 머스크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특히 머스크가 Big Beautiful Bill을 비판할 때도 커크는 머스크에게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며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 트럼프의 전체 어젠다에 해가 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커크는 7월 1일 자신의 라디오 쇼에서 "두 사람이 언젠가는 화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곳에서는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이들은 함께할 때 훨씬 강하다"고 예언했었다. 그의 죽음이 역설적으로 이 예언을 실현시킨 셈이다.
트럼프의 솔직한 고백
추도식에서 트럼프는 커크 부인 에리카의 용서 메시지를 듣고 이례적으로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적들을 미워하고 그들의 번영을 원하지 않는다"며 "죄송하다. 에리카, 미안하지만... 당신이 나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상대방을 견딜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적 정치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용서와 화해라는 기독교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실리를 우선시하는 그의 본성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화해의 한계와 계산
하지만 이 화해가 진정한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지는 의문이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일론이 와서 인사했다"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협력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머스크 역시 "찰리를 위해"라는 메시지로 화해의 명분을 커크에게 돌렸다. 이는 두 사람 모두 직접적인 굴복이나 사과 없이 체면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이었다. 커크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이용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