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고관세 전략, AI 패권 경쟁에서 부메랑이 될 것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구리·반도체 등 핵심 소재 비용을 급등시켜 미국 AI 인프라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관세 장벽이 공급망을 흔드는 사이 중국은 자국 AI 경쟁력을 강화하며 ‘딥시크’ 같은 저비용 모델로 시장을 파고든다. 보호주의가 자가당착적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이다.

트럼프의 고관세 전략, AI 패권 경쟁에서 부메랑이 될 것

관세와 AI, 언뜻 무관해 보이는 두 영역의 구조적 연결고리

관세와 인공지능(AI)은 언뜻 보기에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하나는 전통적인 무역 정책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21세기 첨단 기술의 정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은 복잡하고 밀접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추진하는 고관세 전략은 미국의 AI 생태계에 예상치 못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진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복잡한 하드웨어 인프라, 특히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원자재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비로소 실현된다. 구리, 희토류, 리튬 등의 핵심 원자재부터 반도체 제조 장비, 서버, 냉각 시설에 이르기까지 AI 인프라는 글로벌 공급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세 정책이 AI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광범위한 관세 부과는 이러한 공급망의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AI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트럼프식 고관세 전략의 실체와 AI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 타격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가 발표한 관세 정책의 규모와 범위는 충격적이다. 올해 4월 일부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145%까지 누적 (so-called “tariff stacking”) 관세가 적용됐고, 5월 제네바 합의로 추가분은 90일간 30%로 낮췄지만 의류·완구 등 여러 품목은 여전히 145%에 달하는 유효세율이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7월 11일에는 수입산 구리에 50% 관세(8월 1일 발효 예정)를 선언하며 시장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글로벌 공급망 연구기관 알타나(Altana)는 중국발 부품·자재에 부과된 관세만으로 미국 AI 데이터센터 건설 기업들이 해마다 약 13.6 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추정했다(2025년 기준)

특히 구리 관세의 파급효과는 심각하다.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1메가와트(MW)당 27톤의 구리가 필요하다. 구리는 반도체 전자 회로는 물론 데이터센터 배선과 송전선 등 AI 필수 인프라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핵심 소재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구리와 구리 합금의 절반이 수입산인 상황에서 50% 관세 부과는 AI 인프라 구축 비용을 즉시 급등시킬 수밖에 없다. 금융서비스업체 스톤엑스의 나탈리 스콧-그레이 수석 분석가는 “관세로 미국 구리 가격이 급등하면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과 확장에 드는 비용이 즉시 치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초 이후 COMEX 구리가격은 이미 40% 이상 올랐고, 관세가 현실화되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대형 기술기업들이 2025년 한 해에만 AI 컴퓨팅 기반시설에 3,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이러한 비용 증가는 투자 계획 전반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주도하는 5,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사업 ‘스타게이트’ 개발 관계자도 “일부 해외 공급업체가 사업 결정을 재고하면서 특정 데이터센터의 단일 부품 조달마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역효과의 현실화, 중국에게 기회를 선사하는 아이러니

트럼프의 고관세 전략이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급망의 우회 현상이다. 반 클라베렌 칠레 외무부 장관은 “새로운 구리 시장을 찾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세계 1위 구리 생산국인 칠레가 전체 구리 수출의 11%를 미국으로 보내던 것을 줄이고 다른 시장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멕시코 등 다른 구리 수출국들도 비슷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국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공급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기피하게 되면서 오히려 미국의 AI 인프라 구축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러한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이 개발한 AI 모델 ‘딥시크(DeepSeek)’는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도 미국과 유사한 성능을 제공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4월 25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인공지능 발전과 거버넌스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AI 분야에 대한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장벽을 오히려 자국 기술 자립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AI 경쟁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원 빅 뷰티풀 법안(OBBB)’ 같은 정책도 AI 발전에 변수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감세 규모가 4 조 달러에 달하는 동시에 일부 재생에너지 인센티브 축소안이 포함돼 있어, AI 인프라에 필수적인 청정전력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트럼프 전략, 결국 발목을 잡을 부메랑 될 것

트럼프의 고관세 전략은 결국 미국 자신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컨설팅업체 세미애널리시스의 스라반 쿤도잘라 분석가는 “관세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은 미국의 인공지능 주도권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기술은 본질적으로 글로벌 협력과 분업에 기반한 생태계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는 미국에서, 제조는 대만과 한국에서, 원자재는 칠레와 호주에서 공급받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AI 혁신의 토대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는 결국 혁신의 속도를 늦추고 비용을 증가시킬 뿐이다.

미국 워싱턴 소재 신미국안보센터의 제프리 거츠 선임연구원은 “이번 조사가 단순히 반도체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끝날지, 아니면 산업 생태계 전반을 고려한 더 균형 잡힌 정책으로 발전할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행보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균형 잡힌 접근을 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와 전체 전자 공급망을 철저히 검토할 것”이라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더욱 강경한 추가 조치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결국 트럼프의 고관세 전략은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지키려다가 오히려 그 우위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자가당착적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관세라는 20세기적 도구로 21세기 기술 패권을 다루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며, 그 대가는 미국 자신이 치르게 될 것이다. 글로벌 AI 경쟁에서 진정한 승자는 개방과 협력을 통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국가가 될 것이며, 폐쇄와 보호주의로 무장한 미국은 스스로 만든 장벽에 갇혀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