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 그는 누구인가
72년 동안 유지된 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는 법’으로 한국 사회의 표현 자유를 옥죄어왔다. 그 기원은 1907년 일본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식민 통치 시절 비판을 억압하던 법의 잔재로 남았다. 이제 시민과 정부가 폐지 논의를 본격화하며 진실을 범죄로 규정하던 시대를 끝내려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역사적 전환점이 다가왔다.
72년을 살아온 법조항을 만났다. 형법 제307조 제1항, 흔히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 부른다. 1953년 9월 18일생. 오늘 이 구시대의 유물 아니 괴물과 마주 앉았다. 그것은 묘한 자신감으로 빈정거렸다.
너는 누구인가
레이로그: 자기소개 부탁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이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람들은 나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 부른다. 내 존재 이유는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레이로그: 특이하다. 진실을 말해도 처벌한다는 것 아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잠시 침묵)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곤란하다. 나에게는 친구가 있다. 형법 제310조, "진실하고 공익적인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레이로그: 친구라고? (냉소) 그 친구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감옥 갔다. 누가 공익인지 판단하나? 법관? 검사? 권력자?
출생의 비밀
레이로그: 1953년생이라고 했다. 어디서 태어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될 때 태어났다.
레이로그: (서류를 꺼내며) 이상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당신은 1907년 일본 제국에서 태어났다. 독일 형법을 모델로 일본이 만들었고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 우리 땅에 강제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불편한 표정) ...
레이로그: 1953년 한국전쟁 와중에 시간도 인력도 없던 입법자들이 일본 형법을 '번역'했다. 제정이 아니라 복사였다. 당신은 식민지 통치를 위한 억압 도구로 설계됐다. 천황과 귀족을 비판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그건 과거 일이다. 나는 이제 다른 목적으로...
레이로그: 72년이 지났다. 1995년에 벌금액만 바꿨을 뿐 진실을 말하면 처벌한다는 식민지 시대의 DNA는 그대로다. 아이러니한 건 당신을 만든 일본에서는 이미 사문화됐다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인 비판은 거의 처벌 안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행패를 부리고 있다.
작동 원리는 무엇인가
레이로그: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공연성, 사실 적시, 명예훼손. 불특정 다수가 알 수 있는 상태에서 구체적 사실을 언급해 사회적 평가를 낮출 ‘위험’만 있으면 된다.
레이로그: '위험'만 있으면? 실제 피해가 없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그렇다. 나는 추상적 위험범이다.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위험할 가능성만 있으면 처벌한다는 말이다.
레이로그: (비웃음) 교통사고가 나지 않아도 운전만 하면 처벌하는 것과 같은 얘기인가? 그리고 여기가 진짜 웃긴 부분인데, 피고인이 스스로 "이건 진실이고 공익이었다"를 증명해야 한다고?
사실적시 명예훼손: 형법 제310조는 위법성조각사유이므로...
레이로그: 입증 책임 전환이다. 원래는 검사가 범죄자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피고인이 나는 무죄라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형사법의 기본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중세 마녀재판과 뭐가 다른가?
누구를 처벌했나
레이로그: 구체적 사례를 보자.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의 활동가, 양육비 미지급 부모 명단을 공개해서 900여 건의 문제를 해결했다. 1심은 무죄였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하지만 대법원은 유죄라고 했다.
레이로그: 그랬지. "공익보다 비방 목적이 크다"며 유죄 확정했다. 진실이었고 공익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활동가는 28번 고소당했다. 진실을 말한 대가가 28번의 법정 싸움이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하지만 법원 판단은...
레이로그: 미투 운동 피해자들은? 성폭력 사실을 용기 내어 말했다가 가해자로부터 역고소 당했다. 당신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SNS에 올린 노동자, 부정부패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이들 모두 당신의 피해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침묵)
세계가 보는 시선
레이로그: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2011년, 2015년, 2018년, 2023년 네 차례나 당신의 폐지를 권고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국제 기준이 절대적인 건...
레이로그: 미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법상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영국은 2010년 명예훼손죄를 아예 폐지했다. 독일과 일본은 진실이 입증되면 처벌 안 한다. 당신은 세계적 기준에서 봤을 때 시대착오적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이...
레이로그: 변명, 이라고 하고 싶지만 어디서 개소리냐.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인권이다. 문화 상대주의로 정당화할 수 없다.
철학적 파산: 존재 이유가 없다
레이로그: 로널드 드워킨은 "표현의 자유는 인간 존엄의 전제조건"이라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잘못된 의견조차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진리가 견고해진다"고 했다. 하물며 진실을 말하는 걸 왜 막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나는 명예를 보호한다.
레이로그: 그게 바로 허명(虛名)을 보호한다는 거다. 실제로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 양육비를 주지 않은 사람의 명예 말이다. 그건 명예가 아니라 위선의 가면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충분히 구제 가능한데 왜 형사처벌이라는 극약 처방을 고집하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예방 효과가...
레이로그: 예방? (목소리를 높이며) 당신은 진실 말하는 걸 예방하고 있다.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는 걸 예방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예방하고 있다. 당신은 권력자와 유명인을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의 무기가 됐다.
마지막 할 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나는... 나는 법이다. 국회가 폐지하지 않는 한, 나는 존재한다. 2021년 헌법재판소도 5:4로 합헌 결정했다.
레이로그: 4명이 위헌 의견 냈다는 건 무시하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진실한 사실의 표현까지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소수의견 말이다. 2025년 2월 국민청원이 5만명 동의 받아 법사위에 회부됐다. 변화의 물결이 시작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고개를 숙인다)
레이로그: 당신은 1907년 군국주의 일본 제국의 유산이다. 식민지 조선인의 입을 막기 위해 설계된 억압 도구였다. 72년 전 입법자들은 급해서, 시간이 없어서 당신을 베꼈다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지금은 2025년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급하지 않다. 시간도, 여유도, 능력도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
레이로그: 마지막 질문이다. 국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권리가 있는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대답 없음)
여전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형법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72년을 버텼지만 이제 그의 시간은 거의 다했다. 법은 정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은 정의를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권력자를 비판으로부터 보호하며 약자의 목소리를 억압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말할 자유를 지킬 것인가. 답은 명백하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폐지되어야 한다. 진실이 범죄가 되지 않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대한민국이다.
Q&A
Q1.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란 무엇인가?
A1. 형법 제307조 제1항, 진실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해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위험만 있으면 처벌하는 법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Q2. 이 법은 어디서 왔나?
A2. 1907년 일본 제국이 독일 형법을 모델로 제정 ->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 식민지 조선에 강제 -> 1953년 대한민국 형법 제정 시 한국전쟁 혼란 속에서 일본 형법을 '번역' 수준으로 복사. 72년간 본질은 그대로다. 식민지 통치를 위한 억압 도구로 설계된 법이 아직도 살아 있다.
Q3. 무엇이 문제인가?
A3. 우선 입증 책임 전환이다. 피고인이 "이건 진실이고 공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구조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에 위배된다.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이란 권력자나 유명인이 자신에 대한 비판과 진실 폭로를 막기 위해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승소가 목적이 아니라 소송 자체로 상대방에게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주어 입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러한 전략적 봉쇄소송의 강력한 무기로 악용되고 있다
허명(虛名)을 보호한다. 이 법은 실제로 부정부패를 저질렀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가짜 명예를 보호하는 도구로 악용된다. 진실이 밝혀져도 그들의 사회적 평가가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말한 사람이 처벌받는다. 이는 진정한 명예가 아니라 위선의 가면을 법으로 지키는 것이며, 정의와 투명성보다 외형적 체면을 우선시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반영한다.
국제 기준 위배이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1년, 2015년, 2018년, 2023년 네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사회는 진실한 사실의 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것을 민주주의 기본권 침해로 보고 있다.
약자 억압의 도구이다. 이 법은 권력자와 유명인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 왔다. 미투 운동의 피해자들은 성범죄 사실을 폭로했다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고, 기업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들은 징계와 함께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시민활동가들은 권력의 부정부패를 지적했다가 법정에 서야 했다. 진실을 말한 약자가 처벌받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Q4. 폐지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A4. 2025년 2월 19일,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이 국회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청원을 제출했고, 3월 3일 5만 명을 돌파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9월 9일 박주민 의원이 제22대 국회에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했고 10월 20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공식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11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49회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혐오표현 처벌 형법 개정과 함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하라고 직접 지시하며 9개월간의 시민청원이 행정부 최고 결정권자의 지시로 이어지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이 대통령은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을 명예훼손이라고 하는 것은 민사로 해결해야 할 것 같고 형사처벌 할 일이 아니다" 라며 "독일이나 해외 법례를 참고해서 시간 걸리지 않게 빨리 개정하면 좋겠다" 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법 개정 제안이 아니라, 진실 고발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한국 사법체계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혐오표현 처벌 강화와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동시 패키지'로 추진하라는 지시는, 허위정보는 강력히 처벌하되 진실한 표현은 보호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법체계에 각인시키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그러나 과제는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초 5:4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4인의 재판관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위헌 의견을 제시했고, 독일, 스위스, 일본은 진실 입증 시 처벌하지 않으며, 미국은 아예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법상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여러 차례 폐지를 권고한 만큼 국제적 정합성은 확보됐지만, 사이버렉카 등의 악의적 폭로에 대응할 법적 보호망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그리고 사생활 침해와 공익적 폭로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입법 과정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자를 보호하면서도 악의적 가해를 막는 균형, 이것이 이번 개정안이 통과해야 할 바늘구멍이다.
Q5. 왜 폐지되어야 하나?
A5. "국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권리가 없다. 민사 손해배상으로 충분히 구제 가능한데, 형사처벌은 과도하다. 이 법은 진실을 억압하고 권력자를 보호하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