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춘 사람들이 만드는 위험한 사회

화이트헤드가 <이성의 기능>에서 제시한 "노예적 순응(slavish conformity)" 개념을 통해 현대 파시즘과 극우 정치의 정신적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사막의 갈증에 비유된 맹목적 순응 상태가 어떻게 독재 정권의 토양이 되는지, 그리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근시안적 이기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비판적 사고의 포기가 인간을 기계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정신의 창조적 회복을 통한 민주주의 수호의 필요성을 철학적 통찰로 제시한다.

생각을 멈춘 사람들이 만드는 위험한 사회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이성의 기능(The Function of Reason)>에서 인간의 정신이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고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상태를 깊이 우려했다. 그가 '노예적 순응(slavish conformity)'이라고 명명한 정신 상태는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파시스트 정권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극우세력의 정신적 퇴화를 설명하는 가장 날카로운 철학적 도구다. "나라가 망해도 나만 먹고 살면 된다"는 근시안적 이기주의와 독재자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은, 화이트헤드가 경고했던 정신이 자신의 본질적 기능을 포기하고 단순한 도구로 전락하는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화이트헤드가 본 정신의 본질: 생각하고, 상상하고, 비판하는 힘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인간 정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현실을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단순히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둘째,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본다. 셋째, 기존 질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왜 이래야 하는가?"라고 묻는 용기를 갖는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정신 활동이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쉽게 말해, 우리는 혼자서는 제대로 생각할 수 없고, 다양한 관점과 만나야 비로소 진정한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노예적 순응: 정신이 스스로를 포기할 때

그런데 화이트헤드가 우려한 것은 어떤 사람들이 이 모든 능력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상태였다. 그는 <이성의 기능> 1장 48절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정신적 경험은 가장 낮은 형태로, 노예적 순응이라는 통로로 흘러들어간다. 그것은 그저 사실상 이미 존재하는 것을 향한, 또는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식욕일 뿐이다. 사막에서의 노예적 갈증은 참을 수 없는 건조함으로부터의 단순한 충동이다. 이 가장 낮은 형태의 노예적 순응은 모든 자연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정신성 그 자체라기보다는 정신성을 위한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성이다. 이 낮은 형태에서 그것은 어떤 어려움도 회피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도 않는다. 물리적 사실의 반복적 특성에 어떤 교란도 일으키지 않는다. 자연이 궁극적으로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팔도 뻗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효율적 인과관계의 단순한 행위자 중 하나로 전락한다."

이 구절은 인간 정신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멈추고, 그저 외부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를 정확히 짚어낸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정신 상태를 마치 '정신성을 위한 잠재력은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창조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는' 빈껍데기 같다고 본 것이다.

파시즘이 노리는 것: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만들기

파시스트 정권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 퇴화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이용한다. 파시즘의 핵심 전략은 복잡한 현실을 '우리 대 그들'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바꿔버리고, 강력한 지도자의 말에 의문 없이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비판적 사고능력은 체계적으로 억압되고, 다양한 의견과 대안은 '혼란을 일으키는 것' 또는 '배신'으로 낙인찍힌다.

파시즘은 개개인의 독립적인 생각과 창조적인 상상을 억누르고, 오직 집단 속에 묻혀 있을 때만 안전하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현대 극우파가 보여주는 획일성에 대한 강박과 차이에 대한 적대감은 단순한 보수적 성향을 넘어선다. 화이트헤드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이미 정신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단순한 반응 기계로 퇴화한 상태다.

사막의 갈증: 불안을 먹고 자라는 파시즘

화이트헤드의 '사막에서의 노예적 갈증' 비유는 현대 사회의 극우파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심리적 기제를 정확히 포착한다.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물을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지만, 그 행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유나 판단이 아니라 단순한 생존 욕구의 발현일 뿐이다. 이들은 비판적으로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단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

경제적 불안정, 문화적 소외감,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그 고통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동시에 단순한 적(이민자, 좌파, 여성, 소수자 등)을 만들어주는 정권에 맹목적으로 몰입한다. 불안에 시달리는 대중은 복잡한 현실 대신 단순한 해답을 원한다. "모든 문제는 저들 때문이다", "우리 지도자만 따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의 단순한 메시지에 빠져든다. 마치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이성적 판단 없이 물만 찾는 것처럼, 이들은 불안이라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독재 권력에 매달린다.

"나만 먹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

"나라가 망해도 나만 먹고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화이트헤드가 우려한 노예적 순응 상태의 가장 위험한 징후다. 이는 개인이 더 넓은 맥락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근시안적 이기주의는 단순한 생존본능을 넘어서, 자신과 타인, 현재와 미래,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복잡한 연결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자체의 상실을 의미한다.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진정한 정신은 항상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잘 살려면 남들도 어느 정도 잘 살아야 하고, 사회 전체가 건강해야 개인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기본 관점이다. 따라서 "나만 먹고 살면 된다"는 사고는 이러한 근본적 상호연결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정신이 자신의 본질적 특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다.

이는 사회적 연대의식, 공동체적 책임, 정의와 상식의 실현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 파시스트 정권이 원하는 '비판 없는 순응' 상태가 완성된다.

생각을 멈춘 사람들: 기계가 된 인간

화이트헤드는 노예적 순응 상태에 빠진 정신이 "효율적 인과관계의 단순한 행위자 중 하나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능동적인 경험의 주체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수동적 객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독재자의 명령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는 극우 추종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상태의 구현이다.

비판을 멈추고, 사고를 멈춘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구할 수도 없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손도 내밀 수 없다. 오직 주어진 명령을 기계적으로 반복 실행하는 부속품일 뿐이다. 파시스트 정권 아래 극우 추종자들은 더 이상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명령만 반복 실행하는 기계적 존재로 전락한다.

이러한 정신의 기계화는 결국 사회 전체의 퇴보를 불러온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가 사라진 사회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며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역사상 파시스트 정권들이 결국 몰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화이트헤드의 <이성의 기능>에서 제시된 '노예적 순응'의 개념을 현대에 적용해보면 파시즘에 끌려다니는 극우파의 상태는 정신이 자신의 본질적 기능을 포기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맹목적으로 따르며, 정신은 창의성과 이성을 잃고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 철학은 절망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신의 본질적 특성인 창의성과 비판적 사유능력은 완전히 소멸할 수 없으며,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맹목적 순응의 유혹을 거부하고,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며, 지도자와 체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다양성과 상상력을 억누르는 분위기에 맞서며, '나'가 아닌 '우리'를 상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다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체제의 소모품, 생각 없는 부속품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화이트헤드가 남긴 냉철한 경고이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우리 시대의 과제다.

핵심 정리: 화이트헤드 철학으로 본 파시즘의 문제점

화이트헤드의 노예적 순응 개념 파시즘/극우파 현실
기존 것에 대한 단순한 식욕 파시즘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대중
사막의 노예적 갈증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 욕망
새로운 길 개척 불능 창의적 사고와 대안 모색의 거부
반복적 성격에 교란 없음 비판 없는 수용, 변화에 대한 적대감
효율적 인과관계의 행위자로 전락 독립적 사고 없이 체제의 도구가 됨

참고문헌: Alfred North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Chapter 1, Section 48

Read more

중앙에 스레드(Threads) 로고가 보라색과 파란색 그라데이션으로 위치하고, 주변에는 '400M MAU', '692만 vs 757만', '다양한 연령대'라는 데이터 포인트가 황금색 선으로 연결된 인포그래픽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

2025년 Threads 분석: X를 넘어 새로운 강자로

2025년 스레드는 전 세계 MAU 4억 명, 모바일 DAU에서 X 추월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한국 시장에서는 더욱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692만 MAU로 X(757만)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밈 문화, 반말 소통, 직장인과 전문가 커뮤니티 활성화 등이 한국 시장의 독특한 성장 동력이다. 다양한 연령대가 골고루 활동하며, 퍼스널 브랜딩과 비즈니스 네트워킹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2025년 광고 출시로 본격적인 수익화에 돌입하며, 진정성 있는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소셜 미디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황혼 무렵 뉴스룸에서 제로 클릭 검색 화면을 바라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에드워드 호퍼 스타일의 우울하고 고독한 분위기로 전통 검색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

비즈니스 저널리즘 2026 #3: AI가 인용하는 AI-Citable 전략

2026년 2월, 검색의 룰이 바뀌고 있다. 구글 검색의 69%가 클릭 없이 끝난다. 마케팅 소프트웨어 기업 허브스팟은 2년 만에 방문자 75%를 잃었다. 비즈니스 미디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직원 21%를 내보냈다. 전 세계 언론사와 미디어의 구글 방문자는 1년 새 33% 사라졌다. 하지만 언제나 반작용은 있다. AI 검색으로 온 방문자의 구매 전환율은 일반 검색보다 23배 높고, 경제적 가치는 4.4배다.

고층 사무실 내부. 해 질 녘 통창 앞에 선, 리더의 품격을 고민하는 남자의 실루엣과 멀리 보이는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저택. 차가운 블루톤의 미니멀한 사무실과 대비되는 황금빛 노을 광선.

리더의 품격: 팀 쿡은 왜 멜라니아 영화를 보러 갔을까

프레티가 사망한 날, 한 거대 기술 기업의 수장은 멜라니아의 영화 상영회에 참석했다. 이것은 도덕성 논쟁이 아니다. 리더의 품격과 기업의 사회적 매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했고, 팀 쿡은 현실 정치 속에서 제국을 지킨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가로 증명된다. 사회적 비극 앞에서 리더의 '불참'은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다. 파티에 가지 않을 용기, 어쩌면 이것이 이 시대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인공지능과 우주 기술의 융합을 상징하는 에드워드 호퍼 풍의 일러스트레이션. 고독한 인물이 AI 데이터가 흐르는 화면을 마주하고 있으며, 창밖으로는 SpaceX의 로켓 발사가 목격된다. 기술적 변혁 속에서의 고독과 성찰을 담은 정교한 빛의 묘사

주간리포트: AI가 권력의 새로운 문법을 그린다

2026년 1월 마지막 주에서 2월 첫 주, AI 생태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머스크는 1.25조 달러 규모로 스페이스X와 xAI를 합병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4,400억 달러를 날렸다. CEO들은 AI ROI에 낙관적이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유발 하라리는 10년 내 AI의 법인격화를 예측했고 한국은 AI 기본법을 전면 시행했다. 구글은 제미나이 스마트 글래스를 예고했으며, 한국 직장인 61.5%는 이미 AI를 쓴다. 통합과 분리, 투자와 회수, 규제와 혁신의 모든 축이 팽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