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떻게 내란동조정당은 40% 넘게 득표했는가
내란 수괴 윤가의 탄핵과 내란 혐의 재판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 이후 치러진 제21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하며 민주주의는 회복의 기로에 섰다. 그러나 내란수괴 체제를 계승하려 했고 내란에 동조하며 반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41.15%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한국 사회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모순 위에 올라앉아 있다. 대통령이었던 인물이 탄핵되고 구속되었다가 판사와 검사의 장난질로 풀려나고, 여전히 내란 수괴로 재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을 여전히 영웅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정당이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선거 결과 이상의 정치적 시그널이다. 한국 정치의 성장에 위기가 왔고, 감정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오랫동안 누적되어 빚어진 일종의 시스템적 파국이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과 그 경과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은 '정치 신인'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출마했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의 근거가 되었고, 그 신뢰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후 2년간의 국정 운영은 허술하고 위험했다. 무속 논란, 인사 실패, 노동 정책 후퇴, 외교 실책 등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국정은 마치 매뉴얼 없이 운영되는 리얼리티쇼처럼 느껴졌다. 특히 검찰 출신 인사를 과도하게 중용하고, 공공기관의 인사 시스템을 무력화한 일련의 조치들은 제도 파괴로 이어졌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와 끝없는 싸움 끝에 결국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위한 결과 윤석열은 탄핵 소추되어 파면되었고 현재는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파면 이후에도 멈추지 않은 국민의힘
이쯤 되면 국민의힘이 윤석열 체제와 선을 긋고 보수의 재정비를 선언할 법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를 옹호하고 그의 체제를 계승하고자 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당내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기이한 장면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석열의 지령을 받은 듯 김문수 후보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해 놓고도, 한덕수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김문수를 배제하려는 시도와 친윤 핵심 그룹 중심의 밀실 정치가 반복되었으며 당내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결국 당원들의 강력한 반발과 여론의 압박에 밀려 김문수를 다시 대통령 후보로 인정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가 얼마나 손쉽게 무시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정당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왜, 어떻게 41.15%를 득표했는가
2025년 6월 3일 실시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내란당은 41.15%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출구조사 보다 약 2% 높은 결과다. 많은 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내란을 일으키고 독재 정권을 만드려고 한 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옹호하고 지지한 당에서 어떻게 40%가 넘는 득표율을 얻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는 집단 기억의 왜곡, 정보의 단절, 그리고 지지자의 감정적 피로와 분노가 뒤엉킨 결과물이다.
이 수치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정치 환경에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사람들은 정보를 기반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부터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정보 환경은 정파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알고리즘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여준다. 정치적 분노는 '팩트'보다 '감정'을 중심으로 증폭되고, 진영 논리는 상대 진영을 악마화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윤석열의 파면조차 그를 '희생자'로 만들고, 그의 정당을 '억눌린 대변자'로 부상시킨다. 이쯤 되면 정치의 논리는 붕괴되고, 남는 것은 오직 진영과 복수다.
공공 이성의 퇴락과 민주주의의 위기
이는 공공 이성(public reason)의 퇴락이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다름을 조율하고, 제도적 균형을 통해 공동체의 방향을 조율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합리적 대화가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설득'이 아닌 '분노'로 반응하고, 공론장은 소셜 미디어 댓글창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정치가 철학을 상실하고, 법은 권력의 도구로 환원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내용은 사라진다.
법적인 측면에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과 구속, 내란 혐의 기소는 모두 헌법 질서 수호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법이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속한 편'의 무기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윤석열에 대한 법적 판단을 공정한 절차의 산물로 받아들이기보다, 정치적 음모로 치부한다. 여기에 보수 언론과 유튜브 기반의 정보 채널이 그 인식을 강화시키며, 사회 전체를 일종의 정치적 증오 장벽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예컨대, 탄핵 사유나 재판 증거에 대한 합리적 논의는 실종되고, 특정 유튜브 클립 하나가 전체 여론을 좌우하는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40%대 득표의 정치문화적 함의는?
정치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파국은 그의 무능함 때문만이 아니라, 그런 리더를 선택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정치문화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를 대표하는 집단이 21대 대선에서 41.15%의 득표를 기록했다는 현실은, 한국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후퇴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민의힘은 이제라도 '윤석열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그를 옹호하는 것은 보수의 도덕성과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자해 행위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분노를 잘 조직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방향을 되찾은 것 같은데 왜 여전히 반대 세력은 반성하지 않는가? 감정의 사유화, 법의 정치화, 언론의 상업화가 뒤엉킨 지금의 정치에서 진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감정의 사유화는 공적인 사안에 대해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개인적 감정과 원한이 개입되도록 만들고, 법의 정치화는 사법 결정이 법리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되게 만든다. 언론의 상업화는 클릭 수와 광고 수익을 위해 자극적인 보도와 편향된 프레이밍을 양산하며, 결국 공공 담론의 질을 떨어뜨린다.
41.1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감정에 매몰되고 철학을 잃어버렸다는 경고음이다. 이 숫자는 시민사회가 진실보다 진영을 택하고, 책임보다 분노에 반응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정치가 길을 잃었을 때, 되묻고 성찰하는 시민의 질문만이 그 방향을 되찾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질문을 던질 마지막 기회 앞에 서 있다. 저들을 포용할 것인가, 여전히 배척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포용이 가능하겠는가 라는 의문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