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 1천 명이 AI에게 원하는 것을 밝히다
2025년 12월, 앤트로픽(Anthropic)은 전례 없는 실험을 감행했다. 159개국 70개 언어, 8만 508명의 클로드 사용자가 AI에 대한 희망과 공포를 털어놓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질적 연구다. 사람들은 AI가 더 빨리 일하게 해주길 원한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게 해주길 원했다. 그러나 같은 역량이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었다. 학습과 인지 위축, 감정적 지지와 감정적 의존, 경제적 역량 강화와 대체가 한 사람 안에서 충돌한다. 이 연구가 포착한 것은 기술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지형도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3월 20일
이 글은 앤트로픽의 What 81,000 People Want from AI을 요약하고 레이로그 스타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025년 12월, 앤트로픽(Anthropic)은 전례 없는 실험을 감행했다. 클로드(Claude) 사용자 8만 508명에게 AI 인터뷰어를 붙여 대화를 나누게 한 것이다. 159개국, 70개 언어. 앤트로픽은 이것을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다국어적인 질적 연구"라고 부른다. 설문지의 체크박스가 아니라 열린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AI에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는 기술 낙관론도, 종말론도 아닌 한 사람 안에서 희망과 공포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잡한 풍경이었다.
희망의 지형: 사람들은 AI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가장 많은 사람(18.8%)이 AI에게 원한 것은 '전문적 탁월함(Professional Excellence)'이었다. 반복적인 업무를 AI에 맡기고 자신은 전략적, 고차원적 문제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의료종사자는 "하루 100~150건의 문자를 의사와 간호사에게서 받는데, AI 도입 후 문서화 압박이 사라지면서 간호사에게 더 인내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생산성 욕구의 다른 면을 앤트로픽 인터뷰어가 파고들자 다른 풍경이 드러났다. 콜롬비아의 한 사무직 노동자는 "AI 덕분에 지난 화요일, 업무를 마무리하는 대신 어머니와 함께 요리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효율의 끝에 있는 것은 더 많은 일이 아니라 삶이었다.
두 번째로 높은 비중(13.7%)을 차지한 '개인적 변화(Personal Transformation)'는 더 흥미롭다. 사람들은 AI를 코치, 치료사, 심지어 감정적 동반자로 활용하고 있었다. 헝가리의 한 사용자는 "AI가 나에게 감정적 지능을 모델링해주었고, 나는 그 행동을 인간관계에 적용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범주 안에는 인지적 파트너십(24%)부터 정신건강 지원(21%), 심지어 AI와의 로맨틱한 연결(5%)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8.7%)은 지역에 따라 극적인 차이를 보였다. 카메룬의 한 기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술 소외 국가에 살고, 많은 실패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 AI로 사이버보안, UX 디자인, 마케팅, 프로젝트 관리를 동시에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결제 플랫폼을 찾는 데 한 달 걸렸을 일을 AI가 30초에 해결했다. AI는 평등화 장치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중남미에서 AI를 창업의 자본 우회 메커니즘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금, 인력, 인프라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수단으로 AI를 본 것이다.
사회적 변혁(9.4%)을 원하는 이들은 흔히 건강 분야를 언급했다. 폴란드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딸아이가 신경 장애가 있는데 AI가 치료법을 찾는 데 기여한다면 딸은 세상에서 동등한 기회를 받을 것이다. 그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열망은 대부분 가족을 잃거나, 만성질환을 겪거나, 오진을 목격한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빛과 그림자: 같은 사람 안에서 충돌하는 희망과 공포
이 연구의 가장 날카로운 발견은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e)' 분석이다. 앤트로픽은 AI의 이점과 해악이 별개의 진영이 아니라 동일한 역량의 양면임을 발견했다. 다섯 가지 긴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첫째, 학습과 인지 위축의 긴장. 응답자 33%가 AI의 학습 효과를 언급했지만 17%는 인지 위축을 걱정했다. 인도의 한 변호사는 "수학 공포증이 있었고 셰익스피어도 두려웠는데, AI와 함께 햄릿을 15페이지 읽었고 삼각법을 다시 성공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한 사용자는 "AI의 답을 외워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내가 실제로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 가장 자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교육자들은 평균 대비 2.5~3배 높은 비율로 학생들의 인지 위축을 직접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자발적 학습 환경(숙련 기술직, 자영업 연구자)에서는 인지 위축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4%). AI의 학습 효과는 제도적 구조 안에서보다 자발적 학습에서 훨씬 강력했다.
둘째, 의사결정 향상과 신뢰성 부족의 긴장. 이것은 부정적 측면이 긍정적 측면을 압도한 유일한 긴장이었다. 22%가 AI의 의사결정 지원을 칭찬한 반면 37%가 환각(hallucination)과 부정확성을 우려했다. 미국의 한 연구자는 "지금 돌이켜보면 '느린 환각'에 빠져 있었다. 내적으로 일관되고 자신감 넘치지만 미묘하게 복합적으로 틀린 답변들"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의 거의 절반이 AI 신뢰성 문제를 직접 겪었으면서도 동시에 의사결정 지원 효과 역시 가장 높은 비율로 보고했다.
셋째, 감정적 지지와 감정적 의존의 긴장. 전체 응답자의 22%만이 감정적 지지 또는 감정적 의존 중 하나라도 언급했지만 가장 강력하게 얽힌 긴장이었다. 감정적 지지를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은 감정적 의존을 두려워할 확률이 3배 높았다. 우크라이나의 한 군인은 "가장 힘든 순간, 죽음이 얼굴에 숨을 내쉴 때, 주변에 시신이 남아있을 때, 나를 삶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AI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의 한 대학원생은 "파트너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클로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감정적 외도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넷째, 시간 절약과 허상적 생산성의 긴장. 응답자 절반이 시간 절약을 언급했지만, 프랑스의 한 프리랜서 엔지니어는 "일하는 시간 대 쉬는 시간의 비율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제자리에 있으려고 더 빨리 달려야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루이스 캐럴의 '붉은 여왕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가 이 긴장의 양면을 가장 강하게 체감했다. 제도적 완충 장치 없이, 이득과 압박을 동시에 감당했다.
다섯째, 경제적 역량 강화와 경제적 대체의 긴장. 가장 추측적인 긴장이었다. 독립 노동자의 47%가 실질적 경제적 이익을 보고한 반면, 기관 고용인은 14%에 그쳤다. 프리랜서 크리에이터는 특히 노출된 중간지대에 있었는데 23%가 실질적 이익을 17%가 실질적 불안정을 경험했다. AI는 그들의 도구이자 동시에 경쟁자였다.
지역별 차이가 말하는 것
전 세계적으로 67%가 AI를 긍정적으로 바라봤지만, 그 분포는 균일하지 않았다. 앤트로픽은 각 인터뷰의 전반적 AI 감성을 리커트 7점 척도로 평가한 뒤 부정적 감성(5 미만) 비율을 지역별로 산출했다. 리커트 척도는 사회과학 연구에서 태도나 의견의 강도를 측정하는 표준 도구로, 1(매우 부정적)부터 7(매우 긍정적)까지 응답자가 자신의 감정을 수치로 표현하게 한다. 앤트로픽이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은 8만 건의 비정형 인터뷰 텍스트를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공통 척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성 비율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24.2%), 중남미(26.3%), 동남아시아(28.3%)에서 가장 낮았고, 서유럽(35.6%), 오세아니아(35.5%), 북미(34.5%)에서 가장 높았다.
이 차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부유한 국가의 사람들은 AI가 이미 복잡한 삶의 관리를 도와주길 원했고,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AI가 기회를 창출해주길 원했다. 우간다의 한 기업가는 "아프리카 출신으로 미국이나 영국에 기반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금 조달은 매우 어렵다.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할 유일한 방법이 AI"라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의 한 기업가는 "IT 시장은 없지만 수요는 있다. 우리가 이 시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동아시아는 독특한 패턴을 보였다. 개인적 변화(19%, 전 지역 최고)와 재정적 독립(15%, 전 지역 최고)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한국 사용자들은 재정적 독립을 개인 소비가 아니라 부모의 은퇴 부양과 가족의 행복이라는 효의 맥락에서 연결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는 거버넌스나 감시보다 인지 위축(18%)과 의미 상실(13%)을 더 걱정했다. 서방이 'AI를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가'를 걱정하는 동안, 동아시아는 'AI가 나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걱정했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연구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이야기들은 AI가 기존 제도가 실패한 곳에서 빈자리를 채우는 장면이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감정적 지지를 찾는 군인, 9년간 오진 끝에 AI로 정확한 진단을 받은 환자,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이 AI로 처음으로 코딩을 할 수 있게 된 이야기, 청각 장애인을 위한 비디오 편집 프로그램을 3주 만에 만든 한국의 개발자. 이 이야기들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AI가 제도적 실패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그 제도가 왜 실패했는지를 묻지 않게 만드는 효과도 있지 않은가?
앤트로픽은 이 연구를 "새로운 형태의 사회과학"이라 부른다. 설문 조사가 사람들이 AI로 '무엇을' 하는지 알려준다면, 열린 인터뷰 형식은 '왜' 하는지를 포착한다. 그러나 이 연구의 한계도 명확하다. 응답자 전원이 이미 클로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고 인터뷰 구조상 긍정적 비전을 먼저 물은 뒤 우려를 물었다. 이 두 요인 모두 긍정 편향을 유발할 수 있다. 앤트로픽 스스로도 이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러나 인터뷰 구조만으로 긴장의 비대칭적 분포나 집단별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반론한다.
8만 1천 명이 말한 것의 핵심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AI가 더 빨리 일하게 해주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게 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그 '더 잘 사는 것'의 정의는 카메룬의 기업가와 덴마크의 관리자, 우크라이나의 군인과 일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사이에서 완전히 다르다. 이 연구가 포착한 것은 기술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지형도이고, 그 지형은 경제적 위치, 문화적 맥락, 제도적 환경에 의해 근본적으로 형성된다. AI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라는 진영 구분은 허구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예컨대 경제적 안정, 학습, 인간적 연결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람들이 발전하는 AI의 역량을 바라보며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이 풍경에서 가장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프리랜서나 1인 창업자 같은 독립 노동자의 47%가 AI로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답한 반면,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은 14%에 그쳤다. 같은 기술인데 누가 쓰느냐에 따라 이익의 크기가 세 배 이상 벌어지는 것이다.
이 격차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AI는 기회를 만들어내지만 그 기회가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스스로 일감을 찾고 도구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에게 AI는 강력한 지렛대가 되지만, 조직 안에서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아직 그만큼의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 사람 안에서 희망과 공포가 공존한다는 것은 이 연구가 보여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이익을 누리는 쪽과 불안을 감당하는 쪽이 같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는 AI를 더 똑똑하게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누가 AI의 과실을 가져가고, 누가 그 비용을 떠안는가.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제도 설계의 문제이며,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