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모두의 수능 현수막
기본소득당의 수능 응원 현수막 한 줄이 던진 파장은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었다. “시험을 보아도, 보지 않아도”라는 문장은 능력주의 사회가 외면한 목소리를 비추며 대학 진학 외의 길을 선택한 청년들에게 사회적 인정을 요청하는 메시지였다. 옥외광고물법의 현실,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인정의 철학이 교차하는 이 한 줄은 한국 사회의 공적 가치와 평등의 의미를 다시 물으며 연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기본소득당 수능 응원 현수막 문장이 던진 질문
시험을 보아도, 보지 않아도 꿈꾸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2025년 11월 10일, 수능을 앞둔 거리에 등장한 기본소득당의 현수막 한 줄이 주목받고 있다. 이 문장의 낯선 울림은 표현의 신선함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성공을 공적으로 승인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한편 또 어떤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먼저, 우리는 이 인터뷰에 주목해야 한다.
옥외광고물법과 현수막 게시의 현실
이 특별한 현수막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된다. 바로 대학에 가지 않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을 담은 영화 <3학년 2학기>다. 영화를 연출한 이란희 감독은 유튜브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풍경에 의문을 던진다.
수능을 보지 않는 친구들은 응원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되는 것 같아요. 한 지인은 고3 때 공장에 실습을 나갔는데,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수능 이야기만 나와 너무 우울했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졸업하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응원 현수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의 이 말은 그저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학 진학만이 유일한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청년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에 대한 깊은 공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꿈 역시 동등하게 존중받고 응원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뭐,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현수막을 달면 되잖아. 그런데 거기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현수막은 아무나 달 수 없다. 관공서나 정치 관련 현수막이 우선이다. 정치인이나 극우파의 온갖 더러운 현수막은 달아도 특성화고 수험생을 위한 현수막은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감독이 이어 말한다.
단지 수능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현수막만 걸지 말고 3학년 2학기 이제 막 사회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을 응원하는 현수막도 걸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 현수막을 거는 게 비용도 많이 들지만 단속 당해서 다 찢기고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좀 달아주셔야 이게 좀 오래 걸려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도시 미관과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현수막 게시를 규제한다. 법 제3조는 옥외광고물의 표시방법과 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제4조는 허가 대상을 명시한다. 정당, 공공기관 등 특정 주체들은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는 반면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는 비용과 절차상 제약이 크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공공 공간 접근권의 문제를 제기한다.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말할 권리만이 아니라 그 표현을 전달할 수단에 대한 접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독일 헌법학자 한스 헤르만 클라인이 지적한 것철엄 기본권의 실질적 평등은 그것을 행사할 기회의 평등을 전제한다.
11월 거리에는 수능 대박, 합격 기원과 같은 메시지가 넘쳐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대학 진학을 주요한 성공 경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고등학교 졸업자 중 대학 진학률은 약 72%다. 이는 28%의 졸업자가 다른 경로를 선택한다는 의미다. 특성화고 학생들, 검정고시 응시자들, 취업이나 창업을 선택한 청년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공적 응원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능력주의 사회의 이중성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의 양면을 분석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보상한다는 점에서 공정해 보이지만 성공한 자에게는 자기 노력만의 결과라는 오만을, 실패한 자에게는 자기 책임이라는 굴욕을 동시에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능력주의의 상징적 장치다. 단일한 시험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믿음, 명문대 진학이 계층 이동의 중요한 통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수능을 보지 않는 선택은 때로 실패나 포기로 해석되곤 한다.
이란희 감독이 영화 <3학년 2학기>에서 담아낸 특성화고 학생의 경험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고3 때 공장에 실습을 나갔는데,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수능 이야기만 나와 너무 우울했다"는 증언은, 다른 경로를 선택한 청년들이 느끼는 상징적 소외를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이들을 인정하는 것
독일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인정(recognition)을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제시한다. 인정은 타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승인하고, 그의 선택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행위다.
"시험을 보아도, 보지 않아도"라는 문구는 조건부 승인이 아니다. 수능 응시 여부와 무관하게 청년 개개인의 선택과 꿈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호네트가 말한 사회적 인정의 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에서 사회적 기본재(primary goods)의 공정한 분배를 강조했다. 그러나 인정이나 존중과 같은 비물질적 가치 역시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다. 특정 삶의 방식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승인하는 사회구조는 다른 경로를 선택한 이들에게 상징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가치다원주의(value pluralism)는 인간 사회에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때로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학문적 성취, 기술적 숙련, 예술적 창조, 돌봄 실천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치있는 삶의 형태들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학력 중심의 단일한 성공 경로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직업과 삶의 형태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단일 서사는 현실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 기본소득당의 현수막은 이러한 다원성을 인정하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시민사회와 정치의 대화
이란희 감독의 문제 제기와 기본소득당의 응답은 시민사회와 정치 사이의 소통 사례를 보여준다. 한 예술가가 제기한 작은 질문에 정치 조직이 구체적 행동으로 응답한 것이다. 이것은 대의민주주의의 한 작동 방식이다. 시민의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로 전달되고, 정치가 이에 응답하는 과정. 물론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시적 경험이 공적 의제로 번역되는 하나의 경로를 보여준다.
기본소득 운동의 핵심 철학 중 하나는 무조건성(unconditionality)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이나 기여와 무관하게 모든 구성원에게 지급되는 소득을 의미한다. "보지 않아도"라는 표현에는 이러한 무조건성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조안 트론토(Joan Tronto)는 돌봄 윤리를 통해 의존성과 취약성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임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생애 어느 시점에서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무조건적 지지는 성취와 무관하게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상징적 인정의 의미와 실천적 과제
한 장의 현수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청년 고용 문제, 교육 불평등, 계층 이동의 어려움 등 구조적 과제들이 남아 있다. 현수막은 실질적 정책 변화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상징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누구를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수능 이야기만 나와 너무 우울했다"는 청년에게, "보지 않아도"라는 문구는 사회가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는 작은 신호가 될 수 있다.
다시 그 현수막으로 돌아가보자.
"시험을 보아도, 보지 않아도 꿈꾸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 한 줄 안에는 여러 층위의 의미가 있다. 법적으로는 공공 공간 접근의 불평등 문제를, 철학적으로는 단일한 성공 서사를 넘어선 다원적 가치 인정을, 사회적으로는 무조건적 지지와 연대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2025년 11월, 수능을 앞둔 거리에 걸린 이 현수막은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성공을 인정할 것인가? 누구의 꿈을 지지할 것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한 영화감독의 작은 바람, 그것에 응답한 정당의 실천, 그리고 그 현수막을 보는 청년들의 경험. 이 모든 것이 모여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간다. 거대한 제도 개혁이 아니더라도, 작은 인식의 전환들이 쌓여 사회는 변화한다.
이 현수막은 수능일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지 지속적인 변화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는 이 메시지를 필요로 했고 누군가는 그것에 응답했으며 우리는 그 과정을 기록하고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