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의 정치경제학: 트럼프와 빅테크의 위험한 동거 #2

빅테크 CEO들이 트럼프에게 굴종한 이유는 단순한 아부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관세 면제와 규제 완화, AI 패권 경쟁 속 정부 의존, ESG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보호비 구조 같은 정치-기업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민주주의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다양성과 독립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혁신 생태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이는 미국의 기술 패권마저 흔들리게 할 위험한 흐름이다.

백악관 국빈 만찬실에서 한 인물이 긴 테이블 끝에 앉아 있고, 공중에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홀로그래픽 숫자와 애플,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로고가 떠다니며 권력과 부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한다.

1부에서 이어집니다.

7. 빅테크는 아부하는가: 보호비 정치학의 메커니즘

빅테크 CEO들이 트럼프에게 아부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규제 완화다.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반독점 조사와 규제 강화에 시달렸던 이들에게 트럼프는 구세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FTC(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빅테크에 우호적인 앤드류 퍼거슨을 임명했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만찬에서 반독점 소송 판결에 대해 트럼프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는 사법부 판결에 대해 행정부 수반에게 감사하는 부적절한 행위였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관세 면제라는 생존 전략

두 번째는 관세 면제다.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145% 관세를 부과하고 반도체에 100% 관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는 빅테크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애플의 경우 2025년 2분기에만 관세로 8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6000억 달러 투자 약속과 황금 원반 선물은 이런 손실을 피하기 위한 보험료였던 셈이다. 트럼프도 "팀 쿡은 꽤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거래 성사를 공개적으로 확인해줬다.

AI 패권 경쟁에서의 정부 의존

세 번째는 AI 개발에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이다. 오픈AI는 오라클과 5년간 3000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파워 구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오픈AI의 연매출 130억 달러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이런 투자가 가능한 것은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 때문이다.

중국의 딥시크(DeepSeek) 충격 이후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 정부의 지원 없이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샘 올트먼이 트럼프를 "혁신 친화적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

ESG 피로감과 반정치적 올바름 정서

네 번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다양성 정책에 대한 피로감이다. 메타는 트럼프 집권 후 다양성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했고, 저커버그는 트럼프를 배드애스(badass)라고 표현하며 남성적 이미지를 어필했다.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백인 남성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다양성 정책이 역차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트럼프의 반엘리트 정서가 이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8. 민주주의와 산업에 드리운 그림자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중앙 계획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중앙 계획은 최소한 일관된 논리와 체계가 있다. 트럼프 체제는 오히려 개인 숭배 경제에 가깝다. 대통령 개인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자들은 혜택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배제되는 구조다.

이는 행정부를 트럼프의 사적 기계로 전락시킨다. 합리적 정책 과정이나 민주적 절차는 무시되고, 대통령의 개인적 호불호가 정책을 좌우한다. 팀 쿡의 황금 원반이 수십억 달러 가치의 관세 면제로 이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보호비 구조로 전락한 정치-기업 관계

현재의 트럼프-빅테크 관계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호비 구조(protection racket)와 유사하다. 정부가 기업을 위협한 후 대가를 받고 보호해주는 구조다.

트럼프는 관세와 규제로 위협하고 기업들은 투자 약속과 아부로 보호를 구매한다. 이는 정상적인 정부-기업 관계가 아니라 폭력조직의 운영 방식이다. 법치주의와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이 사라지고 개인적 관계와 로비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혁신 생태계의 붕괴 위험

이런 구조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 진정한 혁신은 다양성과 독립적 사고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재 실리콘밸리는 정치적 충성도가 기업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 다양성 정책 철회로 소수자 인재들이 빅테크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정치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연구자들이 학계나 해외로 이탈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기술 패권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신뢰의 붕괴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다.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정치인에게 아부하고 뇌물성 선물을 주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미 자본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빅테크 CEO들의 굴종적 행태는 이런 인식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능력주의나 자유 시장이라는 가치들이 설득력을 잃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힘을 얻게 된다.

9. AI 크립토 권력이 감시국가로 기울 위험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AI와 암호화폐 같은 미래 기술이 정치 권력에 종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픈AI의 샘 알트먼이 트럼프에게 "혁신 친화적 대통령"이라고 아부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립서비스가 아니다. AI 개발의 방향과 속도가 정치적 계산에 좌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AI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 중국과의 AI 경쟁을 명분으로 기업들에게 충성을 요구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배제한다. 이는 기술 발전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정치적 목적에 기술을 종속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감시 자본주의의 완성

더 무서운 것은 빅테크의 데이터 수집 능력과 정부의 감시 욕구가 결합될 가능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적대세력을 추적하기 위한 데이터를 확대해서 수집하고 있고 빅테크들은 정부 계약과 규제 완화를 위해 협력할 유인이 크다.

메타의 다양성 정책 철회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포기하고 정부의 보수적 가치관에 맞추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독립성 포기를 의미하며, 장기적으로는 시민사회 전체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다.

아부의 끝은 어디인가

빅테크 CEO들의 아부는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이다. 주가는 오르고, 관세는 면제받고, 규제는 완화된다. 하지만 이는 독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 정치적 충성을 조건으로 한 특혜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고,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아부 경쟁이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적 사고와 다양성이 사라지고, 정치적 계산이 기업 전략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혁신은 불가능하다. 인재들이 떠나고,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기술이 정치 권력에 종속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미국은 스스로 기술 패권을 포기하는 셈이다.

일론 머스크의 배제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여준다. 한때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던 그가 "Big Beautiful Bill"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고립된 것이다. 이는 다른 기업인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다: 아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는 이런 개인 숭배 체제가 결국 자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부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 비판적 사고의 부재는 치명적 오판으로 이어진다. 핫마이크가 폭로한 저커버그의 "준비 안 된" 6000억 달러 약속은 이 시스템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9월 21일 찰리 커크의 추도식에서 벌어진 극적 화해는 이 시스템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머스크의 "배제"조차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복권될 수 있는 일시적 처벌이었던 것이다. 커크라는 중재자의 죽음을 계기로 두 사람이 "찰리를 위해"라는 명분으로 화해한 것은 이들의 관계가 진정한 원칙이나 가치가 아닌 순전히 정치적 계산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다시 혁신의 리더가 되려면 빅테크는 단기적 이익을 위한 아부를 멈추고 최소한의 자율성과 양심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런 부패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24K 금받침대 위에 올린 민주주의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다. 그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