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지선 전 정치개혁 해야: 민주당은 이미 합의한 약속을 지켜라

2026년 3월 9일,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이 국회 앞 농성에 들어갔다. 지방선거를 86일 앞두고 정치개혁이 멈춰 선 것이 이유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다. 개혁진보4당은 2025년 11월부터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요구해 왔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연석회의에서 공조를 약속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미 합의한 정치개혁을 이행해야 한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 행위자만 교체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교대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이 정치개혁 약속을 지키라고 발언하고 있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이 정치개혁 약속을 지키라고 발언하고 있다.

2026년 3월 9일,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이 섰다. 내란본당처럼 따뜻한 국회 로텐더홀을 차지하지 않았고 본청 앞 야외로 나섰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을 비롯해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이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지방선거가 86일 남은 시점에 정치개혁은 멈춰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식 메시지에서 '정치개혁'이라는 네 글자를 지웠기 때문이다. 하루 전인 3월 8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을 완수하고, 1인1표제 당원주권 정당을 실현하여 6.3 지방선거를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검찰, 사법, 언론. 개혁의 목록은 길었지만, 정치개혁은 그 목록에 없었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여야의 갈등으로 읽을 것이다. 소수 정당이 거대 여당을 압박하는 익숙한 풍경이라고. 그러나 이번 농성은 본질이 다르다. 국회 앞 천막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 이미 함께 약속한 것을 이행하라는 촉구다. 그리고 그 약속의 궤적은 수개월에 걸쳐 문서로 남아 있다.

개혁진보4당 정치개혁 연석회의, 2025년 11월부터 쌓아온 약속의 기록

2025년 11월 20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개혁진보4당은 국회에서 정치개혁 연석회의를 출범하고 지방의회 중대선거구제, 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교섭단체 기준 정상화, 연합정치 제도화, 지역정당 설립 기준 완화라는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정치개혁이 모든 개혁의 토대라고 주장했다.

2주 뒤인 12월 3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경기도 정치개혁 연석회의 출범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의 방향을 더 선명하게 제시했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개혁과 미래를 두고 연대하고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당연합의 제도화를 강조했다. 양당 중심의 고착된 기득권 정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각 정당이 독자성을 유지한 채 정책적 공통성 위에서 협력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논리였다. 이후 4당이 왜 선거제도와 연합정치의 제도화를 한 묶음으로 요구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핵심 문장이다.

그리고 12월 12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직접 연석회의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정청래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다섯 정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내란 종식과 권력기관 개혁뿐 아니라, 교섭단체 요건 완화와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고 직접 밝혔다. 민주당은 그 약속의 무게를 잘 알고 있으며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정개특위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외부의 요구가 아니라 민주당 스스로의 공약이었다.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는 왜 사라졌나

2026년에 들어서면서 4당의 요구는 더 구체화되었다. 1월 27일, 개혁진보4당은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정치개혁 결의문을 채택했다. 핵심 내용은 네 가지였다. 첫째, 기초의원 3~5인 중대선거구제 도입. 둘째, 광역의회 비례대표 비율을 현행 약 10%에서 30%로 확대. 셋째, 지방의회 비례대표 봉쇄조항(현행 5%)의 대폭 인하 또는 폐지. 넷째, 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여기에 돈 공천 방지, 무투표 당선 방지, 교섭단체 기준 개선, 정당연합 제도화까지 포함되었다.

특히 봉쇄조항 문제는 시의적이었다. 이틀 뒤인 1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의석 배분의 3% 봉쇄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소수정당에 대한 이중 장벽이라는 지적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의 봉쇄조항이 위헌으로 무너졌는데 지방의회 선거의 5% 봉쇄조항만 유지되어야 할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개혁진보4당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헌재의 결정은 그 질문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2월 25일, 4당은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와 정치개혁 간담회를 가지고 최소요구안을 전달했다.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광역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비례대표 정수 30% 확대, 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이 네 가지가 4당이 내건 최소 기준이었다. 최소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더 양보하면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지금 국회 앞 농성은 느닷없이 튀어나온 항의가 아니다. 2025년 1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선언문 → 연석회의 → 결의문 → 최소요구안 전달이라는 단계적 경로를 밟아온 요구의 연장선이다.

민주당은 왜 정치개혁을 후순위로 두었나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정치개혁을 후순위로 두었을까. 민주당 입장에서는 경합하는 의제가 있다. 내란 수습, 검찰개혁 입법, 사법개혁, 언론개혁이 그것이다. 3월 8일 기자회견의 의제 설정은 이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검찰청 폐지, 사법부 독립, 언론 공정성,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과제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아예 거부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치개혁이 계속 뒷순위로 밀려났다는 것이고, 그 밀림이 의도적인지 관성적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밀려난 것은 밀려난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2026년 들어 "당원주권시대"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정청래 대표는 1인1표제 권리당원 투표를 추진하여 2월 4일 당헌 개정을 통과시켰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며,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가 더 정확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그런데 이 철학이 당 안에서만 멈춘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확대가 아니라 조직 관리의 개선에 불과하다. 당원 한 사람의 표가 더 정확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는 정당이, 국민 한 사람의 표가 더 정확히 의회 구성에 반영되도록 하자는 정치개혁에는 침묵하거나 미루고 있다. 이건 내 판단이지만, 당원주권과 국민주권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같은 논리적 연장선 위에 있다.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겠다는 정당이라면 그 정신은 국가 수준의 선거제도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당 안의 1인1표제를 성취해 놓고, 당 밖의 선거 구조는 양당 독과점 체제로 방치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무시한 적이 없는 당이다. 이미 함께 논의했고 공조를 언급했고, 책임 있게 참여하겠다고 말한 당이다. 정청래 대표가 12월 12일 연석회의에서 한 발언은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말은 "왜 아무것도 안 하느냐"가 아니라 "이미 말한 것을 이제는 이행하라"에 더 가깝다. 이것이 더 정확하고, 더 무겁고, 더 정치적인 요구다.

물론 글을 쓰는 나는 기본소득당 당원이다. 이 글이 개혁진보4당의 입장에 더 가까운 곳에서 쓰였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그러나 이 글의 핵심 논거는 내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민주당 스스로의 발언에 기초해 있다. 민주당이 연석회의에서 공조와 책임을 직접 언급한 것은 내가 만든 사실이 아니라, 보도로 확인되는 공적 기록이다. 나는 그 기록에 기대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2026 지방선거와 선거제도 개혁: 지방정치의 양당 독점 구조는 바뀔 수 있는가

지방정치가 왜 이 논의의 핵심인지를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방정치는 오래도록 거대 양당의 공천 구조에 갇혀 있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는 지방의원 483명, 기초단체장 6명에 달했다. 경쟁 없는 선거, 책임 없는 공천, 다양성이 축소된 지방의회. 이것이 현재 지방정치의 구조적 풍경이다.

개혁진보4당이 요구하는 3~5인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 무투표 당선 방지 장치는 바로 이 구조를 흔들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의 모든 조항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이 지방정치를 더 대표성 있고 더 경쟁적으로 만들자는 방향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런던대학교 SOAS 교수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란 인물이 있다. 기본소득 쪽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다. 그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20년 넘게 일했고, 2010년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공동창립자 겸 공동의장이 됐다. 기본소득을 학술적 논의에서 현실 정책 의제로 끌어올린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가이 스탠딩이 주장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스탠딩이 2011년 저서 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에서 체계화한 개념이다. precarious(불안정한) +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사회적 보호망 바깥에 놓인 새로운 계급을 가리킨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이주노동자 등이 여기 포함된다.

그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정치적 무력감이 제도적으로 배제당할 때 발생한다고 했다. 이 진단은 한국 지방정치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소수 정당의 후보가 구조적으로 당선될 수 없는 선거제도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은 무시된다. 기본소득이든 에너지 전환이든 돌봄 정책이든, 새로운 의제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야 정책 논의 자체가 가능해진다. 선거제도 개혁은 기본소득당에게만 유리한 요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기반을 넓히는 문제다.

정치개혁 없는 검찰개혁은 행위자만 바꾸는 것이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검찰개혁과 경합하는 의제가 아니라 보완하는 의제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양당 독과점 체제에서 검찰 권력을 견제할 다원적 정치 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검찰을 개혁해도 또 다른 권력이 같은 구조적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 행위자만 교체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교대다.

정치는 기억을 먹고 자란다. 광장에서 함께 외쳤던 말, 연석회의에서 함께 확인했던 문장, 공식 발언으로 남겨 둔 약속은 시간이 지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집권 이후에 더 선명하게 돌아온다.

지금 민주당 앞에 놓인 질문은 간단하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개혁진보4당이 부담스러운 존재인가, 아니면 함께 약속한 민주주의 개혁의 동반자인가. 만약 후자라면, 해야 할 일도 구체적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논의를 지방선거 전까지 실질적으로 가동하고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 확대 법안의 입법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일정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개혁진보4당을 탓할 필요가 없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국회 앞 천막은 적대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지연된 약속이 만든 풍경이다. 이제 국회에 정말 필요한 존재는 응답하는 여당이다. 정치개혁은 누군가의 체면이 아니라 시민의 표를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이미 만들어졌다. 이제는 지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