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청문회, 윤석열은 왜 빈 의자를 만들었나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열린다. 50여 명의 증인 중 불출석 의사를 밝힌 사람은 윤석열뿐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159명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법적 셈법으로 회피하고 있다. 거부권 행사부터 국정조사 무력화, 청문회 불출석까지 3년간의 일관된 패턴을 분석하고, 의석 1석의 소수정당이 이 거대 의제에서 행사하는 구조적 영향력의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50여 명의 증인이 채택되었다. 2026년 3월 12일부터 이틀간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말이다. 내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이상민도 나온다. 그런데 딱 한 놈이 안 나오겠다고 한다. 내란수괴 윤석열이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159명이 죽었다. 그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조사위원회가 증인으로 채택했는데 내란수괴는 출석을 거부한다. 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 내란 공판 일정을 청문회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줬는데도 여전히 재판 대응을 핑계로 삼고 있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불출석이 아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자의 회피가 말하는 것
내란수괴 윤가는 현재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고인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는 이유로 판결을 받았다. 아직 2심, 3심이 남아있다고 하나 그의 편을 끈질기게 들었던 1심 판사 지귀연 조차도 내란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니 다른 판결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거기에 법왜곡죄가 통과됐으니 판사들도 함부로 헛짓거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은 정당한 이유 없는 불출석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의 벌칙 조항을 두고 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이 벌칙이 추가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내란수괴의 불출석을 더욱 가혹하게 만든다. 법적 불이익이 없으니까 안 나간다? 그렇다면 이 불출석은 법적 계산이지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159명의 죽음 앞에서 법적으로 셈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윤석열의 불출석이 말하는 첫 번째 진실이다.
법학자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과 경제학자 티무르 쿠란(Timur Kuran)은 '가용성 폭포(availability cascade)'라는 개념을 공동으로 제시했다(1999). 이 개념은 원래 리스크를 인식하는 왜곡 메커니즘을 분석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메커니즘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특정 서사가 공론장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 서사의 접근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 개념이 한국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과정과 맞닿는 지점은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여당은 국정조사를 무력화하려 했으며 유가족의 목소리는 정치적 소음 속에서 반복적으로 묻힐 위기에 처했다. 쿠란과 선스타인이 분석한 것은 가용성이 폭포적으로 증가하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나 그 역방향도 존재한다. 특정 서사의 공론장 노출이 조직적으로 차단되면 가용성은 감소한다. 쉽게 말해 잊혀진다는 말이다. 진상규명이라는 서사를 사람들로부터 멀리하는 것, 이 짓을 윤정부가 3년간 해왔다. 그리고 지금 법원이 일정까지 조정해줬는데도 불출석을 고수하는 것은 구치소 안에서도 그 전략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한다. 159명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 앞에서 피고인의 재판 대응권은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재판 대응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그러나 이 경우 법원이 공판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청문회 출석의 길을 열어줬다. 재판 대응이라는 핑계가 성립할 물리적 조건 자체가 제거된 것이다. 그런데도 불출석한다면, 이것은 권리의 행사가 아니라 권리의 남용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해자의 진상규명 권리와 피고인의 방어권 사이에서, 내란수괴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편의만을 선택한 것이다. 159명의 유가족이 3년 넘게 싸워서 만들어낸 청문회에 빈 의자를 하나 보내면서 또다시 모욕을 날린 꼴이다.
2022년 10월부터 2026년 3월까지: 회피의 연대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했다. 그날 이후 진상규명의 길은 곧장 정치적 장벽에 부딪혔다. 윤가는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정조사는 55일 만에 종료되었다. 여당은 결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퇴장했으며, 핵심 증인인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의 소환에도 반대했다. 이러한 행보는 진상규명의 실질적 방해로 기능했다. 유가족과 기본소득당, 시민사회는 이 장벽을 넘기 위해 수년간 투쟁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패턴이 있다. 윤석열과 내란본당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의 주요 단계마다 회피하거나 방해하는 행보를 보였다. 거부권 행사, 국정조사 무력화, 그리고 지금의 청문회 불출석. 이것은 우연의 반복이 아니라 일관된 전략이다. 진상이 규명되면 드러날 것들 예컨대 참사 당시 112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경찰이 적절히 출동하지 않은 이유, 대통령실 인근에 경찰 인력이 집중 배치된 것, 그리고 이것이 이태원 현장의 인력 공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이 모든 것이 윤석열 개인의 의사결정 과정으로 수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159명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마저 회피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나란히 놓으면 한 인간의 권력관과 생명관이 드러난다. 내란은 권력의 적극적 탈취였고, 불출석은 책임의 소극적 회피다.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 구조가 있다: 제도적 절차 그것이 국회든, 청문회든, 정면으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끔찍하게 일관된 행동이다.
의석 1석이 빈 의자를 지적하는 방식
2026년 3월 11일, 기본소득당 노서영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윤석열의 불출석을 비판했다. 이 브리핑은 그 자체로 보면 한 소수정당 대변인의 일상적 논평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라는 긴 시간의 맥락 위에 놓으면 의석 1석의 소수정당이 거대 의제에서 행사하는 특유의 영향력 구조가 보인다.
용혜인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으로 활동했다. 기본소득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므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데 비교섭단체에 대한 배려를 받아 활동할 수 있었다. 2023년 6월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실의 거부권 협박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말고 입법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더불어민주당을 직접 압박했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조위가 출범한 뒤에도 기본소득당은 꾸준히 진상규명의 진척을 감시하고 촉구하는 역할을 지속해왔다.
의석 1석의 정당이 이 거대 의제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은 세 가지로 분해할 수 있다.
첫째는 의제 고정(agenda anchoring)이다. 대형 정당은 수많은 의제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므로 특정 의제에 대한 관심이 정국 상황에 따라 등락한다. 반면 기본소득당은 이태원 참사를 자당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일관되게 유지했다. 의석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의제 집중이 가능한 역설이 작동한다.
둘째는 도덕적 비대칭(moral asymmetry)이다. 기본소득당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할 때 도덕적 이미지 제고라는 간접적 정치적 이익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형 정당이 이 의제에서 기대하는 직접적 정치적 수익 예를 들어 정부 비판을 통한 지지율 반사이익, 정권 교체 시 정치적 자산화 등에 비하면 비대칭적으로 작다. 이태원 참사는 기본소득당의 핵심 정책(기본소득, 토지배당)과 직접 연결되지 않고 선거에서 의석을 늘려주는 의제도 아니다. 바로 이 비대칭성이 소수정당의 발언에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적 무게를 부여한다.
셋째는 당시 제1야당 압박(first opposition pressure)이다. 기본소득당의 발언은 여당을 직접 움직이기보다 더불어민주당이 진상규명에서 후퇴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기능을 한다. 소수정당은 여야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서 진상규명의 원칙을 지키라는 외부 감시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이 역할은 충분한가?
충분하지 않다. 솔직해져야 한다. 기본소득당의 서면브리핑을 내란수괴가 읽고 출석 결정을 바꿀 가능성은 제로다. 의석 1석의 정당이 할 수 있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로맨틱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소수정당의 발언이 작동하는 차원은 직접적 정책 변화가 아니라 담론 환경의 유지와 형성이다. 윤석열의 불출석을 단순한 불참이 아니라 유가족에 대한 모독으로 프레이밍하는 것, 진상규명의 도덕적 당위를 공론장에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것. 이것은 의석 수로 측정되지 않는 종류의 영향력이다.
빈 의자가 드러내는 구조
3월 12일, 청문회가 시작되면 50여 명의 증인이 자리에 앉을 때 한 자리가 비어 있을 것이다.
그 빈 의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이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할 수 있는 구조. 거부권으로 특별법을 막고 당시 여당을 동원해 국정조사를 무력화하고 법원이 일정까지 조정해줬는데도 불출석할 수 있는 구조. 이 구조는 윤석열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만들어내는 책임 회피의 제도적 공백, 검찰 권력의 자기 보호 메커니즘, 그리고 다수당이 진상규명보다 정치적 타협을 우선시할 수 있는 정당 시스템이 합작한 결과다.
내란수괴는 이 구조를 끝까지 이용하고 있다. 내란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159명의 죽음에 대한 청문회를 빈 의자로 답하는 것이 가능한 나라. 이것이 2026년 3월 대한민국의 현재 좌표다.
그 빈자리를 지적하는 1석의 소수정당이 있다. 그 지적이 윤석열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지적이 없다면 빈 의자는 그냥 빈 의자로 남는다. 누군가 그 빈자리의 의미를 공론장에 기록해야 한다. 159명의 죽음 앞에서 법적 셈법을 하고 있는 피고인의 이름을 진상규명의 역사에 정확하게 새겨 넣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소수정당의 의미를 의석 수로만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양적 차원만 보는 것이다. 다수당이 간과하거나 정치적으로 불리해서 후퇴할 수 있는 의제를 이해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소수정당이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질적 건강을 위한 기능이다. 159명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어떤 정치적 셈법으로도 멈춰서는 안 되는 절대적 과제다. 그 과제를 포기하지 않는 목소리는 그 크기와 관계없이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을 지키는 것이다.
내일 청문회장의 빈 의자. 그것은 내란수괴와 그 변호인들의 선택이자 이 시스템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그 빈자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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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제처: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 Chicago Unbound: Kuran & Sunstein, "Availability Cascades and Risk Regulation"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