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그늘과 한국 기업의 도덕적 실패
2026년 3월, 전국 주유소 경유가 리터당 1,910원을 넘었다. 공정위는 설탕 3사에 4,083억 원 과징금을 부과했고, 밀가루 7사 담합 심사에 돌입했다. 기름값 급등, 식품 담합, 층간소음 이 세 현상의 공통 구조는 하나다. 외부 충격이 시민에게 전가되는 경로를 시장 구조와 감시 실패가 결정한다는 것. 프리드먼의 자유시장 논리는 과점 생필품 시장에서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독일 설탕 카르텔 15년, 한국 설탕 담합 4년. 카르텔 적발은 어디서든 구조적으로 느리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3월 15일
2026년 3월 7일 오후 4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89.43원을 기록했다. 전일 같은 시점 대비 17.61원이 올랐다. 경유는 1,910.59원, 전일 대비 23.26원 상승했다. 서울에서는 이미 휘발유 1,941.71원, 경유 1,963.36원 선을 넘었다 (참고로 기사를 드록한 3월 15일은 정부가 기름값의 상한가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주유소들이 대부분 1,800원 위아래로 휘발유를 팔고 있다). 같은 시기, 공정거래위원회는 설탕 제조사 3곳에 4,08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밀가루 7개 사업자에 대한 담합 심사를 본격 개시했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서로 다른 시장에서 벌어졌지만, 하나의 공통 구조를 공유한다. 전쟁이든 원자재든 외부 충격이 가격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충격이 시민에게 얼마나 거칠게 전가되는지는 시장 구조와 국가의 감시 역량, 그리고 기업의 윤리 수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신자유주의가 언제나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공공재, 생필품, 주거, 에너지처럼 삶의 기반을 떠받치는 영역에서 국가가 손을 너무 떼면, 시장은 경쟁이 아니라 힘의 게임이 된다. 한국 공정거래법은 애초에 시장지배력 남용, 경제력 집중, 담합, 불공정거래를 막아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법의 출발점부터 "시장에 그냥 맡기면 된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1. 기름값 급등: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인가
직접 배경은 중동 전쟁과 공급망 충격이다. 2026년 3월 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이 확대되면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며 한때 94달러 선까지 치솟았고,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통항 차질과 걸프 지역 생산, 수출 불안이 국제 유가를 밀어 올렸다. 같은 주간 쿠웨이트의 감산과 불가항력 선언, ADNOC(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의 감산 조정도 잇따라 보도됐다.
문제는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국내 기름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상승이 곧 국내 가격 폭등의 전부는 아니다. 국내 판매가격은 국제제품가격, 환율, 세금, 유통마진, 재고 반영 시차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한국석유공사는 국제가격 연동 구조와 국내 가격 공개, 비교 시스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고, 정부도 과거 중동 위기 때 "변동성 확대에 편승한 가격 인상"을 현장점검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은 이미 체감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3일 만에 경유가 300원 올랐다", "내릴 때는 천천히, 올릴 때는 빛보다 빠르게"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아시아경제는 3월 5일 "휘발유가 200원 오를 때 경유는 350원 올랐다"고 보도했다. 3월 4일 하루 만에 전국 휘발유 가격이 54원 이상 급등한 것은 최근 10년 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더 오르기 전에 넣자"는 선구매 심리가 확산되면서 셀프 주유소에 차량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전쟁이 원인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전쟁이 만든 충격을 누가,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시민에게 전가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전부 전쟁 탓"이라는 해명도 "전부 기업 탐욕 탓"이라는 분노도 둘 다 현실에 미치지 못한다.
답의 윤곽은 이미 보인다. 외부 충격은 전쟁이 만들었고, 그 충격의 국내 전가 경로는 시장 구조와 감시 실패가 결정한다. 편승 인상이 있는지 없는지는 정부의 상시 추적과 데이터 공개 없이는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확인이 불가능한 시장은 언제나 강자에게 유리하다.
2. 설탕과 밀가루: 담합은 구조의 언어다
2026년 2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3개 제당사에 총 4,08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약 4년 2개월에 걸쳐 설탕 판매가격을 8차례 공동 조정한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관련매출액은 3조 2,884억 원, 담합 기간 중 설탕 가격은 최대 66.7%까지 올랐다.
이건 추정이 아니다. 공식 제재가 내려진 확정 사건이다.
일주일 뒤인 2월 19일, 공정위 사무처는 밀가루 7개 사업자에 대한 담합 심사보고서를 송부했고 이를 2월 20일 공표했다. 대선제분,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삼화제분, CJ제일제당, 한탑 등 국내 밀가루 B2B 시장 점유율 88%(2024년 기준)를 차지하는 기업들이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6년간 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혐의다. 관련매출액은 5조 8,000여억 원에 달한다.
다만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한다. 밀가루 사건은 심사보고서 송부 단계, 즉 공정위 심사관이 위법하다고 보고 정식 심판 절차에 넘긴 것이지, 최종 의결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밀가루 담합이 확정됐다"고 쓰면 과장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정위가 민생 식품 분야 담합 의혹을 중대 사안으로 보고 본격 심사에 돌입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개별 악당론보다 더 무서운 풍경이 보인다. 설탕은 이미 제재, 밀가루는 심사 중. 식품 대기업들이 생활필수재 영역에서 경쟁보다 공조의 유인을 구조적으로 강하게 가져왔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건 나쁜 CEO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 구조 자체가 담합을 합리적 선택으로 만들어 왔다는 뜻이다.
설탕은 사치품이 아니다. 거의 모든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에 스며드는 기초 원재료다. 밀가루 역시 마찬가지다. 빵, 라면, 과자, 외식의 원가 구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영역의 담합은 단순한 업계 내부 문제가 아니라 가계 물가 전체에 파급되는 생활정치의 문제다.
실제로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공정위의 설탕 과징금 부과와 밀가루 심사 착수 이후, CJ제일제당은 밀가루 전 제품 가격을 누적 약 10% 인하했고, 파리바게뜨는 빵, 케이크 11종 가격을 100~1,000원 내렸으며, 뚜레쥬르도 17종 공급가를 평균 8.2% 인하했다. 업계에서는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내린 적 없던 빵값이 꺾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엿, 전분당까지 도미노 인하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민의 체감은 간명하다. "정부가 지적하니까 빵값이 내렸다." 이 한 문장은 그 자체로, 이전까지 가격이 왜 그렇게 오래 올랐는지를 역으로 증명한다.
3. 층간소음: 예절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층간소음은 겉으로 이웃 갈등처럼 보인다. 그래서 흔히 "예절 교육"이나 "배려"의 문제로 축소된다. 물론 생활소음 행태, 가구 구조, 입주민 간 분쟁조정의 실패도 한 축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현상의 뿌리를 끝까지 추적하면 건설사의 비용 절감, 주택 품질 관리 실패, 건축기준의 역사적 한계, 정부의 뒤늦은 규제 강화가 겹친 구조 문제가 드러난다. 개인의 예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2022년 8월 바닥충격음 관리 방식을 사전인증제에서 사후확인제로 전환했다. 이 전환 자체가 기존 제도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2019년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사전인정제도로 검증된 191가구 중 184가구(96%)가 인정 등급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고, 114가구(60%)는 성능 최소 기준에도 미달했다.
2023년 12월 국토교통부는 기준 미달 시 보완시공을 의무화하고 준공 승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2025년 말 수립된 <제5차 소음·진동 관리 종합계획(2026~2030)>에서는 검사 표본을 전체 가구의 2%에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5% 이상으로 늘리는 방향을 제시했다. 즉 한 번에 바뀐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과정이다.
방향 자체는 맞다. 그러나 거꾸로 읽으면 이런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충분하지 않았다는 고백. 여기서 질문이 필요하다. 정말로 기업이 충분한 바닥구조, 차음 설계, 시공 품질을 확보하려 했다면 상당수 문제는 애초에 줄일 수 있지 않았는가?
답은 시장 구조에 있다. 완성품을 보지 못하나 상태에서 소비자는 입주 전에 구조 성능을 완전히 알기 어렵고 하자는 입주 후에야 드러난다. 이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시장에서 국가 규제가 약하면 기업은 품질보다 분양 속도와 원가 절감을 우선하기 쉽다. 한국 건설 시장은 국가 개입이 강한 분야임에도, 시공 품질 감시 체계만큼은 자율에 가깝게 운영되어 온 비대칭적 구조가 있었다. 정부가 택지개발과 분양 인허가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도 완공 후 품질 검증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층간소음은 "예민한 이웃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예방 가능한 피해를 비용 문제로 미뤘고, 정부가 사후 대응 중심으로 늦게 따라온 사례다.
4. 왜 이것을 신자유주의의 그늘이라 부르는가
신자유주의는 원래 "국가를 없애자"가 아니었다. 국가의 직접 개입을 줄이고 시장 경쟁과 민간의 효율을 앞세우자는 흐름이었다. 문제는 이 원리가 경쟁이 충분하지 않은 시장, 정보 비대칭이 큰 시장, 생존재가 걸린 시장, 기업이 사회적 비용을 외부화하기 쉬운 시장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때 생긴다. 그때 시장은 자유가 아니라 우위 사업자의 통제 공간이 된다.
여기서 하나 명확히 해둘 것이 있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인생의 책처럼 언급해 온 것은 다수의 보도를 통해 확인된다. 윤석열 시기의 경제, 정책 언어에서 "자유", "규제 완화", "시장 중심"이 강하게 호출된 것도 확인된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윤석열 정부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해석의 영역이다. 사실로 확인되는 것은 그가 프리드먼식 자유시장 언어를 선호했다는 점이지, 모든 정책 실패가 그 한 권에서 기계적으로 나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프리드먼은 실제로 무엇을 주장했는가. 공정하게 읽어야 한다. 프리드먼의 핵심 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정부 규제는 "시장 실패를 정부 실패로 대체"할 뿐이며, 규제 기관은 결국 규제 대상 산업에 포획(regulatory capture)된다. 둘째,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정부 규제보다 시장 경쟁과 기업 평판이 더 효과적이다. 셋째, 정부 기관은 실패해도 예산이 늘어나지만, 민간 기업은 실패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 논거 중 일부는 무시할 수 없다. 규제 포획은 실제로 발생하며 정부 개입의 비효율도 현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 글이 다루는 사례들이 프리드먼 논거의 한계를 드러낸다. 설탕 3개 사가 4년간, 밀가루 7개 사가 6년간 담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시장 경쟁과 기업 평판만으로는 소비자가 보호되지 않았다는 현실의 증거다. 기업이 실패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프리드먼의 전제도, 과점 구조의 생필품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설탕과 밀가루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할 자유는 사실상 없었다. 어디를 가도 같은 가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비판의 핵심은 유효하다.
이 글에서 "신자유주의의 그늘"이란 규제 자체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도 소비자기본법도 이미 존재한다. 설탕 담합 적발과 밀가루 심사보고서 송부도 오히려 국가 집행의 결과다. 문제는 그 집행이 왜 이렇게 늦었느냐다. 이 사례들은 규제 철학이 시장 자율에 기울수록 감시, 집행의 우선순위가 약해질 위험을 보여 준다. 설탕 담합은 4년 2개월, 밀가루 담합 혐의는 6년간 지속됐다. 법은 있었지만, 이빨을 드러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법은 있되 집행이 느리면 그 법은 기업에 시간벌기를, 시민에게는 무력감을 선사한다.
한국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독일 연방카르텔청(Bundeskartellamt)은 2014년 쥐트추커(Südzucker), 노르트추커(Nordzucker), 파이퍼&랑엔(Pfeifer & Langen) 3개 설탕 제조사에 총 2억 8,000만 유로(약 4,2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카르텔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9년까지 약 15년간 지속됐다. 한국 설탕 담합의 4년 2개월보다 훨씬 길다. EU 경쟁법은 카르텔에 대해 전세계 연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기본 부과율이 15%에서 출발한다. 카르텔 적발은 어느 나라에서든 구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담합은 비밀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상시 감시 체계의 밀도가 적발 속도를 결정한다. 한국의 문제는 "유독 나쁘다"가 아니라, 감시 체계의 밀도가 시장의 규모와 집중도에 비해 충분했느냐다.
설탕 4,083억 원 과징금이라는 사실, 밀가루 5조 8,000억 원 관련매출액이라는 사실, 사전인증 가구의 96%가 기준 미달이었다는 사실. 이것들은 "시장이 알아서 조절한다"는 수사로 무시될 수 없는 완고한 현실이다. 이 숫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감시, 적발의 시차가 길었고, 그 사이 담합의 유인은 지속됐다. 품질 검증이 느슨한 사이 소음은 구조 속에 고착됐다.
5. 제대로 된 기업가 정신은 무엇인가
"규제가 없을 때 최대한 벌어라"는 기업가 정신이 아니다. 국제 기준은 이미 그보다 훨씬 앞서 있다.
OECD의 책임경영행동(Responsible Business Conduct) 가이드는 기업이 인권, 노동, 환경, 소비자 이익, 부패 방지, 거버넌스까지 포함한 위험기반 실사(due diligence)를 수행하여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본다. ILO의 다국적기업 선언(MNE Declaration)은 기업이 양질의 노동과 책임 있는 사업 관행에 기여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UN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도 기업 책임의 최소 기준을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로 제시한다.
이 국제 기준들이 한국 현실에 어떤 의미인가. 번역하면 이렇다. 첫째, 합법성이다. 담합하지 않고, 시장지배력을 남용하지 않고, 불공정 약관과 정보 은폐를 하지 않는 것. 이건 도덕 이전에 법의 문제다. 둘째, 예방 책임이다. 문제가 터진 뒤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층간소음이면 설계 단계에서, 식품이면 공급망 단계에서, 가격이면 공시와 설명 단계에서 피해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OECD 가이드가 말하는 실사(due diligence)는 바로 이 예방의무에 가깝다. 셋째, 사회적 정당성이다. 생필품과 에너지처럼 생활 기반을 건드리는 기업은 "법만 안 어기면 된다" 수준으로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 소비자, 노동자, 지역사회, 거래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을 함께 보아야 한다.
6. 국가는 기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핵심은 가격 통제 국가가 아니라 규율 국가다.
담합과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한 상시 감시가 필요하다. 공정거래법은 원래 이를 위해 존재한다. 식품, 에너지, 플랫폼처럼 생활 영향이 큰 분야는 일회성 단속이 아니라 상시 모니터링 체계가 있어야 한다. 설탕 담합 제재와 밀가루 심사 착수는 시작이다.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편승 인상 감시와 가격 투명성 강화도 필수다. 오피넷(OPINET)처럼 가격 공개 시스템은 단순 정보 제공이 아니라 경쟁 촉진 장치다. 전쟁, 환율, 원가 변동과 무관한 과도한 인상이 있는지 상시 추적해야 한다.
사후 처벌보다 사전 품질 규제가 더 중요하다. 층간소음 분야에서 정부가 사후확인제, 표본 확대, 미달 시 보완시공 의무화를 도입한 것은 방향이 맞다. 더 나아가 분양 단계에서 성능 정보의 의무 공개와 하자, 소음에 대한 입증책임 완화까지 검토해야 실효성이 생긴다.
피해구제 제도의 문턱도 낮춰야 한다. 한국 소비자기본법은 소비자단체소송과 집단분쟁조정의 틀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구제가 빠르고 넓게 작동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생활 밀접형 담합과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집단적 구제 장치를 더 실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유류세 인하도 언급해야 한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여러 차례 연장해 왔다. 기획재정부는 2025년 12월 24일 2026년 2월 28일까지 연장을 발표했고, 이후 2026년 2월 12일 다시 4월 30일까지 추가 연장했다(통산 20번째 연장). 인하율은 휘발유 7%, 경유, LPG 부탄 10%가 유지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충격 완화에 도움이 되지만 구조개혁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세금만 깎고 시장 감시는 약하면 혜택이 온전히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반기업"이 아니라 반무책임이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시민을 약탈하는 구조로 흘러가지 않게 규칙을 재설계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도 팩트의 잣대는 공평해야 한다. 현 정부에 대한 진짜 평가 기준은 메시지가 아니라 집행력이다. 설탕 과징금은 이미 부과되었고 향후 3년간 연 2회 가격 변경 현황 서면 보고 의무도 부과되었지만 소비자가 직접 체감할 가격 재결정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밀가루 심사는 시작되었지만 최종 의결과 소비자 환원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민생 챙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과징금이 매겨지고, 감시 체계가 작동하고, 피해구제가 이루어지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구호로 채점하면 누구나 만점이다.
7. 시민은 무력하지 않다: 다만 흩어져 있으면 약하다
가격과 피해를 기록해야 한다. 기름값, 관리비, 식품가격, 하자, 소음 수준은 분노만으로는 남지 않는다. 오피넷 가격 비교, 영수증 보관, 날짜별 캡처, 하자 사진과 영상, 소음 측정 기록이 있어야 문제를 구조화할 수 있다. 국가가 공개하는 가격 정보와 시민 기록이 만나야 편승 인상이나 반복 하자를 입증할 수 있다.
신고와 분쟁조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담합이나 불공정거래가 의심되면 공정위 신고, 소비자 피해는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과 집단분쟁조정, 층간소음은 이웃사이센터와 관련 절차를 활용할 수 있다. 소비자기본법은 집단적 권익 침해에 대한 제도적 대응 틀을 이미 두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시민이 잘 모른다는 데 있다.
개별 소비자의 분노는 기업에 잘 닿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 품질, 하자 정보를 공동 데이터로 만들고 소비자단체, 입주자대표회의, 노조, 시민단체와 연결하면 기업은 평판, 법적, 매출 리스크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소비자 행동을 개인 불매가 아니라 집단 압박으로 바꿔야 한다.
상장기업이라면 소비자는 동시에 잠재적 투자자이기도 하다. 주주총회 질의, 의결권 위임, ESG 정보 요구, 이사회 책임 추궁은 생각보다 강한 수단이다. 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 역시 이사회 책임, 공시, 이해관계자 고려를 핵심으로 본다.
8. 시장은 도덕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깊은 오류는 시장을 도덕으로 착각한 데 있다. 시장은 도덕이 아니다. 시장은 규칙이다. 규칙이 약하면 강자가 이기고 정보가 숨겨지면 소비자가 지고 피해구제가 늦으면 시민이 체념한다.
설탕 4,083억 원 과징금은 하나의 완고한 사실이다. 밀가루 5조 8,000억 원 관련매출액도, 사전인증 가구 96% 기준 미달도, 전국 주유소 경유가 리터당 1,910원을 넘은 것도 완고한 사실이다. 이 사실들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될 수 없다. 그래서 질문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는 누구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가. 기업의 자유인가, 시민이 착취당하지 않을 자유인가.
공정거래법과 소비자기본법의 존재 이유를 보면 한국 법질서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국가는 기업을 없애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기업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답이 법전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답이 아니라 장식이다. 법의 문장이 현실의 문장이 되려면 감시가 작동해야 하고 제재가 신속해야 하고 피해구제가 실질적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법의 약속과 현실의 실행 사이의 간극 위에 서 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기록하는 시민, 연대하는 소비자, 질문하는 주주, 그리고 사실 앞에서 눈치 보지 않는 저널리즘이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시민이 서 있어야 구조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무릇 이런 외침은 영원한 법이다. 시민이여,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