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과 장애물: 심규선의 언어가 드러낸 역사관의 구조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 심규선은 피해자를 '허들'이라 불렀다. 이것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포착한 악의 평범성 - 사유를 멈춘 관료의 언어가 역사적 불의를 재생산하는 구조 - 가 2026년 한국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행안부의 해임 요구로 심규선은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를 장애물로 보는 제도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이 구조를 어떻게 해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차가운 금속 재질의 허들 오브젝트들이 어두운 공간에 기하학적으로 부유하고, 그 틈새로 따뜻한 호박빛 빛이 새어나오는 추상 이미지. 관료적 구조 속 억압된 인간 존재를 시각화
관료적 구조물 사이에 갇힌 빛: 피해자를 '허들'로 규정하는 언어는 제도적 언어가 되고, 제도적 언어는 인간을 지운다. ©RayLogue: AI-created image(Google Gemini)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3월 25일

2026년 3월 24일, 행정안전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공문을 보냈다. 심규선 이사장을 해임하라는 요구서였다. 배상금 공탁 과정에서 재단 명의 인감이 임의로 제작, 사용됐고, 심규선 이사장은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으며 일부 직원에게는 "문제 삼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감사 결과였다. 행안부는 이를 형법 제32조상 불법행위 방조(종범)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비위의 목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재임 34개월간 출장 신청 없이 공용 차량을 122차례 사용했고 대통령실 지시에 따라 담당 법무법인을 '세종'에서 '바른'으로 교체하도록 지시한 것도 임직원 행동강령 위반으로 판단됐다. 심 이사장은 감사 결과에 대해 "재심의 신청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이것을 공공기관 비위 사건으로 보도했다. 그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숫자와 날짜로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가 있다. 심규선이라는 관료가 강제동원 피해자를 무엇이라고 불렀는가, 그 언어다.

심규선이 피해자를 허들, 장애물이라고 부르다

심규선은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친 언론인이었다. 2022년 10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재단은 2014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행안부 산하 공익법인이다. 설립 목적은 명확했다. 피해자 지원과 추념.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재단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2018년 대법원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확정했음에도 일본 기업들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해법이라고 내놓았다. 가해자의 몫을 제3자가 대신 치른다는 논리였다.

민법 제469조(제삼자의 변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①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이해관계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 일부 피해자들은 거부했다. 재단은 법원에 공탁을 시도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인감이 위조됐고 묵인됐다.

이 모든 과정의 한복판에 심규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피해자들을 가리켜 '허들(hurdle)'이라고, '장애물'이라고 불렀다. 기본소득당 노서영 대변인은 2026년 3월 24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심규선 이사장은 부임 초기부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허들', '장애물'이라고 표현하며 가해자의 편에 선 역사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인물"이라고 밝혔다.

한나 아렌트의 소환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뒤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1963)>에서 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출했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명령을 이행한 관료였고, 임무에 충실한 행정 집행자였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사유의 부재였다. 자신이 집행하는 것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 자였다.

이 서술은 심규선이 처한 구조와 맞닿아 있다.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 아이히만도 재판에서 피해자를 관료적 언어로 지칭했지만, 심규선처럼 피해자를 스포츠 용어로 직접 호명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심규선은 그 언어를 남겼다.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관료의 내면 구조를 더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심규선이 사용한 허들이라는 단어는 스포츠 용어다. 선수가 넘어야 할 장애물. 그것이 인간, 그것도 자신의 피해를 법정에서 인정받은 생존자들에게 적용됐다. 피해자들은 더 이상 배상을 받아야 할 권리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정책 집행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장애물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의 문제다. 배상 절차를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로 인식하는 관료의 머릿속에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히는 순간 그는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 인식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인감을 위조하고, 공탁을 강행하고, 직원에게 "문제 삼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

그렇다면 심규선은 악인인가

그렇다면 심규선은 악인인가? 이 질문은 잘못 설정됐다. 아렌트가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역사적 불의의 재생산은 악인의 음모보다 훨씬 더 자주 평범한 관료의 충성심에서 발생한다. 심규선 이사장이 악인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진짜 문제를 개인화하는 오류다.

진짜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어떤 제도가, 어떤 명령 구조가, 어떤 인식 체계가 "강제동원 피해자를 허들로 보는 관료"를 재단 이사장 자리에 앉혔는가. 그리고 그 제도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가.

심규선이 해임되더라도, 그가 집행한 정책은 유지된다. 제도는 사람을 교체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적 비판과 열린 결말

이 사건을 "심규선 이사장의 비위"로만 처리하는 것은, 사건을 가장 좁은 해상도로 읽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한 사실이 아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인감 위조로 강제 소멸될 뻔했던 채권은 2018년 대법원이 확정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것은 법원이 선언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이걸 심규선이 허들이라고 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 나서 이렇게 썼다. 악은 극단적이지 않다. 악은 평범하다. 그리고 그 평범한 악은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새로운 얼굴을 찾아낸다. 심규선은 해임되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를 허들로 보는 관료적 역사관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제도가 그대로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 구조가 언제 바뀔까? 아직까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다.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