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피 조희대를 의심한다: 그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형사소송법 강의를 듣다가 90도2205 판례를 만났다. 심리미진. 중요한 사안에 법원이 충분히 씨름하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원칙이다. 그 정신을 2025년 5월 1일의 대법원에 물었다.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대선 33일 전에, 대법관 2명의 강한 반대를 누르고 2심 무죄를 뒤집은 그 판결에. 조희대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심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두운 공간에 한쪽이 빈 발광 저울, 균열이 방사되는 정지된 시계, 공백 서명란의 반투명 문서들이 수직으로 쌓인 추상 구성
기울어진 저울엔 이유가 있는 법이다. ©RayLogue: AI-created image(Google Gemini)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3월 30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4학년은 형사소송법 강의를 듣는다. 물론 학기와 학년 상관없이 선택해서 들을 수 있으니까 1학년도 들을 수 있기는 하다. 수업을 4학년에 배정한 건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데 이 형사소송법을 듣다 보면 속터지는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돼지강점기 3년 동안 이 자들이 벌인 모든 범죄가 형사소송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법이 있는데 왜 저들은 저렇게 질질 끌고 있는가. 분노에 떨며 클로드에게 따진다. 야, 법이 이렇다는데 쟤네들은 왜 벌 안받는지 조사해줘.

오늘도 그랬다. 대법원 90도2205. 공판기일의 증거조사 절차를 설명하는 슬라이드 끝에 붙어 있던 판례였다. 교수님은 '법원의 직권 증거조사'를 설명하면서 이 판결을 소환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피고인이 명시적으로 알리바이를 주장했는데 항소심이 아무 심리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고, 대법원은 그것을 심리미진(審理未盡)의 위법으로 판단했다.

여기서 나는 갑자기 조희대가 이재명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떠올랐다. 그래서 클로드에게 물었다. 대법원 자신이 심리를 부실하게 하면 어떻게 되는가.

클로드는 바로 제동을 걸었다. 심리미진은 사실심의 개념이고 대법원은 법률심이라, 90도2205를 대법원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뭐야, 이 자식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따졌다. 법리 적용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판결이 말하는 정신, 중요한 사안에 대해 법원이 충분히 씨름했어야 한다는 원칙이 2025년 5월 1일의 대법원에 적용됐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선고했다. 2심 무죄를 뒤집었다. 대선까지 33일이 남아 있었다.

설명하지 않은 법원이 만들어낸 것

사법부는 강제력이 아니라 정당성 위에 선다. 판사는 경찰이나 군대가 아니다. 판결을 집행할 물리력은 행정부에 속하고 사법부가 보유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람들이 그 판단을 옳다고 믿는 신뢰다. 그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판결의 결론보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 그 과정이 공정하게 설계되었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온다.

대법원의 초고속 판결 이후 정보공개청구 신청이 2만 1천 건 이상 쏟아졌다. 신청인들은 대법관들의 사건 기록 열람 일시와 범위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문법, 그러니까 공권력 행사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권리가 작동한 것이다.

설명하지 않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심의 형태로 계속 존재한다. 2만 1천 건의 정보공개청구가 그 증거다.

무엇을 설명했어야 하는가

조희대가 국민에게 답해야 했던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의 근거다. 4월 22일 오전, 이 후보 사건은 대법원 소부에 배당됐다. 그리고 약 2시간 만에 조희대가 직접 전원합의체 회부를 결정했다. 통상 소부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을 때 전원합의체로 가는데, 소부 심리를 거치지 않고 즉각 전원합의체로 직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언제,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 결정을 내렸나. 이 결정의 내부 절차는 대법원이 공개하지 않았다.

둘째, 9일이라는 기간이 충분했는가다. 대법관 2명이 강한 반대의견을 냈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판결문에 설득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지적을 남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 사건의 쟁점은 9일 만에 단칼에 결론 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현직 부장판사는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무죄로 유죄를 뒤집는 상황에서 반대하는 법관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는 게 원칙이다." 대법원 스스로의 원칙을 왜 이 사건에서 적용하지 않았는가.

셋째, 선고 시점과 대선 일정의 관계다. 대법원은 대선 33일 전에 선고했다. 그리고 파기환송심 일정까지 초고속으로 잡혔다. 의도가 없었다면 설명이 가능하다. 의도가 없었는데 설명하지 않으면, 의도가 있었다는 추정을 반박할 방법이 없다.

법적 의무인가, 도의적 의무인가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대법원장에게 법적으로 설명 의무가 있는가? 설명하지 않는 것이 위법인가?

헌법 제27조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법원조직법 제57조는 재판의 공개 원칙을 명시한다. 그러나 대법원장이 특정 사건의 심리 과정을 공개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상고심의 심리 기간 하한을 정한 조항이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순수하게 도의적 의무인가.

그렇지 않다.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은 법에 앞서는 원리다.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사법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한 방식에 대해 설명할 의무는 민주주의의 시스템적 요청이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것과 의무가 없다는 것은 다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제도의 설계 문제다. 대법원의 심리 과정을 통제할 외부 기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속도를 강제할 규정도, 설명을 강제할 절차도 없다.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사법부의 자기 규율이어야 한다. 조희대는 그 자기 규율을 행사하지 않았다.

법원이 설명을 거부할 때 민주주의에 남는 것

이것은 조희대 개인의 문제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단 조희대는 정치중립이라는 공무원의 의무를 저버렸다. 내란 당시에 그가 보인 행동은 기괴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아무런 해명이 없었고 정권이 바뀌자 자기는 내란에 반대했다는 헛소리를 했다.

한국 사법부가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방식도 문제다. 최종심 법원은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외부 강제 없이 존재한다. 그 빈 공간은 사법부의 자기 정당화 능력으로 채워진다. 자기 정당화가 작동할 때 법원은 신뢰를 얻는다. 작동하지 않을 때, 법원은 권위에 의존한다. 권위와 정당성은 다르다. 권위는 강제하고, 정당성은 납득시킨다. 조희대의 대법원은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치열한 토론을 거쳐 신속하고 충실하게 심리했다"는 선언은 납득의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권위의 주장이다.

2만 1천 건의 정보공개청구는 그 권위의 주장이 납득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원이 설명을 거부할 때 민주주의에 남는 것은 하나다. 의심. 그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