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인가, 구걸인가: 트럼프의 나토 탈퇴 위협이 드러낸 것

트럼프가 나토 탈퇴를 꺼내든 건 협박인가, 구걸인가. 2026년 4월, 미국은 이란과 전쟁 중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닫혀 있다. 유럽은 영공을 막고 무기 수송을 거부했다. 그러나 유럽이 거부한 것은 나토가 아니라 이 전쟁에 대한 공동 책임이다. 나토 조약 제5조의 법문은 명확하고, 법철학자 하트의 구분은 지금도 유효하다. 신뢰라는 집단재가 소진될 때 군사력은 억지력을 잃는다. 트럼프는 또다시 TACO 짓을 하는 중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균열 빛을 품은 흑요석 기둥과 와이어에 매달린 역사다리꼴 철 구조물 사이를 부식된 사슬이 공중에서 연결하는 추상 구성
두 구조물은 서로를 비추지만, 사슬은 가운데서 먼저 끊긴다. ©RayLogue: AI-created image(Google Gemini)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2일

2026년 4월 1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나토(NATO) 탈퇴를 "재고 이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WSJ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국무장관을 포함한 참모들과의 비공개 대화에서 동맹국이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재개방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나토 탈퇴 또는 미국의 참여 약화를 논의했다. 공개 발언과 사적 논의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 다들 잘 아는 것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은 2026년 2월 28일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이란은 즉각 세계 원유·가스 수출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실질적으로 봉쇄했다. 트럼프는 유럽 동맹국에 해협 재개방을 위한 군사 협조를 요청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이 모두 거부했다. 에너지 가격은 일부 지역에서 최대 60%까지 치솟았고, 이 글을 쓰는 시점 WSJ 시장 데이터 기준으로 금은 트로이온스당 4,772달러(+1.94%), 원유 선물은 배럴당 99달러(-2.41%)에 거래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가 뚜렷하다.

법이 막지 못하는 것

2023년 12월, 미국 의회는 2024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섹션 1250A를 통과시키고 바이든이 서명했다. 해당 조항은 대통령이 상원 3분의 2의 동의 또는 의회 공동 법안 없이 나토 조약을 탈퇴, 종료, 유보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이 법안을 공동 발의한 상원의원 중 한 명이 지금의 루비오 국무장관이다. 의원 시절 방어막을 세운 그가, 장관이 된 지금은 같은 방어막을 우회하는 쪽에 서 있다.

법의 문언은 명확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나는 의회가 필요 없다"고 발언했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존 툰(John Thune)은 "나토 탈퇴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법의 집행은 정치의 영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은 공식 탈퇴보다 훨씬 다양하다. 예산 삭감, 군사 약속 축소, 기능 형해화. 법적 탈퇴 없이도 나토를 무력화하는 경로는 열려 있다.

법철학자 하트(H.L.A. Hart)는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에서 규칙을 따르는 것과 규칙을 '내면화'하는 것을 구분했다. 이 구분은 지금 미국 정치 지형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규칙을 외부의 강제로만 인식하는 주체는 그 강제가 약해지는 순간 이탈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토 조약을 국가 이익의 계산 결과로 본다. 내면화된 의무가 아니라 외부 강제로 인식하는 순간, 법 조항은 방파제가 아니라 장애물이 된다.

유럽이 거부한 것, 그리고 거부하지 않은 것

구체적 사건을 보자. 스페인은 이란 전쟁과 관련된 미군기의 영공 통과를 전면 차단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불법적이고 무모하다"고 공개 규정했다(Military.com). 프랑스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미국 군수 물자 수송기의 영공 통과를 거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는 이 군사 공세에 사전 협의도 받지 못했고,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Al Jazeera).

독일의 메르츠(Friedrich Merz) 총리는 트럼프와 전화 통화에서 호르무즈 개방 지원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했다면, 언론에 떠들기 전에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WSJ) 외교적 발언치고 이례적으로 직접적이다. 트럼프와 관계를 자랑해온 인물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유럽의 인내가 어디까지 닳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트럼프의 논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유럽의 거부를 '나토 동맹의 균열'로 읽는다. 그러나 유럽이 거부한 것은 동맹이 아니라 이 전쟁에 대한 공동 책임이다.

나토는 방어 동맹인가, 편의 동맹인가

트럼프는 "우리는 늘 거기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이란 전쟁이 나토 조약의 적용 범위 안에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나토 조약 제5조(Article V)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 방어 원칙을 담고 있다. 이 조항이 실제로 발동된 것은 단 한 차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지지하기 위해서였다. 나토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프랑스 육군 주니어 장관 뤼포(Alice Rufo)는 "나토는 유럽-대서양 지역 안보를 위한 군사 동맹이다. 국제법에 따르지 않는 호르무즈 해협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CBS News). 이것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나토 헌장의 법문 해석이다.

나토의 의무는 회원국 영토에 대한 방어이지 회원국이 사전 협의 없이 시작한 공격 전쟁에 대한 자동 지지가 아니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은 집단 방어가 아니라 집단 공격에 대한 연대다. 그리고 그것은 나토의 설계 목적 밖에 있다. 협박처럼 들리는 이 위협이 실제로는 구걸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라는 집단재가 소진될 때

알렉서스 그린케위치(Alexus Grynkewich) 미 유럽사령관 겸 나토 최고연합군사령관은 2026년 3월 12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유럽의 미군 기지 네트워크가 미군의 "전 세계 전력 투사"에 필수적이라고 증언했다(Breaking Defense). 이란 작전 자체가 유럽 기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나토 탈퇴 위협은 군사적으로도 자기 파괴적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치가 아니라 신뢰다. WSJ가 인용한 이반 크라스테프(Ivan Krastev) 빈 인문과학연구소 펠로우의 발언이 이 지점을 압축한다. "나토는 종교와 같다. 작동한다고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지금 대서양 양안의 모든 이가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 서술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나토의 억지력은 군사력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동맹이 위협을 받으면 하나로 서리라는 상대방의 믿음 위에 서 있다. 그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군사력이 아무리 강대해도 억지는 작동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나토 탈퇴 언급은 그 믿음을 미국이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다. 단기적으로 유럽을 압박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나토라는 집단재(collective good)를 소진하고 있다. 재건에 수십 년이 걸리고 파괴에는 며칠이 충분한 종류의 자산이다.

트럼프가 드러낸 것, 트럼프가 만들지 않은 것

이 균열을 트럼프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정확한 진단이다. 트럼프는 나토가 오랫동안 봉합해온 구조적 모순을 가시화했을 뿐이다. 냉전이 끝난 뒤 나토는 방어 동맹에서 가치 동맹으로, 다시 미국 주도 국제 질서의 집행 기구로 역할을 확장했다. 회원국들은 그 확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했지만 확장의 범위와 비용 부담에 대해 명시적 합의를 이룬 적이 없다. 트럼프는 그 미합의의 영역을 파고든다.

이 구조적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트럼프 이후의 미국 대통령도 같은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나토의 위기는 트럼프라는 변수의 위기가 아니라 미국 패권의 구조적 재편이라는 상수의 위기다.

팩트는 명확하다. 동맹은 균열되었다. 호르무즈는 닫혀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나토를 인질로 잡아 협박하고 있다. 유럽의 영공과 기지 없이는 이 전쟁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박과 구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