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네타냐후: 국제법은 이들을 전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엔 안보리 수권도 의회 승인도 없이 이란을 공격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고, 국제법 전문가들은 침략 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오늘도 권좌에 있다. ICC가 이미 네타냐후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는데도. 법이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강대국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인가.

햇볕이 내리쬐는 텅 빈 주차장 한복판에 놓인 판사석. 좌석 위에는 빨간 라바콘 하나. 배경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법정은 존재한다. 다만 아무도 오지 않는 주차장 한복판에. 국제법 집행 체계의 현실을 묻는다면, 이 이미지가 답이다. ©RayLogue: AI-created image(Google Gemini)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3월 18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4학년은 국제인권법을 배운다. 강의를 듣노라면 국제적으로 저질러지는 범죄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특히 전쟁 부분에서는 더 그렇다. 게다가 지금은 미국와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지 않았나. 나는 문득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전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개전 18일째, 법은 어디에 있는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수권도 없었고 미국 의회의 사전 승인도 없었다. 이란이 먼저 미국 또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이 전쟁을 이란의 핵 위협 제거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라는 명분 아래 개시했다. 오늘로 개전 18일 차다.

첫날부터 사실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란은 미국 측 작전명 "Operation Epic Fury"가 시작된 개전 당일 이란 남부 미나브(Minab) 지역의 여학교가 공습을 받아 다수의 여학생이 사망했다. 수도 테헤란의 간디 병원이 공습을 받았고, 신생아를 포함한 환자들이 강제 이송됐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는 개전 직후 제거됐고, 3월 17일에는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 알리 라리자니(Ali Larijani)와 바시지(Basij) 사령관 골람레자 솔레이마니(Gholamreza Soleimani)의 사살이 공식 확인됐다는 보도가 있다. 인권단체 DAWN의 집계에 따르면 3월 5일 기준, 민간인 사망자 수는 이미 1,230명을 넘어섰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는 안보리에서 미-이스라엘 공습이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위반했다고 직접 발언했다. 미 육군 법무감실(Judge Advocate General's Corps, JAGC) 대위 출신으로 전직 공화당 전국위원장을 역임한 마크 라시코(Marc Racicot)는 군 전문지 Stars and Stripes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번 공격이 "침략 범죄(crime of aggression)"에 해당하며, 이란에서 민간인을 사망케 한 책임자들은 ICC 체포 영장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은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가. 이 질문이 이 글의 중심에 있다.

두 남자와 그들이 선 자리

트럼프는 이 전쟁을 "미국 국민을 이란 레짐의 임박한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가 2025년에 직접 "이란의 핵 능력을 초토화했다"고 선언했고 개전 직전까지 워싱턴과 테헤란 사이의 핵 협상이 가장 집중적인 국면을 지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맨체스터 대학교 국제법 조교수 유스라 수에디(Yusra Suedi)가 지적했듯, 국제법이 자위권의 전제로 요구하는 임박성(imminence)이란 "즉각적, 압도적,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협상 테이블 위의 위협은 임박한 위협이 아니다.

네타냐후는 이 전쟁에서 역할이 다르다. ICC는 2024년 11월 21일, 가자지구에서 행위에 대해 네타냐후에게 이미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전쟁 수행 방법으로서의 기아(starvation as a method of warfare),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 살인과 박해. 이것은 서방이 지지하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에 대한 최초의 ICC 체포 영장이었다. 그 영장이 발부된 지 15개월 만에 그는 이란에서 새로운 전쟁을 개시했다.

두 사람의 동기를 정치적으로 추적하면 구조가 보인다. 트럼프는 엡스타인(Epstein) 파일 공개와 지지율 하락이라는 국내 정치 위기를 외부의 적으로 전환하려는 고전적 전략인 '웍더독(wag the dog)' 을 선택했다.

웍더독(wag the dog)은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설명한다. 흔히 정치적 상황에서 내부의 문제, 트럼프의 경우 엡스타인과 지지율 하락을 덮기 위해 더 큰 외부 사건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1997년 배리 레빈슨 감동의 웍더독(wag the dog)이 이 용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네타냐후는 이미 발부된 ICC 영장과 이스라엘 국내 정치 위기 속에서, 전쟁만이 정권 붕괴를 유예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 기댄 것으로 보인다. 이 분석은 국제법 저널 JURIST에 기고한 학자 칼럼에서도 명시적으로 제기됐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제법을 어기는 것은 단순한 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지도자가 국제 규범을 파괴할 때 민주주의는 자신이 낳은 권력에게 잠식당한다. 

법의 구조를 해부하다

여기서 세 개의 법체계가 교차한다. 유엔 헌장 체계, 국제인도법(IHL), 그리고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이다. 이 세 체계는 각기 다른 질문에 답한다.

유엔 헌장은 '전쟁을 시작해도 되는가(jus ad bellum)'를 묻는다. 국제인도법은 '전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jus in bello)'를 규율한다. ICC 로마 규정은 '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 이 세 질문은 논리적으로 분리된다. 불법적인 전쟁을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합법적인 전쟁을 불법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트럼프는 전쟁을 개시한 주체로서 침략 범죄(jus ad bellum 위반)의 최우선 피의자다. 네타냐후는 침략 범죄에 더해 민간인을 향한 공격이라는 전쟁범죄(jus in bello 위반)까지 중첩된 피의자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은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무력의 위협 또는 행사를 금지"한다. 예외는 두 가지다. 안보리의 수권(제7장) 또는 자위권(제51조). 이번 이란 공격에는 어느 쪽도 충족되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대학교 국제형사법 교수 마리에케 드 훈(Marieke de Hoon)은 AP 인터뷰에서 단언했다. "이것은 침략 범죄다. 이란의 무력 공격에 대한 자위도 아니고 임박한 위협에 대한 자위도 아니며 유엔 안보리 결의도 없다. 더욱이 정권 교체는 다른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다."

이 서술은 오늘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직결된다. 국가 원수에 대한 암살은 국제법상 평시에도 위법이고 전시에도 국제인도법의 구별 원칙과 충돌한다. 레딩 대학교 국제법 교수 마르코 밀라노비치(Marko Milanovic)가 지적했듯, "다른 국가의 국가원수를 암살하는 것은 평화 시에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그들은 신체적 불가침성과 인신보호를 향유한다."

국제인도법의 핵심 원칙은 세 가지다. 구별의 원칙(Distinction)은 민간인과 전투원, 민간목표물과 군사목표물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례의 원칙(Proportionality)은 기대되는 군사적 이점에 비해 과도한 민간 피해를 야기하는 공격은 금지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예방의 원칙(Precaution)은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1977년 제네바 협약 제1추가의정서 제48조와 제51조 4항은 이를 조약법으로 명문화했으며, 이는 국제관습법으로서 강행규범(jus cogens)의 성격을 가진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stubborn facts, 어떻게 해석해도 변함 없는 사실은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여학교를 향한 공습 보고가 복수 경로에서 확인됐다는 사실, 민간의료시설이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 어떤 정치적 서사도 이것들을 군사목표물로 소급 변환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가

법은 명백하게 위반됐다.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데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오늘도 권좌에 있다.

이것이 법의 실패인가, 아니면 법 집행 의지의 실패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ICC의 관할권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1998년 로마 규정으로 설립된 ICC는 세 가지 경로로만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첫째, 범죄가 회원국 영토에서 발생한 경우 둘째, 피의자가 회원국 국민인 경우 셋째, 유엔 안보리가 사건을 ICC에 회부한 경우다.

미국, 이스라엘, 이란은 모두 ICC 비회원국이다. 2025년 1월 기준 125개국이 로마 규정 당사국이지만, 이 세 나라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구조에서 안보리 회부를 통한 관할권 개통이 유일한 경로인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하다. 법은 있으되 법을 집행하는 정치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단 하나의 우회로가 있다. 인권단체 DAWN이 촉구했듯, 이란이 로마 규정 제12조 3항에 따른 관할권 수락 선언을 ICC에 제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2014년, 우크라이나가 두 차례 사용한 이 메커니즘은 비회원국도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ICC 관할권을 수락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ICC가 네타냐후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도 팔레스타인의 이 선언이 법적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란이 이 선언을 제출하는 순간, 이란 혁명수비대의 주변국 미사일 공격과 민간 인프라 타격도 동등하게 ICC 관할에 들어온다. 법은 편을 들지 않는다. 이 구조가 이란의 선언을 실질적으로 억제하는 딜레마다.

답은 이렇다. 이것은 법의 결함이 아니라 제도의 결함이다. 더 정확하게는, 강대국이 설계한 제도의 구조적 자기 면제 조항이다. 그리고 여기에 핵심이 있다. 의지와 구조는 분리되지 않는다. 강대국이 제도를 설계할 때 자기 면제 조항을 이미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구조의 결함은 의지의 반영이다. "집행할 의지가 없다"와 "집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같은 말이다.

승자의 법,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것

이 사태를 이해하는 가장 날카로운 렌즈는 역설이다.

트럼프는 2023년 ICC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에게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범죄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을 때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2025년 ICC가 네타냐후에게 영장을 발부하자 ICC를 향해 제재를 가했다. ICC 판사들과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Francesca Albanese)를 미 재무부의 특별지정국민 명단(SDN, 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and Blocked Persons List)에 등재해 알카에다 테러 용의자와 같은 명단에 올렸다. ICC 판사들의 아마존, 구글 연결 신용카드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선택적 적용의 패턴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 관리는 로이터에 직접 밝혔다. "2029년 ICC가 대통령, 부통령, 국방장관 등을 향해 기소를 추진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에 무관심한 자는 법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ICC를 이토록 강하게 무력화하려는 행위 자체가 ICC가 자신을 처벌할 수 있다는 실질적 공포의 반증이다.

현재 ICC 회원국 125개국은 네타냐후가 자국 영토에 입국할 경우 체포할 조약법상 의무를 진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이미 여러 ICC 회원국을 방문하거나 통과했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법적 의무와 정치적 이행 의지의 간극이다. 법은 선언되었지만 집행은 무시됐다.

이 구조의 이름은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라고 해야 되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이 전범 처벌이라는 법적 진보를 대표했음에도 그 재판이 전승국이 패전국 책임을 일방적으로 물은 것이었다는 비판은 오늘까지 살아있다. 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는 안보리 결의를 통해 승자와 패자의 구별 없이 개인의 형사책임을 추궁했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진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진보는 강대국이 당사자가 되는 순간 멈춘다.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이라는 또 다른 경로가 있다. 중대한 국제법 위반에 대해 범죄 발생지, 국적과 무관하게 제3국 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 원칙은 이론적으로 트럼프와 네타냐후에게 적용될 수 있다. 1998년 영국 법원은 칠레 전직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를 런던에서 체포했다. 보편적 관할권의 집행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칠레로 귀환했고, 2006년 사망할 때까지 최종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것이 보편적 관할권의 현실이다. 가능성은 열려 있고 집행은 또다시 정치에 막힌다.

국제법의 구조적 딜레마는 여기 있다. 강대국이 설계한 법체계는 강대국을 처벌하는 메커니즘을 자체적으로 봉쇄한다. 안보리 거부권, ICC 비가입, 제재를 통한 법원 무력화. 이것들은 버그가 아니다. 설계된 기능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제도가 멈추는 곳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여학교가 공습을 받았다는 보고가 있다. 병원이 파괴됐다. 민간인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다. 이 사실들은 트럼프가 ICC를 제재해도, 네타냐후가 "반유대주의적 결정"이라고 영장을 거부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법원의 판결 없이도 역사는 판결한다. 그리고 역사의 판결이 때로 제도적 재판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80년에서 배웠다. 뉘른베르크 이후 히틀러를 무죄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는 없다. 문제는 역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이란의 민간인들은 지금 이 순간도 폭격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역사의 판결은 너무 늦게 온다.

이것이 이 전쟁의 가장 씁쓸한 진실이다. 법은 있다. 집행할 의지가 없을 뿐이다. 어쩌면 그 법은 처음 설계할 때부터 의지를 반영하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그 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은 판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다. 나는 미국, 이스라엘이 당장 전쟁을 멈추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