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첨의 시대 #2] 고스트라이팅 118년의 역사가 말하는 것
AI가 기사를 쓰면 그 저작권은 누구 것인가. 한국 저작권법 제2조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한다. AI 단독 생성물은 보호받지 못한다. 포춘 에디터 리히텐버그 모델처럼 AI가 초안을 쓰고 인간이 편집한 경우, 그 경계는 아직 판례에 없다. 기업이 AI로 기사를 대량 생산할수록 지식재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 만들어진다. 고스트라이팅 118년의 역사가 지금 이 질문을 다시 던진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10일
AI 뉴스룸이 되살린 오래된 논쟁
1908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의 일간지 Daily Star에 특이한 기사가 실렸다. 익명의 작가가 상류층 여성의 책을 5000달러를 받고 대신 써줬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서 영어 단어 "ghostwriting(고스트라이팅)"이 처음 등장했다. 118년이 지난 지금 한국 뉴스룸에서 AI가 기사를 쓴다. 그리고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누가 쓴 것인가? 누구의 것인가?
포춘의 에디터 닉 리히텐버그(Nick Lichtenberg)는 노트북LM과 퍼플렉시티를 활용해 6개월에 600편을 발행했다는 사실은 이미 글로 썼다. 같은 주 포춘은 "AI 슬롭 논쟁이 사실 100년 이상 된 고스트라이팅 윤리 논쟁의 변주"라는 칼럼을 자체 게재했다. 쓴 사람이 바뀌었을 뿐, 논쟁의 구조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책임의 귀속: 계약은 있는데 AI는 없다
그런데 이 비교가 정확히 옳다면, 역사에서 배울 교훈이 하나 있다. 고스트라이팅 계약에는 "원본성 보증(warranty of originality)"이 표준 조항으로 들어간다. 고스트라이터는 표절 검증 책임을 지고 오류가 생기면 법적 책임을 진다. 책임의 귀속이 계약으로 명시된다.
AI가 기사를 작성할 때는 이런 구조가 없다. 오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어쨌든 이름을 걸고 기사를 낸 사람이 책임지는 건 당연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익명으로 발행되는 기업의 뉴스룸은? 편집자, 라는 이름으로 발행되는 뉴스는?
인간의 창작 요건과 등록 안내서
한국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분명하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세 단어가 핵심이다. 인간, 사상 또는 감정, 창작. AI에게 이 세 조건을 적용하면 논리는 간단하다. AI는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AI가 단독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저작물이 될 수 없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5년 6월 발표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에서 이 원칙을 명시했다. AI가 생성한 저작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창작 과정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하고, 그 결과물에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명확히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등록이 가능하다. 그래서 2024년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실제로 AI로 만든 두 개의 이미지를 합성해 단순 후보정한 산출물에 대해 저작권 등록을 거절했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리히텐버그의 작업은 어떤가. 그는 헤드라인을 먼저 정하고 AI 초안을 편집하고 경우에 따라 취재원과 통화한 내용을 삽입한다. 이 수준의 개입이 "창작적 기여"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어느 법원도 확정하지 않은 문제다. 한국에서 이 수준의 AI 보조 기사에 저작권이 인정되는지는 아직 판례가 없다.
저자성의 역설: 저작권 없는 기사들이 만드는 순환
여기서 법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미 저작권청(USCO)은 2025년 1월 보고서에서 AI 생성물에 대해 프롬프트 입력만으로는 저작권 인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명시했다. 결과물에 창작적 통제가 명확히 입증될 때만 예외적으로 인정 가능하다. 한국의 입장도 본질적으로 같다. 즉, 리히텐버그 모델이 대규모로 적용될 경우, 예컨대 기업 뉴스룸이 AI로 기사를 대량 생산할 경우 그 기사들은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인터넷에 공개된다.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다. AI는 그것을 학습 데이터로 가져간다.
포춘과 퍼플렉시티는 콘텐트 사용료 계약이 이미 체결된 상태다. 이 계약이 존재하는 건 역설적으로 포춘의 콘텐트가 퍼플렉시티의 답변 생성에 재료로 쓰인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리히텐버그 모델로 만들어진 기사는 저작권이 불명확하다. 포춘은 저작권이 모호한 기사를 만들고 AI는 그것을 학습한다. 기업은 지식재산 없이 AI 생태계를 먹이는 구조가 될 수 있다.
고스트라이팅 논쟁이 100년간 해소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저자성(authorship)이라는 개념 자체다. 누가 썼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다. 독자는 저자의 이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신뢰인가, 책임인가, 경험인가. 고스트라이팅 역사를 연구하는 에밀리 앤더슨(Emily Hodgson Anderson)은 포춘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적했다. 독자들이 고스트라이팅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이름이 붙은 저자의 말을 읽는다"는 계약이 깨지기 때문이다.
AI 기사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리히텐버그의 바이라인에서 그의 판단을 기대한다. 그런데 그 판단의 상당 부분은 노트북LM이 소스 문서로부터 합성한 것이다. 이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한 독자와의 계약은 은밀하게 변경된 것이다.
한국 언론 환경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하다. 기업 뉴스룸 콘텐트는 대개 홍보 목적의 2차 생산물이다. 기업 정보를 AI로 재처리해 기사 형식으로 만들 때, 저작권 귀속은 불명확하고 독자와 계약도 없다.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기준도 아직 없다.
고스트라이팅은 118년 전부터 있었다. 그것이 논쟁인 이유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귀속이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AI 기사도 같은 이유로 논쟁이 될 것이다. 다른 건 속도와 규모뿐이다. / raylogue
FAQ
Q1. AI가 초안을 쓴 기사는 자동으로 저작권이 없나?
A. AI 단독 생성물은 원칙적으로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 다만 사람이 편집·구성·표현을 통제하며 창작적으로 기여했다면, 그 기여 부분은 저작권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Q2.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것만으로 저작권이 인정될까?
A. 프롬프트 입력만으로는 보통 창작적 통제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강하다. 결과물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수정·구성했는지가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Q3. 기업 뉴스룸이 AI로 대량 생산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A. 저작권이 불명확한 콘텐츠가 늘면, 누구나 복제·재가공하기 쉬워진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만든 글이 지식재산으로 축적되지 않고 AI 학습 데이터로 흡수되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Q4. 오류나 표절이 터졌을 때 책임은 누가 지나?
A. 고스트라이팅은 계약으로 책임을 명시하지만 AI 글쓰기에는 그 표준 구조가 없다. 결국 바이라인·발행 주체가 책임을 지게 되지만 조직 발행물에서는 책임 주체가 흐려지기 쉽다.
Q5. 독자는 AI가 쓴 글을 왜 불편해하나?
A. 독자는 이름이 붙은 저자에게 판단과 책임을 기대한다. AI의 관여가 숨겨지면 ‘저자의 말’이라는 독자와의 묵시적 계약이 바뀐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