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3] AI 저작권의 진짜 질문: 공정이용은 윤리적인가?
전 세계 AI 저작권 소송이 공정이용 하나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법원이 공정이용을 인정해도, 창작자에게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 학계가 제안한 공정생성(fair generation) 개념은 법적 허용을 넘어 기술적, 경제적 공정성까지 묻는다. 공정이용은 과거를 판단하지만, 공정생성은 미래를 설계하려 한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1일
영국은 AI 저작권 옵트아웃을 철회했지만 새 입법이 없다. 한국은 공정이용 안내서를 냈지만 구속력이 없다.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경로를 택했는데도 같은 자리에 도착한 이유는 하나다. 둘 다 같은 질문 위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AI 기업이 저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쓰는 것이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하는가.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공정이용이라는 프레임의 구조
공정이용은 미국 저작권법이 발전시킨 개념이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해도 되는 경우를 판단하는 4대 요소, 그러니까 이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 종류, 이용 비중 그리고 시장 영향을 종합해 법원이 결정한다. 비평, 패러디, 교육, 뉴스 보도처럼 저작물을 변형해서 사용하는 경우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다.
AI 기업들은 이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픈AI는 공식 입장에서 앤트로픽과 메타가 피고인 별개 소송에서 받은 판결을 근거로, "두 개의 연방법원이 AI 학습이 고도로 변형적이며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2025년 2월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은 Thomson Reuters v. Ross Intelligence 사건에서 AI 학습에 대한 공정이용 항변을 기각했다. 법원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미국 저작권청은 2025년 5월 보고서에서 "AI 학습 전 과정이 저작권법 위반 가능성이 크지만 최종 판단은 공정이용에 달려 있다"고 결론지었다. 공정이용 여부가 이 싸움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법원이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법적으로 허용됐다는 것과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수억 명의 창작자가 동의 없이 기여자가 됐다는 사실, 그 기여로 AI 기업이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만들었다는 사실, 그러면서 창작자 개인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법원이 공정이용을 인정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앞선 두 글에서 살펴봤듯, 이것이 스터번 팩트(해석을 어떻게 하든 사라지지 않는 사실)다. 어떤 법적 선택을 해도 학습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공정한 생성이라는 새 개념
2025년 한국콘텐츠산업학회 학술지 <콘텐츠와산업>에 발표된 논문 한 편이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다. 윤장열의 <생성형 AI의 학습과 저작권법: 생성형 AI 콘텐츠의 공정한 생성을 위하여>다. 이 논문은 기존의 공정이용이나 TDM(텍스트, 데이터 마이닝) 예외 조항이 "생성형 AI 학습과정의 구조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공정생성(fair generation)'이라는 새로운 규범적 기준을 제안한다.
공정생성이란 무엇인가. 논문이 제시하는 정의는 이렇다. AI의 적법성 여부를 넘어 데이터 수집, 학습, 콘텐트 생성 전 과정이 세 가지 공정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상태다.
첫째는 법적 공정성이다. 권리 침해 방지와 절차적 정당성. 이것이 지금까지 공정이용이 다루던 영역이다.
둘째는 기술적 공정성이다. 데이터 출처와 사용 방식의 투명성, 그리고 창작자의 동의·거부권 보장. 어떤 저작물이 어떻게 학습됐는지를 창작자가 알 수 있어야 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경제적 공정성이다. 기술 발전의 이익이 창작자와 사회 전체에 공평하게 분배되는 구조. AI 기업만이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제공한 창작자도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한다.
이 3층 구조가 공정이용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무엇인가. 공정이용은 허용/불허의 이분법적 판단이다. 법원이 "허용"이라고 판시하면 창작자의 청구권은 소멸한다. 그러나 공정생성은 허용 여부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AI 학습이 법적으로 허용되더라도 투명성이 확보됐는가, 창작자에게 보상이 돌아갔는가를 별도로 묻는다.
세계 법정이 공정이용 프레임에서 막히는 이유
2026년 1월 5일, 뉴욕 남부지법은 오픈AI에 2000만 건의 익명화된 챗지피티 대화 로그를 원고 측에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의 판단은 이것이었다. "원고 저작물의 직접 재현이 없는 로그도 공정이용 항변에 영향을 미치므로 증거 개시 대상이다." 공정이용을 판단하려면 챗지피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은 공정이용 판단이 얼마나 복잡해졌는가를 보여준다. 법원은 공정이용 4대 요소 중 시장 영향을 따지려면 챗지피티가 원저작물의 시장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려면 실제 대화 로그가 필요하다. 그 로그를 확보하는 데만 소송이 시작된 지 2년이 걸렸다.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같은 기간, GRUR 인터내셔널이 옥스포드 아카데믹(Oxford Academic)에 게재한 논문 83건에 대해서 AI 학습 관련 상업 라이선스 계약을 분석했다. 1편에서 살펴봤듯 라이선스 시장은 어떤 법적 선택을 해도 확대되지만 그 수익이 개인 창작자에게 흘러가지 않고 대형 저작권 보유자에게 집중되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공정생성 개념의 경제적 공정성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공정이용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보상 배분 구조 자체를 건드리지 않으면 개인 창작자의 몫은 구조적으로 마지막이다.
이것이 공정생성 개념이 제기하는 진짜 문제다. 공정이용은 AI 기업이 저작물을 쓸 수 있는가를 묻는다. 공정생성은 AI 기업이 저작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묻는다. 공정이용은 허용의 문제이고, 공정생성은 조건의 문제다.
반론과 한계
'공정이용으로 충분하다'는 반론을 무시할 수 없다. 법은 원래 사후적으로 발전한다. 공정이용 판례가 쌓이면서 AI 학습에 맞는 기준이 정립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 보호도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법원들은 공정이용 판단에 '시장 대체성'을 적극 검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 반론의 약점은 시간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주요 AI 저작권 소송의 항소심 판결이 2026~2027년에야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그 기간 동안 학습은 계속되고 발생한 손실은 소급 복원되지 않는다. 공정생성 개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례가 형성되는 동안 창작자를 보호할 중간 규범이 필요하다.
공정생성은 아직 법적 강제력이 없는 규범 제안이다. 법원에서 즉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고, 논문 자체도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제언"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공정이용도 성문화되기 전에는 법원의 관행과 학자들의 논의가 함께 개념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법적 개념은 항상 먼저 언어로 존재하다가 나중에 규범이 됐다.
법이 따라가기 전에
영국 작가들은 옵트아웃 철회라는 승리를 얻었지만 입법 공백이 남았다. 한국 문체부는 공정이용 안내서를 발간했지만 법적 구속력 없는 참고자료에 그쳤다. 이 두 사례가 공유하는 문제는 하나다. 제도가 AI 학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공정생성 개념은 그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다. 아직 법이 아니고 판례도 아니다. 그러나 질문 자체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 법적으로 허용된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그 질문 없이는 공정이용 판례가 아무리 쌓여도 창작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학습은 끝났고, 그 사실을 법과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정이용이 그 사실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면, 공정생성은 그 사실이 다시 일어나는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다. 둘은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제를 다룬다. 공정이용은 과거를 판단하고, 공정생성은 미래를 설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