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에 능숙한데 초범: 무죄추정이 만드는 양형의 역설

형법 제51조는 판사에게 범인의 성행을 참작하라고 한다. 그런데 실무에서 성행 판단은 전과 유무라는 형식적 기준에 강하게 끌린다. 전과 없음 = 초범 = 감경, 이 등식이 완성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처음 걸린 것과 처음 한 것은 같지 않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심 재판부도 김건희에게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을 유리한 사유로 고려했다. 그렇게 능숙하게 시세조종에 가담했는데, 과연 진짜 초범인가? 무죄추정 원칙은 그 질문에 일단 그렇다고 답한다. 이걸 납득하는가 아닌가는 별개의 문제다.

주가조작 그래프와 금융 네트워크, 무죄추정 원칙의 문, 초범 감경을 상징하는 방패와 재판부의 재량을 나타내는 체스판이 복합적으로 배치된 16:9 영화적 히어로 이미지.
처음 걸린 것과 처음 한 것은 다르다. 초범 감경은 교화의 기회가 될 수도, 설계된 방패가 될 수도 있다. ©RayLogue: AI-created image(Chatgpt)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5월 5일

"피고인에게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은 유리한 사유로 고려했다.”

법원이 초범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낮춰주는 건 법에 근거가 있다. 형법 제51조는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열거한다. 범인의 성행, 범행의 수단, 범행의 동기와 결과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성행, 즉 평소 행실과 인격적 특성을 보라는 항목에서 초범 여부가 반영된다. 전과가 없다는 건 그 사람의 성행이 불량하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형법 제53조는 정상참작감경(구 작량감경)을 허용한다.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판사가 재량으로 형을 낮출 수 있다는 거다. 이 두 조문을 바탕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서도 초범(전과 없음)은 감경요소로 고려된다. 다만 범죄 유형과 구간, 그리고 작량감경 판단에 따라 적용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구조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진짜로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오랫동안 같은 짓을 반복해온 사람을 같은 잣대로 처벌하는 건 오히려 불공정하다. 형법이 단순한 응보가 아니라 재범 방지와 교화를 목적에 포함한다면 전과 없는 사람에게 반성과 교화의 기회를 더 주는 건 일관된 논리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처음 걸린 것과 처음 한 것은 다르다

그렇다면 판사가 고려하는 법적 초범의 기준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확정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가 없으면 법적 의미의 초범이다. 기소유예도 전과가 아니다. 불기소처분도 전과가 아니다.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면 당연히 전과가 아니다. 그래서 법원이 이 사람은 초범이다라고 할 때 그건 이 사람은 아직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동종 전과 없음, 누범이나 상습 규정 적용 여부 같은 개념은 또 다른 층위의 문제다). 그래? 그렇다면 한 가지를 더 따져보자.

주가조작을 생각해보자. 적발 가능성이 낮은 범죄에서는 처음 적발과 처음 범행이 쉽게 분리될 수 있다. 작전 세력을 모으고 타이밍을 계산하고, 호재성 정보를 흘리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고점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전제로 한다. 결국 걸린 건 처음이라는 사실이 곧바로 처음 한 범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51조가 성행을 참작하라고 하는데 실무에서는 성행 판단이 전과 유무 같은 형식적 지표에 강하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수법의 전문성과 치밀함, 범행 구조의 설계성 같은 정황은 그 자체로 성행을 보여주는 단서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단서가 충분히 입증, 정리되지 못하면 제51조가 요구하는 실질 판단이 빈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죄추정 원칙이 발목을 잡는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무죄추정 원칙을 말한다.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건 형사 절차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아무리 수법이 익숙해 보여도 아무리 정황이 농후해도, 기소되지 않고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과거 행위를 그대로 양형에 불리하게 쓰기는 어렵다. 이 사람이 전에도 했을 것 같다는 의심만으로 형을 가중하면 무죄추정 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입증된 범행의 반복성, 기간, 피해 규모, 역할 분담, 은폐 정황 같은 사실은 별개로 양형에서 적극 반영될 수 있다.

그래서 법원은 어쩔 수 없이 형식적인 기준, 즉 확정 유죄판결 유무로 초범을 판단한다. 이건 법원이 눈을 감는 게 아니다.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판단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 구조가 정의로운가? 원래 헌법이 지향하는 바와 맞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초범 감경이 방패가 될 때

헌법이 의도한 대로 정직하게 작동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 특히 금융 범죄는 첫 번째 기소에서 초범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걸 범죄자도 안다. 걸리더라도 전과가 없으면 형이 낮아진다. 그리고 집행유예로 나온 뒤 유예 기간을 무사히 지나면 형법 제65조에 따라 형 선고의 법적 효력이 소멸한다. 다만 선고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어서 판사가 이를 양형에서 참작할 수 있다는 판례는 있다. 어쨌든 이 구조를 알고 들키지 않게 반복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초범 감경은 교화를 위한 기회가 아니라 설계된 면피 수단이 된다.

더 심각한 건 판사의 재량이 개입하는 지점이다. 형법 제53조의 정상참작감경은 참작할 사유가 있을 때 감경한다고 되어 있다. 무엇이 참작 사유인지는 판사가 결정한다. 수법의 전문성을 가중인자로 적극 반영하는 판사가 있는 반면, 전과 없음을 전면에 두고 감경을 적용하는 판사도 있다. 같은 사건도 판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게 법관의 독립과 재량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 재량이 일관되지 않으면 법은 불평등하게 작동한다. 법관이 정치적으로, 사적으로 치우지면 그의 선택은 불평등할 수 밖에 없고 과거 판결을 보면 판사의 일관적인 흐름은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과 이 구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검찰은 오랜 수사 끝에 - 솔직히 수사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으나 - 김건희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2025년 6월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특별검사팀이 출범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특검은 김건희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비롯한 여러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2026년 1월 1심 선고는 아주 짜증나는 결과를 보여줬다. 1심 판사 우인성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시세조종 세력이 피고인을 공동정범으로 여기고 함께 공모할 의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범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1심에서 선고된 형량은 징역 1년 8개월이었다. 주가조작은 무죄, 다른 혐의들로 나온 형량이다.

이 1심 결과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모두에게 의심을 샀다. 수법이 전문적이었고 장기간 반복됐다는 정황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우인성은 공동정범 성립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초범 감경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요건 해당성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검찰이 수사하는 동안 외면했던 정황과 증거를 법원이 어떻게 봤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6년 4월 항소심은 달리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유죄로 인정했다. 형량은 징역 4년, 벌금 5000만 원, 추징금 2094만 원에 그라프 목걸이 추징까지 더해졌다. 1심보다 형량이 조금 늘었다. 하지만 이 재판에서 도 초범의 문제가 터졌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언급한 내용이 2심 판사의 발언이다. "피고인에게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은 유리한 사유로 고려했다.” 는 그 이야기 말이다.

자, 질문을 한 번 더 던져보자. 그렇게 능숙하게 주가조작에 직접 관여했는데 과연 초범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걸리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범죄 전력은 화려한게 아닌가? 대답은 다시 헌법으로 돌아간다.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걸 국민이 납득하느냐 아니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형법의 모순인가, 운용의 문제인가

무죄추정 원칙은 지켜야 한다. 입증되지 않은 과거를 형량에 반영하면 적법 절차가 무너진다. 동시에 형법 제51조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성행 판단을 전과 기록지 한 장으로 대체하는 건 너무 단순하다. 범행의 수법과 전문성이 드러났다면 그걸 가중인자로 적극 반영하는 게 제51조의 취지에 맞다.

이 둘을 균형 있게 적용하는 게 판사의 역할이다. 초범 감경이라는 제도가 진짜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위한 제도로 작동하는가 아니면 걸리지 않고 반복한 사람들이 처음 걸렸을 때 쓰는 방패가 되는가. 그 경계를 어디서 긋느냐가 재판의 질을 결정한다.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라는 원칙은 재판부가 공정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면 이 원칙들은 유죄인 피고자들을 가볍게 처벌하는 근거가 된다. 김건희 사례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느꼈다.

법이 나쁜 게 아니라 법을 운용하는 방식이 문제라면 그걸 바꾸는 건 입법이 아니라 판결의 일관성과 검찰의 기소 의지에 달려 있다. 그 의지가 사건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인상이 반복해서 쌓인다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라고 부를 수 없다. 검찰과 사법부가 스스로 이걸 해결하려는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감찰과 사법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raylogue

FAQ

Q. 초범이면 무조건 형이 깎이나?
아니다. 전과 없음은 유리한 사정 중 하나일 뿐이고 범죄 유형·피해 규모·반성 여부·재범 위험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정해진다.

Q. 처음 걸린 것과 처음 한 것이 다르다는 문제를 법원이 해결할 방법은 없나?
확정되지 않은 과거 범행을 그대로 양형에 불리하게 쓰는 건 무죄추정 원칙과 충돌한다. 대신 이번 사건에서 입증된 반복성/기간/수법의 전문성/은폐 정황 등은 양형에서 반영될 수 있다.

Q.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도 재판에서 완전히 무시되는가?
전과(확정판결)는 아니지만 어떤 자료가 어떤 범위에서 참작되는지는 제도·사건·재판부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은 초범 판단의 법적 기준=전과에 초점을 둔다.

Q. 정상참작감경(형법 제53조)은 무엇이고 왜 논쟁이 되나?
법이 정한 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참작 사유가 있을 때 재판부 재량으로 형을 낮출 수 있게 한 규정이다. 재량이 큰 만큼 사건·재판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예측 가능성과 형평성 논쟁이 생긴다.

Q. 초범 감경은 유지돼야 하나, 폐지돼야 하나?
이 글의 요지는 초범 자체가 아니라 초범이 실제로 진짜 초범을 가려내는 장치로 작동하는지전문적, 반복적 범행의 정황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반영할지에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