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확장 6] 스마트폰과 AI 과다이용 책임은 요즘 세대에게 없다
스마트폰·AI 과다이용 문제를 “요즘 세대가 약해서”로 설명하면 해법도 실패한다. 도덕적 패닉과 향수, 세대론이 개인차, 계급, 환경을 지우고 책임을 흐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플랫폼과 AI 설계와 인센티브, 불평등의 관점에서 책임을 재배치하고 개인 실천과 함께 구조적 변화가 왜 필요한지 정리한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27일
5장에서 우리는 스마트폰과 AI 과다 이용이 일으키는 피해를 살펴보되, 피해의 종류마다 증거의 강도가 다르다는 점을 구분했습니다. 주의력 분산과 수면 방해처럼 비교적 확실한 영역이 있는 반면 관계와 정신건강, 청소년 발달처럼 더 복잡하거나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영역도 있었습니다. AI 또한 이해의 환상, 인지 오프로딩의 심화, 할루시네이션의 전파처럼 새로운 취약점이 있다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이 역시 체계적 실증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피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피해의 원인과 책임을 어디에 귀속시키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이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이 과다 이용 문제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흔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스마트폰을 덜 쓰세요. AI에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의지를 가지세요. 잠들기 한 시간 전부터는 폰을 내려놓으세요. 중요한 판단은 직접 하세요. 조언은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해 보이며 도덕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문제를 개인의 선택과 자제력의 영역으로 가져다 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조언들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줄이려 해봤지만 실패했고, 다시 다짐했지만 또 실패했으며 그 실패 끝에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는 자책만 남았습니다. 처방이 반복적으로 실패한다면 처방 자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진단 자체가 틀렸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번 장은 스마트폰과 AI 과다 이용 담론이 지금까지 놓치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해온 것들을 꺼내 놓으려 합니다. 도덕적 패닉의 함정, 세대론의 과잉, 계급적 차원의 불평등,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서사가 어떤 구조적 문제를 가리고 있는지를.
도덕적 패닉의 오랜 역사
스마트폰과 AI 과다 이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유독 새롭거나 옳다고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 기술이 인간을 망친다는 경고도 함께 등장해왔으니까요.
1950년대 미국에서는 만화책이 문제였습니다. 정신과 의사 프레드릭 워섬(Fredric Wertham)은 1954년 저서 <무고한 자들의 유혹(Seduction of the Innocent)>에서 만화책이 청소년 비행을 조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위키피디아 항목) 의회 청문회가 열렸고 만화 산업은 자체 검열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 후 연구자들이 워섬의 데이터를 재검토했을 때 상당 부분이 조작되었거나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NYT 보도, Tilley 논문(JSTOR))
텔레비전, 록 음악, 비디오 게임도 같은 경로를 걸었습니다. 청소년의 폭력성을 유발한다, 학업을 방해한다, 사회성을 떨어뜨린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포는 실재했고 부분적으로는 근거도 있었지만 결국 문명의 붕괴는 오지 않았습니다.
2026년 현재, 이 역사는 두 가지 대상에서 동시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뇌를 망친다는 공포가, AI에 대해서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퇴화시킨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두 공포 모두 부분적으로 근거가 있습니다. 5장에서 살펴봤듯 실제 피해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도덕적 패닉의 역사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기술 자체에 대한 공포가 확산될 때 그 공포는 종종 실제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가려버립니다. 스마트폰이 문제, AI가 문제라는 진단은 너무 단순합니다. ‘왜, 어떻게, 누구에게 스마트폰과 AI가 문제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전이 더 좋았다는 기억의 오류
도덕적 패닉과 짝을 이루는 것은 향수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았고 사람들은 눈을 맞추며 대화했다는 서사. AI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깊이 생각했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었다는 서사.
그러나 스마트폰 이전, AI 이전이 그렇게 이상적이었는지는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이전 시대에도 청소년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AI 이전에도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 앞에서 전문가에게 물어보자며 자기 판단을 회피했습니다. 사회적 고립, 외로움, 집중력 문제는 스마트폰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스마트폰과 AI가 이 문제들을 새롭게 만들었다기보다 기존 문제들을 더 측정하기 쉽고 더 가시적으로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향수는 비교 기준점을 왜곡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이전, AI 이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 역사적 시기가 아니라, 현재의 불안을 투영한 이상화된 과거입니다.
요즘 것들의 서사: 세대론의 과잉
스마트폰과 AI 문제는 종종 세대론과 결합됩니다. Z세대, 알파 세대가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쓰면서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손상되었다는 주장. AI 시대에는 이것이 요즘 젊은 직원들은 AI 없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식의 직장 내 세대론으로 변주됩니다. 그러나 이 세대론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적입니다.
첫째, 세대론은 개인 간 차이를 지워버립니다. 같은 Z세대 안에도 스마트폰을 절제하며 활용하는 사람과 과의존 상태인 사람이 공존합니다. 같은 30대 직장인 중에도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사람과 무비판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환경, 교육 수준, 경제적 조건,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디지털 도구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같은 더 중요한 변수가 세대보다 훨씬 강력한 예측 변수일 수 있습니다.
둘째, 세대론은 요즘 세대가 문제라는 서사를 반복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글쓰기가 청년들의 기억력을 떨어뜨린다고 우려했습니다. 모든 시대의 어른들은 다음 세대가 언제나 더 나빠졌다고 느낍니다.
셋째, 세대론은 책임 귀속을 흐립니다. 젊은 세대의 스마트폰과 AI 과의존을 그들의 특성이나 취약성으로 돌리면 그 과의존을 설계한 주체들, 바로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이 희석됩니다.
덤폰과 스마트폰, 아날로그와 AI: 계급이 드러나는 곳
스마트폰과 AI 과다 이용 담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줄일 수 있고, 누가 그럴 수 없는가. 이 질문은 계급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립니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엘리트들이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고 화면 없는 학교에 보낸다는 이야기는 자주 보도되는 언론의 소재거리입니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가 자녀의 기기 사용을 제한했다고 전해지는 NYT 기사(2014)가 널리 인용됩니다.(NYT) 이런 선택이 가능한 것은 그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AI에서도 같은 계급적 분할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AI를 도구로서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은 기존의 지적 훈련, 비판적 사고력, 정보 리터러시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의 사람들은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자기 판단의 주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그런 훈련의 기회가 부족했던 사람들은 AI에 더 쉽게 의존하고, AI의 답변을 검증 없이 수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것은 연구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존재하므로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이 두 가지 디지털 리터러시는 가정환경, 교육 수준, 주변 어른들의 디지털 역량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도구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는 도구에 길들여지기가 쉽습니다.
스마트폰을 덜 쓰라, AI에 덜 의존하라는 조언은 그것이 가능한 선택지를 가진 사람에게 유효한 처방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누가 이 게임을 설계했는가
이제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꺼내놓을 차례입니다. 개인의 의지력으로 맞서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보는 것입니다.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이 구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당신의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의지력이 있다. 공정한 싸움이 아니다.”(Johann Hari가 이 내용을 인용해 전한 형태로 널리 유통됩니다: Goodreads)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앱 설계자들이 이용자를 더 오래, 더 자주 머물게 만들기 위해 정교한 심리적 기법을 동원한다는 것은 업계 내부는 물론 이제 외부에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무한 스크롤은 멈출만한 포인트를 제거합니다. 가변 보상 구조는 예측 불가능한 보상으로 반복 행동을 강화합니다. 좋아요, 리트윗 같은 소셜 승인 지표는 사회적 인정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자극합니다.
AI의 설계 방향성은 스마트폰 앱보다 더 정교합니다. 챗지피티, 클로드, 제미나이 같은 AI 시스템은 유용하고, 무해하고, 정직하게(helpful, harmless, honest) 설계되어 있다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방향으로 작동하려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스템들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핵심 재무 목표는 이용자이 활발하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픈AI의 연간 반복 수익(ARR, Annual Recurring Revenue)은 2025년 기준 100억 달러에 달합니다.(CNBC)
AI가 스마트폰과 다른 점은 포획의 메커니즘이 더 미묘하다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의 무한 스크롤은 비교적 쉽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또 끝없이 스크롤하고 있구나. 그러나 AI가 당신의 사고를 대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AI의 답변이 유용하고 정확해 보이며 시간을 절약해주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포획은 시간의 낭비로 체감됩니다. AI 포획은 생산성의 향상으로 체감됩니다.
중독성 설계를 둘러싼 논쟁
물론 이 그림이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중독을 설계한다는 주장을 대체로 부정합니다. AI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인간의 능력을 증강(augmentation)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뿐이라는 반론, 참여(engagement)와 중독(addiction)은 다르다는 주장, AI 의존과 AI 활용은 다르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원인이 의도적 설계인지 최적화의 부작용인지를 떠나서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의 일부가 플랫폼과 AI 기업에 있다는 주장은 타당합니다. 식품 기업이 과도한 설탕을 이용한 결과로 소비자 건강이 나빠진다면 개인이 절제하면 된다는 말로 끝낼 수 없습니다. 제품 설계와 제도적 규제의 문제입니다.
개인화된 해법의 함정
스마트폰과 AI 과다 이용에 대한 해법으로 가장 많이 제시되는 것들, 이를테면 앱 이용 시간 제한, 그레이스케일(grayscale, 화면을 회색조로 전환하는 기능) 화면 모드, 취침 전 금지,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일정 기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 AI 이용 전 먼저 스스로 생각하기 같은 것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고 실행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데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이 해법들은 시스템과 역학 관계를 무시합니다. 개인이 알림을 끄는 동안 플랫폼은 더 강력한 재참여(re-engagement) 알림을 개발합니다. 개인이 AI 이용 전 먼저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동안 AI는 더 자연스럽게 일상에 통합되어 먼저 생각할 틈을 줄입니다. 개인의 노력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시스템의 설계에 대응해야 합니다.
둘째, 개인화된 해법은 집단적 문제를 개인의 실패로 재정의합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같은 어려움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공중보건의 문제를 개인 건강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담론을 어디로 가져가야 합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종합하면, 스마트폰과 AI 과다 이용 담론이 재설정되어야 할 방향이 보입니다.
- 도덕적 패닉에서 증거 기반 평가로: 공포가 증거를 앞서면 안 됩니다.
- 세대론에서 맥락론으로: ‘요즘 세대가 문제’라는 서사 대신 환경과 조건을 물어야 합니다.
- 개인 책임에서 공유 책임으로: 의지력만으로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은 불충분합니다.
- 개인 행동에서 구조적 변화로: 설계 기준, 투명성, 규제, 연구·교육이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2부를 마치며: 합의 지점을 찾아서
1부(1장에서 3장까지)에서 우리는 이론적 토대를 살펴봤습니다. 확장된 마음 이론과 전이 기억 이론이 스마트폰과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지 체계의 일부로 이해하게 해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누가 이 확장을 설계하고 통제하는지가 핵심 질문이 된다는 것을 봤습니다.
2부(4장에서 6장까지)에서 우리는 현실 진단을 시도했습니다. 4장에서 과다 이용의 개념을 시간이 아닌 자율성의 언어로 재정의했고, 5장에서 실제 피해들을 증거의 강도에 따라 정직하게 구분했으며, 이 6장에서는 그 피해들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력 너머에서 찾았습니다.
3부에서는 합의 지점을 찾으려 합니다. 자율성을 회복하는 방법, 전이 기억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 주의와 사고의 주권을 되찾는 방법.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개인의 노력과 구조적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스마트폰은 적이 아닙니다. AI도 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설계된 스마트폰과 AI 생태계는 우리 편도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생태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으로 다시 설계하는 것입니다. / raylogue
FAQ
Q1. 이 장은 “스마트폰/AI를 당장 끊어야 한다”는 주장인가요?
아니요. 핵심은 ‘과다 이용’을 개인 의지의 문제로만 환원하지 말고, 설계·인센티브·불평등의 관점에서 함께 보자는 것입니다.
Q2. 그렇다면 개인의 절제와 습관 개선은 무의미한가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 해법만으로는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설계’와의 비대칭을 이기기 어렵고, 실패가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만 해석되기 쉽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Q3. “포획(engagement) 설계”와 “중독(addiction) 설계”는 같은 말인가요?
같지 않습니다. 참여를 늘리려는 설계가 곧바로 임상적 의미의 ‘중독’과 동일시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여 최적화가 반복 사용을 강화하고 자기 통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며, 이 장은 그 책임 논의를 구조의 문제로 확장합니다.
Q4. 왜 세대론(요즘 세대 탓)이 위험한가요?
세대론은 개인차와 맥락(가정환경·교육·경제조건)을 지워버리고, 문제를 ‘요즘 사람들의 결함’으로 돌리면서 설계자·기업·정책의 책임을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Q5. 그럼 현실적으로 무엇부터 바뀌어야 하나요?
개인 차원의 실천(알림/환경 설계)과 함께, 플랫폼·AI 서비스의 설계 기준, 알고리즘 투명성, 중독성 기능에 대한 규제/가이드라인, 청소년 보호 정책, 그리고 AI의 인지 오프로딩 효과에 대한 연구·교육이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