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2] 한국판 빈 책: 공정이용 안내서가 만든 공백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는 2026년 2월 생성형 AI 저작권 공정이용 안내서를 발간하면서 AI 저작권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은 없다. 같은 시기 지상파 3사는 네이버, 오픈AI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편 보호받으려면 먼저 보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안내서의 구조는 기술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창작자를 사각지대에 방치한다. 영국이 옵트아웃을 철회하고 한국이 안내서를 낸 결과는 같다. 아무것도 없다. 한국은 4월 9일 4차 변론이 그 공백을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가 질문이다.

생성형 AI 저작권 공정이용 안내서의 구조적 공백을 추상화한 일러스트레이션. 책의 왼쪽 페이지는 텍스트가 이진 데이터 스트림으로 분해되며 AI 학습 데이터 추출을 상징하고, 오른쪽 페이지는 의도적으로 비어 있다. 중앙에 투명한 규제 격자가 책을 덮고 있으나 핵심부는 공허하다.
공정이용 안내서는 규칙의 형식을 갖췄지만 보호의 실질을 갖추지 못했다. 저작물은 이미 데이터로 추출됐고, 빈 페이지는 그 이후를 채우지 못한 제도의 공백을 상징한다. ©RayLogue: AI-created image(Google Gemini)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1일

2026년 3월, 런던에서는 작가들이 빈 책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거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싸움이 법정 안에서, 그리고 조용히 진행 중인 규제 공백 속에서, 다른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6년 2월 26일 〈생성형 AI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를 공식 발간했다. 한 달 전인 1월 22~23일에는 지상파 3사(MBC, KBS, SBS)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를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소송의 3차 변론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양측에 공정이용 관련 주장과 근거 제출을 요구했다. 2월 23일에는 지상파 3사가 오픈AI(OpenAI)를 상대로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언론사가 글로벌 AI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첫 저작권 소송이다.

세 가지 사건이 두 달에 걸쳐 일어났다. 그리고 이 세 사건이 함께 그리는 그림은 영국에서 옵트아웃 철회 이후 나타난 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안내서가 만든 구조

문체부 공정이용 안내서의 핵심은 4대 판단 요소다. 이용 목적, 저작물 종류, 이용 비중, 시장 영향. 이 네 가지를 종합해 법원이 최종 판단한다. 안내서 자체는 유권해석이 아니라 참고자료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향후 분쟁과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안내서가 창작자에게 권고하는 자기 보호 수단은 구체적이다. robots.txt 설정, 워터마크, API 접근 권한 등 기술적 보호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공정이용 판단 시 권리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반대로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구조가 만드는 귀결은 단순하다. 보호받으려면 먼저 보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형 언론사는 IT팀과 법무팀이 있다. 출판사는 저작권 관리 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블로거, 소셜미디어 이용자, 커뮤니티 작가처럼 기술적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운 무명 창작자들에게 안내서의 보호 수단은 사실상 닿지 않는다. 이 사각지대는 향후 제도 설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한편 AI 산업계는 정반대 방향에서 반발하고 있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혁단협)는 안내서가 "AI 개발의 기술적 현실을 도외시하고 K-AI 스타트업의 R&D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창작자는 보호가 부족하다고 하고 산업계는 규제가 과하다고 한다. 안내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법정의 구조: 입증 부담의 비대칭

안내서가 나온 것과 별개로, 지금 한국 AI 저작권의 실질적 전선은 법원 안에 있다.

지상파 3사는 2025년 1월 네이버를 고소하면서 침해 주장 기사 9만 7000여 건의 목록을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제63민사부는 3차 변론에서 "공정이용에 대한 항변은 안 나올 수가 없다"며 양측에 공정이용 관련 주장과 근거 제출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개별 저작물을 일일이 특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저작권법 제7조 제5호상 시사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두 측면으로 나뉜다. 첫째, 네이버가 콘텐트 제휴 이용약관을 통해 AI 학습 목적의 이용 권한까지 취득했는가. 둘째, 설령 약관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시사보도 성격의 뉴스가 공정이용에 해당하는가. 네이버 측은 "사실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는 저작권법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고 있어 지상파 3사가 약관 해석에서 우위를 점하더라도 공정이용 쟁점이라는 두 번째 관문이 남는다. 다음 4차 변론은 2026년 4월 9일로 예정되어 있다.

지상파 3사는 3차 변론에서 앤트로픽 소송 사례를 재판부에 직접 설명했다. 앤트로픽이 2025년 9월 베스트셀러 작가 그룹과의 소송에서 15억 달러 합의에 응하고 미국 법원이 승인한 선례다. 국내 법원이 이 사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판결의 방향을 가를 수 있다.

한국과 UK: 다른 경로, 같은 공백

영국 정부는 2026년 3월 18일 AI 저작권 옵트아웃 방식을 철회했지만 새 입법도 구속력 있는 라이선스 코드도 내놓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같은 시기 공정이용 안내서를 냈지만, 법적 구속력 없는 참고자료에 그쳤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방식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공백에 도착했다. 영국은 나쁜 선택지를 막았지만 좋은 선택지를 만들지 못했고, 한국은 판단 기준을 제시했지만 구속력 있는 보호 장치를 만들지 못했다. 법원이 판례를 쌓아가며 공백을 채워야 하는 구조는 양국이 같다.

한국이 UK와 다른 지점도 있다. 오픈AI는 해외 44개 이상의 언론사와 연간 최대 500만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고 알려졌지만 국내 지상파 3사와의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협상 결렬이 아니다. AI 기업이 협상 대상을 선별하는 구조, 즉 글로벌 영향력이 있는 미디어는 계약 파트너로 삼고 그렇지 않은 곳은 무단 학습 상태로 방치하는 구조의 문제다.

이 구조에서 한국의 창작자들은 협상력의 비대칭에 노출되어 있다. 법원이 공정이용 판단을 어떻게 내리느냐가 이 비대칭을 법적으로 어떻게 조정할지를 결정한다. 그것이 4월 9일 4차 변론의 실질적 의미다.

안내서가 답하지 않은 질문

공정이용 안내서는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안내서가 줄인 불확실성은 주로 AI 개발사가 "어떻게 하면 공정이용 항변을 유리하게 구성할 수 있는가"의 영역이다. 창작자 입장에서 더 본질적인 질문, AI 기업이 이미 수집하고 학습시킨 저작물에 대해 누가, 어떻게, 얼마의 보상을 받는가에 대해서는 안내서 어디에도 답이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십억 개의 저작물이 학습 데이터로 쓰였다는 사실은 안내서가 나왔든 소송이 진행 중이든 지워지지 않는다. 법과 가이드라인이 이 사실을 처리하는 방식을 아직 정하지 못한 동안, 그 데이터는 이미 모델 안에 있다.

UK가 빈 책으로 저항했다면 한국은 법정에서 싸우고 있다. 두 방식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법정 싸움에서는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쪽이 더 오래, 더 정밀하게 싸울 수 있다. 안내서가 참고자료에 그치는 동안, 그리고 소송이 판례를 쌓는 동안 기술적 보호조치를 갖추지 못한 창작자도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가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남는다. 가이드라인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 아니면 입법이 필요한 질문인지. 그것은 이 글이 아니라 4월 9일 이후의 판결문이 답하기 시작할 것이다.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