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4] 파트너십과 소송 사이: AI와 언론의 구조적 공모
가디언은 AI 저작권 비판 기사를 쓴 지 사흘 만에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NYT는 오픈AI를 고소하면서 내부에서 오픈AI API를 쓴다. 이것은 위선인가, 아니면 구조적 공모인가. AI 시대 대형 언론이 처한 불가피한 딜레마를 해부한다. 여전히 비판과 생존이 충돌하는 곳에서 협상력 없는 창작자들은 이 논쟁의 바깥에 있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1일
2025년 2월 11일, 가디언은 AI 기업들의 콘텐트 무단 사용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2월 12일에는 오피니언을 하나 더 실었다. 그리고 2월 14일, 가디언은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Guardian press release). 가디언의 저널리즘과 200년 치 아카이브가 챗지피티의 뉴스 소스로 제공되고, 가디언은 챗지피티 엔터프라이즈를 내부에 도입해 새 제품과 기능을 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사흘 간격이었다. 비판과 계약 사이의 간극이 그 정도였다.
그리고 파트너십 체결 약 1년 뒤인 2026년 3월, 가디언은 "Quit ChatGPT: right now!"라는 제목의 보이콧 촉구 칼럼을 실었다(Guardian 칼럼). 오픈AI가 이민단속기관(ICE)에 AI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파트너십은 유지된 채로.
이것은 가디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송과 허가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23년 12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수십억 달러 배상"을 요구하며 오픈AI가 NYT 기사 수백만 건을 무단으로 학습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2026년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2025년 2월 17일,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던 바로 그 시점에 NYT는 내부적으로 AI 도구 전면 허용을 발표했다. 오픈AI API 사용이 법무팀 승인 조건 하에 허가됐고, 내부 AI 도구 'Echo'가 론칭됐으며, 깃허브 코파일럿, 구글 버텍스(Vertex) AI, 노트북LM도 허용 목록에 올랐다. 미디어 전문 매체 니먼 랩(Nieman Lab)은 이 상황을 "소송하면서 동시에 AI 도구를 허용한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Nieman Lab 기사). 소송 중인 오픈AI의 API를 뉴스룸에 들인 것은 그 오픈AI가 모든 사람의 데이터로 학습시킨 모델을 자사 저널리즘에 활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법무팀은 법정에서 싸우고 편집국은 같은 회사의 도구로 기사를 쓴다. 이것을 위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구조적 공모라는 개념
위선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위선은 개인이나 조직이 믿지 않는 것을 믿는 척할 때 성립한다. 그러나 가디언과 NYT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그들은 AI 기업의 저작권 침해를 진심으로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 AI 기업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도 진심으로 알고 있다. 믿는 것과 하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둘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구조적 공모(structural complicity)다.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불가피한 공모 관계. AI 기업을 비판하려면 그 AI 기업과 관계를 끊어야 하는데, 관계를 끊으면 챗지피티 수억 명 이용자에게 닿는 배포 채널이 사라진다. 관계를 유지하면 비판의 논리적 일관성이 흔들린다. 어느 쪽을 택해도 비용이 있다.
하버드 랩 리뷰(Harvard Law Review)는 NYT의 이 구조를 더 깊은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했다(Harvard Law Review 블로그). NYT는 1997년 Tasini 사건에서 자사 프리랜서 기자들을 상대로 싸울 때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당시 NYT는 기술 발전이 저해된다는 논거를 내세워 디지털 아카이브 이용이 기존 저작권법 범위 내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오픈AI를 상대로 "저작권이 기술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익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원칙이 달라진다. 이것을 단순히 위선이라고 부르기엔 언론사가 처한 경제적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
반론: 언론은 원래 불순한 돈으로 살아남았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 반론이 있다.
첫째, 비판과 참여는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디언의 CFO 케이스 언더우드(Keith Underwood)는 파트너십 발표에서 "이 협력은 저작권 및 저널리즘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공정한 보상과 출처 표기를 확보했으니 무단 학습을 방치하는 것보다 계약을 통해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 창작자 보호에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다.
둘째, 언론은 원래 이해충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현실론이다. 담배 광고를 실으면서 흡연 폐해를 보도했고 대기업 광고를 받으면서 그 대기업을 비판했다. 이 긴장이 언론의 역사 자체다. AI 파트너십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두 반론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담배 광고 비유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담배 광고는 언론사의 편집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거래였다. 담배 회사는 뉴스룸에 도구를 제공하지 않았고, 언론의 기능 자체를 대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AI 기업은 다르다. 언론사가 오픈AI에 아카이브를 제공하는 행위는 오픈AI가 그 아카이브를 학습해 언론사의 기능을 점진적으로 대체하는 도구를 고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자신의 핵심 자산을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에게 제공하는 구조다.
협상력의 문제
오픈AI는 AP, Financial Times, Axel Springer, News Corp 등 44개 이상의 언론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건당 연간 최대 500만 달러 규모다. 그런데 한국 지상파 3사와는 협상이 성사되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졌다. 어떤 언론사는 계약하고 어떤 언론사는 소송한다.
이 차이는 원칙의 차이가 아니다. 협상력의 차이다. 오픈AI가 계약 파트너로 선택하는 언론사는 글로벌 영향력이 있는 곳이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언론사는 무단 학습 상태로 방치되거나 법정 싸움을 택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 공모는 협상력이 있는 자들의 선택지다. 협상력이 없는 자들에게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이것이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권력 구조다. 영국 작가들이 빈 책을 들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조직화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지상파 3사가 법정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소송 비용을 감당할 재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디언이 파트너십을 협상할 수 있었던 것은 200년 치 아카이브라는 협상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없는 창작자들은, 이 모든 논쟁의 바깥에 있다.
비판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조적 공모 앞에서 비판은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가디언이 오픈AI와 계약한 뒤에도 AI 저작권 문제를 비판하는 사설을 이어 간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편집국 내부와 독자 사이에서 다투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비판이 일관성을 잃었다고 해서 그 비판의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담배 광고를 실으면서 쓴 흡연 폐해 기사가 담배 광고 때문에 틀린 기사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그러나 비판의 신뢰도는 다르다. 파트너십을 맺은 언론사가 "창작자를 보호하라"고 요구할 때, 독자는 그 요구 뒤에 있는 이해관계를 함께 읽는다. 보호받아야 할 창작자는 누구인가. 대형 언론사인가, 아니면 협상 테이블에 없는 개인 작가인가. 그 구분이 흐려질 때, 비판은 권리 주장으로 독해된다.
결국 이 시리즈가 도달한 곳은 하나의 질문이다. AI 시대에 저작권 싸움을 주도하는 주체들이 동시에 그 싸움의 대상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 구조를 해소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이 저널리즘이 AI에 대해 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빈 책은 채워졌는가. 아직 아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누가 그 책을 들고 있었는지를 안다.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