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2주기: 사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지우는 방법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어도 23명이 죽은 공장 대표가 징역 4년을 받는다. 법이 없는 것과 법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리셀 항소심은 강제된 합의를 감형 사유로 썼고, 유족이 살기 위해 받은 돈이 가해자의 징역 11년을 깎는 데 쓰였다. 돈, 로펌, 전관예우, 위헌 신청이라는 시간 벌기 - 사법부가 법을 무력화하는 구조를 분석한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6월 26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데도 23명이 죽은 공장 대표가 징역 4년을 선고받는다면, 그 법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여러분이 노동자라면 이 질문이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공장이, 창고가, 공사 현장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법이 있다고 들었다. 사장이 책임진다고 했다. 그런데 2026년 6월 24일, 아리셀 참사 2주기 현장에서 유족들이 다시 묻는다. 2년이 지났는데 해결된 게 뭐가 있냐고.
[사실]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 전곡산업단지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숨졌다. 희생자 다수는 중국·라오스 국적 이주노동자였다. 비상구 확보 없음, 모국어 안전 매뉴얼 없음, 비상 대피 훈련 없음.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26년 4월 22일, 항소심은 이를 징역 4년으로 뒤집었다.
11년이 지워졌다.
합의는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감형의 주된 이유는 "유족 전원과 합의"였다. 표면만 보면 납득할 수 있는 논리다. 피해를 회복했으니 처벌을 낮춘다. 그런데 이 합의가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기업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은 막다른 길에 몰려 생계 유지를 위하여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결국 기업은 "합의가 되었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며, 이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이 경고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합의를 감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오히려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만든다"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합의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사실] 아리셀 측 변호사단은 유족들이 법률지원단을 대리인으로 선임한 걸 알면서도 개별 유족에게 직접 합의안을 보냈다. 변호사끼리의 윤리 규칙도 어긴 것이었다. 변호사 윤리규약 제45조는 대리인이 있는 상대방에게 직접 접촉하는 걸 금한다. 그 문서에는 두 가지 내용이 함께 적혀 있었다. 기한 안에 합의하면 돈을 더 얹어주겠다는 것, 기한이 지나면 법원 공탁소에 돈을 맡기겠다는 것. 공탁은 유족이 청구하면 받을 수 있지만, 받는 순간 합의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받아도 합의, 거절해도 돈을 못 받는 구조였다. 합의금을 받으려면 처벌불원서에 먼저 서명해야 했다. 화성시의 외국인 유족 숙소 지원이 끝나자 갈 곳이 없어진 이주노동자 유족들은 서둘러 합의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보상 기준에는 국적 차별이 있었다. 아리셀 측은 처음에 중국 동포 유족에게 중국 길림성 임금 기준 보상안을 내밀었다. 길림성은 중국 동북 3성 중 임금이 가장 낮은 곳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수정안을 냈지만 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인·영주권자에게는 건설업 보통 인부 임금(일 16만 5,545원)을, 재외동포·고용허가 비자 유족에게는 수동 물품 포장원 임금(일 8만 6,768원)을 적용했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다 죽었는데, 비자 종류에 따라 보상금이 두 배 차이가 났다.
[의견] 두 재판부의 논리를 나란히 놓으면 법원이 스스로 모순 안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심은 "강제된 합의를 감형 사유로 쓰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고, 2심은 "합의를 감형에 반영하지 않으면 피해 회복 노력이 위축된다"고 했다. 두 주장이 동시에 옳을 수는 없다. 그리고 두 주장 중 어느 쪽이 23명을 잃은 유족 현실에 더 가까운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사실]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히겠다는 피해자 대리인의 진술 신청을 "합의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말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며 거부했다. 합의를 양형에 쓰겠다면서 그 합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합의가 됐는데 왜 유족이 억울해하는가. 돈 받고 나서 더 달라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합의와 형사 처벌은 다른 문제다. 교통사고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인 운전자가 있다. 유족이 장례비와 생계비가 급해 운전자 측과 손해배상 합의를 했다. 그렇다고 음주운전 형사 처벌이 사라지는가. 아니다. 민사 합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돈을 받은 것이고, 형사 처벌은 국가가 사회 질서를 어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둘은 처음부터 다른 문제다. 유족이 합의한 건 살기 위해서였지 박순관을 용서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항소심은 그 합의를 형사 감형의 핵심 근거로 썼다. 유족이 생계를 위해 받은 돈이 가해자의 징역을 11년 깎는 데 쓰인 것이다.
[사실] 남편을 잃은 유족 최현주씨는 이렇게 말했다. "합의는 살기 위해서였는데, 이런 판결이 나서 내 선택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유족 측 법률지원단장 신하나 변호사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 "법조문을 직접 부정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 법이 무력하다고 선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법을 깨지 않고 법을 무력화하는 방법. 그것이 이 항소심이 한 일이다.
법이 없는 것과 법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것
법의 부재와 법의 공동화는 다른 문제다. 오히려 후자가 더 위험하다.
법이 없으면 싸울 대상이 명확하다. 법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법이 있는데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우리는 이 문제를 이미 해결했다"는 착각 안에 머문다. 중처법이 있으니 기업 대표가 책임진다고. 안전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고.
[사실] 현실은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2026년 3월 기준 선고가 끝난 중처법 위반 사건 101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6건, 5.94%에 불과했다. 나머지 80건, 79.2%는 집행유예였다. 기업 입장에서 계산은 간단하다. 산재 발생 > 김앤장 선임 > 유족과 합의 > 집행유예. 예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후 처리가 훨씬 싸게 먹힌다. 중처법은 예방 도구가 아니라 사후 처리 매뉴얼이 된 것이다.
[사실] 아리셀은 참사 직후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기소 뒤에도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채 합의 작업에 집중했다. 안전 설비 개선이나 재발 방지가 아니라 법률 대응과 합의가 먼저였다. 결과는 알려져 있다. 11년이 지워졌다.
전관예우라는 구조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판사들은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반복하는가.
답은 개인 도덕 문제가 아니다. 구조 문제다. 한국 법조계에는 '전관예우'라는 오래된 회로가 있다. 고위 법관이 퇴임하면 대형 로펌이 '모셔간다'. [사실] 법조계 관행을 보면 2000년대 중반 분석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퇴임 뒤 3년간 수임하는 사건의 88%가 대법원 사건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법원 사건 절반 이상이 심리불속행으로 막히는 현실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 이름이 소송대리인 명단에 올라가야 그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법조계에 퍼져 있다. 대법관 출신이 대형 로펌에서 받는 연봉은 최고 27억 원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다. 재임 중 판결이 퇴임 뒤 경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 이 이해관계 구조가 있는 한, '왜 대형 자본에 유리한 판결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미 답이 들어 있다.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대형 로펌과 그 의뢰인인 기업이고 유리한 판결을 기대하며 재판에 임하는 것은 전관 카드를 쥔 피고인이며 이 회로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합의서에 서명한 유족과 다음 참사 피해자다.
조희대 대법원이 있는 자리
지금 이 사건은 대법원 상고심 진행 중이다. [사실] 조희대는 2023년 12월 윤석열 내란수괴 정부에서 임명됐다. 그 전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으로 지명됐다. 다 알다시피 조희대는 2025년 5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2심 무죄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상 유례없는 속도의 심리였다.
[의견] 조희대 대법원이 아리셀 상고심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지 나는 모른다. 예단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전관예우는 판사들이 퇴임 후 대형 로펌으로 가는 길을 닦아놓는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을 순수한 법리 판단으로만 읽을 수 있다면 그건 믿음이지 판단이 아니다. 의심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다. 쌓인 사실들이 만들어낸 결론이다. 그러니까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사실] 박순관은 대법원에 중처법 자체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신청했다. 이게 받아들여지면 사건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재판이 지연된다. 형사 책임을 법리 논쟁으로 바꾸는 전략. 합의로 감형을 얻은 다음, 법 자체를 흔들려는 다음 수. 그런데 법학자 다수는 중처법이 위헌으로 볼 만큼 모호하거나 형량이 과도하지 않다고 본다. 위헌 신청의 실질은 법리 다툼이 아니라 시간 벌기라는 이야기다.
2주기에 나온 목소리
[사실] 2026년 6월 24일, 기본소득당 노동·안전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2주기를 맞아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은 이번 참사를 "위험의 외주화를 넘은 죽음의 이주화"로 규정하고, 항소심 감형이 중처법의 본래 취지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아리셀 측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서는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뻔뻔한 태도"라고 직접 표현했다. 대법원을 향해서는 "2심 판결을 바로잡고 책임에 상응하는 합당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향후 중처법 적용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실] 중처법 시행 4년이 넘은 2026년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처음으로 중처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신설 심의에 착수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양형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다. 판사가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핵심은 기준이 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쓰이느냐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데도 23명이 죽은 공장 대표가 징역 4년을 선고받는다면, 그 법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법이 있다는 사실은 있다. 그러나 법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아직 없다. 법이 작동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돈, 로펌, 강제된 합의, 전관 회로, 위헌 신청이라는 시간 벌기.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끊기지 않는 한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쿠팡에서 이 사실을 경험했다.
[사실] 아리셀 공장 안에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유해가 있다. 유족들은 2년 동안 "손톱 하나라도 찾아서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고 호소해왔다. 경찰은 수사가 끝났다며 관여하기 어렵다고 했고, 경기도는 사유지라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법은 그 유해에도 닿지 못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낡은 말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리셀 2주기가 그 말의 현재형을 보여준다.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