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소셜을 받아쓰는 기자들은 쪽팔리지 않을까

WSJ 기자들은 오늘도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을 새로고침하며 다음 게시물을 기다린다. 취재가 아니라 모니터링이다. 이것은 언론의 타락이 아니다. 플랫폼이 만든 인센티브 구조의 결과다. 로이터 인스티튜트는 이 구조가 51개국에서 복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소셜미디어를 받아쓰는 동안 잃어가는 세 가지를 해부한다.

어두운 공간에서 녹슨 철문 옆으로 붉은 알림 배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왼쪽에서 신문 더미가 픽셀로 흩어지며 오른쪽에서 새로고침 화살표가 빙글빙글 돈다.
알림은 게이트를 거치지 않는다. 그래서 게이트는 이제 장식이다. ©RayLogue: AI-created image(Chatgpt)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19일

2026년 4월,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란 관련 속보는 온통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 얘기뿐이다. 트럼프가 하루에도 수십 번 올리는 게시물을 모두 뉴스라고 가져온다. 그걸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저 기자들도 스스로 좀 쪽팔리지 않을까.

틀린 말이 아니다. WSJ는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들이 일하는 곳이다. 탐사보도의 전통이 있고 권력을 검증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신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기자들이 하는 일은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피드를 새로고침하며 다음 게시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취재가 아니라 모니터링이다. 이것이 오늘날 저널리즘이 처한 구조적 자괴감의 정체다.

WSJ가 트루스 소셜에 올라온 이야기를 기사에 올린 사례. 트럼프의 소셜 메시지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예수로 그려낸 미친 짓까지.

트럼프가 보여준 극단의 형태

로이터 인스티튜트(Reuters Institute)가 51개국 280명의 미디어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연간 조사에서 응답자 다수가 "트럼프는 플레이북으로 기존 언론을 피해 직접 대중에게 소통하고 비판적 보도를 압박하며 불리한 보도에는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는 방식을 반복해왔다. 문제는 이 방식이 이제 미국에만 국한된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정치권에서 점점 더 흔한 전술로 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답했다. 이 "플레이북"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작동하는 사례가 바로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이다.

트럼프는 이란에 이런 저런 시한을 걸었다가 풀기를 반복하고 교황을 공격하고 자신을 예수처럼 묘사한 AI 이미지를 올렸다가 삭제한다. NPR의 분석대로,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콘텐트가 통치이고, 통치가 콘텐트"다. DOGE의 정책 방향이 X의 온라인 제안에서 시작됐고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소셜미디어 출력본을 들고 나타난다. 2026년 1월 WaPo 기자 자택을 FBI가 압수수색했고, 백악관 웹사이트에 언론사를 공개 목록화하는 "Offender Hall of Shame" 코너를 개설했다.

이 구조에서 언론이 단기적으로 취하기 쉬운 선택지는 두 가지처럼 보인다. 받아쓰거나 무시하거나. 그런데 무시하면 뒤처진다. 트럼프의 게시물은 시장을 움직이고 외교 일정을 바꾸고, 전쟁의 언어를 유통시킨다. 무시하기 어려운 발언이 있다는 사실과, 그 발언을 어떤 형식으로 다룰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언론은 발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건으로 처리한다. 발언이 만들어내는 현실 효과보다 발언의 연극성과 자극성이 먼저 기사가 된다.

게이트키핑이 사라진 자리

언론학에서 게이트키핑(gatekeeping)은 단순히 "정보를 막는 것"이 아니다.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 1947년 사회심리학에서 처음 제안하고 데이비드 매닝 화이트(David Manning White)가 1950년 저널리즘에 적용한 이 개념의 원래 의미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적절한 채널을 통해 유통되도록 하는 선별과 판단의 기능이었다. 어떤 정보가 공론장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

권력자가 "게이트키퍼를 제거하는 것이 투명성"이라고 주장할 때 그들이 실제로 제거하는 것은 왜곡이 아니다. 검증이다. 물론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편향, 자본 종속, 접근 저널리즘의 문제는 수도 없다. 그러나 그 결함이 게이트키핑의 필요성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의사가 오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단이라는 행위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언론이 정치인의 소셜미디어를 받아쓰는 구조에서 실제로 무엇을 잃는가.

첫째, 의제설정 능력이다. 언론이 어떤 발언을 보도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무엇을 올렸는지가 그날의 뉴스를 결정한다. 의제설정 이론(McCombs & Shaw, 1972)이 전제했던 방향, 그러니까 언론이 공중의 주의를 조직하는 방향이 뒤집힌다. 공중의 주의는 이미 플랫폼에 가 있고, 언론은 그것을 뒤따른다.

둘째, 검증 우선순위가 무너진다. 플랫폼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검증보다 게시가 먼저다. 트럼프의 이란 관련 트루스 소셜 게시물에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수치가 포함됐다. 언론이 이것을 받아쓰는 순간, 미검증 정보의 유통에 공신력을 빌려주는 셈이다.

셋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권위의 근거가 사라진다. 언론의 권위는 더 많이 아는 데서 오지 않는다. 무엇을 기사로 만들지 않을지 결정하는 절제에서 온다. 정치인의 모든 게시물을 속보로 처리하는 순간 언론은 편집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편집 판단을 포기한 언론은 플랫폼의 알림 기능과 다를 바가 없다.

구조는 바꿀 수 있다

언론이 이 구조에 수렴하는 이유는 인센티브 때문이다. 플랫폼은 직접 발화자에게 즉각적 반응과 증폭을 제공한다. 언론을 경유하면 프레이밍 위험과 보도 지연이라는 비용이 생긴다. 많은 권력자가 플랫폼을 선택하게 되고, 언론은 그 선택의 결과물을 받아쓰게 된다. 로이터 인스티튜트가 "트럼프 2.0 플레이북이 51개국에서 복제된다"고 분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제는 모방이 아니라 수렴이다. 같은 플랫폼 구조가 같은 인센티브를 만들고, 같은 인센티브가 같은 전략을 낳는다.

퓨 리서치(Pew Research)의 24개국 조사(2023년 봄 실시, 2024년 2월 공개)에 따르면 24개국 응답자의 중앙값(median) 74%가 "선출 공무원이 평범한 시민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치 불신과 언론 불신이 동시에 최고조다. 정치인의 소셜미디어를 받아쓰는 언론은 이 두 불신의 진원지를 하나의 기사로 연결하는 셈이다.

받아쓰기는 구조의 문제이고, 구조는 바꿀 수 있다. 다만 그 변화는 개별 기자의 윤리적 결단이 아니라 편집 설계의 재구성에서 온다. 무엇을 쓸지보다 어떻게 쓸지의 문제다. 정치인이 무엇을 말했는지가 아니라 그 말이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가 기사의 첫 문장이 되어야 한다. 발언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을 해부하는 것. 그것이 플랫폼 알림과 언론을 가르는 마지막 선이다.

WSJ 기자들이 스스로 자괴감을 갖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자괴감이 있다면, 그것은 타락의 신호가 아니라 저널리즘이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그 감각을 편집 설계로 바꾸는 일이다. 이 구조가 강해질수록, 언론은 더 빠르게 반응하되 더 느리게 검증하고, 더 많이 전하되 더 적게 판단하는 쪽으로 끌려간다. 그 수렴을 거슬러 올라가는 편집 원칙을 다시 설계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국 플랫폼의 알림 기능과 구별되지 않게 된다. / raylogue

FAQ

Q1. 왜 정치인의 소셜미디어가 뉴스의 원천이 되면 문제가 되나?

발언이 사실인지, 맥락이 무엇인지, 어떤 이해관계를 반영하는지 확인되기 전에 게시된 자체가 사건이 되기 쉽다. 이때 언론은 검증, 맥락화보다 전달 속도를 우선하게 되고 미검증 정보에 공신력이 덧씌워질 위험이 커진다.

Q2. 받아쓰기 보도와 해부(검증, 분석) 보도는 무엇이 다른가?

받아쓰기는 “무슨 말을 했다”를 곧바로 사건으로 삼는다. 해부 보도는 같은 발언을 다루더라도 (1) 사실 여부, (2) 빠진 맥락, (3) 현실에 미치는 효과를 먼저 배치해 ‘발언 자체’가 아니라 ‘발언의 진실/효과’를 기사 중심에 둔다.

Q3. 게이트키핑은 ‘검열’과 어떻게 다른가?

검열은 정보를 차단하는 행위에 가깝지만, 게이트키핑은 공적 의제에 들어올 정보를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검증의 기준을 적용하는 편집 기능이다. 결함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 결함이 곧 ‘불필요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Q4. 플랫폼 구조가 언론을 ‘알림 기능’처럼 만들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나?

속보 경쟁을 전제로 하더라도, (1) 발언 원문과 팩트의 구분, (2) 핵심 주장별 근거 제시, (3) ‘확인되지 않음’의 명시, (4) 후속 정정/업데이트 규칙 같은 편집 설계를 고정해야 한다. “빨리 쓰되, 먼저 검증하는” 순서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Q5. “선출 공무원이 시민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인식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

Pew Research Center의 24개국 글로벌 조사(2023년 봄 실시, 2024년 2월 공개)에서, 24개국 응답자의 중앙값 74%가 “선출 공무원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