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권력을 남용한 자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나치다

대한민국 법제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특별한 권력이 있었던 자에게만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국가권력을 남용한 자를 지키는 도구로 역전되는 순간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원칙을 왜곡한 판결이다.

어두운 인디고 공간에 떠 있는 청동 방패의 왼쪽 면에 은빛 인물 조각이, 오른쪽 면에 기관 인장 부조가 새겨지고, 가운데 균열에서 차가운 빛이 새어나오며, 주변에 기울어진 모래시계들이 배치된 추상 구성
방패의 두 면이 서로 다른 주인을 새기고 있다. ©RayLogue: AI-created image(Chatgpt)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5월 9일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목격자였다.

내란수괴 윤은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방송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직접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군 병력이 국회로 진입했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었으며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봉쇄됐다. 수천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방송 영상은 남았고 명령 계통은 기록됐으며 행위자들은 스스로 말했다. 이 정도로 공개적이고 밀도 높은 증거를 남긴 내란 혐의 사건은 근현대 법정 역사에서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재판은 계속 무죄추정을 전제로 굴러간다. 법원은 2026년 2월 19일 1심 결론을 내놓았고 그 뒤로도 항소심과 상고심의 절차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원칙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원칙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0. 타임라인: 공연한 사실과 절차가 맞부딪힌 지점

  • 2026-02-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1심에서 윤석열에게 무기징역 선고.서울중앙지법 1심 보도
    • 재판부는 국헌문란의 목적 및 폭동 행위가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서울신문
    • 내란특검 구형은 사형이었다.MBC
    • 공범들에 대한 형도 함께 선고됐다.서울신문
    • 다만 김용군, 윤승영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경향신문
  • 2026-04-27: 내란 항소심 시작.
  • 2026-04-29: 체포방해 항소심에서 징역 7년 선고.관련 정리
  • 2026-04-30: 체포방해 항소심 판결에 피고인 측·특검 측 동시 상고.관련 정리

이 타임라인이 말해주는 핵심은 단순하다. 시민은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중계로 목격했다. 그러나 사법 제도는 절차가 끝나야 판단할 수 있다면서 시간을 끈다. 그 시민이 목격한 것과 사법 제도 절차 사이의 간극을 벌리는 장치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

1. 무죄추정은 실제로 옳게 작동해야 한다

공범 중 두 명에게 선고된 무죄 판결은 무죄추정 원칙이 제 기능을 한 사례다. 재판부는 국회 봉쇄에 관여하지 않았고 국헌문란 목적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용군과 윤승영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경향신문

내란죄는 형법 제87조에 따라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경우에만 성립한다. 사건에 물리적으로 연루됐더라도 그 목적과 인식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은 유죄가 아니다. 무죄추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 원칙이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실제로 보호한다. 물론 그 보호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법적으로도 옳은지와는 별개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무죄가 원칙의 정당성을 증명했는지와 원칙이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만 작동하는지에 관한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2. 원칙이 내장한 도덕적 선택: 무엇을 더 두려워할 것인가

미국 법철학자 래리 로던(Larry Laudan)은 2006년 저서 <진실, 오류, 그리고 형사법>(원제: Truth, Error, and Criminal Law)에서 무죄추정 원칙을 구조적으로 해체했다. 그에 따르면 형사사법에는 두 종류의 오류가 있다.

  •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확정하는 오류
  • 실제 유죄인 사람을 놓아주는 오류

현재의 무죄추정 원칙과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기준은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확정하는 오류를 막는 데 집중한 결과 실제 유죄인 자들을 놓아주는 오류를 사회가 감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로던의 경험적 추정에 따르면 미국 폭력 범죄 사건에서 법관들이 실제로 유죄인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한 비율은 약 75~80%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관련 글

이것은 도덕적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익을 더 크게 누리는 자는 시간, 비용, 변호인 선임 능력, 지연을 감당할 수 있는 자이다. 1심 이후에도 항소심, 상고심이 이어지는 현실은 그 지연을 감당하는 능력이 누구에게 편향되는지 다시 보여준다.관련 정리

3. 내란은 피고인이 국가권력 그 자체였을 때 벌어졌다

무죄추정은 개인 대 국가라는 구도 위에 서 있다. 수사기관과 검찰의 막강한 권력 앞에 홀로 선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원칙이다. 그런데 내란 사건에서 그 구도가 성립하는가.

내란 혐의를 받은 피고인은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였다. 계엄을 명령한 것도 군 병력을 국회로 보낸 것도 전국 방송 앞에 서서 선포한 것도 그였다. 그는 국가권력의 외부에서 저항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정점에서 그 권력을 도구로 사용했다. 그래서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영국 법철학자 앤토니 더프(Antony Duff)는 형사재판을 공동체가 공적 규범을 어긴 구성원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공적 권력을 위임받은 공직자가 그 권력을 어떻게 행사했는지에 대해 공동체에게 당연히 해명해야 한다. 더프 자신은 이 해명 구조를 무죄추정을 완화하는 논거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틀을 이 사건에 대입하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문제는 공직자의 해명이 정의를 실현하는 속도로 작동하느냐이다.

무죄추정은 힘없는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홀로 설 때를 위한 원칙이다.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던 자가 그 원칙 뒤에 서는 것은 원칙이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며 그 자체로 무죄추정 원칙의 본질을 훼손한다.

4. 공연한 사실 앞에서 비겁해진 재판

전국으로 중계된 계엄 선포 장면, 확인된 군 병력 동원 기록, 명령 계통을 증언한 당사자들, 헌법 위반을 만장일치로 확정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더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까지 쌓인 위에서 항소심과 상고심은 다시 무죄추정의 문을 열고 심리를 시작한다.

물론 이것이 필요한 절차이고 오판의 가능성을 다단계로 검증하는 것이 사법 신뢰의 기반임을 안다. 그러나 이 긴 과정이 정의를 정교하게 실현하는 절차인지 아니면 자원을 가진 피고인이 결과를 지연시키는 제도적 통로인지를 계속 물을 수밖에 없다.

베이지안 확률은 새로운 증거가 들어올 때마다 믿음의 정도를 확률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방식, 사전확률(prior)에서 사후확률(posterior)로 갱신하는 사고틀을 말한다. 이 확률로 표현하자면, 처음의 믿음(사전확률)이 새 증거마다 업데이트되어 사후확률이 충분히 높아진 뒤에도, 특히 사실 심리 없이 법 해석만을 다루는 상고심 단계에서까지 법원이 다시 사전확률로 돌아가는 것이 인식론적 합리성인지 아니면 절차의 의례인지 묻는 것이다.

5. 무죄추정이 옳게 작동한 순간 논의는 더 어렵다

동시에 두 명이 무죄로 풀려난 사실을 다시 짚어야 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것은 무죄추정 원칙이 작동한 결과였다. 그들이 사건의 물리적 공간에 있었더라도 국헌문란의 목적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내란의 공범이 아니다. 법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고 무죄추정은 그 설계가 실제로 관철되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뿐 아니라 그 밤 군복을 입고 동원된 모든 이가 처벌받는 상황도 정의가 아니다.

그래서 논점은 다시 한번 좁아진다. 무죄추정 원칙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원칙이 약자 보호라는 본래 기능을 하는 경우와 공직자가 공적 권한으로 행한 공적 행위를 방패 삼아 절차를 지연의 도구로 쓰는 경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제도적 미성숙이다.

6. 세 가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첫째, 공직자가 공적 권한으로 행한 공적 행위에 대해서는 재산 몰수와 공직 박탈, 민사적 책임 추궁이 형사 무죄추정과 별개의 트랙으로 더 신속하게 작동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이미 이 방향이다. 영국의 범죄수익법(2002), UN 부패방지협약(UNCAC) 5장, 한국의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2026년 3월 6일 시행)이 모두 같은 취지를 담고 있다.법령정보

둘째, 절차적 무기 평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재판의 신속성과 국선변호의 질, 항소심과 상고심의 심리 기간 모두가 자원의 불평등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무죄추정 원칙이 약자를 위한 방패가 되려면 그 방패를 드는 힘이 강자에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 공연한 사실에 대한 사회적 판단과 법적 판단이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릴 때까지 사회가 어떤 판단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법원이 그 과정에서 사회적 현실을 외면해도 된다는 주장은 모두 틀렸다.

국가권력을 남용한 자를 용납해선 안된다

2026년 5월 현재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4일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그 밤을 목격한 수천만 명의 기억이 있고 8인 재판관의 결정이 헌법 역사에 이미 새겨져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국가권력을 남용한 자를 지키는 도구로 역전되는 순간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원칙을 왜곡한 판결이다. 그 구분을 잃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법 감각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FAQ

Q1.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 피고인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하고, 유죄 입증의 책임을 전적으로 검사에게 부과하는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이다. 한국에서는 헌법 제27조 4항과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에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1789)과 세계인권선언(1948)을 거쳐 현대 형사법의 핵심 원칙으로 정착했으며, 국가권력 앞에 홀로 선 개인을 보호하고 오판을 방지하는 것이 이 원칙의 설계 목적이다.

Q2. 래리 로던(Larry Laudan)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떻게 비판했는가?
미국 법철학자 래리 로던은 2006년 저서 <진실, 오류, 그리고 형사법>(원제: Truth, Error, and Criminal Law)에서 현행 무죄추정 원칙과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기준이 무고한 자의 유죄 확정을 막는 데 치우쳐, 실제 유죄인 피고인이 방면되는 오류를 사회가 과도하게 감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경험적 추정에 따르면 미국 폭력 범죄 사건에서 실제 유죄인 피고인이 무죄로 방면되는 비율이 약 75~80%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선택은 중립적 기술이 아니라 사회가 어떤 오류를 더 두려워할 것인가에 대한 도덕적 선택이며, 그 선택의 이익은 시간·비용·변호인 자원을 갖춘 강자에게 편향된다.

Q3. 윤석열 내란 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국가권력 앞에 홀로 선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원칙이다. 그러나 윤석열 내란 사건에서 피고인은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로서 국가권력의 정점에서 그 권력을 직접 행사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4일 재판관 8인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고, 서울중앙지법은 2026년 2월 19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다시 무죄추정이 적용되는 구조는 '개인 대 국가'라는 원칙의 설계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사건에서 원칙의 본질이 역전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Q4. 앤토니 더프(Antony Duff)의 공공 잘못 이론이란 무엇인가?
영국 법철학자 앤토니 더프는 형사재판을 공동체가 공적 규범을 어긴 구성원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의 '공공 잘못'(public wrongs) 이론에 따르면 범죄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침해를 넘어 공동체 전체에 대한 공적 규범 위반이다. 더프 자신은 이 해명 구조를 무죄추정 완화의 논거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틀을 내란 사건에 대입하면, 공적 권력을 위임받은 공직자가 그 권력을 헌법 질서 파괴에 사용한 경우 공동체에 대한 해명 의무가 가장 무거운 형태로 발생한다는 문제의식이 도출된다.

Q5. 무죄추정의 원칙과 관련해 어떤 제도적 개혁이 필요한가?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공직자가 공적 권한으로 행한 행위에 대해서는 재산 몰수·공직 박탈·민사 책임 추궁이 형사 무죄추정과 별개의 트랙으로 더 신속하게 작동해야 한다. 한국의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2026년 3월 6일 시행)이 이 방향이다. 둘째, 재판의 신속성과 국선변호의 질이 피고인의 자원 규모에 따라 왜곡되지 않도록 절차적 무기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셋째, 공연한 사실에 대한 사회적 판단과 법적 판단이 서로를 존중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죄추정 원칙이 약자를 위한 방패가 되려면 그 방패를 드는 힘이 강자에게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