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기본법 통과: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 4가지
생명안전기본법이 2026년 5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191명 중 찬성 188명, 기권 3명이었다. 이 법은 안전권을 처음으로 법적 권리로 명시하고, 재난 피해자에게 수색요구권, 조사참여권, 구제권, 후속사업참여권을 부여했다. 피해자 범위도 당사자에서 가족, 목격자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세부 범위는 여전히 대통령령에 위임됐다. 법이 통과됐다는 것과 권리를 실제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다른 이야기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5월 5일
이 법은 나와 무슨 상관인가
재난을 당한 적 없다면 이 법이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에 오르고 공장에서 일한다. 2024년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숨졌다. 사망자 18명은 외국 국적의 이주노동자였다. 같은 해 12월 29일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공항에서 착륙 중 충돌해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사건 모두 재난이 오기 전까지 피해자와 행위와 장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지금까지 국민이 재난 피해자가 됐을 때 가질 수 있는 법적 권리는 사실상 없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2025년 12월 기고에서 "국가는 재난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일에는 기준도, 절차도, 권리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12년 동안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싸워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정보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었고 조사에 참여할 법적 지위도 없었으며 지원을 받을 법적 권리도 없었다.
2026년 5월 7일, 재석 의원 191명 중 찬성 188명, 기권 3명으로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권한 3명은 국민의힘 소속 김민전, 김승수, 박충권이다. 반대표는 한 표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12년이 걸렸다.
이 법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기본소득당과 용혜인 대표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용혜인 의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과 함께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시작하며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밝힌 바 있고, 이번 생명안전기본법을 대표발의한 뒤 국회 생명안전포럼 및 시민동행과 함께 법안의 완성도를 높이며 관계 부처와의 수차례 조율로 이견을 좁혀왔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앞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법으로 세우기 위한 이 긴 과정은, 결국 참사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제도권 안에서 끝까지 붙들고 간 정치적 노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안전권이란 무엇인가, 법적 권리와 정책 목표의 차이
이 법의 가장 중요한 조항은 제4조, 바로 안전권이다. 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이 성별, 종교, 국적,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일상생활과 노동현장에서 안전사고 위험으로부터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고 명문화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핵심은 권리와 정책 목표의 법적 차이다. 지금까지 안전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이었다. 목표가 미달돼도 국가는 입법자의 재량 영역이라고 버텼다. 하지만 권리는 다르다. 권리는 침해됐을 때 사법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법적 도구가 된다.
물론 한계는 있다. 법조계는 이 법이 곧바로 국가의 무과실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말 그대로 국가(또는 공공기관)에 과실(잘못)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일정한 요건만 충족하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서는 여전히 국가배상법상 과실과 상당인과관계 입증이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전권 조항을 법원이 적극 해석하기 시작하면 국가 책임 인정의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 그 해석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조희대를 빨리 대법원장에서 탄핵시켜야 하는 것은 국민에게 불리하도록 법을 해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순수한 뇌피셜이다. 그 자는 언제나 자기에게 유리한 해석만 하기 때문이다.
재난 피해자가 가지게 된 4가지 권리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 원문은 제7조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직접 명문화했다. 그 내용은 네 가지다.
첫째, 수색요구권이다. 생사가 분명하지 않은 가족이 있을 때 국가에 수색을 공식 요구할 법적 근거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호소할 뿐이었다. 이제는 권리가 됐다.
둘째, 조사참여권이다. 사고 원인과 국가의 대응 적정성에 대한 조사에 피해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정부 조사 과정의 폐쇄성과 제한된 정보 접근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12년 동안 해 온 요구를 이제야 법 조문으로 만든 것이다.
셋째, 구제권이다. 배상 및 보상 등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시됐다.
넷째, 후속사업참여권이다. 추모사업과 공동체 회복사업 등 안전사고 관련 후속 사업에 피해자가 참여할 권리다. 지금까지 추모 공간 하나 만드는 데도 정치적 갈등을 거쳐야 했다. 이제 그 참여를 법이 보장한다.
피해자 범위가 확대됐다
이 법이 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하나 더 있다. 법안은 안전사고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목격자 등 관련자를 피해자로 규정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는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면 명확해진다. 직접 다치지 않았지만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현장을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안고 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법적으로 피해자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청구할 수 없었고 지원을 요구할 근거도 없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
이제 그 경계가 달라졌다. 단, 구체적 피해자 범위는 대통령령에 위임됐다. 원안에 명시됐던 목격자로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최종 법안에서 시행령으로 내려갔다. 세부 규정이 얼마나 넓게 정해지느냐가 실질적 수혜 범위를 결정한다.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이 법은 상설 독립조사기구인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이것이 기존 체계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고 조사위를 새로 꾸리고 해산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세월호는 특별조사위원회,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거쳤다. 이태원은 특별법이 표류했다. 12.29 제주항공 사고는 지금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매번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고 매번 정치적 공방이 조사를 지연시켰다.
조사위가 상설화되면 참사가 발생해도 새 조직을 꾸리는 공백이 사라진다. 전문성과 기록이 축적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핵심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조사위의 독립성은 조문이 아니라 시행령이 결정한다. 위원 구성 방식, 예산 편성 독립 여부, 자료 요구 권한의 강제성, 조사 결과의 이행 감시 장치, 이 모든 것이 아직 시행령에 남아 있다. 구조를 짜는 것은 행정부이고, 독립성을 요구하는 것은 유가족이며, 부실 조사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다음 참사의 피해자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법이 통과됐다고 내일부터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 법은 공포 후 시행령 제정과 조직 구성의 과정을 거쳐야 실제로 작동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이 재난 피해자거나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참사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면 이 법 시행 이후 새롭게 가지게 되는 조사참여권과 정보 요구권을 법적 대리인과 함께 점검할 것을 권한다. 법 시행 전 발생 사건에 대한 적용 범위는 시행령에서 결정되며, 2026년 5월 현재 확정되지 않았다.
둘째, 시민으로서 곧 나올 대통령령을 감시해야 한다. 피해자 범위, 조사위 구성 방식, 위원 독립성 보장 조항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기느냐가 이 법의 실질적 가치를 결정한다. 좋은 법을 나쁜 시행령이 공동화한 사례는 한국 법제사에 적지 않다. 한동훈의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법은 마침표가 아니다. 출발점이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안전에 관한 모든 사람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 치단체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안전사고에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 안전사고 피해자의 권리 등을 규정함과 아울러 안전사고의 발생 원인 및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안전사고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조사의 보장, 안전영향평가제도 등을 규정함으로써 안전사고로부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FAQ
Q. 생명안전기본법은 언제부터 시행되나?
공포 후 시행령 제정 과정이 필요하다. 2026년 5월 현재 시행 일정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시행령 제정 완료 후 실질적 적용이 가능하다.
Q. 재난 피해자가 아닌데 이 법이 나와 상관있나?
상관 있다. 이 법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최상위 기본법이다. 당신이 앞으로 어떤 재난을 맞닥뜨렸을 때, 이 법의 안전권 조항이 국가 대응 기준이 된다.
Q. 세월호, 이태원, 12.29 사고 피해자에게 소급 적용되나?
법률은 원칙적으로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가 설치되면, 기존 사건 재조사 여부는 시행령에서 결정된다.
Q. 피해자 범위가 목격자까지 확대됐다는데, 어디까지인가?
이 법은 피해자의 구체적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원안에는 '목격자로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이 명시됐지만, 최종 법안에서 세부 범위가 시행령으로 내려갔다. 대통령령 발표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Q.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 쉬워지나?
즉각적인 변화는 없다. 법조계는 실제 소송에서 여전히 국가배상법상 과실 입증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본다. 다만 법원이 안전권 조항을 적극 해석하면 국가 책임 인정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근거 자료
-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 원문(국회 의안정보시스템, 2026.5.7): https://likms.assembly.go.kr/bill/bi/common/preview/pdfPreview.do?bookId=1722DB48-10AC-D825-77CA-863AD1C89FB9§ion=bill&filetype=p
- 세이프타임즈, "세월호 12년 '안전은 권리' 명시 생명안전기본법 국회 통과"(2026.5.7): https://www.saf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2589
- 경향신문 정동칼럼, "생명안전기본법안을 읽으며"(2026.5.3):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031958005/
-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 기고(2025.12.12): https://v.daum.net/v/b9xjoVTsZi
- 위키백과, 화성 전지 제조공장 화재: https://ko.wikipedia.org/wiki/화성_전지_제조공장_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