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토요일 · 서울

Independent Journal of Technology, Power & Culture

raylogue

완고한 사실 위에서, 변화의 구조를 읽다

Featured Raylogue Special Issue · 2026.07

AI는
권력이다

AI는 사람처럼 권력을 욕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자리와 정보, 자유와 몫을 대규모로 판단하면서 기준은 감춘다. 이제 질문은 성능이 아니라 통제다.

레몬색 배경에서 AI 렌즈와 사람, 데이터·저울·투표함·손이 회로로 연결된 일러스트
일곱 갈래의 AI 권력 사이로 인간의 통제선이 지나간다.

통지

설명

인간 재검토

구제

독립 감사

00

권리를 좌우하는 판단이
화면 뒤로 사라질 때

이 특집에서 AI 권력은 ‘권리와 기회를 좌우하는 판단을 대규모로 수행하면서, 판단 기준과 이의제기 경로는 소수 조직이 통제하는 능력’을 뜻한다.

데이터에서 시작해 노동, 감시, 민주주의, 법과 부의 분배로 이동한다. 매 장마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사자는 알 수 있는가. 설명을 들을 수 있는가. 사람이 다시 볼 수 있는가. 잘못됐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

01

권력

도구가 판단자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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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에서 사람이 거대한 AI 판단 기계의 통제선을 붙잡고 있는 일러스트
판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이 붙잡아야 할 통제선도 선명해야 한다.

[사실] AI는 이미 권리와 기회에 영향을 주는 판단 과정에 들어와 있다.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와 법무부는 기업이 채용 소프트웨어와 AI를 써서 장애인을 부당하게 탈락시키면 장애인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의 오류가 어색한 답변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의 일자리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EEOC·법무부 자료

여기서 AI를 사람처럼 상상할 필요는 없다. AI가 욕망을 품고 권력을 탐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 AI 권력은 이렇게 정의한다. 권리와 기회를 좌우하는 판단을 대규모로 수행하면서, 판단 기준과 이의제기 경로는 소수 조직이 비대칭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이다. 규모, 속도, 불투명성, 이의제기의 어려움이 한데 모일 때 도구는 권력의 장치가 된다.

[사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2026년 5월 보고서에서 비동의 웹 스크래핑에 의존하는 독립형 생성형 AI가 프라이버시와 차별금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를 “unlawful by design”이라고 불렀다. “설계부터 불법”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아니라 국제인권단체의 법적 평가다. 앰네스티 보고서

그렇다면 AI는 중립적인 도구이고, 쓰는 사람만 잘 통제하면 되지 않을까?

이용자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채용 AI에는 개발자가 고른 데이터와 평가 기준이 이미 들어가 있다. 결과에는 데이터를 모은 사람, 모델을 만든 기업, 시스템을 산 기관의 선택이 함께 작용한다. 책임도 그 경로를 따라 나눠야 한다.

[사실] 그렇다고 AI가 인권에 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OECD는 AI가 교육과 건강에 관한 권리를 넓힐 수 있다고 본다.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를 돕는 접근성 기술도 가능하다. OECD 디지털 시대의 인권 OECD 장애인 노동시장 보고서

바로 그 효익 때문에 통제가 더 중요하다. 유용한 기술일수록 더 넓게 쓰이고, 잘못된 판단의 영향도 커지기 때문이다. 효익을 인정하는 것과 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반대말이 아니다.

이 시리즈는 다섯 가지를 계속 묻는다. 당사자에게 AI 사용을 알렸는가. 판단 기준을 설명했는가. 사람이 재검토할 수 있는가. 잘못됐을 때 이의를 제기하고 구제받을 수 있는가. 독립적인 감사와 시민 참여가 가능한가.

AI 시대의 인권은 기술을 거부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누가 판단 기준을 만들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오류의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지 묻는 절차다. 이 글에서는 그 권력의 첫 번째 연료인 데이터를 따라간다.

권력은 결과보다 앞에서 만들어진다

알고리즘의 판단은 화면에 점수가 뜨는 순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먼저 어떤 문제를 자동화할지 정하고, 성공을 무엇으로 측정할지 고르고, 누구의 기록을 학습 데이터로 쓸지 결정한다. 그 뒤에야 모델이 만들어지고 현장에 배치된다. 따라서 권력을 살피려면 마지막 결과만이 아니라 목표 설정에서 구매, 운영, 사후 대응까지 이어지는 전체 경로를 보아야 한다.

예컨대 채용에서 ‘좋은 지원자’를 과거 우수 직원과 비슷한 사람으로 정의하면 과거 조직의 편향도 성공의 기준에 섞일 수 있다. 반대로 접근성 도구가 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업무 수행을 돕도록 설계된다면 같은 AI도 기회의 문을 넓힌다. 기술의 이름이 결과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최적화했고 그 과정에서 누구의 경험을 중요하게 취급했는지가 결과를 만든다.

규모도 중요하다. 한 관리자의 편견은 심각하지만 적용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자동화된 판단은 같은 기준을 수천 명에게 동시에 적용하고 서로 다른 기관으로 빠르게 복제한다. 작은 오류율도 적용 인원이 커지면 많은 사람의 불이익으로 바뀐다. 효율성은 좋은 결과뿐 아니라 잘못된 기준까지 확장하는 힘이다.

정확도가 높으면 권력 문제도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정확도는 중요한 기술적 기준이지만 정당성 전체를 대신하지 못한다. 어떤 판단은 틀릴 확률이 낮아도 애초에 해서는 안 될 수 있다. 또 전체 평균이 좋아도 특정 집단에 오류가 집중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AI가 쓰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결과를 이해하거나 다툴 길이 없다면 높은 정확도만으로 절차가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권의 언어는 “얼마나 잘 맞혔는가” 다음의 질문을 요구한다. 이 판단이 꼭 필요한가. 덜 침해적인 다른 방법은 없는가. 어떤 집단이 더 큰 위험을 떠안는가. 사람의 검토는 이름뿐인 절차인가, 실제로 결과를 바꿀 권한이 있는가. 피해가 생겼을 때 누가 조사하고 보상하는가.

이 질문들은 혁신을 늦추는 장벽이 아니다. 오류를 숨긴 채 빠르게 확장한 시스템은 결국 더 큰 비용으로 중단되거나 교체된다. 처음부터 통지와 기록, 이의제기와 감사를 설계한 시스템은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고 고칠 수 있다.

책임을 “AI가 그랬다”는 문장 뒤에 숨겨서도 안 된다. 모델은 정책 목표를 선택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는다. 책임의 주체는 데이터를 수집한 조직, 모델을 만든 기업, 도입을 결정한 기관, 결과를 사용한 사람이다. 이들이 각자의 결정과 통제 범위에 맞게 책임을 나눌 때만 자동화가 책임의 공백으로 변하지 않는다.

결국 AI가 권력이 되는 경계는 지능의 높이가 아니라 인간의 통제 가능성에 있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알 수 없고 설명을 들을 수 없으며 판단을 바꿀 수도 없다면 그 시스템은 이미 권력을 행사한다. 반대로 중요한 결정에 사람이 개입하고 당사자가 다툴 수 있으며 독립적인 감시가 작동한다면 AI는 다시 통제 가능한 도구에 가까워진다.

02

데이터

내 데이터는 누구의 허락으로 자원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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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에서 개인의 사진과 기록이 데이터 금고로 흘러가고 손이 열쇠를 쥔 일러스트
공개된 정보라고 해서 맥락과 동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신의 문장이 수십억 개 문서와 함께 복제돼 상업용 AI의 학습재료가 될 것까지 예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개는 접근을 허용하지만 모든 2차 이용에 동의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유럽데이터보호이사회는 AI 모델의 개인정보 사용을 사안별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데이터가 공개돼 있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수집됐는지, 당사자가 새 용도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 모델에서 개인정보를 다시 꺼낼 수 있는지 등을 함께 본다. EDPB 의견

[사실] 영국 개인정보감독기구는 생성형 AI 학습용 웹 스크래핑을 “high-risk, invisible processing activity”라고 불렀다. “고위험의 비가시적 처리”라고 번역할 수 있다. ICO 분석

문제는 정보의 격차다. 기업은 무엇을 얼마나 모았는지 안다. 개인은 자신의 글과 사진이 어느 데이터셋에 들어갔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처리 사실을 모르면 거부와 삭제도 요구하기 어렵다.

인터넷에 누구나 볼 수 있게 올렸다면 AI도 읽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사실] 사람이 글을 읽는 것과 대규모로 복제해 상업적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은 같은 처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웹 스크래핑을 곧바로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EDPB와 ICO는 정당한 이익을 법적 근거로 삼을 가능성을 열어 두되, 목적과 필요성, 당사자 권리를 엄격히 따져야 한다고 본다.

이미 배운 모델에서 개인 데이터를 지우는 일은 아예 불가능할까?

[사실] ICO는 문제가 된 학습데이터를 빼고 모델을 다시 학습시키는 일이 매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ICO 분석 [추정] 머신 언러닝이나 다른 삭제 방법의 실효성은 모델 구조와 적용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언제나 완전 삭제가 가능하다”거나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두 단정 모두 피해야 한다.

데이터 권력의 통제는 수집 뒤가 아니라 수집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을 왜 모으는지 알리고, 거부와 삭제 방법을 설명해야 한다. 요청을 사람이 재검토하고, 삭제 결과를 독립적으로 검증할 방법도 필요하다.

데이터는 저절로 정리되지 않는다. 문장을 거르고 이미지에 이름을 붙이며 유해한 답변을 판별하는 사람이 있다. 이 글에서는 AI가 감춘 노동을 본다.

동의는 체크박스보다 길다

온라인 서비스의 동의 화면은 대개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난다. 그러나 AI 학습은 수집 당시의 목적을 넘어 데이터를 오래 보관하고 다른 자료와 결합하며 새로운 모델에 재사용할 수 있다. 이용자가 사진을 공유한 행위와 그 사진이 얼굴인식이나 생성형 AI의 훈련 자원이 되는 데 동의한 행위는 같지 않다. 의미 있는 동의라면 무엇을 왜 모으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보관하고 누구와 나누며 어떤 모델에 쓰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공개한 정보는 누구나 마음대로 써도 되는가?

공개와 무제한 이용은 같은 말이 아니다. 사람은 취업을 위해 경력을 올리고 공동체와 소통하기 위해 사진을 공유하며 도움을 받기 위해 게시판에 건강 문제에 관해 글을 쓴다. 검색 결과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이 예측하기 어려운 대규모 학습과 상업적 재사용까지 자동으로 허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데이터는 서로 결합될 때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단편적인 위치 기록, 구매 내역, 검색어는 각각 평범해 보여도 함께 묶이면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 정치적 관심, 인간관계를 추론하는 재료가 된다. 프라이버시는 숨길 비밀의 목록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어떤 맥락에서 누구에게 보일지를 조절하는 능력에 가깝다.

삭제는 버튼이 아니라 설계다

원본 데이터 한 건을 저장소에서 지우는 것과 이미 학습된 모델이 그 흔적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책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조직은 데이터의 출처와 사용 이력을 기록하고 중복 저장된 위치를 파악하며 이후 학습과 배포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 삭제 가능성은 문제가 생긴 뒤 붙이는 기능이 아니라 수집 단계부터 준비해야 할 설계 조건이다.

데이터 제공자가 얻는 몫도 물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글과 그림, 목소리와 행동 기록이 모델의 성능을 만들지만 경제적 이익과 결정권은 플랫폼과 모델 기업에 집중되기 쉽다. 모든 사용을 개별 보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창작자와 이용자가 선택하고 거부하며 집단적으로 협상할 통로는 필요하다.

좋은 데이터 거버넌스는 네 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수집 목적은 구체적인가. 필요한 범위를 넘겨 모으지 않았는가. 민감한 정보와 취약한 집단에 더 강한 보호를 적용했는가. 사용이 끝난 뒤 삭제하거나 재사용을 중단할 수 있는가. 여기에 독립 감사와 피해 구제까지 더해야 동의가 형식이 아니라 권리가 된다.

AI의 성능은 데이터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출처가 분명하고 맥락이 보존되며 당사자의 선택이 존중되는 데이터가 더 책임 있는 기술의 기반이다. 데이터 권리를 성능의 방해물로 보는 순간 모델은 사람의 삶을 자원으로만 읽기 시작한다.

03

노동

AI가 스스로 똑똑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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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의 거대한 AI 기계 안에서 여러 노동자가 데이터를 분류하고 장치를 정비하는 일러스트
매끄러운 AI의 답변 뒤에는 분류하고 검토하고 고치는 사람이 있다.

이용자는 질문을 입력하고 몇 초 뒤 자연스러운 답을 받는다. 화면에는 모델을 만든 회사 이름만 보인다. 데이터를 분류하고 답변의 품질을 비교하며 폭력적인 콘텐츠를 먼저 본 노동자는 인터페이스 밖으로 밀려난다.

[사실] 2026년 ILO 연구는 AI가 두 종류의 인간 노동에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모델을 개발하고 조정하는 알고리즘 노동자와 데이터를 분류·정제·확장하는 데이터 노동자다. 인도와 케냐의 조사에서는 데이터 노동이 최종 이용자에게 거의 보이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적정 노동조건의 부족에 노출됐다. ILO 연구

메리 그레이와 시다스 수리는 『Ghost Work』에서 이렇게 썼다. “These people doing ‘ghost work’ make the internet seem smart.” Microsoft Research

이를 “고스트 워크를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똑똑해 보이게 만든다”로 번역하겠다. 지금의 생성형 AI에 적용하면, 자동화가 노동을 모두 없앤 것이 아니라 노동의 위치와 계약 형태를 바꿨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오류를 표시하고, 혐오 표현을 읽고, 답변의 순서를 매긴다.

그래도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럴 수 있다. ILO와 폴란드 NASK가 2025년 발표한 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 고용의 약 25%가 생성형 AI에 잠재적으로 노출된다. 연구진은 즉각적인 대체보다 업무의 변환이 더 유력하다고 강조했다. 고소득국의 노출 비중은 34%, 저소득국은 11%였다. ILO–NASK 보고서

[사실] 고소득국에서 최고 노출군은 여성 고용의 9.6%, 남성 고용의 3.5%다. 기존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사무·행정 직군에 많이 분포한 구조가 AI 노출에도 반영됐다.

“변환”이라는 말만으로 비용의 주체를 감추면 안 된다. 기업이 생산성 이익을 얻는 동안 노동자가 재교육과 실직 위험을 홀로 감당한다면 공평한 변환이 아니다.

AI 노동정책은 일자리 수만 세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 노동자가 AI 공급망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업무 기준과 임금을 설명하고, 유해 콘텐츠 업무를 거부하거나 사람이 재검토할 길을 열어야 한다. 계약상 지위와 상관없이 이의제기와 구제, 독립적인 노동조건 감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자동화된 판단이 감시와 만날 때 누가 더 자주 의심받는지 살핀다.

자동화의 마지막 1미터

우리가 자동화라고 부르는 장면의 뒤에는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마지막 구간이 남는다. 사진 속 물체의 경계를 그리고 혐오 표현을 분류하며 챗봇의 답변 가운데 더 나은 것을 고르는 일이다. 모델이 배포된 뒤에도 신고를 검토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사람이 필요하다. AI가 사람을 완전히 제거했다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노동을 재배치한 경우가 많다.

이 재배치는 책임의 거리도 늘린다. 서비스를 쓰는 기업은 플랫폼과 계약하고 플랫폼은 다시 공급업체와 하청업체에 작업을 나눌 수 있다. 노동자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짧은 단위의 과업을 수행한다. 공급망이 길어질수록 가격과 속도는 위에서 정해지고 불규칙한 소득과 유해 콘텐츠 노출, 계정 정지의 위험은 아래로 내려가기 쉽다.

일자리가 생겼다면 좋은 일 아닌가?

일자리의 존재와 일자리의 질은 따로 살펴야 한다. 새로운 소득 기회가 생기는 것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가 임금 산정 방식을 알 수 없고 작업 거절이 평점 하락으로 이어지며 자동화된 계정 정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면 그 기회는 취약하다. AI 산업의 고용 효과를 평가하려면 일자리 수뿐 아니라 소득의 안정성, 안전, 협상력, 경력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

폭력적 이미지와 혐오 표현을 반복해서 보는 검수 노동은 모델 안전에 필수지만 그 비용은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남는다. 보호 장비가 필요한 공장처럼 디지털 작업에도 노출 시간 제한, 상담과 휴식, 업무 전환,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안전한 AI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 위에 세워질 수 없다.

참여 없는 보호는 오래가기 어렵다

노동자를 보호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작업이 위험한지, 할당 방식이 공정한지, 품질 평가가 현실적인지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안다. 계약 조건과 평가 알고리즘을 바꿀 때 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집단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통로를 열어야 한다.

기업은 데이터와 모델 공급망에 어떤 노동이 들어가는지 공개하고 하청 단계가 늘어나도 최소한의 임금과 안전 기준이 유지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자동화된 성과 평가나 계정 정지가 생계를 끊을 수 있다면 사람이 재검토해야 한다. 발주 가격과 마감이 안전 기준을 사실상 무력화하지 않는지도 감사해야 한다.

모델의 성능을 연구자와 컴퓨팅 자원의 성과로만 설명하면 분류하고 교정하고 위험한 내용을 걸러낸 사람들의 기여는 사라진다. 기여를 기록해야 보상과 책임도 나눌 수 있다. AI가 집단적 생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기술의 가치를 낮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가치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말하는 일이다.

“AI가 스스로 배웠다”는 표현은 편리하지만 불완전하다. 그 문장에는 데이터를 만든 사람, 지시문을 설계한 사람, 답변을 평가한 사람, 배포 뒤 문제를 처리한 사람이 빠져 있다. 자동화의 진짜 질문은 인간이 사라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인간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가이다.

04

감시

모두를 보지만 똑같이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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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에서 감시 카메라의 얼굴인식 격자가 다양한 시민을 훑고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차단하는 일러스트
얼굴을 정확히 알아보는 능력은 얼굴을 알아봐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다.

공공장소의 얼굴인식 카메라는 한 사람만 보지 않는다. 지나가는 얼굴을 모으고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일치 가능성을 점수로 표시한다. 감시가 빨라지면 기관이 확인할 수 있는 사람도 늘어난다. 오류 역시 더 넓게 퍼질 수 있다.

[사실] 미국 NIST는 얼굴인식 알고리즘의 오탐률과 미탐률이 연령·성별·인종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확인해 왔다. 격차의 크기는 알고리즘과 촬영 조건, 사용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NIST 평가

“얼굴인식은 언제나 차별적이다”라고 말하면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알고리즘마다 성능과 집단 간 차이가 다르다. 그러나 평균 정확도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공공 감시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탐으로 경찰의 의심을 받는 사람에게 평균 99%는 충분한 답이 아니다.

[사실]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2025년 입장문에서 비동의 이미지 스크래핑으로 만든 얼굴 데이터베이스와 무차별적인 실시간 공공 생체감시를 금지하거나 중단할 대상으로 제시했다. 또 “strictly necessary and proportionate”라는 기준을 요구했다. “엄격하게 필요하고 비례해야 한다”는 뜻이다. OHCHR 입장문

숨길 것이 없다면 감시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2026년 유엔 특별보고관 연구는 84개국 활동가·언론인·인권옹호자 152명의 경험을 조사했다. 연구는 디지털 감시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분석했다. OHCHR 연구

감시는 붙잡힌 사람만 바꾸지 않는다. 자신이 기록되고 분류된다고 느낀 시민은 합법적인 발언과 참여도 줄일 수 있다. 핵심은 카메라 한 대가 아니라 비대칭이다. 기관이 시민을 보는 능력은 커지는데 시민이 기관의 판단을 들여다보는 능력은 그대로다.

감시 권력을 통제하려면 사용 목적과 기간, 대상을 먼저 알려야 한다. 일치 점수와 한계를 설명하고, 불이익을 주기 전에 사람이 재검토해야 한다. 오탐 피해자는 기록 정정과 구제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기관과 시민사회가 시스템을 감사할 권한도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이 비대칭이 선거와 공론장으로 옮겨갈 때 공동의 현실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본다.

정확한 감시는 정당한 감시인가

얼굴을 정확히 알아본다는 사실은 그 얼굴을 알아봐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다. 기술적 성능과 사회적 정당성은 서로 다른 질문이다. 실종자를 찾는 제한된 검색과 집회 참가자를 상시 추적하는 시스템은 같은 기술을 쓰더라도 목적과 위험이 다르다. 필요성과 비례성은 바로 이 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감시의 힘은 데이터가 연결될 때 커진다. 얼굴 정보가 위치 기록, 교통카드, 구매 내역, 소셜미디어 계정과 결합되면 한 사람의 이동과 관계를 촘촘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 각각의 정보가 합법적으로 수집됐다고 해도 결합된 생활 지도까지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편향은 모델 안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집단별 오탐률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차별은 학습 데이터나 알고리즘의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카메라가 어느 지역에 더 많이 설치되는지, 누가 감시 대상 목록에 오르는지, 낮은 일치 점수를 현장 담당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 같은 모델도 특정 공동체에 집중 배치되면 그 공동체가 더 자주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공정성 평가는 실험실의 정확도 표에서 끝나면 안 된다. 실제 환경에서 어떤 집단이 더 많이 촬영되고 누가 더 자주 추가 확인을 받으며 오탐 뒤 기록이 어떻게 남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오류가 정정된 뒤에도 의심 기록이 다른 데이터베이스에 남는다면 피해는 계속될 수 있다.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감시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공공 안전은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나 모든 시민을 지속적으로 식별하는 방식이 실제로 필요한지, 시간과 장소를 좁힌 덜 침해적인 대안은 없는지, 효과를 입증할 독립 자료가 있는지 따져야 한다. 안전과 자유를 단순한 교환 관계로 놓으면 감시 범위는 늘어나기 쉽지만 한 번 넓어진 권한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감시 장소에는 목적과 운영 주체를 알리고 생체정보 보관 기간과 공유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일치 결과만으로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하고 담당자가 원자료와 다른 증거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당사자는 자신에게 어떤 정보가 사용됐는지 확인하고 오류를 고치며 독립기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도 숫자 하나를 확인하는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도, 집단별 오류, 설치 위치, 검색 횟수, 실제 성과, 이의제기와 구제 결과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긴급 상황에 허용된 시스템이 일상 행정으로 확장되지 않는지도 정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감시 권한의 확대 여부도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목적과 종료 조건을 문서로 남겨야 한다. 시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수집을 시작한 뒤 효과 검증 없이 범위만 넓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독립기관은 범죄 예방 성과뿐 아니라 오탐으로 받은 조사, 행동을 위축시킨 효과, 삭제되지 않은 기록까지 비용으로 계산해야 한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거나 덜 침해적인 수단이 가능하다면 사용을 멈추는 결정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얼굴은 비밀번호처럼 바꾸기 어렵다. 유출되거나 오용된 생체정보는 피해를 되돌리기 특히 어렵다. 따라서 기본 질문은 “할 수 있는가”보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제한적으로 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시민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에는 기관의 운영을 투명하게 만드는 더 강한 의무가 따라야 한다.

05

민주주의

AI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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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에서 투표함 주변으로 가면과 복제된 얼굴, 왜곡된 음성 파형이 흩어지는 일러스트
합성의 시대에는 거짓을 가려내는 일과 진짜를 입증하는 일이 동시에 어려워진다.

2024년 미국 뉴햄프셔 예비선거를 이틀 앞두고 유권자들은 조 바이든의 목소리로 된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바이든은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했다. 실제 바이든이 아니라 생성형 AI가 복제한 목소리였다.

[사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2024년 정치 컨설턴트 스티브 크레이머에게 600만 달러의 벌금을 제안했다. 2026년에는 벌금을 실제로 부과하고 법무부에 징수를 의뢰했다. FCC 2024년 자료 FCC 2026년 자료 미국 법무부는 허위 투표정보를 전달한 AI 로보콜이 투표권법상 협박·위협·강요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법원에 냈다. 미 법무부

[미확인] 이 로보콜이 선거 결과를 바꿨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종 득표에는 정당 지지, 후보 경쟁력, 언론 보도와 투표율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결과를 바꿨다는 증거가 없다면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있다. 생성형 AI는 짧은 시간에 거짓의 여러 변형을 만들고 집단별로 다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반대로 진짜 기록이 나와도 당사자는 “AI가 만든 것”이라고 부인할 수 있다. AI는 거짓의 양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입증하는 부담도 키운다.

[사실] 한나 아렌트는 「Truth and Politics」에서 사실적 진리가 정치적 공동체에 얼마나 취약하면서도 필요한지를 논했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이를 AI 시대의 선거에 적용하면, 딥페이크 한 편보다 더 큰 위험은 시민이 어떤 기록도 믿을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다.

[사실] EU는 AI Act 하나만으로 선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Digital Services Act, 정치광고 투명성 규정, 허위정보 행동강령을 결합해 대형 플랫폼에 선거 위험 관리 책임을 묻는다. EU 집행위원회

개인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만 요구해서는 부족하다. 합성 콘텐츠와 정치광고임을 알려야 한다. 플랫폼은 추천과 확산의 기준을 설명하고, 이의제기된 콘텐츠를 사람이 재검토해야 한다. 피해자는 신속한 정정과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선거기관과 독립 연구자도 확산 경로를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런 책임을 법이 실제로 부과하고 있는지 EU와 한국을 비교한다.

거짓말의 속도와 변형 능력

생성형 AI가 선거에 더하는 힘은 완전히 새로운 거짓말의 발명보다 생산 비용의 급격한 하락에 있다. 한 사람이 짧은 시간에 여러 언어와 지역 정서에 맞춘 이미지, 음성, 영상을 만들 수 있다. 반응이 낮은 버전은 버리고 더 잘 퍼지는 버전을 반복해서 내보낼 수도 있다. 허위정보는 하나의 완성품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최적화되는 캠페인이 된다.

정정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어렵다. 사실 확인에는 원본과 발언 맥락, 계정의 유통 경로를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감정적인 조작물은 확인보다 공유가 앞선다. 선거처럼 시간이 제한된 사건에서는 투표 뒤 나온 정확한 정정이 피해를 완전히 되돌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후 삭제만이 아니라 초기 확산을 늦추고 출처를 확인하게 하는 장치가 중요하다.

진짜도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

딥페이크의 피해는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합성물이 흔해질수록 실제 녹음과 영상의 당사자도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AI가 만든 것”이라고 부인할 수 있다. 무엇이든 조작될 수 있다는 의심은 거짓말쟁이에게 새로운 방패를 준다. 공동의 사실 기반이 무너지면 시민은 잘못된 정보를 믿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정보를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고 합성 콘텐츠를 모두 금지해야 할까?

그럴 수 없다. 풍자와 예술, 교육,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재연에도 합성 기술이 쓰인다. 문제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기만의 목적과 맥락, 예상되는 피해다. 후보자가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꾸며 투표 판단을 바꾸려는 콘텐츠와 명확히 표시된 패러디는 구분해야 한다.

표시는 필요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제작 단계의 워터마크와 출처 정보가 유통 과정에서 제거될 수 있고 이용자가 표시의 의미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기술적 출처 표시, 플랫폼의 눈에 띄는 안내, 신속한 신고와 이의제기, 선거기관과 언론의 검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플랫폼은 중립적인 통로인가

추천 시스템은 무엇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지 결정한다. 분노와 놀라움을 일으키는 조작물이 참여를 끌어낸다면 플랫폼의 설계가 확산을 가속할 수 있다. 플랫폼 책임은 콘텐츠를 만들었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반복 유포 계정, 정치 광고의 구매자와 타기팅 기준, 검증 전 콘텐츠의 확산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살펴야 한다.

동시에 삭제 결정에도 투명성과 이의제기가 필요하다. 자동 탐지가 풍자나 보도를 잘못 막을 수 있고 집권 세력이 “허위정보 대응”을 비판 억압에 이용할 위험도 있다. 어떤 규칙으로 제한했는지 알리고 독립적인 재검토와 복구 절차를 제공해야 한다.

시민에게 필요한 능력도 단순한 진위 판별을 넘어선다. 출처가 불분명한 충격적 콘텐츠 앞에서 공유를 멈추고 원문과 복수 보도를 확인하며 자신의 감정을 겨냥한 메시지인지 돌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넘길 수는 없다. 산업과 플랫폼, 선거기관이 정보 환경을 안전하게 설계할 의무가 먼저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같은 의견을 갖는 체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도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확인할 공동의 절차를 유지하는 체제다. AI 시대의 과제는 완벽한 진실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를 속도와 조작의 압력 속에서도 지키는 일이다.

06

규제

법은 AI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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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에서 유럽과 한국을 상징하는 두 규제 건축물 사이를 시민과 저울이 연결하는 일러스트
법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실제로 통지받고 이의를 제기하며 구제받는가이다.

2026년 7월 25일, EU는 AI Act의 일반 적용일을 여드레 앞두고 있다. 한국은 AI 기본법을 시행한 지 여섯 달이 지났다. 이제 “AI를 규제할 법이 없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질문은 법이 무엇을 금지하고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지우는가다.

[사실] EU AI Act는 2024년 8월 발효됐다. 금지된 AI 관행과 AI 리터러시 의무는 2025년 2월부터 적용됐고, 일반 적용일은 2026년 8월 2일이다. EU 의회와 이사회는 일반 고위험 영역의 적용일을 2027년 12월 2일, 제품 내장형 고위험 시스템의 적용일을 2028년 8월 2일로 늦추는 데 잠정 합의했다. 2026년 7월 25일 현재 집행위 안내도 이 날짜를 제시하지만, 이는 진행 중인 입법 절차의 상태와 함께 읽어야 한다. EU 이사회 잠정 합의 EU 집행위원회

[사실] 한국의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2025년 1월 21일 공포됐고, 법과 시행령은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됐다. 2026년 1월 개정된 일부 조항은 같은 해 7월 21일부터 시행됐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시행령

[사실] 한국 법 제34조는 고영향 AI 사업자에게 위험관리, 주요 판단 기준과 학습데이터 개요의 설명 방안, 이용자 보호, 사람의 관리·감독과 문서 보관을 요구한다. 제34조 기업이 “AI가 결정했다”며 책임까지 자동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두 법이 있으니 이제 충분한 것 아닐까?

아직 아니다. EU는 사회적 점수화와 일부 생체감시를 금지하고 위험 등급에 따라 의무를 달리한다. 한국은 별도의 금지 목록보다 진흥과 투명성, 고영향 AI 관리에 더 무게를 둔다. [사실] 한국 법 제35조는 민간 사업자의 기본권 영향평가를 의무로 못 박지 않고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제35조

[추정] 규칙이 복잡하고 적용 기준이 늦게 나오면 법무와 기술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사실] EU도 이 가능성을 고려해 중소기업용 간소화 절차와 규제 샌드박스, 실제 환경 시험을 마련하고 있다. EU AI Act 안내

강한 규제와 좋은 규제는 같은 말이 아니다. 기본권 위험이 큰 사용에는 분명한 금지선과 의무가 필요하다. 작은 사업자에게는 표준과 감사 도구, 공공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규제가 권리를 보호하면서 시장의 기존 강자만 더 키우지 않게 설계해야 한다.

좋은 법은 AI 사용 사실을 알리고 판단 기준을 설명하게 한다. 사람이 재검토하고 피해자가 구제받을 길을 만든다. 독립기관의 감사와 영향을 받는 시민의 참여도 보장한다. 마지막 편에서는 법만으로 끝나지 않는 질문, AI가 만든 생산성과 부를 누가 가져가는지 묻는다.

두 법은 무엇을 먼저 보는가

유럽연합의 접근은 AI 시스템을 위험 수준에 따라 나누고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은 금지하며 고위험 영역에는 더 무거운 의무를 부과하는 데 무게가 있다. 한국의 접근은 산업 진흥의 기반을 만들면서 고영향 AI와 생성형 AI에 일정한 투명성과 안전 의무를 두는 방식에 가깝다. 두 체계는 모두 혁신과 보호를 말하지만 위험을 분류하고 집행하는 구조에는 차이가 있다.

법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실제로 경험하는 변화다. 채용에서 AI가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복지나 신용 판단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갔을 때 정정할 수 있는가. 얼굴인식의 사용 목적과 보관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원칙과 분류표가 정교해도 권리는 서류에 머문다.

영향평가는 누구를 위한 문서인가

고위험 시스템의 영향평가는 기업이 규정을 지켰다는 증명서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평가의 진짜 목적은 피해를 미리 발견하고 설계를 바꾸는 데 있다. 영향을 받을 노동자와 소비자, 장애인과 소수집단이 위험을 설명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개발팀이 예상하지 못한 피해 경로는 당사자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영업비밀과 보안을 지키면서도 시스템의 목적, 사용 데이터의 범주, 주요 위험, 완화 조치, 담당 기관과 이의제기 방법은 시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을 준수했다”는 결론만 공개해서는 외부의 검증과 사회적 학습이 어렵다.

규제가 혁신을 막는다는 반론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복잡한 의무는 작은 기업과 공공기관에 큰 비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규제는 의무만 부과하지 않는다. 표준화된 평가 도구, 공용 시험 환경, 기술 지원, 명확한 지침을 제공해 책임 있는 개발 비용을 낮춘다. 보호와 혁신을 연결하는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권리 보호를 선택 사항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의 안전과 기회에 큰 영향을 주는 기술에는 검증 비용이 따른다. 핵심은 모든 AI에 같은 부담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영향의 크기와 사용 맥락에 비례해 의무를 설계하는 일이다.

집행 없는 권리는 약속에 머문다

규제의 성패는 법 시행일보다 그 이후에 결정된다. 감독기관이 전문 인력과 조사 권한을 갖추었는지, 기업 보고를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지, 위반했을 때 시정과 제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지 봐야 한다. 피해자가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헤매지 않도록 단일한 안내와 연계 절차도 필요하다.

개인의 구제 가능성은 가장 현실적인 시험대다. 자신의 불이익에 AI가 관여했음을 알 수 없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무료 또는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재검토를 요청하고 잘못된 결정을 멈추거나 되돌리며 필요한 경우 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법은 최소선이다. 기술과 사용 방식은 계속 바뀌므로 노동조합, 시민사회, 학계, 산업계가 위험 사례와 개선 결과를 공개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규제가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규제가 있다는 이유로 감시를 멈추는 상태다.

좋은 AI 규제의 지표는 문서의 수가 아니다. 차별적 판단이 줄었는지, 감시가 필요한 범위로 제한됐는지, 노동자가 더 안전해졌는지, 피해자가 더 빨리 구제받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법은 AI를 신뢰하라고 명령하는 장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조건을 공개적으로 만드는 장치다.

07

분배

AI가 만든 부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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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색 배경에서 AI 생산성의 나무가 만든 결실을 여러 손이 공동체 쪽으로 다시 나누는 일러스트
AI가 집단의 기여로 만든 부라면 그 결실과 결정권도 더 넓게 나뉘어야 한다.

기업이 생성형 AI를 쓰면 한 사람이 더 많은 문서와 코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생산성이 오르면 사회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생산성 증가가 임금과 고용 안정으로 저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IMF 연구진의 2025년 작업논문 모형은 AI가 서로 반대되는 두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소득 노동자의 업무를 대체하면 임금 격차가 줄 수 있다. 반면 AI 자본의 수익이 자산 보유자에게 집중되면 부의 격차는 커질 수 있다. 이는 IMF 전체의 확정 전망이 아니라 연구진의 모형 결과다. IMF 작업논문

IMF는 AI가 “higher capital returns”를 만들 수 있다고 썼다. “더 높은 자본수익”으로 번역하겠다. 이를 분배 문제에 적용하면, 같은 노동 충격을 받아도 자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AI가 새 일자리를 만들면 분배 문제도 풀리지 않을까?

[사실] 새 일자리는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사라지는 일과 새로 생기는 일이 같은 지역, 같은 시점, 같은 노동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2026년 ILO의 실증연구 검토는 생산성 향상 가능성과 함께 청년층의 진입 일자리 감소, 노동자 자율성 약화, 일의 질 악화와 불평등 심화를 주요 위험으로 제시했다. ILO 검토

기본소득은 가능한 대안 가운데 하나지만 유일한 답은 아니다. 실업·고용보험 확대, 전환기 소득보장, 노동시간 단축, 기업의 재교육 비용 분담, 노동자의 AI 도입 협의권, AI 초과이익 과세와 사회배당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

비교 기준도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빠르게 보호하는가. 재원은 지속 가능한가.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이는가. AI 자산의 집중을 줄이는가. 지역과 성별에 따라 다른 충격을 반영하는가. 기본소득 실험 몇 건만으로 국가 전체의 고용과 물가 효과를 증명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분배에도 앞선 다섯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기업은 AI가 일과 임금을 어떻게 바꾸는지 알려야 한다. 생산성 측정과 인력 결정의 기준을 설명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동화 결정을 함께 검토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전환 피해에는 소득과 교육, 고용의 구제가 따라야 한다. 세금과 사회보험, 기업 의사결정에는 독립적인 감사와 시민·노동자 참여가 필요하다.

“AI는 권력이다”라는 말은 AI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는 권력,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권력, 사람을 분류하고 감시하는 권력, 진실을 입증하기 어렵게 만드는 권력, 생산성 이익을 배분하는 권력을 한 문장으로 묶은 것이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개발자는 데이터와 설계를 설명해야 한다. AI를 배치한 기관은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금지선과 피해구제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과 노동자는 그 규칙을 만드는 자리에 참여해야 한다.

AI가 사람을 대신해 더 많은 판단을 내릴수록 우리는 더 적게 물어야 할까, 더 많이 물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판단을 넘긴 만큼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어떤 법과 제도, 어떤 분배 방식으로 그 책임을 구현할지는 아직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생산성은 누구의 기여로 만들어지는가

AI의 생산성은 모델 기업 한 곳의 발명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연구자와 개발자,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노동자, 데이터를 만든 시민과 창작자, 답변을 평가한 플랫폼 노동자, 공공 연구와 교육에 투자한 사회가 함께 기반을 만든다. 그럼에도 성과가 자본과 지식재산권의 소유자에게만 집중된다면 생산 과정의 집단성과 분배 구조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기업의 위험 부담과 혁신 보상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독점적 지위에서 생기는 수익과 새로운 가치를 만든 정당한 보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와 컴퓨팅, 유통망을 가진 소수 기업이 시장 진입과 가격, 노동 조건까지 좌우한다면 AI의 이익은 기술 성능보다 소유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임금 격차와 자산 격차는 다르게 움직인다

AI가 일부 노동자의 업무를 보완해 임금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자동화 설비와 모델을 소유한 사람의 자산 가치는 더 빠르게 커질 수 있다. 그래서 평균 임금이나 전체 고용만 보면 분배의 한 축을 놓친다. 누가 생산 도구를 소유하고 수익에 대한 권리를 갖는지까지 보아야 AI가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

교육만 늘리면 해결될까?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능력을 키우는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전환할 수 없고 좋은 일자리의 수가 훈련받은 사람만큼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돌봄 책임과 지역 격차, 장애와 연령, 기존 자산의 차이도 전환 기회에 영향을 준다. 재교육을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면 산업 변화의 위험을 개인에게 돌릴 수 있다.

기본소득 역시 중요한 선택지지만 단독 해답은 아니다. 현금 이전은 소득의 바닥을 지지할 수 있어도 일터의 발언권, 데이터 통제, 시장 독점, 공공서비스의 질을 자동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분배 정책은 소득 보장과 노동권, 경쟁 정책, 조세, 공공 서비스, 소유와 참여의 제도를 함께 다뤄야 한다.

분배를 위한 다섯 가지 질문

첫째, AI 도입으로 생긴 시간과 비용 절감이 임금, 노동시간 단축, 가격 인하, 공공 서비스 개선 가운데 어떻게 나뉘는가. 둘째,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도입 과정에 참여하는가. 셋째, 데이터와 창작물의 제공자가 사용을 선택하고 보상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가. 넷째, 독점으로 생긴 초과이익을 사회가 어떻게 환수하는가. 다섯째, 전환의 손실을 가장 취약한 사람이 먼저 떠안지 않도록 어떤 안전망을 두는가.

정책 수단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 이익 공유와 노동시간 단축, 전환기 소득 보장, 평생교육, 공공 AI 인프라, 협동조합형 데이터 관리, 경쟁 촉진과 누진적 조세를 맥락에 맞게 조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효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선택 가능한 제도의 문제로 바꾸는 일이다.

기업의 이사회와 정부의 위원회에 영향을 받는 집단이 참여하는 것도 분배다. 돈을 나눈 뒤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디에 도입하고 어떤 목표를 최적화할지 함께 정하는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결정권의 분배가 빠진 경제적 보상은 불평등의 원인을 그대로 둘 수 있다.

AI가 모두의 일을 덜어 주는 기술이라면 그 혜택은 더 짧은 노동시간과 안정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생산량은 늘었는데 불안정 노동과 부의 집중만 커진다면 기술의 성공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진보는 더 강한 모델을 만드는 속도가 아니라 그 힘이 더 많은 사람의 자유와 안전으로 전환되는 정도로 측정되어야 한다.

Raylogue Special Issue · Conclusion

판단을 넘긴 만큼,
책임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AI를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AI를 쓰는 사회가 누구에게 설명하고, 누구의 이의를 듣고, 누구에게 이익을 돌려줄지 결정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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